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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창세신룡이시여…. 이건 도대체….”

       

       

       내 등 뒤에 숨어있던 한 드래곤이 말했다.

       

       다른 드래곤들의 말로. 그 참담한 모습에 적잖이 충격받은 모양이었다.

       

       

       “제 부모들에게 비늘을 받았다고, 제 부모들처럼 될 수 있었다고 착각한 바보들의 말로란다.”

       

       

       좀 더 설득했더라면, 이런 말로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드래곤의 힘줄처럼 질긴 고집을 어찌 꺾겠는가.

       

       꺾일 바에 스스로 죽음을 택할 녀석들이었는데.

       

       내 설득은 무의미했으리라.

       

       

       “저, 저희들도 이렇게 된단 말입니까?”

       

       “육체와 생명을 포기한다면.”

       

       “어, 어찌 이럴수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의 선조…. 나의 아이들…. 일곱 아이들이 어찌 그리 특별했는지 알고 있느냐?”

       

       

       내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자연현상이 있는가. 그 중 자아를 깨우친 것이 고작 그 일곱이라는 점에서 특별함을 모른단 말인가.”

       

       “그것이 그렇게나 특별하단 말입니까?”

       

       “특별하고 말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연물이란, 자연현상이란 본디 자아를 가질 수 없는 존재. 하지만 그 아이들은 마력에 의한 기적으로 자아를 가지게 되었으니. 이 땅의 어떤 자연현상보다 특별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 아이들이 자아를 가진 이후에 어떤 자연현상도 명확한 자아를 가지지 못한 것이 그 증거이리라.

       

       

       “그렇다면…. 저들의 저 형상은….”

       

       “반대로, 자아를 가졌던 존재들이 자연현상이 된 말로라고 할 수 있겠지.”

       

       

       그나마 자아를 가졌기에 저런 작은 형상이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 모습이 더욱 더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차, 창세신룡이시여….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자기들끼리 모여 작게 떨고 있는 열두 아이들을 보았다.

       

       갓 해츨링을 벗어난 어린 아이들.

       

       증오와 분노에 물들지 않은 어린 드래곤들.

       

       어쩌면, 이들을 잘 돌본다면…. 어리석은 드래곤들과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어린 해츨링들과 부화하지 않은 알들을 다른 곳에 모아두었으니, 그 곳으로 가자꾸나.”

       

       

       내가 작게 팔을 뻗자 어린 아이들이 움찔거린다.

       

       아이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지. 그럴 수 밖에 없지.

       

       내가 보인 일들이 얼마나 두려울까. 세상의 멸망을 보여주고, 그 멸망을 소멸시켰으며, 수많은 드래곤들의 육체에서 생명을 거두었는데.

       

       이것이 두렵지 않다면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안심하거라. 너희들이 저들과 같은 죄를 짓지 않는다면 나도 더 이상 같은 일을 하지 않을터이니.”

       

       

       그렇게 다독이고서야 아이들은 미약한 안심을 품었다.

       

       너무나도 화가나서, 너무 욱해버려서, 과하게 손을 써버렸지만…. 더는 이러지 않으리라.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 떠나도록 할까.

       

       하지만 떠나기 전에.

       

       나는 많은 드래곤들의 정신과 영혼이 육체를 벗어난 후, 평원에 남아있는 그들의 육체를 보았다.

       

       숨통이 끊어진 시체들. 이렇게 많은 드래곤의 시체들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겠지.

       

       나는 마력을 움직여 평원 아래에서 대량의 흙을 뽑아내 거대한 공동을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지표면에 충격을 줘서 평원 전체가 땅 속으로 사라지게 하여 드래곤들의 시체를 거대한 구덩이 아래로 떨어트렸다.

       

       마지막으로 공동을 만들때 뽑아낸 흙을 구덩이 위에 뿌리는 것으로 마무리. 일단 드래곤의 무덤이라고 해둘까.

       

       그냥 방치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어버이로서 그들의 마지막을 내버려둘 순 없으니까.

       

       조금 슬퍼졌지만…. 이것이 그들의 마무리일테지.

       

       다른 일들은 모두 마무리 되었으나, 아직 한가지 불안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으니.

       

       사라진 에레보스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떤 수를 썼기에, 내 소환에도 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에레보스가 사라진 빈 자리를 바라보았다.

       

       빈 자리를 보자 누구보다 아꼈던 아이가 나를 등지고 도망쳤다는 슬픔과 공허함이 밀려든다.

       

       차라리 시간을 되돌릴까? 되돌린다면 언제까지?

       

       비늘을 빼앗기 전으로 되돌린다 한들, 더 이상 에레보스를 예전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있을까?

