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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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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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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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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있던 리안은 제 얼굴 위로 떨어지는 손바닥만 한 나뭇잎에 화들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난 리안의 시야 가득 바짝 마른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이 들어찼다.
    ​
    ​
    “…?!”
    ​
    ​
    조금전까지만 해도 막 봄이 찾아온 것처럼 꽃봉오리가 부끄럽게 매달려있던 나뭇가지와 줄기들이 전부 갈색으로 변질되어 시들어가고 있었다. 죽음의 계절, 가을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
    ​
    ‘이런 현실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더니 -… 꿈이라는 걸 바로 인지시켜주네..’
    ​
    ​
    리안은 생각보다 크게 충격받지 않았다. 개그 세계에선 이 정도 일은 사건 축에도 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단 팔뚝을 짓누르고 있는 말랑하고 뜨끈한 무언가가 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
    ​
    파스스..
    ​
    ​
    그런 리안 생각을 하기 무섭게 세상은 더욱 빠르게 황폐해져 가기 시작했다. 나뭇잎까지 전부 떨어져 깡마른 나뭇가지만 남게 되었고, 시들시들하던 풀들은 완전히 검게 죽어 바스러졌다. 
    ​
    ​
    산책로를 화사하게 채워주던 여러 식물도 말라 죽어 주변 땅이 황무지처럼 황폐해졌다.
    ​
    ​
    죽음의 신이라도 지나간 것 같은 풍경을 멍하니 감상하던 리안은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
    ​
    ‘…! 설마 노아가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
    ​
    리안이 고개를 휙 돌려 제 팔을 끌어안고 있는 노아를 바라보았다. 노아는 리안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는지 시선을 돌리자마자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렸다.
    ​
    ​
    싸늘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차갑게 굳어있던 노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부드럽게 풀렸다.
    ​
    ​
    “갑자기 추워졌네. 감기 걸리지 않게 이만 들어갈까?”
    ​
    ​
    봄 햇볕처럼 따스한 목소리 속에 숨기지 못한 서늘함이 느껴져 몸이 움찔 떨렸다. 그러자 팔을 휘감고 있는 압박감이 강해졌다.
    ​
    ​
    ‘어흑..’
    ​
    ​
    팔을 짓누르다 못해 기분 좋게 뭉개지는 따끈한 감각에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위화감이 빠르게 증발하였다. 
    ​
    ​
    숲속에 자리 잡은 포근한 오두막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뒤로 얼음장처럼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당장이라도 무언가 튀어나올 듯 음산한 음악이 흐르는 공포 영화의 한장면처럼 스산한 분위기가 흘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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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끼이익.
    ​
    ​
    “어, 음..”
   
