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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9

        

         “…….”

         

         “아~ 이거 벌써 봄은 지고 여름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 몸 좀 움직였다고 땀이 이렇게나 뻘뻘 흐르고 말이죠. 에나마는 그놈의 식물 가구를 좀 줄이더라도 냉방을 세게 틀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만.”

         

         에다마츠 아마기가 서늘하고 창백했다면, 자리가 권해지기도 전에 멋대로 반대편에 착석한 남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햇살처럼 반짝였다.

         

         물론 태양이 그처럼 경박하지는 않으니 순전히 색감만 두고하는 표현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아론 드레이퓨스라는 괴짜에 대해 쇼우는 소문도 많이 들어봤지만, 수상하고 의뭉스러운 구석이 많은 사갈 같은 남자라는 조사 보고서를 많이 받았었다.

         

         델타 연구소에서 가장 본거지가 가까운 메가 코프가 파라다이스였던 만큼, 외부 소행이라면 그들이 직접적인 연관이 있거나 관련된 정보를 쥐고 있지 않을까 하는 단락적인 화살 돌리기가 꽤 장기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무슨 인공 의체까지 주문 제작해서 사람 만나러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별종.

         지위에 걸맞게 부하나 비서진을 쓸 법한 일에도 시시콜콜하게 간섭하길 좋아하는 기벽이 있는 이상자.

         그리고…… 근래 들어서 파라다이스 내부의 정적들을 하나하나 무릎 꿇리고 잡아먹느라 바쁜 개미지옥의 포식자.

         

         “아, 음료를 주실 거라면 카페라떼로 부탁드립니다. 이게 한 번 마시기 시작하니 끊기가 힘들더군요. 원래는 계열사 제품만 마셨는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좋은 취미를 배웠습니다.”

         

         “네 놈….”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는 으르렁거림을 쇼우가 가까스로 삼켰다.

         방정맞게 손부채질을 일삼는 태도나 뻔뻔하게 마실 거리를 주문하고 자빠진 자세를 보면 도저히 메가 코프의 중진이라고 믿기 힘들었지만.

         

         외려 그런 와중에도 중간중간 이쪽을 살피는 반개한 눈동자와 한계까지 대화의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느껴져서 말문을 열기가 곤란했다.

         

         게다가 소문과는 다르게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활기가 넘치는 본인이 직접 행차한 탓에 불길한 상상이 자꾸만 뇌리를 스쳐서 강하게 압박하기도 힘들었고.

         

         혹시나 아나스타샤의 신병이 이미 이 작자의 손아귀에 있다면?

         이런 만남을 원한 것 자체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교섭의 첫 발자국이 아닐까?

         그런 걸 원한다면 얼마든지 따라 줄 수 있지만… 무사 귀환을 보장받을 방법이 있나?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물고 정답 없는 상념이 이성을 휘감았다.

         밑바닥이 없는 부정의 골짜기로 끌려들어가는 그의 정신을 다잡아주는 건 언제나처럼 그녀를 향한 깊은 갈망. 엇나가면 어찌 변할지 모르는 아찔한 감정이었으나.

         

         하지만 뜻밖에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쇼우의 고민을 아론은 가볍게 해결해주었다. …다소 기막힌 방식으로.

         

         “그래서, 미스 아나스타샤는 어디 계십니까? 왠지 버려진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한 이사님을 놀리다 보면 도중에 찾아오실 거라 여겼는데. 혹시 제가 왔다는 소식을 따로 전해드려야 했나요? 손님 대접이 영 아니군요.”

         

         “이 망할 새끼가 장난치지 마라…!! 내 심장을 틀어쥐었다고 기고만장하다니… 원하는 게 있다면 빙빙 돌리지 말고 그냥 말하는 게 좋을 거다. 그래 봤자, 나 또한 그녀의 안전을 확인하고 움직이겠지만!”

         

         그 무심하고 성의 없는 질문에. 온갖 의문과 불편함을 참고 참던 쇼우가 기어이 폭발했으니.

         격식마저 잃어버린 말투는 얼핏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 간교한 인간에게 희롱 당하는 게 자신뿐이라면 몰라도 맞바꿀 수 없는 가치가 걸려있다는 사실을 자각 당하니, 어제의 인내심따위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기에.

         

         반면 기대와는 다른 전혀 엉뚱한 질문을 역으로 돌려받은 아론은 생글거리던 표정을 삽시간에 거두어들인 채 미간을 구겼고.

