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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프란체의 충격적인 발언에 모두가 경직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는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입술을 달싹일 뿐이었다.

         

       데카르트 공작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뭐…? 동성애자?”

       “그렇습니다.”

       “그건 처음 듣는 소리다만…….”

       “최근 사교계에서 떠들썩한 소식입니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가 발언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에덴과 라인이 트집을 잡을 만도 한데,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조용히 듣고만 있다.

         

       “그 소문의 출처가 어디더냐.”

         

       공작의 질문에 프란체가 슬며시 나를 바라본다. 뭐, 이것도 대신 대답해줘야 해? 나는 조용히 귓가에 읊조렸다.

         

       “오래전부터 사교계에 나돌던 소문이라고 하세요.”

         

       프란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공작에게 말했다.

         

       “오래전부터 사교계에서 나돌던 소문입니다.”

         

       공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짓누른다. 데카르트 공작은 일에만 몰두할 뿐, 사교계에는 관심이 없어 어떤 소문이 도는지 모른다.

         

       에덴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후계자를 이어받아야 하기에 일과 공부에 열중했으니.

          

       이제 문제는 라인이다. 얘는 워낙 할 일이 없어 제법 사교계에 도는 소문을 잘 알고 있다. 트집을 잡아도 얘가 잡지 않을까.

         

       “공작님, 저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프란체 데카르트가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만들어낸 헛소리일 뿐입니다!”

         

       역시나. 라인이 소리치며 트집을 잡았다. 이에 프란체가 당황하며 다시 나를 바라본다. 조용히 속삭여주었다.

         

       “라인 데카르트는 영식들에게서 들리는 소문에나 능통하지, 영부인이나 영애들에게서 들리는 소식은 전혀 모릅니다. 밀고 나가세요.”

         

       프란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문은 영부인과 영애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소문입니다.”

       “여자들끼리 떠든 게 진짜라고 밀어붙이는 거냐?”

       “밀어붙이는 게 아닙니다. 어제 페르시아 소 공작님과 만나 대화도 나눴으니까요. 소문이 사실이더군요.”

         

       그래, 그렇게만 해라. 잘 하고 있어.

         

       “대화? 무슨 대화를 나눴는데?”

       “파혼에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거기서 그 새끼가 동성애자라고 하든?”

         

       데카르트 공작이 손을 들었다.

         

       “라인. 좀 진정하거라.”

       “…예.”

         

       저, 저 강약약강 새끼. 프란체한테는 그리 소리쳐놓고 공작한테는 쪽도 못 쓴다.

         

       “그래, 프란체. 소 공작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말해봐라.”

       “먼저, 저와 파혼을 하고 싶다면서 데카르트 공작가를 모욕했습니다.”

       “그리고.”

       “파혼 이유에 대해서 물었더니… 자신은 여성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프란체의 말이 점점 흐려진다. 그녀는 슬쩍 나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마치 자신이 잘하고 있냐는 듯한 시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만 말한 것이냐? 왜 말이 없지?”

         

       차가운 데카르트 공작의 목소리. 프란체는 순간 움츠러들었지만, 애써 말을 이었다.

         

       “…그리 말하면서 저를 모욕하고 일방적으로 파혼을 요구했습니다……. 자신은 여성을 사랑할 수 없는 몸이라며…….”

         

       공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를 어떻게 모욕했지?”

       “데카르트 공작가의 수치. 사치밖에 부릴 줄 모르는 쓰레기라고 했습니다.”

         

       으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만 놓고 보면 일 할은 진실이고, 나머지 구 할이 날조긴 한데. 뭐, 크게 상관은 없다. 원래 소문이란, 퍼트린 사람은 조용히 사라지고 당사자가 해명해야 하는 기이한 일이니까.

         

       “그래, 그랬단 말이지.”

         

       데카르트 공작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자세한 건 내가 직접 페르시아 공작가와 이야기 하마. 늦은 시각이라 피곤할 텐데, 그만 돌아가 보거라.”

       “예.”

         

       그렇게 파혼으로 인한 소란은 끝이 나나 싶었건만, 아직 일은 끝나지 않은 듯하다. 라인이 계속해서 프란체를 쏘아보고 있었으니.

