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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9

     경룡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제로스 바르셀 후작을 위시한 비룡기사단 19명에 더불어, 2바퀴 째에서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난입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이겨버렸다.

     누군가, 정치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는 이들은,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은 식겁을 하며 나의 우승을 규탄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국왕에게 1등을 내어줬어야지!

     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어처구니 없지만 진짜로 존재한다.

     충성병자라서?

     아니.

     충성병자들이기 이전에, 분란이 일어나는 걸 싫어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자신들이 가진 권력이 흔들리지 않고 큰 문제 없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자들이 그렇게 외친다.

     -이러다 내란 일어나는 거 아니냐.

     그레이 지브롤터의 우승.

     제로스 바르셀 후작의 준우승.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야 난입했으니 우승도 준우승도 뭣도 아니지만, 분위기로만 따지면 사실상 준우승한 걸로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몹시 분개하여, ‘반역자’로 몰아세울 거라고.

     반역이라.

     우습기 짝이 없는 단어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게 반역입니까?”

     경기가 끝난 뒤, 나는 오로솔 아카데미의 총장실로 호출되었다.

     “아니. 반역이 아니지.”

     “그렇다면 제가 굳이 여기에 감금되어 있을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그레이. 네 안전이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 너한테 어떻게 칼이라도 찔릴 것 같은 우리의 국왕 전하를 지키려고 하는 거란다.”

     “대공 각하. 저기 하늘에서 비룡을 계속 타고 다니면서 저를 찾아다니는 저 우리 대단하신 국왕 전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말이 호출이지, 사실상 패배해서 술을 병나발을 불고 있는 폭군 아닌 폭군으로부터의 보호였다.

     “어디 내놓기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네가 기어이 이겨버렸기에 벌어진 상황이라는 건 명심하렴.”

     “억울합니다, 어머님.”

     “억울해도 어쩌겠니. 우리라고 저 인간을 어떻게 이겨보려고 안 해봤을까.”

     카르멘 왕비가 어딘가 반쯤 내려놓은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질 것 같으면 이길 때까지 걸고 넘어지고 온갖 수작질을 부리는 놈이야. 아주 귀찮고, 지독하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데 이겨버렸어?”

     “세인트 지오의 인간성과는 별개로, 1등하면 키스받기로 했거든요.”

     “하아….”

     카르멘 왕비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어버렸다.

     “남들이 너보고 미쳤다고 다들 그러는 거 알고 있지?”

     “정치적으로 미쳤냐고 한다면 억울하지만, 사랑에 미쳤다고 한다면 순순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 지브롤터 평균, 잘 봤단다.”

     “오늘만큼 제가 지브롤터라는 게 자랑스러웠던 적이 또 없습니다.”

     미친 짓이지만, 지브롤터기에 가능한 미친 짓.

     “지브롤터가 여자를 위해 왕가고 뭐고 젊은 혈기로 사랑에 목숨을 건 행동이었으니, 여론은 크게 악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에 대한 여론은 말이죠.”

     “그래, 그래. 대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아주 길길이 날뛰고 있지. 저기 그레이 지브롤터를 찾아내려고.”

     “직접 오지도 못하는 겁쟁이 아닙니까.”

     “너, 그래서 직접 얼굴 마주하면 자신 있어?”

     현재,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야 있죠.”

     기사들에게 기어이 나를 찾으라고 닥달을 하고 있지만, 황금여명 기사단의 기사들도 얼굴을 붉힌 채 찾는 시늉만 하며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다.

     비룡 기승 실력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했으니 그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겠지만, 17살에게 패배했다고 칼 들고 숙청하겠다거나 반역이라거나 지껄이며 길길이 날뛰는 국왕이라는 자의 명령을 듣고 싶기야 하겠는가.

     “국왕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죽여버렸을 겁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란다, 그레이.”

     “크흠.”

     그래도 ‘왕명’이다.

     그래도, 노스트럼의 핏줄이며 현 노스트럼의 국왕이다.

     기사는 왕의 명령에 따라야 하며, 그러지 않는 건 곧 반역이다.

     그렇다면, 나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우승은 나의 것이다’라고 한 말을 정면으로 어겼으니 반역을 저지른 걸까?