         

         “……안전을 확인하고 움직이겠다? 마치 미스 아나스타샤가 여기 안 계신 것처럼 얘기하시는군요.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죠… 그분의 연락(Sign)을 받자마자 달려온 거라 늦었을 리도 없고요.”

         

         “계속 알 길 없는 소리만 하기는! 꼴을 보니 사직서도 그쪽 작품이겠군…. 젠장, 이런 협박이 다가오기 전에 내가 더욱 주의했어야 하는데…!!”

         

         “음…?”

         

         행동 하나하나가 능글맞은 상대의 페이스에 휘말려 무조건 그녀의 신변에 강압이 있었으리라 단정한 쇼우가 한껏 적의를 키워 나가는 동안, 아론은 자신의 해석과 행동에 실수가 있었나 되짚고 있었다.

         

         세상에 순수한 자의에 의한 선택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객관적인 해답도, 재치 넘치는 돌파구도 모두 상황이 갖춰줘야 나오는 자연스러운 인과일 뿐이다. 그 주체가 환경이 제한한 틀을 스스로 벗어날 힘을 품은 천재지변이 아닌 이상에야.

         

         그저 공식 석상에 그림자를 내비친 것만으로도 세간을 전율시키는 에나마 회장처럼.

         진정 세계를 전복시킬 힘을 그 작은 몸에 품고도 묵묵히 때를 기다리며 신중을 기하는 그의 전략적 동반자처럼.

         

         그런 의미에서 마리나라는 똘똘한 프리랜서 스파이가 흥미로운 정보에 가격을 쳐달라며 파라다이스의 창문을 은밀히 두들긴 건, 어떻게 봐도 아나스타샤에 의해 교묘하게 유도된 행동이었다고 아론은 판단했다.

         

         그렇다면 굳이 자신이 현재 에나마에 있다는 정보를 흘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초대장, 그것 말고는 명쾌히 설명되는 길이 없었거늘.

         

         막상 도착해보니 품위 넘치는 초대장을 보낸 당사자는 사라졌고, 또 에나마의 이사에게 사직서를 제출한 기록이 있다?

         자신의 반복되는 입사 권유에도 코웃음 치고 대신 너가 날 위해 일하라는 솜털 곤두서는 역제안을 건네던 그녀가??

         

         “…하.”

         

         아직 읽어내지 못한 글귀가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소녀에게 인정받은 아론이라는 엘리트가 도달할 수 있는.

         

         서로가 얼굴을 마주보고 있음에도 각자는 상대방이 아니라 자리에 없는 엉뚱한 사람을 떠올리느라 바빴다.

         

         그렇지만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이라는 인물을 쇼우가 순진하게 기적의 산물이자, 혼선된 기억과 자아를 가진 외관 그대로의 무구한 소녀로 봤다면. 아론은 그녀를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이미 도화선에 불이 붙은 화약고로 봤다는 점.

         

         조금 더 유연한 발상을 가지기엔 후자 쪽이 유리했다. 다만 그런 이야기였다.

         ……뭐, ‘위협을 느껴서 사라졌다.’라는 사실만 본다면 우습게도 쇼우의 가설 쪽이 진실에 더 가까웠지만 말이다.

         

         “…나 원 참, 이런 질척거리는 애송이의 뒷감당을 저에게 떠넘기시다니. 이따가 만나 뵈면 사람을 너무 험하게 부리신다고 말씀드려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 애송이라고? 졸부의 앞잡이 주제에 시건방을 떨다니! 감…!!”

         

         감히 라고 말하려던 쇼우의 입이 돌연 닫혔다.

         흡사 독사가 아가리를 벌리고 감췄던 송곳니를 드러내는 것처럼 아론의 눈이 찢어지듯 열렸으니까.

         

         “그럼… 이 아론 드레이퓨스가 고작해야 계승권도 반납한 탈락자, 아마기 말석인 당신에게 협박까지 일삼을 만큼 한가한 인간으로 보이십니까? 제가 전두지휘해서 체결한 에나마와의 펀딩(Funding; 재정 지원) 계약이 몇 개고, 업무 협약 프로젝트가 몇백 개인지는 아십니까??”

         

         “이, 쓰레기가…!!”

         

         “협박이라는 건, 지금 이 자리에서 손짓 몇 번으로 분담금 납입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미스터 아마기의 그림자에 기대 허송세월하던 당신이 그 책임을 뒤집어쓴 다음, 어제 잡혀 들어갔다는 그 누님처럼 동면형(Cold-Sleep Sentence)에 처해지게 만들어주겠다고 떠드는 겁니다.”