    ​
    산책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던 오두막은 어느새 폐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
    ​
    오두막 옆에 세워진 거대한 나무는 누군가 목을 매단 나무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고, 오두막 앞 세 칸의 계단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비명을 내질렀다. 매끈하던 나무 문까지 쩍쩍 갈라진 걸 보고 있자니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
    ​
    ‘이, 이거 설마… 유령 나오는 거 아니야?’
    ​
    ​
    집에 유령이 나오는 것까진 별문제 없었다. 진짜 문제는 -… 그 유령이 치는 장난이 문제였다. 겨울마다 히트를 하는 ‘나 혼자 집에’ 영화 속 주인공의 집을 침범하는 도둑의 역할이 될지도 몰랐다.
    ​
    ​
    ‘그.. 나도 같은 유령 상태니까. 그렇게 큰 문제는 안 생기겠지….겠지..?’
    ​
    ​
    그런 생각을 하며 들어선 오두막은 생각보다 상태가 더 심각했다.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던 주방은 살해 현장처럼 서슬 퍼런 기운이 흘렀고, 질 좋은 나무로 만든 가구들이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한 것처럼 변색되거나 금이 가 있었다.
    ​
    ​
    마치 오두막 내부만 긴 시간이 흘러간 것만 같았다. 전과 달라진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
    따스한 컬러의 러그가 걸려있던 자리에는 리안의 상반신만 한 활이 걸려있었고, 벽에는 몇 개의 검들이 세워져 있었다. 신혼 사진이 장식되어 있던 벽난로 위에는 거대한 동물의 머리가 박제된 채 걸려있었다.
    ​
    ​
    신혼부부의 오두막이 아닌 사냥꾼의 오두막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
    ‘내가 잘못 들어왔나?’
    ​
    ​
    순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변화였다. 
    ​
    ​
    스륵.
    ​
    ​
    당황한 리안이 굳어있는 사이 노아가 리안의 팔을 자연스럽게 놓아준 후 성큼 집 안으로 들어갔다. 포근하게 풀려있던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건조해진 상태였고,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갈색 머리카락은 어깨 위로 찰랑거릴 정도로 짧아져 있었다. 하늘하늘하던 옷 또한 사냥꾼의 옷처럼 투박하고 거칠어졌다. 
    ​
    ​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간 노아는 익숙하다는 듯 작은 가방이 주렁주렁 달린 허리띠를 풀어 주방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뒤이어 주방 선반을 열어 물이 가득 든 유리병을 꺼내 컵에 따라 갈증을 해소했다.
    ​
    ​
    마치 리안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노아가 제 할 일만 이어서 하자 리안은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
    ​
    “저, 노아?”
    “…”
    ​
    ​
    리안의 부름에도 노아는 반응하지 않았다. 설마 정말 보이지 않는 건가 싶어 다급히 그녀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으려 했다.
    ​
    ​
    휙.
    ​
    ​
    노아는 노골적으로 리안의 손길을 피하면서도 리안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온탕과 냉탕의 온도 차이만큼 변해버린 태도 변화에 리안은 순간 욱하는 개그 본능을 참지 못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
    ​
    “지금까지 우리의 사랑은 그냥 장난이었던 거야?”
    ​
    ​
    마치 깨끗한 물에 물감이 묻은 붓이 퐁당 담가진 것처럼, 리안을 중심으로 개그 필터가 퍼져나가 주변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어느새 리안의 표정은 주말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처럼 가녀리게 변했다.
    ​
    ​
    “흑… 난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
    ​
    주변 변화에 리안이 놀란 것처럼 노아 또한 갑작스럽게 변한 분위기에 놀라 입을 헤 벌린 채 개그 필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
    ​
    “그… 오해야.”
    ​
    ​
    노아는 자신이 왜 이런 말을 뱉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선 그렇게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
    ​
    “거짓말! 그렇게 차갑게 나를 버리고 갔으면서..!”
    ​
    ​
    만약 리안이 제대로 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면, 리안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제 배를 쓰다듬었을지 몰랐다. 마치… 그 안에 제 아이가 있는 것처럼.
