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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9

   EP.179

     

   눈발이 휘날릴 상태가 될 정도로 극음의 기운을 머금으니 변한 것은 주변의 환경뿐만이 아니었다.

     

   “뭔가… 좀 변한 거 같은데……?”

     

   눈발이 날린다. 크고 작은 얼음결정이 공중을 날아다니고 그중에는 주먹만 한 투명한 우박 같은 것도 간간이 끼어 공중을 선회한다.

     

   탑을 오르며 비정상적인 동체 시력을 가지게 되었기에 포착할 수 있었던 그것. 얼음결정을 통해 잠깐 스쳐 간 나의 외관은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백색을 이루고 있었다.

     

   “피부색도 변했군.”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순백의 피부. 극한(極寒)의 마력이 나의 전신을 감싸는 중이다 보니 신체 또한 그 영향을 받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마, 마력 연결 상태가 좋지 않……!

   -젠장! 신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라면서!

     

   근접전을 벌이기 위해 다가왔던 헤라클레스들이 급속 냉각으로 마력의 연결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투구에서 나오던 흐릿한 안광이 꺼지며 풀썩풀썩 쓰러지는 중갑옷들.

   그나마 공중에서 마법을 펼치던 병기들이 새로운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것 또한 의미 없는 발악이었다.

     

   스윽.

     

   나는 한철검을 꺼내 들었다.

     

   금속 자체가 음한지기를 품고 있었기에 천월신공이나 한기의 심장을 이용한 전투를 펼치기에 알맞은 무기였다.

     

   “성좌를 잡을 생각이었으면 이 정도 각오는 하고 왔었어야지.”

     

   본인이 오는 것도 아닌 꼭두각시 인형을 보내서 성좌를 제압하겠다는 안일한 생각.

     

   만약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 같은 싸움에 미친 성좌를 만나 본 자가 있었다면 고작 이 정도 수준으로 성좌를 잡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꾸욱.

     

   나는 검을 뒤로 당기며 몸을 낮게 웅크렸다.

   그리고는 검을 앞으로 내지르며 월광검법의 초식을 펼쳤다.

     

   월광검법 제이식 月光劍法 第二式

   황홀경 怳惚境

     

   쐐애액!!!

     

   옆으로 그어진 검과 넓게 펼쳐지며 적을 집어삼키는 냉기.

     

   평소에 펼치던 음의 기운을 상회하는 폭발적인 한기가 들이닥치자 숲을 벗어나려 하던 모든 마법 병기들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하아……”

     

   마력을 이용한 초식을 펼치자 극한의 냉기를 머금던 마력이 입을 통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나의 입김에 작은 얼음 알갱이가 반짝이며 공중을 수놓는다. 마치 얼음의 신…… 그래 마치……

     

   “빙신氷神?”

   “쯧. 말하려다가 말았는데……”

     

   엔리카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오며 중얼거리자 나는 그녀를 돌아보며 검과 기운을 빠르게 갈무리했다.

     

   ***

     

   자잘한 빛만 존재하는 어두운 장소. 바닥에 그려진 수백 개의 마법진 위에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던 기사들과 그들의 등에 손을 올리고 있는 마법사들이 있었다.

     

   “꽤 오래 걸리는군.”

   “빙계 마법을 파악했다고는 하나, 상대는 성좌이니까요.”

     

   그리고 그사이를 유유히 걸으며 그들을 지켜보던 두 마법사. 나름 그들의 사이에서 대마법사라 불리며 엔리코를 보좌하던 두 노인은 헤라클레스를 이끌고 성좌를 찾아간 화신들의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엔리코…… 그가 능력은 뛰어나다지만 너무 걱정이 많아서 탈이란 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우리가 추출한 마력을 사용해서 성좌를 다음 층으로 올리는 포탈을 연 다니. 그런 너무 아까운 일이지.”

     

   사실 이 전투는 엔리코의 계획에 있던 일이 아니었다.

     

   엔리코가 충분히 지혜롭고 능력 있는 지도자인 것은 맞다. 하지만 과거 그의 누이를 잃은 그 순간부터 그는 싸움 자체를 꺼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를 보좌하던 쌍둥이 노인이 보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은 기질이 되어 버렸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선수를 쳐야 하네. 엔리코도 그것을 알았다면 좋았으련만.”

   “그러게나 말일세. 막상 저지르고 보니 이렇게 쉬운 일을…… 쯧쯧……”

     

   두 노인은 그들의 계획이 틀어질 것이라는 의심따위를 하지 않았다. 애초에 마법은 그들의 전문. 빙계 마법에 대한 완벽한 대처를 가지고 그를 찾아간 이상 전투에서 패배할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그리고 그때.

     

   “으윽…!”

   “음…”

     

   헤라클레스를 조종하던 화신들. 마법사들의 보조를 받아 헤라클레스와 연결되어 있던 그들 중 일부가 헛바람을 들이키며 눈을 떴다.

     

   “으, 으아악!”

   “허억… 허억…”

     

   “쯔쯧. 당한 건가?”

   “역시 성좌는 성좌란 말인가… 신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신살 병기를 파괴할 줄이야.”

     

   지난 싸움에서도 그 성좌에게 당한 병기들이 있었다.

   물론 그 전투 이후로 헤라클레스를 회수해오긴 했으나 마력 체계 자체에 큰 타격을 입은 병기들은 무겁기만 한 고철이 되어 버리니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욱!”

   “웨에엑!”

     

   기사들의 뒤에서 손을 올리고 보조하던 마법사들이 각혈을 하며 바닥으로 하나둘 쓰러진다. 하지만 처음 몇 명으로 끝날 줄 알았던 그들의 각혈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우웨엑!