     “그레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논리와 이성이 통하지 않는 존재란다. 네가 아무리 상식으로 그 자를 억제하려고 해도, 그 인간은 비상식의 화신이야. 제어할 수 없는 미친 놈이지.”

     “예.”

     “…방법이 있으니까 저지른 거지?”

     “음, 아마도요?”

     “아마도?”

     두 모르가니아의 부녀가 사색이 되었다.

     “그레이. 이거 진짜 심각한 상황이야. 경우에 따라서는 제국으로 망명에 가깝게 피신을 해야 할 수도 있단다.”

     “그건 바라지 않습니다. 오로솔 아카데미에 아스타시아 황녀가 있는데, 제가 굳이 오로솔 아카데미를 떠날 이유는 없지요.”

     “세인트 지오가 저렇게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데?”

     “치워버리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치우려고? 지금 그레이 지브롤터 잡겠다고 아주 그냥 벼르고 있는데.”

     “간단합니다.”

     미친개처럼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라고 하더라도.

     “이럴 때 두각을 드러내야, ‘차기 국왕’으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의 앞에서는 술 기운이 전부 다 날아가고 제정신을 차리는 걸로도 모자라 예절과 예의가 강제로 주입되어 제정신으로 돌아가고는 한다.

     “준비가 끝나면 슬슬…나왔군요. 지켜보도록 하죠.”

     학생들과 관중들이 몰려든 총장실 건물 앞 광장 가운데, 대규모의 학생들을 이끌며 나타난 한 명의 학생을 향해 나는 가볍게 예를 갖췄다.

     “누가 왕좌에 더 어울리는지.”

     펄럭.

     노스트럼의 국기가 펄럭이는 창을 어깨에 걸친 금발녹안의 여인-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당당히 광장에 나섰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ㅡㅡㅡㅡ!!]

     “와우.”

     나리아는 무능왕을 불렀다.

     [국왕, 전하.]

     “…저렇게 크게 소리 질러놓고 뒤에는 작게 부르는 거는….”

     “아직 1학년이기는 하지만, 이런 꼴을 그냥 계속 두고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나리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미 ‘정적’입니다.”

     자신이 20살이 되는 해, 왕좌를 쟁취하기 위한 정치적 행보를.

     * * *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펄럭.

     비룡이 내려왔다.

     주변에 모여있던 학생들과 귀족 관중들은 비룡을 피해 공간을 벌렸고, 광장에 모인 인파 가운데 원형의 투기장이 생성되었다.

     “국왕 전하.”

     “나리아.”

     비룡에서 내린 세인트 지오는 자신의 맞은 편에 선 나리아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부끄럽지 않냐고? 전혀. 내가 부끄럼 같은 걸 느낄 것 같으냐?”

     “단어를 바꾸겠습니다. 수치심이라고 할까요?”

     “하! 노스트럼의 군왕이 가장 으뜸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 1등을 빼앗긴 것이다.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1등을 차지하려고 했지. 그것은 곧 나에 대한 모욕이며, 노스트럼에 대한 도전이다!”

     “세인트 지오에 대한 모욕이다. 인정합니다.”

     “뭐라?”

     “하지만 그것이 ‘노스트럼 왕가’라거나, ‘노스트럼 왕국’에 대한 모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쿵.

     나리아가 깃대를 바닥에 꽂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저는 그레이 지브롤터의 우승을 지지합니다.”

     “…….”

     “비룡을 얼마나 잘 모는지를 겨루는 경기였고, 심지어 그마저도 실제 대회라거나 하는 것도 아닌 친선 시범경기에 가까웠습니다. 그걸 가지고 반역이니 운운하는 건 명백히 폭정입니다.”

     “하하하하ㅡㅡㅡ!!”

     세인트 지오가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폭소했다.

     “폭정? 흐흐흐, 딸년이라는 게 국왕의 면전에서 못하는 말이 없군.”

     “…….”

     “왜. 아예 이 자리에서 반역이라도 저지르겠다는 것이냐? 너도 그레이 지브롤터에 편승해서, 이 나를 아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면박하고 모욕을 줘야 속이 후련해지거나 그런 것이냐? 응?”

     세인트 지오가 대놓고 비꼬았다.