       

       비늘을 빼앗기기 싫다며 도망가려는 아이를 붙잡을수는 있겠지만, 그 아이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

       

       더 많은 시간을 감아 되돌아간다면 그 아이의 생각을 바꿔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있었다.

       

       다 끝나고 조금 쉬고싶어…. 다 때려치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안되니까.

       

       

       그러니까.

       

       

       나는 내 마음 속 구석에 웅크린채 자리잡은 작은 불안을 외면한 채 열두 아이들과 함께 공간을 이동했다.

       

       이제는 이 어린 아이들과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것이다.

       

       

       – – – – – – – – – – – – – – – – – – – –

       

       

       드래곤의 무덤은 세계 7대 금지 중 하나이며. 고대에 존재했던 드래곤의 시대에서 드래곤들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고 추정되는 지역이다.

       

       본래 드넓은 평야였다고 추정되는 이 지역에는 수많은 드래곤들의 시체가 묻혀 있으며, 상황에 따라 아직도 뼈와 가죽이 온전한 드래곤의 사체가 발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지역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7대 금지 중 하나이니, 이곳에 발을 디딘 자는 목숨을 보장하지 못한다.

       

       수많은 드래곤들의 시체에서 뿜어져 나온 죽음의 기운은 살아있는 생물의 육체를 잠식해 생명을 빼앗아가며, 죽음의 기운에 잠식된 시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데드가 되어 생명을 갈구하며 움직이게 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자리잡고 있는 생명교단의 신전들이 죽음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내고 있다는 점이며, 그렇기에 이들의 허가 없이는 드래곤의 무덤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가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생명교단의 시험을 받고 이 금지에 도전하는 것이 어떨까?

       

       자그마한 뼛조각이나 가죽을 얻기만 해도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을테니.

       

       물론, 빠져나오지 못한 채 언데드가 될 가능성도 있지만 말이다.

       

        – 세계를 모험하는 모험가들을 위한 안내서. 

          세계 7대 금지의 장.

       

       

       – – – – – – – – – – – – – – – – – – – –

       

       

       그 뒤로는 뭐,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아직 증오와 분노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이었기에, 최소한의 도덕을 새롭게 심어줄 수 있었던건 무척이나 긍정적인 결과였다.

       

       거기에 해츨링들과, 갓 태어나는 드래곤들까지…. 음….

       

       숫자는 수십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서로 죽이려 들지는 않으니, 훨씬 긍정적이겠지.

       

       그렇게 어린 드래곤들에게 여러가지를 가르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에.

       

       

       「후에에에에엥!!! 엄마!!!!!」

       

       

       실피드가 울며 찾아왔다.

       

       

       “깨어났느냐.”

       

       「깨어났느냐. 가 아니에요!!! 어찌 이리 너무한 처사란 말인가요!!! 아이들이 모조리 작은 바람의 조각이 되어버렸잖아요!!!」

       

       “그 아이들이 바란 일이란다.”

       

       

       바라지 않았으면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을텐데 말이지.

       

       

       “아니면, 그 아이들을 완전히 소멸시키기를 바랬더냐?”

       

       「그, 그럴리가 있나요?! 그저, 아이들이 불쌍해서….」

       

       “그 아이들에게 조금 너무한 짓을 하긴 했으나, 돌이킬 생각은 없단다.”

       

       

       돌이킬 생각이 있었다면 시간부터 되감았겠지.

       

       물론 시간을 되감아도 다른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겠지만.

       

       

       「히이잉….」

       

       “네게도 비늘을 돌려주지 않을게다.”

       

       「네?! 어째서요?! 이정도면 엄청 벌받았다고 생각하는걸요!」

       

       “고작 몇년인데 벌이 되었겠느냐?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돌려줄 생각 없다.”

       

       「히이잉…. 엄마 너무해….」

       

       “너무한건 너희들이고. 내 기대를 몇번이나 배신했는지…. 씁.”

       

       

       나는 한껏 투정부리는 실피드를 날개짓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정녕 비늘을 되찾고 싶다면 에레보스를 찾아내거라. 그 아이를 찾아낸다면 비늘을 다시 내려주마.”

       

       

       그 녀석은 어디에 숨어버린건지…. 소환해도 제대로 소환되지도 않고 있으니 말이지.

       

       

       「에레보스를요?! 그 녀석 찾으면 비늘 돌려주시는거죠?! 약속하신거죠?!」

       

       “그래. 약속하마.”

       

       

       나는 턱 아래에 비늘이 자리잡지 않은 곳을 긁적이며 말했다.

       

       비늘 하나 크기의 빈 공간은…. 두번다시 채워질 일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고 있었다.

       

       

       – – – – – – – – – – – – – – – – – – – –

       

       

       “크르륵! 차, 창세신룡…. 이시여…!”

       

       “음? 오, 너희들. 살아있었느냐. 게다가 이젠 말까지 하는구나.”