    ​
    ​
    다행히 개그 필터가 일부만 남아 있어 막장 전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노아는 그 정도의 개그 필터조차 감당하지 못해 쩔쩔맸다.
    ​
    ​
    그렇게 이어진 약간은 우습고 가벼운 분위기는 꼭꼭 숨겨진 본심을 꺼내게 했다.
    ​
    ​
    “그만해.”
    “이젠 내 말도 안 들어주려는 -…”
    “그만하라고!”
    ​
    ​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듯한 격정적인 표정을 한 노아가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화들짝 놀란 리안이 뒤로 물러나다 그대로 벽에 등이 쿵 하고 부딪쳤다. 노아는 사나운 얼굴로 리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
    ​
    “가짜 주제에 같잖은 짓 그만해.”
    “…?!”
    “…이게 꿈이라는 거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이만 내 앞에서 꺼지라고.”
    ​
    ​
    노아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리안을 잃어왔다. 현실을 외면했던 적도 있었고, 절망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때도 있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언제가 큰 버팀목이 되어준 제 스승과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 괜찮다며 미소 짓는 리안덕분이었다.
    ​
    ​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
    ​
    그녀의 곁에서 정신을 붙잡아줄 스승은 깊은 잠에 빠져버렸고, 리안은 아득한 무언가에게 몸을 던져 그대로 소멸되었다. 
    ​
    ​
    그녀는 상실감과 절망을 넘어 깊은 무력감에 삼켜졌다. 그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숨 쉬는 것조차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도피 방법은 ‘꿈’이었다.
    ​
    ​
    악몽으로 괴로워하는 노아를 위해 집사장이 머리맡에 놓아둔 꽃은 악몽을 몰아내고 행복한 꿈을 꾸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아름다운 꽃이 그녀의 머리맡에 자리 잡게 된 이후부터 노아는 꿈속에서 환하게 미소 짓는 리안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
    ​
    달콤한 꿈속에서 마음껏 허우적거리다 깨어나면, 아득한 절망과 무력감이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가 꿈에 매몰되어 헤어 나오지 못한 건 당연했다.
    ​
    ​
    하지만 그 달콤함도 결국 끝은 존재했다.
    ​
    ​
    현자에게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처럼, 노아는 꿈속 리안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순간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었다.
    ​
    ​
    그와 동시에 아름답던 숲은 죽음의 숲처럼 생기를 잃고, 행복이 가득하던 집은 건조한 살기만이 가득했다. 마치 망가져 버린 노아의 마음처럼 모든 풍경이 건조하게 변해갔다.
    ​
    ​
    생기를 잃은 숲에서는 눈을 제외한 온몸이 검은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노아를 습격했다. 이는 외신이나 마왕군의 정신 공격이 아니었다. 
    ​
    ​
    자기 자신을 해하고 싶은 마음, 자해.
    ​
    ​
    그 무엇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시각화 되어 그녀를 공격했다.
    ​
    ​
    죄를 지은 자신이 벌을 받는 건 당연하기에, 그녀는 이를 악몽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악몽을 몰아내는 꽃도 이를 막지 못했다.
    ​
    ​
    꿈속이다 보니 달콤한 일상과 끔찍한 일상의 조화는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달콤한 꿈속에서만 나와야 할 리안이 꿈을 자각한 자신을 쫓아와 붙잡는 일도 문제 중 하나였다.
    ​
    ​
    처음에는 리안을 붙잡고 신에게 죄를 고하는 신도처럼 그저 울기만 했었다. 마치 제 죄를 사해달라는 것처럼.
    ​
    ​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감히 ‘용서’받고 싶어 하는 제 모습에 환멸이 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앞에 살아 숨 쉬는 리안이 거짓된 존재라고 말하는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
    ​
    저릿한 현실감에 노아는 ‘가짜 리안’을 밀어냈다. 그런 나날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
    ​
    ‘감히… 감히…’
    ​
    ​
    노아는 언제나 그랬듯 눈앞에 있는 ‘가짜’에게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가짜’는 못하는 걸 해보자!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스스슷.

