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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아니….’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아니면 뭐 상태창에 오류라도 났나?

       최근에 좀 뜸하긴 하더만.

       

       하지만 눈을 아무리 여러 번 깜박여도, 고개를 흔들어도 상태창의 메시지는 굳건하게 나에게 알리고 있었다. 

       

       [Lv.3 「해츨링」과 사역마使役魔 계약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해츨링과 내가, 사역마 계약을 맺는 데에 성공했다고.

       

       ‘설마….’

       

       나는 황급히 왼손을 들어 손등을 바라보았다. 

       

       우웅-

       

       사역마의 계약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마나로 이루어진 투명한 각인 문양이 일순간 푸르게 빛났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잠이 확 달아났다. 

       

       ‘뭐지? 도대체 어떻게…?’

       

       사역마 계약이란 건 절대 보편적인 계약이 아니다.

       

       보편적인 거였으면 사람들이 죄다 마물 하나씩은 사역마로 데리고 있었겠지.

       

       ‘그리고 절대 가볍게 볼 만한 계약이 아니기도 하고.’

       

       어제 해츨링이 알아듣기 쉽게 파트너가 어쩌고 했지만, 계약의 본질은 ‘영혼과 영혼을 결속하는 것’에 있다. 

       

       해당 계약이 맺어지는 순간, 둘에게는 평생 동안 뿌리칠 수 없는 커다란 제약이 하나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해당 계약을 주체적으로 행할 수 있는 인간 자체가 많지 않다. 

       

       ‘테이머는 타고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니까.’

       

       그리고 그 타고난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히 더 재능이 있는 자들만이 고위 등급의 마물을 자신의 사역마로 삼아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고. 

       

       ‘애매하게 약한 마물을 사역마로 삼아 봤자 크게 이득 볼 것도 없고, 오히려 마물이 죽기라도 하면 테이머의 목숨만 위험해지지.’

       

       나 역시 랜덤 가챠 캐릭터로 테이머의 재능을 가진 캐릭터를 몇 번 뽑았었는데, 한 번은 적당한 마물 하나를 사역마로 삼았다가 그 마물이 죽어서 맥없이 게임을 다시 시작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테이머가 될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도 웬만해서는 사역마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거고, 결국 테이머라는 직업 자체가 정말 소수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하는 직업이 된 거지.’

       

       하지만 그런 극소수, 상위 0.1퍼센트의 재능을 가진 테이머들이라고 하더라도, 사역마 계약을 시도할 때에는 꽤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서로 아예 종이 다른 두 개체가 영혼을 결속하는 과정이니, 그럴 수밖에.’

       

       레키온 사가에서는 테이머가 마물을 상대로 계약을 시도하면, 미세한 게이지를 키보드로 조절하는 일종의 미니 게임이 생성된다.

       유저는 그 게이지가 최대한 가운데에서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버튼을 눌러 가면서 조절을 해야 되고.

       

       테이밍하는 상대가 강한 마물일수록 계약에 대한 저항은 강해지고, 그에 따라 미니 게임의 게이지는 강하게 요동쳐 가운데에 머물게 하기가 힘들어진다. 

       

       ‘상대의 영혼을 붙잡아 굴속시키는 과정을 단순화해서 나타낸 거겠지.’

       

       만약 자기보다 월등히 강하거나 고위 등급의 마물을 상대로 계약을 시도하다 실패하면, 그때는 반대로 테이머의 영혼이 위험해진다.

       

       그래서 일부 테이머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용병을 고용해, 테이밍하고 싶은 마물을 사냥하고 빈사 상태로 만들거나 생포한 뒤에 계약을 시도하기도 한다고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해 본 적은 없지만….’

       

       여튼, 그런 일이 어딘가에서는 심심찮게 벌어질 정도로 사역마 계약이란 건 체결되는 과정 자체가 만만치 않다. 

       

       즉, 이렇게 ‘꿀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사역마 계약이 완료되어 있었어요!’ 같은 일은 계약 구조 상 벌어지려야 벌어질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내가 뭐 잠꼬대로 사역마 계약을 했을 리는 없잖아.’

       

       보통 인간이 계약을 걸고, 마물은 저항하다가 결국 인간의 의지에 굴속되어 사역마가 된다. 

       이게 사역마 계약의 정석 과정인데….

       

       -사역마, 무슨 뜻이야?

       -구속력?

       -끊기 힘들고, 같이 다닐 수 이써?

       

       ‘아, 설마.’

       

       일순간, 지난밤에 잠들기 직전에 해츨링이 했던 말, 그리고 해츨링의 초롱초롱한 눈과 기대에 찬 표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마지막에 난 분명히 ‘같이 다녀야 한다’고 했는데, 해츨링이 물은 건 ‘같이 다닐 수 있어?’였었어.’

       

       …설마 계약을 건 게 내가 아니라 해츨링 쪽이라고?

       

       그럴 리가…?

       

       ‘아니, 백번 양보해서 해츨링이 나한테 자진해서 사역마 계약을 걸었다고 치자. 그럼 적어도 신호는 와야 할 거 아니야.’

       

       아니면 상태창에 ‘동의하시겠습니까?’ 같은 메시지라도 하나 띄워 주든가.

       

       “하아….”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헝클었다.

       

       “쀼우…?”

       

       그리고 그때, 마침 품 안에서 뒤척이던 해츨링이 내 기척에 깼는지 부스스 눈을 떴다.

       

       이불을 젖히자, 창 안으로 들어오던 따스한 아침 햇살이 마침 쭈우욱 기지개를 켜는 해츨링을 비추었다. 

       

       “뀨우웃!”

       

       하이톤의 뀨우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켠 해츨링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잘 잤냐는 듯 내 손에 자신의 뺨을 부벼댔다.