       

       

       실피드가 찾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 기억이 있는 창을 들고 있는 리자드맨이 찾아왔다.

       

       철 없는 드래곤들의 전쟁으로 지상이 쑥대밭이 되었을텐데, 용케 살아있구나.

       

       공룡도 거의 멸종한 상황인데, 이 녀석들은 용케도 살아남았구만. 땅속에 굴이라도 파고 살아남은건가?

       

       

       “드, 드래곤의 시대를, 끝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내가 끝내고 싶어서 끝낸…. 음, 끝내고 싶었던 것 맞나? 어쩌다보니 끝낸 느낌이 강하긴 한데.

       

       

       “별 것 아니다. 그저 그 바보들이 선을 넘었기에 한 일이니.”

       

       “모, 모든 것을, 보았, 습니다. 세상의 멸망…. 더는 그런….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제물을…. 바치겠, 습니다!”

       

       “제물?”

       

       

       리자드맨의 뒤쪽에서 다른 리자드맨들이 나타났다.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공룡의 고깃덩어리를 짊어진 리자드맨들과, 새하얀 꽃으로 만들어진 꽃다발을 들고 오는 작은 리자드맨. 

       

       

       “오랫동안, 전해져 왔습니다…. 창세신룡께 제물을 바쳐, 제사를 지낸다는 사실이…. 그동안은 힘들었지만, 이제는 빠트리지 않겠습니다….”

       

       

       음. 꽤나 기특하구만.

       

       하지만 그렇게까지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고맙구나. 하지만 고기는 마음만 받도록 하마.”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하얀 꽃다발을 넘겨받았다.

       

       예전에 리자드맨의 창을 고쳐 주었을때 받았던 꽃과 같은 꽃이었다.

       

       

       “내게 바칠 것은 이 꽃으로 충분하단다. 고기는 너희들이 가져가서 배불리 먹거라.”

       

       

       나도 먹을 순 있지만, 반드시 먹어야 하는건 아니니까.

       

       먹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리자드맨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좋으리라.

       

       

       “이, 얼마나, 은혜로우신지!! 감사합니다! 창세신룡이시여!!!”

       

       

       공룡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저런 커다란 고깃덩어리라면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을테지.

       

       아마도, 저들에게는 오늘이 큰 축제날이 아닐까.

       

       

       “오늘은 배불리 먹는 날이다!”

       

       

       봐, 축제 맞지?

       

       리자드맨들은 무척이나 들뜬 발걸음으로 고기를 가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리자드맨들을 보며 나는 흰 꽃의 꽃다발을 얼굴에 가져갔고, 살짝 달콤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저런 순박한 녀석들을 보니, 조금은 미래를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0분에 한편…. 15시까지 최대한 쓴다고 해도…. 5편 남짓….

    조 졌 다! 신작 챌린지 리타이어!!!

    망했네요 이거. 아하하. 아하하하….

    씁…. 그냥 빼고 공모전 넣을까…?

    아니, 하지만 플러스 신청은 넣었는데….

    끄으으으윾! 과거의 나는 바보…. 어째서 플러스 독점을 하지 않은거지?! 어째서 30편까지 쓰지 않은거지!

    어흒 마이깟…

    (30일 추가)제가 예약해둔 편수는 5편이었습니다. 이거하고 이 다음 1편으로 끝이군요. 추가로 쓰지 않는 한.

    사실 수십편씩 예약되어 있으면 참으로 좋았겠지만요… 추석 전에 황급히 쓴다고 호애애애앵!!! 하면서 쓰는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뭐, 4시간에 5편 뽑아낸거면 열심히 뽑아낸거죠. 덕분에 체력이 바닥나서 만나는 친척이나 가족들이 다크서클이 뺨까지 내려와 있다고 안색이 안좋다고 걱정했지만.

    시간을 마음대로 되감을 수 있는 주인공이 보통 그러지 않는건… 다 때려칠래 모드에 들어가는 경우가 큽니다.

    기껏 열심히 만들었는데 세이브 하지 않고 롤백… 절망… 압도적 절망… 게다가 다시해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게 없으면…

    수백년을 수십 수백번 이상 반복하기에는 주인공의 멘탈이 강하지 않군요.

    아니, 이정도면 강한건가?

    그런데 아직도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있다니! 과연 주인공은 이름으로 불릴 때가 올 것인가?!

    즐거운 추석 연휴 되세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다음화 보기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늬들이 날 수호룡이라 부르든 말든 난 잘거야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story of a human reincarnated as the Creator God of a new world, and her observation logs of the burgeoning new world and life. — Dragons, which have existed since before the birth of human civilization, became the guardian dragons of the empire. But whether you guys call me that or not, I’m going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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