“….?”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있던 리안은 제 얼굴 위로 떨어지는 손바닥만 한 나뭇잎에 화들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난 리안의 시야 가득 바짝 마른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이 들어찼다.

“…?!”

조금전까지만 해도 막 봄이 찾아온 것처럼 꽃봉오리가 부끄럽게 매달려있던 나뭇가지와 줄기들이 전부 갈색으로 변질되어 시들어가고 있었다. 죽음의 계절, 가을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이런 현실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더니 -… 꿈이라는 걸 바로 인지시켜주네..’

리안은 생각보다 크게 충격받지 않았다. 개그 세계에선 이 정도 일은 사건 축에도 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단 팔뚝을 짓누르고 있는 말랑하고 뜨끈한 무언가가 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파스스..

그런 리안 생각을 하기 무섭게 세상은 더욱 빠르게 황폐해져 가기 시작했다. 나뭇잎까지 전부 떨어져 깡마른 나뭇가지만 남게 되었고, 시들시들하던 풀들은 완전히 검게 죽어 바스러졌다.

산책로를 화사하게 채워주던 여러 식물도 말라 죽어 주변 땅이 황무지처럼 황폐해졌다.

죽음의 신이라도 지나간 것 같은 풍경을 멍하니 감상하던 리안은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설마 노아가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리안이 고개를 휙 돌려 제 팔을 끌어안고 있는 노아를 바라보았다. 노아는 리안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는지 시선을 돌리자마자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렸다.

싸늘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차갑게 굳어있던 노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부드럽게 풀렸다.

“갑자기 추워졌네. 감기 걸리지 않게 이만 들어갈까?”

봄 햇볕처럼 따스한 목소리 속에 숨기지 못한 서늘함이 느껴져 몸이 움찔 떨렸다. 그러자 팔을 휘감고 있는 압박감이 강해졌다.

‘어흑..’

팔을 짓누르다 못해 기분 좋게 뭉개지는 따끈한 감각에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위화감이 빠르게 증발하였다.

숲속에 자리 잡은 포근한 오두막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뒤로 얼음장처럼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당장이라도 무언가 튀어나올 듯 음산한 음악이 흐르는 공포 영화의 한장면처럼 스산한 분위기가 흘렀다.

***

끼이익.

“어, 음..”

산책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던 오두막은 어느새 폐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오두막 옆에 세워진 거대한 나무는 누군가 목을 매단 나무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고, 오두막 앞 세 칸의 계단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비명을 내질렀다. 매끈하던 나무 문까지 쩍쩍 갈라진 걸 보고 있자니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이거 설마… 유령 나오는 거 아니야?’

집에 유령이 나오는 것까진 별문제 없었다. 진짜 문제는 -… 그 유령이 치는 장난이 문제였다. 겨울마다 히트를 하는 ‘나 혼자 집에’ 영화 속 주인공의 집을 침범하는 도둑의 역할이 될지도 몰랐다.

‘그.. 나도 같은 유령 상태니까. 그렇게 큰 문제는 안 생기겠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들어선 오두막은 생각보다 상태가 더 심각했다.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던 주방은 살해 현장처럼 서슬 퍼런 기운이 흘렀고, 질 좋은 나무로 만든 가구들이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한 것처럼 변색되거나 금이 가 있었다.

마치 오두막 내부만 긴 시간이 흘러간 것만 같았다. 전과 달라진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따스한 컬러의 러그가 걸려있던 자리에는 리안의 상반신만 한 활이 걸려있었고, 벽에는 몇 개의 검들이 세워져 있었다. 신혼 사진이 장식되어 있던 벽난로 위에는 거대한 동물의 머리가 박제된 채 걸려있었다.

신혼부부의 오두막이 아닌 사냥꾼의 오두막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잘못 들어왔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변화였다.

스륵.

당황한 리안이 굳어있는 사이 노아가 리안의 팔을 자연스럽게 놓아준 후 성큼 집 안으로 들어갔다. 포근하게 풀려있던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건조해진 상태였고,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갈색 머리카락은 어깨 위로 찰랑거릴 정도로 짧아져 있었다. 하늘하늘하던 옷 또한 사냥꾼의 옷처럼 투박하고 거칠어졌다.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간 노아는 익숙하다는 듯 작은 가방이 주렁주렁 달린 허리띠를 풀어 주방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뒤이어 주방 선반을 열어 물이 가득 든 유리병을 꺼내 컵에 따라 갈증을 해소했다.

마치 리안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노아가 제 할 일만 이어서 하자 리안은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저, 노아?”

“…”

리안의 부름에도 노아는 반응하지 않았다. 설마 정말 보이지 않는 건가 싶어 다급히 그녀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으려 했다.

휙.

노아는 노골적으로 리안의 손길을 피하면서도 리안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온탕과 냉탕의 온도 차이만큼 변해버린 태도 변화에 리안은 순간 욱하는 개그 본능을 참지 못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지금까지 우리의 사랑은 그냥 장난이었던 거야?”