         

         지금처럼 감찰사 권한으로 형제 자매들을 괴롭히던 그가, 이런저런 명목으로 원활한 연구 대금 조달을 맡아주던 파라다이스와의 관계를 단신으로 절단 냈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부러 오츠게 회장이 책망할 것도 없이 당장 이사회가 소집되고 사방에서 미움받는 역할을 자처하던 쇼우를 물어뜯으리라.

         

         무엇보다 저절로 권한이 축소된 그에게는 아나스타샤의 손을 잡고 늘어질 기운조차 없을 것이고.

         

         “……다른 말로. 오직 진짜 힘이 있는 사람이 입에 담는 단어만이 설득력을 가진다는 것이죠. 소중한 뼈다귀가 뺏길까 안절부절 못하면서 겁에 질린 개처럼 짖는 게 아니라.”

         

         “큭…!”

         

         “보아하니 그분의 빛남에 홀린 불나방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만 잊으시지요. 분수에 넘치는 여인을 감히 탐하려 들지 말고. 당신에게 별말 없이 사라졌다면 눈에 차지 못했다는 뜻일 터이니.”

         

         미세한 우월감에 젖은 모욕이 고막을 두들겼다.

         마른 하늘의 벼락. 난데없는 날치기에 당한 걸로도 모자라 정확한 전후사정조차 모르는 채로 초면의 남자에게 영혼을 바쳐도 부족한 반려를 포기하라는 말이나 듣고 있다니?

         

         이건 고작 핏줄을 이어받았다는 이유로 이사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에나마이기에 운 좋은 줄 알라는 비아냥거림이나 다름이 없었다.

         

         불과 어젯밤에 느낀 안정감이 허상이었던 것처럼 쇼우의 발 밑이 흔들렸다.

         처음 만나고나서 다시 보기까지 몇 달을 인내했다. 진실을 마주하기 두려워서, 또 기대를 배반하는 결과가 나올까 봐.

         

         평생을 찾아 헤매던 오아시스를 발견한 게 기껏해야 이주일 전, 겨우 복수에 한걸음 내디딘 게 어제인데. 이렇게 잘 짜인 각본처럼 공교로운 순간에 나타난 뱀이 자신을 물어뜯고 영혼을 찢어 놓는다고?

         

         툭툭.

         

         엄포를 놓은 아론이 가볍게 무릎을 털면서 일어났다.

         자신에게 주어진 ‘잔반 처리’도 끝냈겠다 은유적인 힌트와 메시지로 행적을 전하는 아나스타샤를 만나려면 한시라도 빨리 그녀의 흔적을 뒤쫓는 게 유리하기에.

         

         “……잠깐.”

         

         허나… 아론이 쇼우의 말실수로부터 어떤 결론을 도출한 것처럼.

         쇼우 또한 아론의 강압적이고 억지로 떼어내는 듯한… 그러니까 들어올 때와는 달리 조급하고 초조한 마무리에서 뭔가를 느꼈다.

         

         현실은 아나스타샤가 여기에서 사라졌다는 것으로 일축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본질은 무엇이지?

         말마따나 그녀는 에다마츠 아마기라는 인물이 눈에 차지 않아서, 미워서 사라진 것인가? 고백에 대한 대답을 미뤘으면 미뤘지 이런 식으로 상처 줘서 떼어내리만치?

         

         희망의 끈을 줬다가 빼앗듯이 자신을 이런 어처구니없는 절망의 감정 속에 빠트린 누군가처럼 다른 의도나 목적을 가져서 필연적으로 그렇게 행동한 것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영락한 카사네처럼 자기보다 더한 권력자에게 꼬투리를 잡혀서 고꾸라진 걸지도 모른다.

         허면 그 실패와 넘어짐을 극복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눈에 차지 않았다는 건 뭐지…? 네놈의 주관적 견해인가?? 그게 정확하게 전달받은 표현인가?”

         

         “…….”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린 아론이 이 화만 많은 애송이를 대체 어느 선까지 타일러야 하나… 하고 쳐다봤다가.

         아까보다는 약간, 아주 약간 더 쓸만한 이글거림과 일렁임을 품은 눈동자를 보고는 돌려줄 말을 바꿨다.

         

         그도 이 네온 정글을 오연하게 내려다보던 소녀가 품은 그림을 전부 공유받은 건 아니었으니까.

