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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9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방안.

   조금 늦게 일어난 소녀가 살짝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린 눈꺼풀을 따라 흘러내린 백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푸른빛의 눈동자가 조용히 빛났다.

     

   올해로 14살이 된 비앙카 하덴하르츠.

     

   곧 있으면 여름철을 앞둔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침대 가를 더듬었다.

     

   그리고 곧 손에 쥐어진 편지를 소중히 감싸곤 조는 눈으로 꾸벅꾸벅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그 편지의 정체는 다름 아닌 크라슈가 보낸 편지였다.

     

   편지를 보기만 해도 들뜨는 마음은 피로한 아침을 깨우기에 좋다.

     

   최근 부쩍 성장기가 오기 시작해서인지 성장통으로 살짝 저리는 무릎을 매만지며 편지를 다 읽은 비앙카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아침 식사 후 훈련해야 해.’

     

   크라슈를 따라가기 위해 매일의 매일 거듭하는 훈련의 나날.

   힘들지만 그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훈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특히, 최근에 크라슈가 하덴하르츠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나서는 더더욱 훈련의 박차를 가했다.

     

   무려 세계 침식자와 맞섰다는 크라슈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던 비앙카였지만 그녀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크라슈가 무사하다면 그녀는 괜찮았다.

   자신의 마음이 때론 이토록 걱정에 휩싸여도 그를 믿기에 몇 번이고 다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방 밖을 나온 그녀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오늘도 복도를 걷던 날이었다.

   이 복도를 따라 걸으면 크라슈와 함께 걷던 나날이 떠올랐다.

     

   그리움 한편이 마음속에 자리 잡은 탓에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그때를 회상하는 건 늘 그녀에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침부터 웃는데 뭐, 좋은 일이라도 있냐?”

     

   그의 퉁명스러우면서도 자상함을 담은 목소리를 떠올리게 해주었으니까.

     

   “……?”

     

   하지만 방금전 목소리는 그녀가 회상하며 들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가 너무 그리워 혹시 스스로 자기 귀가 잘못되었나 싶어 비앙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거기에 한 남성이 서 있었다.

   예전보다도 키가 조금 더 커진 그는 여전히 푸른 검은색의 머리카락 아래에 자상한 미소를 거닐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 하면 그의 복장이 본 적 없던 복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앙카는 그 복장이 라헬른 아카데미의 복장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크라슈 님?”

     

   믿을 수 없는 음성을 담아 그녀가 물었을 때.

   크라슈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다녀왔다.”

     

   그 순간 비앙카가 어느새 바닥을 박찼다.

   순간적인 감정이 머리보다 몸을 먼저 움직인 것이다.

     

   평소에 매일 같이 그를 보고 싶어 하면서도 비앙카는 애써 훈련에 몰두하며 그 마음을 숨겼다.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그를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을 버텼었다.

     

   다시 만나는 순간 크라슈를 놓고 싶지 않아 계속 어리광을 부릴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크라슈를 보자마자 그녀는 그런 생각이 한 번에 다 날아갔다.

   다잡은 마음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크라슈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어느샌가 달려온 그녀가 크라슈의 품에 안겼다.

   따스한 품에 안기자 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을 애써 견디자 크라슈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머리를 감쌌다.

     

   “그러다가 넘어진다.”

   “……괜찮아요. 크라슈 님이 받아줄 거니까요.”

   “그거야 그렇겠지만 말이야.”

     

   늘 해주던 상냥한 그 말이 비앙카의 마음을 아릿하게 했다.

   자신의 다 잡은 마음도 몰라주고, 깜짝 선물처럼 나타난 그에게 살짝 미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키 좀 컸냐? 예전보다 느낌이 다른데.”

   “많이 컸어요. 크라슈 님이 신경 쓰지 않게 잘 먹고, 잘 잤으니까요.”

   “장하네.”

     

   못 본 사이 꽤나 어른스러운 티가 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크라슈는 자신을 어린 동생 취급했다.