마치 깨끗한 물에 물감이 묻은 붓이 퐁당 담가진 것처럼, 리안을 중심으로 개그 필터가 퍼져나가 주변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어느새 리안의 표정은 주말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처럼 가녀리게 변했다.

“흑… 난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주변 변화에 리안이 놀란 것처럼 노아 또한 갑작스럽게 변한 분위기에 놀라 입을 헤 벌린 채 개그 필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그… 오해야.”

노아는 자신이 왜 이런 말을 뱉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선 그렇게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거짓말! 그렇게 차갑게 나를 버리고 갔으면서..!”

만약 리안이 제대로 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면, 리안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제 배를 쓰다듬었을지 몰랐다. 마치… 그 안에 제 아이가 있는 것처럼.

다행히 개그 필터가 일부만 남아 있어 막장 전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노아는 그 정도의 개그 필터조차 감당하지 못해 쩔쩔맸다.

그렇게 이어진 약간은 우습고 가벼운 분위기는 꼭꼭 숨겨진 본심을 꺼내게 했다.

“그만해.”

“이젠 내 말도 안 들어주려는 -…”

“그만하라고!”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듯한 격정적인 표정을 한 노아가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화들짝 놀란 리안이 뒤로 물러나다 그대로 벽에 등이 쿵 하고 부딪쳤다. 노아는 사나운 얼굴로 리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가짜 주제에 같잖은 짓 그만해.”

“…?!”

“…이게 꿈이라는 거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이만 내 앞에서 꺼지라고.”

노아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리안을 잃어왔다. 현실을 외면했던 적도 있었고, 절망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때도 있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언제가 큰 버팀목이 되어준 제 스승과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 괜찮다며 미소 짓는 리안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녀의 곁에서 정신을 붙잡아줄 스승은 깊은 잠에 빠져버렸고, 리안은 아득한 무언가에게 몸을 던져 그대로 소멸되었다.

그녀는 상실감과 절망을 넘어 깊은 무력감에 삼켜졌다. 그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숨 쉬는 것조차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도피 방법은 ‘꿈’이었다.

악몽으로 괴로워하는 노아를 위해 집사장이 머리맡에 놓아둔 꽃은 악몽을 몰아내고 행복한 꿈을 꾸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아름다운 꽃이 그녀의 머리맡에 자리 잡게 된 이후부터 노아는 꿈속에서 환하게 미소 짓는 리안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달콤한 꿈속에서 마음껏 허우적거리다 깨어나면, 아득한 절망과 무력감이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가 꿈에 매몰되어 헤어 나오지 못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 달콤함도 결국 끝은 존재했다.

현자에게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처럼, 노아는 꿈속 리안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순간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아름답던 숲은 죽음의 숲처럼 생기를 잃고, 행복이 가득하던 집은 건조한 살기만이 가득했다. 마치 망가져 버린 노아의 마음처럼 모든 풍경이 건조하게 변해갔다.

생기를 잃은 숲에서는 눈을 제외한 온몸이 검은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노아를 습격했다. 이는 외신이나 마왕군의 정신 공격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해하고 싶은 마음, 자해.

그 무엇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시각화 되어 그녀를 공격했다.

죄를 지은 자신이 벌을 받는 건 당연하기에, 그녀는 이를 악몽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악몽을 몰아내는 꽃도 이를 막지 못했다.

꿈속이다 보니 달콤한 일상과 끔찍한 일상의 조화는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달콤한 꿈속에서만 나와야 할 리안이 꿈을 자각한 자신을 쫓아와 붙잡는 일도 문제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리안을 붙잡고 신에게 죄를 고하는 신도처럼 그저 울기만 했었다. 마치 제 죄를 사해달라는 것처럼.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감히 ‘용서’받고 싶어 하는 제 모습에 환멸이 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앞에 살아 숨 쉬는 리안이 거짓된 존재라고 말하는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저릿한 현실감에 노아는 ‘가짜 리안’을 밀어냈다. 그런 나날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감히… 감히…’

노아는 언제나 그랬듯 눈앞에 있는 ‘가짜’에게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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