         

         “…받은 기대에 부응할 줄 아는 인간이 아니겠습니까? 미스 아나스타샤가 당신 안에서 뭘 봤는 지야 저는 모르겠지만요.”

         

         “내가 받은 기대…?”

         

         그 말을 끝으로 아론을 정말 훌쩍 떠나버렸다.

         에나마의 이사와 파라다이스의 2순위 권력자로서 격식이나 체면치레를 갖추지도 않고.

         나가는 길에 자신과 유사한 분위기를… 조금 덜 여문 냄새가 감도는 다른 애송이도 한 번 흘겨보고나서.

         

         거기서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방의 주인이 오롯이 자아 성찰을 끝마치기 전에, 숨을 죽이고 여태 구석에서 유령처럼 시립해 있던 카이쥰이 예상 이상의 결과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살짝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 아나스타샤라는 마녀가 자신보다 한참이나 앞서가는 계획가이자 모사꾼이라면 벌써 곳곳에 포섭된 유력자들이 많은 게 당연하다.

         

         어쩌면 ‘카이쥰’이라는 개인이나 그 휘하에 있을 집단도 자기 밑으로 들어올 가망성이 있는지 떠보다가 사라진 걸지도 모르지.

         

         아무튼 지금은 멍하니 구경하기보단 약해진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타이밍이다.

         그에게도, 자신에게도 나쁘지 않은 쌍방에게 모두 이득이 되는(Win-Win) 방향을 제시할 둘도 없을 찬스.

         

         카이쥰이 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쇼우의 책상 근처로 다가가 -그 와중에도 그놈의 발작이 일어날라 망할 사직서를 슬쩍 빼내면서- 세상 절절한 말투로 속삭였다.

         

         “에다마츠 이사님… 이래서 제가 여러 차례 충언드리지 않았습니까?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몸집을 더 키우시지 않으면 그 마… 으흠, 아나스타샤 상담사님을 지키기도 힘들 게 분명하다고요.”

         

         “…인정하지. 그래, 그건 내가 너무 안일했다.”

         

         “괜찮습니다. 전혀 늦지 않았습니다. 무려 회장님의 지지도 일부 얻었고 배정 예산 외에도 든든한 자금줄까지 거머쥐지 않았습니까? 더할 나위 없는 출발을 끊은 셈입니다.”

         

         말을 하는 도중에조차 아나스타샤와 나눴던 담소나 남은 흔적들을 더듬는 건지 점점 조각났던 이성을 착실히 복원하는 게 느껴져서 카이쥰은 입맛을 다셨다.

         

         역시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 안 될 수준의 의존증을 가지게 되어버렸다는 감상과 함께.

         그리고 괜히 그녀를 쿡쿡 찔러보다가 역으로 당할 뻔했어도, 결국 어찌저찌 떼어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배부른 사자는 사냥에 나서지 않는다.

         독기 빠진 맹견은 쓸모가 없다. 굶겨야 한다. 적당히 갈증을 허기를 느껴서 발톱을 세우게끔.

         

         그러면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밖에 없다. 이 기회에 최측근 자리를 확실하게 거머쥐어야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사님의 영광과 성공만을 바라는 저와는 다르게, 아나스타샤 상담사님의 채용 과정 등을 면밀히 알면서도 에다마츠님보다는 회장님의 눈치를 더 보는…… 이번 작전에도 격렬히 반대하시던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실장님께서 에다마츠님을 오랜 기간 모셨다고 들은만큼 제가 함부로 왈가왈부하기는 어렵지만, 에나마 유전 표본 보관실 남극 지부에서 마침 업무 태만이 적발된 터라 높은 보안 등급을 가진 관리자의 파견을 요청해왔던데….”

         

         

         

         

         ‘한 번이라도 자신을 실망시키면 그 사탕발림에 넘어가주는 것도 마지막이다.’ 라고 경고까지 했음에도 극상의 미소를 띤 채 퇴실하는 카이쥰을 쇼우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저런 노골적인 아부에 치유받을 만큼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지금 아나스타샤를 빼돌린 게 완전한 제삼자라면 회장이 간섭할 가능성도 최대한 줄이는 게 맞았으니까.

         

         그러나 마음을 어지럽히던 인간들이 전부 사라지자 정신을 갉아먹는 지옥이 재림했다.

         

         자신은 앞으로 그녀가 없는 나날을 얼마나 버텨야 하는 걸까?