   예전에는 그마저도 싫지 않았지만 왜인지 오늘따라 그런 태도가 마냥 좋지는 않았다.

     

   “정말로 꽤 컸으니까요.”

     

   비앙카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아 달라며 크라슈에게 좀 더 달라붙었다.

   이전보다 많이 부풀어 오른 상체가 그 증거였다.

     

   분명 그녀의 담당 시녀인 엘리가 말하기를 남자는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크라슈는 그 부분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비앙카는 살짝 심통이 난 기분을 느꼈다.

     

   엘리가 거짓말을 한 모양이었다.

     

   “그래, 아, 선물 하나 챙겨왔다.”

   “선물이요?”

     

   그러나 다음 것을 꺼내 들었을 때 비앙카는 그런 마음이 한 번에 사라짐을 느꼈다.

   비앙카의 눈이 반짝였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피식하니 웃더니 비앙카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이내 그녀의 약지에 백색과 푸른색이 감도는 반지를 하나 끼워 넣어 주었다.

     

   비앙카는 자신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멍하니 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들자 크라슈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크라슈는 살짝은 멋쩍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반지 이야기가 나왔길래. 하나 가져왔다.”

     

   일부러 자신을 생각해서 준비해온 반지였다.

   비앙카는 어째선가 코끝이 찡한 느낌을 받았다.

     

   심장이 제멋대로 쿵쾅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릴 정도로 그녀는 격렬한 탈진 감을 느꼈다.

     

   동시에 얼굴 전체가 붉은색으로 물들어 갔다.

   자칫하다간 눈물이 맺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그를 만나서일까, 감정이 이상하리만치 폭주하고 있었다.

   눈인형이 없어진 비앙카는 크라슈 앞에서만큼은 도저히 감정을 조절할 줄 몰랐다.

     

   그렇기에 그녀는 흘러나오는 탄식과 함께 반지를 손으로 소중히 감쌌다.

   앞으로 자신이 평생토록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너무 좋아요…….”

     

   그녀의 눈에 진심이 느껴졌기에 크라슈도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하나 정도는 해줄 걸 그랬나.

     

   자기 손에 낀 반지를 연신 보고 있던 비앙카가 눈을 슬쩍 들었다.

     

   “그럼 저희 이제 결혼하는 건가요?”

     

   비앙카의 눈은 알게 모르게 기대감이 차 있었다.

   비앙카의 감정에 예민한 크라슈가 아니었다면 모를 정도로 말이다.

     

   아무래도 반지를 낀 의미를 결혼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14살밖에 안 된 소녀가 벌써부터 결혼 이야기를 하는 건 어떨까 싶지만.

   비앙카의 눈에 담긴 애정은 진심이었다.

     

   크라슈는 비앙카의 마음을 언제나 최우선에 두고 있었다.

   예전에 가문에서 저지른 일이긴 하나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한 적도 있었다.

     

   그런 만큼 크라슈는 비앙카에게 있어 늘 한걸음 물러선 채 지켜봐 주는 역에 머물렀다.

     

   그녀가 제멋대로 크라슈의 품을 자주 비집고 들어오긴 했으나.

   크라슈는 비앙카가 떠나가고자 한다면 언제든 그녀를 놓아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그날 백귀에게 목숨을 빚진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결혼하고 싶냐?”

     

   어느새 비앙카의 뒷머리를 쓰다듬은 크라슈가 물었다.

   그의 눈에 담긴 친절함은 비앙카가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기에 충분했다.

     

   “네.”

     

   비앙카가 어느새 크라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키가 너무 커져 버린 탓에 이제는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면 얼굴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게 아쉽긴 했으나.

   품에 안긴 따스함만은 여전했기에 괜찮았다.

     

   “저 크라슈 님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누구보다 감정이 없었기에.

   누구보다 감정에 충실하게.

     

   비앙카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크라슈에게 전했다.

     

   신기했다.

     

   심장이 이토록 빨리 뛰고 있는데도 편안한 기분이 드는 게.

   크라슈에게 닿는 순간 영원히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게.

