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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티포노마키아 이후의 이야기 – (2)

       

       

       

       이리스의 무지개를 건너자 올림포스로 내 몸이 전이되었다. 

       푹신하면서도 묵직한 구름 위에 발을 디디는 느낌이 얼마 만인지.

       

       온통 흰 구름이 가득한 세상에서 저 멀리 올림포스 신궁(神宮)이 보인다. 

       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헤파이스토스와 퀴클롭스 등이 제련한 금속으로 지어진 건물.

       

       하늘 위의 은하수에 닿을 만큼 커다란 신전, 아니 신궁은…

       

       “왜 저렇게 멀쩡하지?”

       

       분명 티폰에게 반 이상이 부숴져 처참한 몰골이여야 하는데?

       내 혼잣말에 이리스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제우스 님께서 헤파이스토스 님을 필두로 신궁의 빠른 재건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티폰에 맞서 타오르는 불길을 불러오는 용맹한 전사이며,

       올림포스 최고의 대장장이인 헤파이스토스가 저걸 재건하느라 갈려나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구나.

       

       이리스의 낯빛도 별로 좋지 않은데.. 옳거니, 너도 좀 고생했구나.

       

       무지개의 여신에게 안쓰러운 눈길을 슬쩍 던지고 올림포스 신궁의 문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살고 있는 저승의 문보다 명백하게 화려한 모습.

       

       황금으로 뒤덮이고 드래곤의 문양과 번개 문양이 새겨진 기둥과 기이한 빛이 나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손잡이.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은은하게 흐르는 별빛의 강, 은하수.

       

       “아, 저 장식은 아폴론 신과 헤파이스토스 신께서 함께 고민하여 고안한..”

       

       미적 감각이 뛰어난 신이 만든 것 같아서 잠시 쳐다보고 있자니 이리스가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슬슬 들어갈 생각이라 적당히 듣다가 문을 열었다. 

       

       스르륵-

       

       올림포스 신궁의 바닥은 구름.

       그렇기 때문에 끼익거리는 불쾌한 소리 없이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수많은 신들과 시종들이 지나다니는 올림포스의 연회.

       화려한 탁자와 의자가 여럿 놓여져 있었고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가 먹기 좋게 접시에 덜어져 있었다.

       

       “흑발흑안에 이 싸늘한 기운..”

       “저승의 주인께서 정말로 올림포스에 오시다니..”

       “제우스 님이 초대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수근거리는 하위 신들이나 시종들을 무시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띠리리링~ 띠링~

       

       “와아..”

       “쉿..! 음악이 잘 안들리잖아.”

       

       음악의 신 아폴론이 넥타르가 담긴 황금 술잔을 옆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 리라를 타는 모습이 먼저 보였고..

       주변의 여신이나 여시종들이 그에게 푹 빠진 얼굴로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여기, 넥타르 좀 따라봐라.”

       “예! 알겠습니다!”

       

       신들이 술잔을 내밀면 움직이기 편한 키톤(Chiton)을 입은 자들이 구름 위를 바삐 뛰어다니며 넥타르가 담긴 병을 따라주었다.

       그들은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관리하는 청춘의 여신, 헤베(Hebe)의 시종들.

       

       제우스와 헤라의 딸인 그녀는 신들의 연회 때마다 시종들을 지휘하느라 바쁘다.

       

       “헤베.”

       “앗! 하데스 님, 오셨습니까!”

       

       그녀가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인다. 

       오랜만에 보는 조카와 적당히 인사치레를 하고 나 또한 근처의 황금 술잔을 집어들었다. 

       

       아니, 집어들려고 했었다. 푸른 머릿결의 해신이 먼저 손을 뻗지만 않았어도.

       

       “여어, 하데스. 사실 올림포스에 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포세이돈.”

       

       바다를 다스리는 해신이 씩 웃으며 넥타르를 단번에 입으로 털어넣었다.

       그의 다른 손에는 그가 자랑하는 트리아이나가 들려있었다.

       

       “음.. 올림포스의 연회를 어떻게 생각하나?”

       “그냥 별다를 것 없는 연회인데 무슨 문제라도?”