         이번에야 아버지에게서 먼저 전폭적인 지원과 허가가 떨어졌던 주제인만큼 선을 타는 게 쉬웠다지만 다음은? 사람이 계속 운이 좋을 수 있나?

         

         ……아니다. 자신의 운은 아나스타샤를 만난 시점에서 다했다. 이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나아갈 시간이다.

         

         그때 이 자리에서 격려까지 받았었다. 자신에게는 틀림없이 더 나은 미래가 있으니 그리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후우….”

         

         타는듯한 두통, 가슴의 울렁거림을 한 차례 넘기니 이번에는 근본적인 질문이 마음 한 켠에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자신은. 아나스타샤라는 소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어머니의 기억을 가져서 이곳으로 돌아와주었더라도, 그녀는 새로 태어난 타인인 셈이다.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처음부터 관계를 쌓아 올리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본인은 계속 에나마에 있는 걸 불편해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짧은 외부 생활동안 그 재수없는 아론과도 안면을 텄던 것처럼, 이미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버린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그걸 알아내야 한다.

         공식적인 접근의 위험 부담이 너무 커졌다면 놈의 다른 대비책을 웃도는 수단을 아낌없이 써서라도.

         

         “……감마.”

         

         아직 손상된 근섬유의 복구가 끝나지 않아서 지정된 자리에 없을 게 분명한데도 그는 무심하게 휘하 추적자 중 최고가 되도록 설계된 녀석을 불러들였고.

         

         “감마, 부르심을 받고 왔소이다. 하명을.”

         

         응당 나타나는 게 옳다는 듯이, 몇 초 지나지도 않아서 충직한 수하가 입실해왔다.

         

         “너는 누구에게 충성을 다할 게냐. 나냐? 아니면… 아버지냐.”

         

         “소인은 오직 에나마를 위한 칼날로서….”

         

         이대로 두면 지긋지긋한 추적자 매뉴얼이 읊어 지리라는 예감에.

         그리고 이런 상황에 부를 수 있는 부하조차 빌어먹을 혈통으로 얻은 특혜라는 자각에 쇼우의 이마와 손등에 혈관이 솟구쳤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나같이 그 길만이 해결책이라고 강요해오는구나… 좋다.

         

         “내가, 곧 에나마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불만은 없겠지…!”

         

         “…….”

         

         뇌리에 직접 박아 넣는 그 원한 서린 문장에 마사나리는 수긍했다.

         실패의 낙인이 찍힌 불민한 몸에 주어진 두 번째 기회라면 달게 받겠다는 듯이 장엄하게 무릎을 꿇어 보이는 것으로.

         

         “네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마. 아나스타샤 마카로비치를 찾아서 이번에야말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라. 거기에 그녀가 무엇을 목표로, 어떤 걸 바라고 움직이는지도 멀리서 지켜볼 수 있다면 낱낱이 보고하도록.”

         

         

         ……무대 뒤편에서의 후일담은 그렇게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

         먹이는 훌륭하지만 새장이 거슬렸던 파랑새는 기어이 다시 날아올랐으나, 과연 무거운 꼬리표가 몇 개나 달렸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앞으로 조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속 공격으로! 길었던 개와 조련사 에피소드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와….

    더위먹고 땀에 찌들고, 손은 느리고 여러모로 예정보다 늘어져서 식은땀이 주륵주륵 흘렀습니다.
    도중에 이 악물고 분량 나누기를 안 했으면 몇 일 더 질질 끌렸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제 부족함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투표는 업로드 직전에 전부 쓸어담아서 공정한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소중한 독자분들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분류했습니다.
    1번이 32표, 2번이 26표, 3번이 무려 42표, 4번(?)이 2표로 중복 투표는 제외한 복수 투표 결과가 이렇게 나왔네요.

    여태까지는 알아서 외전 주제도 골라오더니 이게 갑자기 무슨 변덕이냐! 하면 너무 얘기가 길어져서, 언젠가 허심탄회한 QnA 같은 거라도 하게되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제 외전이 매력이 없어서 3번을 골라준 게 아니라 푹 쉬고 본편을 더 잘 부탁한다는 의미를 담아서 골라주신 거라 믿고, 몇 일 쉬다 오겠습니다.

    강렬하게 1번이나 2번 외전, 혹은 노력해서 셋 다 써와(콰아아아아)를 외쳐주신 분들께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저도 솔직히 3번이 걸릴 줄은 몰랐어요. 도비는 자유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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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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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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