     “그래. 성인이 되는 날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아주 그냥 네가 왕인 줄 알지, 응? 아카데미에서 그 꼬꼬마들을 이끌면서 남들이 왕녀님, 왕녀님 떠받들어주니까 진짜 왕이라도 된 줄 아느냐? 응?”

     “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없기는, 지랄.”

     한 나라의 국왕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추태.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나라의 왕은 분명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다.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가져가봐라. 20살이 되는 해, 친아버지를 죽이면서 왕위라도 가져가려고? 응? 내 심장에 칼을 꽂으면서, 노스트럼의 왕좌를 빼앗으려고? 응?”

     “국왕 전하.”

     “그래! 내가 노스트럼의 국왕이다! 누구도 내게 명령을 내릴 수 없고,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어!”

     세인트 지오가 주변을 향해 삿대질하며 외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매한 놈들이!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결국 자신들이 했던 모든 것들이 공허와 허무로 귀결된다는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것들이!”

     “…….”

     “오냐! 어디 한 번 빼앗아봐라! 내 목숨과 내 왕권을 빼앗아봐라! 하지만 노스트럼의 전통이 과연 가만히 있을까?! 응?!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지금 당장 죽는다면, 그 때는 이 대륙에 어떤 일이 펼쳐질까! 응?!”

     그 누구도 세인트 지오를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당연히 대륙에 닥칠 ‘재앙’ 때문이겠지.

     “단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어! 홍수? 가뭄? 태풍? 지진? 그도 아니면 대역병? 무엇이든, 내가 죽으면 즉시 터지기 시작할 것이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네가 아직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

     “그러니 이 땅에 재앙을 불러오고 싶지 않다면, 당장 데려와라! 그 지브롤터의 망할 반역자를!!”

     철컹.

     “왕명이다ㅡㅡㅡ!!”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칼을 뽑아들었다.

     * * *

     1등을 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억울했던 걸까.

     아니면 술에 과하게 취하여, 자신의 속에 있던 마음을 모두의 앞에서 적나라하게 토해내는 걸까.

     “미쳤군요, 정말.”

     “…망가진 걸까? 아니면….”

     “무슨 정신을 이상하게 만드는 약이라도 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미친 짓을 벌일 리가 없지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세인트 지오의 모습은 추하다거나 미쳤다거나 하는 걸 넘어, 인간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받아들이기 힘든 폭주였다.

     ‘약 했네.’

     음주 비룡 레이싱에 나오기 전에, 아마 술을 마시고 거기에 백은까지 한 번 거하게 들이켰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약효가 아직도 남아있는 걸로 추정된다.

     아마 황제도 ‘백은 부작용을 줄여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뭐…. 주변에서 대놓고 ‘네 국왕으로서의 수명은 앞으로 2년 3개월 정도 남았다’라고 말하고 있으면, 그 당사자 입장으로서는 속이 썩어들어가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러면 그런 소리 듣지 않게 본인이 잘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그 덕분에 나리아는 반대급부로 후광을 받게 되겠지만요.”

     “나리아는 나리아인데, 네가 곤란하잖니. 저 인간, 나중에는 저기 광장에 드러누워서 ‘반역자 그레이를 내놓거라’라면서 생떼를 부릴지도 몰라.”

     “…….”

     실제로 그럴 인간이라서 더 무섭다.

     아마도 지금은 ‘백은’에 취해 있어서 저렇게까지 미친 짓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백은에 취해 있어도 저런 짓을 실제로 벌일 수 있는 이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뿐이겠지.

     “뭐…괜찮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태평한 거니?”

     “나리아는 ‘나섰다’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나머지는 이걸로 해결하면 끝이죠.”

     나는 주먹을 들었다.

     “인간은 술에 취하면 실수하기 마련. 반역자 그레이가 아니라, ‘반역자 지브롤터’라고 한 게 실수죠.”

     “…잠깐만.”

     윈체스터 대공이 뭔가를 느낀 듯, 창가를 향해 달려갔다.

     “너, 설마…!”

     “별 건 아니고.”

     나는 통신마석을 꺼내들었다.

     “왕국에서 유일하게 세인트 지오 대가리를 후려칠 수 있는 분을 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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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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