         

       눈을 얕게 뜨고 날카롭게 프란체를 응시하는 라인과는 달리, 에덴 쪽에서는 큰 반응이 없었다.

         

       ‘사교계에 대해서 잘 모르니 조용히 있는 거겠지.’

         

       훌륭한 판단이다. 잘 모르는 분야에 있어선 조용히 있는 것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반면 라인은…….’

         

       프란체를 계속 의심하고 있다. 라인이 따지고 들어올 때를 대비해서 변명을 만들어야겠군.

         

       덜컥.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나와 프란체는 방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 나눈 대화는 없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들으면 안 되니까.

         

       그리고 잠시 후. 프란체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후우. 정말 이래도 괜찮았던 거니?”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소문이라는 건 금방 알 텐데?”

       “알아낼 방도는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단정 짓니?”

         

       음. 하나부터 끝까지 다 설명해줄 순 없으니 적당히 둘러 대는 게 좋겠지.

         

       “바렌베르크의 왕족으로 활동하던 당시에 쌓은 노하우입니다.”

       “호오, 왕족의 노하우라.”

         

       입술을 오므리고 눈이 동그래진 프란체. 나는 그녀를 더욱더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꾸며냈다.

         

       “경험에서 우러러 나오는 대처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 라인 공자는 이번 일에 대해서 따지러 올 텐데, 그건 그때 제가 만든 변명으로 넘어가시죠.”

         

       프란체는 말없이 풀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늦은 시각까지 파티에 다녀온 것도 모자라 공작의 심문까지 받았으니.

         

       “그래서, 라인 공자가 오면 뭐라고 말할 건데?”

       “그냥 자세한 건 모른다고 잡아떼시면 됩니다.”

       “…뭐?”

         

       프란체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파티가 끝나고 귀족들이 다 헤어졌죠? 이제 페르시아 소 공작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은 제국 곳곳에 퍼져 나갈 겁니다. 그러면 점점 출처를 알 수 없게 될 거고, 1차 적으로 소문을 퍼트린 저희는 배후 속으로 사라질 겁니다.”

         

       달리 할 게 많은 현대에서도 가십거리는 언제나 환영을 받았다. 사람의 본능은 누군가를 헐뜯고 흉보는 걸 좋아하니까. 이건 100만 뮤튜버인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만나서 떠드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는 이 판타지 세계에서 소 공작이라는 인물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생겼다? 이는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것이다.

         

       프란체는 말이 없었다. 그저 뚱한 표정. 아무래도 많이 졸려서 내 말이 이해 가지 않는 듯했다.

         

       “피곤해 보이시니 얘기는 여기까지 하시지요. 자세한 건 라인 공자가 직접 찾아왔을 때 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럼 내일은 곧바로 일어나자마자 나를 찾아오렴…….”

       “예.”

         

       그렇게 나는 프란체의 방을 나왔고, 내가 머무는 연무장의 창고로 향했다.

         

       “후우.”

         

       이제야 바빴던 하루가 끝났다. 마차 습격에, 소 공작의 파혼 통보에, 소미레 사건에. 많은 일이 있었어, 정말…….

         

       나는 제복을 벗고 식사로 놓인 식은 감자와 우유를 허겁지겁 해치웠다. 그 후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 한 가지.

         

       ‘마차 습격은 누구의 소행이었을까.’

         

       카서스 페르시아는 아닐 것이다. 그럴 것이, 어떤 암살자가 의뢰자로 추정되는 물건을 품속에 넣어두고 다니겠나.

         

       ‘암살자들 실력도 어중간했고.’

         

       그럼 거물급이 의뢰한 건 아니다. 좀 더 평범한 누군가가 의뢰했다는 거겠지.

         

       ‘하급 귀족인가?’

         

       평소에 프란체에게 원한이 있던 하급 귀족이 의뢰한 걸 수도 있지만, 품에 페르시아 공작가의 문양을 가지고 있던 게 마음에 걸린다.

         

       ‘데카르트 공작가와 페르시아 공작가를 이간질하려는 놈이겠군.’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만,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 한 번 습격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습격한다는 뜻일 테니까.

         

       “후우.”