     

   “15살이 됐을 때.”

     

   크라슈는 비앙카의 목덜미를 손으로 천천히 감쌌다.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는 어느 때보다 붉게 물들어 있었다.

     

   멸화침식을 익힌 크라슈보다도 그 열기가 더 강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도 비앙카 네가 원한다면 식을 올리자.”

     

   약혼 기간은 이미 충분했다.

   나이로서 성인만 된다면 언제든 식을 올려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

     

   그러니 크라슈는 비앙카의 바람에 따라 식을 올리기로 했다.

   무엇보다 크라슈 또한 알고 있었다.

     

   비앙카라면 영원히 옆에 둔다고 하더라도 싫지 않음을 말이다.

   평소 화가 많은 크라슈에게 있어 그 사실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크라슈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채 고개를 든 비앙카의 눈은 어느 때보다도 커져 있었다.

     

   어째선가 눈물까지 맺힌 그녀의 얼굴이 점차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하덴하르츠의 꽃이라는 말이 어느 사람보다도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그렇게 좋냐?”

   “네, 너무 좋아요.”

     

   비앙카의 웃음이 진심임을 알기에 크라슈는 어이없이 웃었다.

   그러자 비앙카는 볼을 크라슈의 가슴팍에 다시 가져다 대었다.

     

   “그럼 저희 이제 아기도 만드는 건가요?”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순수한 질문은 크라슈를 굳게 만들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비앙카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어디서 뭘 듣고 온 거지.

   크라슈는 출저를 그다지 의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비앙카에게 자주 이상한 지식을 넣어 주던 전속 시녀 엘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한 번 혼냈었는데 이번에도 날 잡고 제대로 혼내야 할 듯싶다.

     

   “……그건 차차 이야기하자.”

     

   나중이라면 그녀도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되겠지.

     

   “저는 딸이랑 아들이랑 둘 다 있고 싶어요.”

   [ 아주 절륜해야겠구나. ]

     

   아니나 다를까, 창문 쪽에 나타난 까마귀에서 크림슨가든이 키득거리는 웃음이 들려 왔다.

     

   “찍찍!”

     

   그리고 어째선가 주머니에 있던 시체 쥐가 화풀이하듯 데굴데굴 굴렀다.

   대충 마무리하고, 오라는 뜻이겠지.

     

   “훈련 가는 도중이었지? 하고 와, 나도 볼일 보고 올 테니까.”

   “네, 알았어요.”

     

   비앙카는 순순히 크라슈의 곁에서 떨어졌다.

   그녀 또한 훈련을 그만큼 중요시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걸 본 크라슈는 조금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잘 다녀와.”

     

   크라슈가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자 비앙카 또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던 그녀는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살짝 멈추었다.

     

   “크라슈 님.”

   “어.”

   “하링 라그렌이란 분이랑 시즐리 에파니아라는 분은 어떤 분인가요?”

     

   그리고 다음 질문을 들은 순간 크라슈가 다른 의미로 굳었다.

   멍한 얼굴로 크라슈가 그녀를 보고 있자 비앙카는 어쩐지 살짝 차가운 얼굴로 입꼬리만을 올렸다.

     

   왜인지 모르게 백귀 시절의 그녀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전 크라슈 님이랑 결혼할 예정이니까요.”

     

   못 본 사이 어째선가 비앙카에게서 눈인형의 저주에 걸린 시절보다 더한 냉기가 흘렀다.

   크라슈가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비앙카는 몸을 돌려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백발을 휘날리는 그녀의 발걸음은 낭군의 옆을 사수하는 안주인과 같이 당찼다.

     

   툭툭-

     

   그 순간 주머니 쪽에서 시체 쥐가 올라왔다.

     

   “저기, 준비 다 끝났는데.”

     

   시체 쥐에서 들려온 에벨아스크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왜인지 아까보다 좀 우울해진 모습이었다.

     

   [ 슬슬 본처가 제대로 움직이는구나. ]

     

   크림슨가든만이 흥미롭다는 듯이 낄낄거릴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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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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