   쿨럭!

   털썩!

     

   “……”

   “……이게 무슨?”

     

   두 노인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몇 명은 쓰러지더라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동시에 눈을 뜰 줄은 생각을 못 했던 탓이었다.

     

   노인들은 버몬드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헤라클레스를 연결하기 직전에 이번 작전에 대해 꺼림칙하다며 말했었던 마법사. 허나 능력만큼은 뛰어났기에 리더의 역할을 맡았던 남자가 눈을 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분명 빙계 마법은 우리가 대응책을 마련했……”

     

   두 노인이 인상을 쓰며 그에게 다가가자 그가 빠르게 고개를 돌린다. 순식간이었지만 그의 시선에서 살기를 느낀 것은 그저 기분 탓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쿨럭…! 둘 다 입 다무시오. 조금 전에 여기 있는 모든 마법사가 마력이 역류해서 뒤질 뻔했으니까.”

     

   버몬드의 말에 노인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서로를 바라봤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

     

   그 둘은 성좌를 추적했던 패밀리어를 조종하던 마법사들을 돌아봤다.

     

   이것이 긴급 상황이라면 그들 또한 연결을 끊고 상황을 보고할 터. 하지만 그들이 마주하게 된 현실은 패밀리어와의 연결을 끊은 자들이 아닌 연결이 끊긴 자들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크아악!”

   “으으윽…”

     

   그들의 상황도 앞선 헤라클레스의 조종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더 타격이 강했던지 거품을 무는 사람들까지 발생하는 상황.

     

   하지만 아주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그들이 깨어나는 순서만으로도 해당 성좌가 연금술사의 마을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알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문제라면.

     

   “끄륵…!”

     

   조금 전에 오른편 구석에서 헛바람을 들이켜며 각혈한 두 명의 마법사가 경계를 맡은 구역이 연금술사의 도시 근방이라는 사실이었다.

     

   ”벌써 여기까지 왔다고?!“

   “이런 미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를 추적해서 마녀의 거처를 찾아내는 일에 대략 이틀이 소모됐다. 심지어 그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서 그 성좌를 놓칠 뻔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런데 그 거리를 하루…… 아니. 고작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주파했다?

     

   “빨리 도시의 방어 시스템을 가동해라! 엔리코에게는…… 젠장! 일단 보고 하지 마라! 내가 책임을 질 테니!”

     

   그들은 패닉에 빠졌다. 애초에 그들이 자신만만했던 이유는 연금술사의 도시에 있는 자체 방어 시스템에 있었다.

     

   패밀리어를 통해 주변의 위험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 상대에 맞춰 적절한 방어 수단을 구축하고 마법을 퍼붓든지 방어막을 치든지 위험을 이겨 내는 것이 그들이 지금까지 도시를 지켜온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방어 시스템도 규격 외의 강자를 만난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탁상공론이 되어 버렸다.

     

   쿠구구구……!

     

   어디선가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땅이 울리는 소리. 이 세상에서 지진이 일어났던 역사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주변에 폭발할 만한 화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큰 폭발을 일으킬 만한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진동의 출처는……

     

   “왔습니다!”

     

   도시 내부의 고양이에 빙의되어 있던 한 남자가 눈을 뜨며 성좌의 위치를 보고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이미 상황이 늦었다.

     

   연금술사의 도시에서 자타공인 대마법사라 불리던 두 노인은 지금 그들의 머리 위로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을 느끼며 사지를 떨고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그 어떤 괴물도, 인간도, 성좌도 이렇게까지 강했던 적은 없었다.

     

   마치 사자를 눈앞에 둔 미개한 소동물이 되어 버린 기분.

     

   쿠구구궁!!!

     

   그들이 위치한 연금술사의 탑에 또다시 큰 진동이 느껴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있는 장소는 성좌의 마력에 의해 완전히 보호를 받고 있는 장소라는 사실이었다.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그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어 마법을 구축하…!”

     

   그렇게 노인의 명령이 떨어지기 직전, 그들이 모여 있던 집회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보랏빛 머리와 그와 똑같은 보랏빛 눈동자.

     

   “뭣들 하시는 겁니까!!!”

     

   그들의 리더이자 그들의 성좌를 봉인한 두 번째 화신.

     

   엔리코의 일갈에 집회실에 모여 있던 모든 화신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이, 이건…!”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한 건지 아십니까? 제가 김시인은 건드리지 말라고 거듭 말하지 않았습니까! 가만히 일주일만 버티면 다음 층으로 보낼 수 있는 폭탄을 굳이…… 굳이 왜!!!”

     

   엔리코의 분노 가득한 눈빛이 좌중을 휩쓸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은 그의 누이가 사망했던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성좌와 성좌의 전쟁에 의한 희생. 층을 오르며 어쩔 수 없이 벌어졌던 그 전투에서 누이를 잃은 그는 성좌와의 전쟁에 대해 그 누구보다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후우……”

     

   그가 깊게 심호흡했다.

     

   생각이 깊어진다. 성좌를 화나게 한 이상 전투는 불가피한 상황이 된 것.

     

   심지어 그 ‘마녀’를 데리고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이상, 정신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엔리코 또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 할지도 몰랐다.

     

   “전원 전투 준비. 첫 번째로 시민들의 안전을 우선으로 하십시오. 이 전투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 있는 모든 화신을 격려했다. 어차피 벌어진 일에 대해 변명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남 탓을 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 봐야 바뀌는 것은 없었으니.

     

   쿠구궁……

     

   연금술사의 탑에 누군가가 침입했다. 물론 누군지 알고 몇 명인지도 안다.

     

   그리고 잠시 후.

     

   집회실의 문이 열리며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한 성좌와 대부의 화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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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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