         

       나는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암살자에 관한 것도 그렇고, 소미레에 관한 것도 그렇고. 생각할 게 많아지니 괜히 머리만 아파진다.

         

       “…잠이나 자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생각해보자.”

         

       프란체가 일어나는 즉시 찾아오라 했으니 일단 눈을 붙이는 게 낫겠지.

         

       나는 모든 고민을 떨쳐내고 잠들었다.

         

         

       * * *

         

         

       이튿날. 일어나는 즉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저택으로 향했다. 몇몇 시종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뭐야?’

         

       저번에 시종 얼굴을 벽에 박아서 그런가? 소문이 나서 그럴지도.

         

       ‘그게 내 알 바인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프란체의 방으로 향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진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서니 프란체가 가벼운 옷차림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있는 시종은 못 보던 얼굴이었다.

         

       “너는 이제 나가보렴.”

       “예.”

         

       꾸벅. 시종이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문을 나섰다. 아무래도 프란체는 제대로 된 전속 시종을 배정받은 듯했다.

         

       “전속 시종이 바뀌었나 봅니다.”

       “그래. 소 공작님께서 아예 새로운 시종을 보내주셨어.”

         

       에덴 그 새끼가? 의외네. 적당히 아무 시종이나 골라서 배정해줄 거 같았는데.

         

       ‘그래서 멀쩡한 차를 마시고 있던 건가.’

         

       새로 들어온 시종이 아니었다면 차가 아니라 오물을 가져다줬을 것이다. 당장 이전까지만 해도 그랬으니까.

         

       ‘이게 얼마나 갈진 모르겠는데.’

         

       그래도 프란체에게 함부로 했던 시종 모가지가 잘려나갔으니 함부로 대하진 못하겠지.

         

       ‘존중은 못 받겠지만.’

         

       그녀가 말했다.

         

       “너를 지금부터 완전히 내 전속으로 배정할 거야.”

       “원래도 그런 게 아니었습니까?”

         

       프란체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는 주인과 노예의 사이였더라면, 이제부터는 공녀와 직속 기사의 사이란다.”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그럼.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내 곁에 있어야 한단다.”

       “그렇군요.”

         

       그럼 프란체의 곁에서 계속 있을 수 있는 건가. 이러면 내가 계획한 걸 제대로 이룰 수 있을 거다.

         

       “앞에 앉으렴.”

         

       그녀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마주 보고 앉은 우리.

         

       프란체가 말했다.

         

       “네가 말했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주겠다고.”

       “예. 어떤 것이든, 곤란한 일 따위는 없습니다.”

       “그래.”

         

       그녀는 지그시 나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생각을 해봤어. 내가 진정 뭘 원하는지.”

       “예.”

       “첫 번째로 이 공작가에서 빠져나가는 거야.”

         

       프란체는 그런데,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내 속이 풀리지 않는 거 아니겠니?”

       “데카르트 공작가를 완전히 무너트리면 됩니까?”

       “…혼자 너무 멀리 가진 말고. 우선 내 말을 들으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아도 좋으니, 사소해도 좋으니 복수를 하고 싶구나. 그렇다고 가문 자체를 해하거나 무너트리는 건 안 되고…….”

         

       복수라고 말해놓고선 망설이는 프란체. 그러면 할 일도 못 한단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그래서, 정확히는 어떻게 해주길 원하십니까?”

       “데카르트의 모두를 후회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

         

       그거라면 내 목적과도 얼추 비슷하다. 내가 생각한 건 그녀를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리고 프란체가 원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모두를 후회하게 만드는 것. 즉, 프란체에게 능력을 심어주고 만들고 승승장구하게 해주면 된다는 거다.

         

       그 능력이 뭐가 될지도 정해뒀다. 나머지는 실천하는 것뿐. 근데 가문을 해하거나 무너트리면 안 된다고 했으니 작전 하나는 빼야겠군.

         

       “주인님.”

       “이제 공녀님이라고 부르렴.”

         

       뭐여, 호칭이 업그레이드됐네.

         

       “…공녀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소 노력이 필요합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20년을 살아왔는데 못할 게 뭐가 있겠니? 그래서, 뭘 해야 하는데?”

         

       프란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마법을 배우시는 겁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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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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