       

       포세이돈이 접시 위에 놓인 암브로시아를 집으며 내게 말했다. 

       

       [다음에는 내 궁전에서 열리는 연회에도 와줄 수 있겠나? 여기서는 말하기 힘든 이야기가 있는데…]

       

       올림포스의 2인자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표정을 슬쩍 굳히며 조용히 전언을 보내고,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저승의 입구로 내 권속을 보내지.]

       [상관없다.]

       

       그래, 내가 이런 일이 있을까 봐 굳이 연회에 오려고 한 까닭도 있다. 

       신들이 모이는 장소에 잠시만 있으면 온갖 소식, 내가 모르는 비밀, 뒤가 구린 이야기를 전해듣기 마련이지.

       저승의 왕으로서 눈과 귀를 닫고 지내서는 안 되니까. 

       

       포세이돈과의 약속을 잡은 후,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바다와 저승을 다스리는 주신 둘이 모이자 주변의 시선이 잠시 모였다가 흩어진 것이 느껴진다. 

       

       이 연회를 주최한 제우스는 잠시 뒤에 나타날 예정인 듯 싶다.

       신들이 많이 모였다 싶으면 중간에 나타나 술잔을 들어올리고 분위기를 잡겠지.

       

       

       

       * * *

       

       

       

       “하데스. 네가 올 줄은 몰랐다.”

       “내가 올림포스에 오는게 뭐가 어때서 그렇지?”

       

       잘 익은 곡물의 빛깔을 연상시키는 연갈색과 노란빛이 섞인 듯한 머리카락.

       화려한 외모와 그에 맞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올림포스 12신이며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Demeter)다.

       

       그녀는 넥타르를 마시다 말고 구름 사이로 보이는 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는 항상 지하에서 저승을 다스리느라 바쁘니까, 나로서는 네가 당연히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라고 매일 업무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니야.”

       

       그렇게 믿지 않는다는 얼굴로 봐도 정말이다. 

       사실 지금도 업무를 유기하고 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려 하계를 바라본다. 

       올림포스 산 위의 신궁에서 내려다보는 하계는 평소와 같은 풍경이.. 아니였다.

       

       “저기 반쯤 사라진 올림포스 산에서 일하는 자들은 네 부하들이냐?”

       “하급신들과 님프들에게 자그마한 일을 시켰을 뿐이야.”

       

       글쎄, 티폰이 박살낸 올림포스 산을 원래대로 만드는 일은 자그마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만.

       실제로 저기 님프들이 불평 가득한 얼굴로 있지 않나..

       

       잠시 하계에서 일하는 자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귀를 기울여 보았다. 

       

       “허억.. 언제까지 이걸 해야..”

       “데메테르 님께서 시키신 일이야, 어설프게 하면 우리 본체가 말라버릴거라고!”

       “나..나도 드라이어드(Dryad)라서 데메테르 님을 화나게 하면 안돼!”

       

       드라이어드는 나무에 깃들어 사는 요정(님프).

       수명이 길지만 신처럼 영생은 아니며, 자신의 나무에서 멀리 떨어질 수 없다. 

       

       그래서 데메테르의 말에 꼼짝도 못하고 저 중노동을 해야 하는구만.

       하루아침에 말라 죽기 싫으면 어쩔 수가 없지..

       

       “거.. 적당히 시키지.”

       “음..? 대지는 곧 나의 자식이고 저들은 내게 의존해 살아가는 이들. 이 정도 일이 뭐가 어때서?”

       

       데메테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지만 그래도 자비를 좀 보였으면 한다. 

       저승에서 한번 일해보면 갈려나가는 아랫사람들의 고충도 챙길 줄 알 텐데..

       

       “신들의 왕, 올림포스의 주신이신 제우스 님께서 들어오십니다!”

       

       바람을 다스릴 줄 아는 하급신이 목청을 높여 외친다. 

       그와 동시에 내가 아는 황금빛의 머리칼을 가진 근육질의 남신, 제우스가 나타났다. 

       

       “모두들 잘 즐기고 있는 모양이군.”