       

       “쀼우!”

       “…….”

       

       평소 같았으면 이 치사량의 귀여움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나로 하여금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훨씬 더 강한 게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얘야, 이거 네가 한 거니?”

       

       나는 집 공용 컴퓨터에 몰래 게임을 깔아 놓은 아들을 다그치는 아버지처럼, 짐짓 엄한 표정으로 내 손등을 가리켰다. 

       

       우웅.

       

       손등의 각인 문양이 다시 한번 빛을 뿜었다가 사라졌다.

       

       “쀼우!”

       

       하지만 내 의도와는 반대로, 해츨링은 더없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짧뚱한 왼쪽 팔을 내밀었다.

       

       우웅.

       

       내 것과 같은 문양의 축소판이 앞발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

       

       이젠 아닐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마저 사라졌다.

       

       나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는데….”

       

       그러자 해츨링은 나를 올려다보며 내 손을 꼬옥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 레온 믿어써! 그랬더니 된 거 가타! 잘 된 거 마자?”

       “…믿었다고?”

       

       잠깐만.

       

       무언가 떠오른 나는 황급히 상태창 아래쪽에 있던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고유 특성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고유 특성 :  「신뢰의 계약」이 개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상태창을 열었다.

       

       [Lv.1 레온]

       힘 : 6 민첩 : 7 체력 : 5 마력 : 3

       고유 특성 : 「신뢰의 계약」

       스킬 : 없음

       

       ‘잠겨 있던 고유 특성이 열렸어.’

       

       나는 홀린 듯 허공에 손을 뻗어 ‘신뢰의 계약’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을 가볍게 터치했다. 

       

       그러자 기존 창이 사라지고 특성의 세부 정보가 눈앞에 떴다. 

       

       <고유 특성 : 「신뢰의 계약」>

       -등급 : 유일

       자유로운 서로의 영혼을 진정한 의미에서 결속하는 건 힘이 아닌 신뢰입니다.

       특성 ‘신뢰의 계약’은 자신에 대한 상대의 신뢰도가 100퍼센트를 달성했을 경우, 아주 약간의 트리거만 있으면 일반적인 영혼 계약에서 이루어지는 복잡한 과정을 전부 건너뛰고 계약을 체결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특성의 부가 효과를 개방할 때마다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수 효과 펼치기)

       

       “…….”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유일 등급 특성이라고?’

       

       캐릭터마다 최소 하나씩 랜덤으로 부여되는 고유 특성.

       

       그리고 그중에서 최상위급인 ‘신화급’보다도 높은 건, 말 그대로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이 나올 수 없는 ‘유일’ 등급밖엔 없었다.

       

       ‘심지어 주인공도 고유 특성 최고 등급이 신화급인데….’

       

       물론 주인공은 그 신화급 특성이 여러 개 있어서 더 사기인 거지만….

       

       ‘내가 그렇게 랜덤 가챠를 돌렸는데도 단 한 번도 뜬 적이 없는 등급이 유일 등급이다.’

       

       그런데 바냐스 마을의 평범한 청년 레온의 고유 특성이… 유일 등급이었다니.

       

       ‘근데 언뜻 설명을 읽어 보면 유일 등급치고 그렇게까지 사기라는 생각은 안 들긴 하는데.’

       

       주인공의 신화 특성은 대놓고 ‘마법서 및 비급서 사용 성공률이 100%가 되며, 모든 스킬 숙련도가 3배 더 빠르게 상승합니다’ 같은, 누가 봐도 사기인 특성들인 데에 반해….

       

       ‘이건 어쨌거나 신뢰도 조건을 달성하지 못하면 없는 특성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니까.’

       

       게다가 말이 신뢰도 100퍼센트지, 풀어 설명하면 마물이 인간을 ‘완전히’ 신뢰하는 상태가 아니면 발동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닌가. 

       

       마물이 인간을 백 퍼센트 신뢰하다니. 그게 계약하기 전에 과연 달성 가능한 수치인가?

       

       ‘아니, 여기 그게 가능한 마물이 하나 있긴 한데….’

       

       나는 상태창을 조작하고 있지 않은 내 왼손을 소중하다는 듯 앞발로 꼬옥 잡고 가만히 체온을 느끼고 있는 해츨링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해츨링도 곧바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잘 된 거 마자?”

       

       해츨링은 다시 눈을 마주치자마자 기대로 가득 찬 표정으로 물었다. 

       

       ‘윽.’

       

       저렇게 순수한 얼굴로 물어보는데 왜 그랬냐고 혼낼 수도 없고….

       

       당혹감, 그리고 혼란스러움 탓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나는 잠시 이마를 짚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후우….”

       

       그리고 해츨링에게 답해 주었다. 

       

       “응. 잘 된 거 맞아. 계약은 성공했어.”

       

       그 말에 해츨링의 얼굴이 기쁨으로 물들었다. 

       

       해츨링은 폴짝 뛰어 내 품에 안기며 외쳤다. 

       

       “영혼 계약, 해써! 이젠 함께야!”

       

       나는 전에 없이 기뻐하며 품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해츨링을 가만히 안고 쓰다듬었다. 

       

       ‘함께라….’

       

       그래.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드래곤과 사역마 계약을 했다는 인간이라니, 들어 본 적도 없지.’

       

       나름 레키온 사가에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많은 서적을 섭렵했다고 자부하는 나도, 인간과 드래곤이 사역마 계약을 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아마 대륙의 역사를 다 뒤져도 있을까말까 하겠지.’

       

       그게 ‘유일’ 등급이 ‘유일’이라고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

       

       아무래도 난 오늘, 드래곤과 사역마 계약을 한 유일한 인간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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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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