       

       

       

       * * *

       

       

       

       아폴론의 리라에서 은은하게 울려퍼지던 감미로운 선율이 멈췄다.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먹던 신들은 잠시 식사를 중단하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모두가 신들의 왕을 바라보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연회를 주최한 이로서 짧게 몇 마디만 하도록 하겠네.”

       

       목을 가다듬다니 신력을 담아 웅장한 목소리로 말하는 제우스.

       

       “우리는 얼마 전, 강력한 적인 티폰과 마주하였지만 이 자리의 모든 신들이 힘을 모아 그 괴물을 격퇴하는데 성공하였소!”

       

       이 자리가 티폰을 물리친 기념인 승전 연회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티폰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신들을 치하하는 자리를 잠시 가지도록 하지. 우선.. 헤르메스!”

       

       카두케우스를 든 쾌활한 인상의 청년, 헤르메스가 제우스의 앞으로 걸어나와 고개를 숙였다. 

       제우스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무언가 말하고 다시 목청을 높였다. 

       

       “여기 헤르메스는 티폰 놈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승으로 가 지원을 요청하는데 성공했다. 만약 헤르메스가 아니였다면 올림포스가 패배했을지도 모르는 일! 포상으로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각반(脚絆)과…”

       

       “오오..”

       “과연 전령신이시다..”

       “…헤르메스가 잘했긴 했어.”

       “하데스 님이 스퀴테를 탈환하지 않으셨다면 위험했으니..”

       

       제우스가 아들인 헤르메스의 공을 칭찬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헤르메스는 자신에게 과분하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다음으로 지혜의 여신이자 나의 딸, 아테나는 앞으로 나오거라!”

       

       역시나 전신을 무장한 아테나가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오고 제우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티폰과의 싸움 당시, 아테나의 작전이 효과적이긴 했다. 

       

       “티폰 놈을 보기 좋게 속여넘긴 작전은 네 머리에서 나온 것, 과연 지혜의 여신이란 이름이 아깝지가 않은..”

       

       아까 제우스가 치하하는 자리를 가진다고 말했다. 

       치하한다는 말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칭찬하는 것. 

       

       그래서 티폰에게 큰 타격을 준 포세이돈이나 나의 이름은 제우스에게서 불리지 않는다.  

       비록 제우스가 가장 강하기에 신들의 왕으로 인정하고는 있지만 우리는 거의 동등한 3주신이니까.

       

       “….아레스! 너는 전쟁의 신답게 용맹한..”

       

       그리고 뭐.. 자기 아들딸들이 잘한 일을 칭찬하겠다는데 굳이 초를 칠 이유는 없지.

       제우스가 돌아가면서 신들에게 치하를 하는 것을 보며 넥타르를 한 모금 마셨다.

       

       음.. 올림포스 넥타르는 뭔가 다른가? 왜 지하에서 먹을 때보다 더 달콤한 것 같지.

       

       “….티폰과 용감하게 맞선 용자들에 대한 치하는 여기까지오! 이 제우스는 이만 가볼터이니 모두 즐겁게 연회를 즐겨주시길 바라겠소!”

       

       쿠르르릉!

       

       제우스가 천둥 소리와 함께 연회장에서 사라졌다.

       올림포스의 지배자인 자신이 있으면 하급 신들이 불편해할까 봐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냥 걸어나가지 꼭 천둥과 함께 이동했어야 했을까.

       나로서는 시끄럽기만 한데.

       

       “헤르메스 님! 티폰의 손아귀에서 도망친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습..”

       “저는 그때 올림포스에 없어서 몰랐습니다만 그 괴물이 그리도 강했나요?”

       “역시 지혜의 여신 아테나 님!”

       “아레스, 나중에 나와 함께 전차를 몰고..”

       

       오늘의 주인공들, 티폰과의 전투에서 활약한 그들에게 많은 신들이 모여들었다. 

       무용담을 듣거나 이참에 12주신과 친분을 쌓아보려는 자들이 넘쳐난다.

       

       “포세이돈 님! 제우스께서 비록 말씀하셨진 않았지만..”

       “그래, 어느 신의 아들이였던가?”

       

       참고로 한쪽 구석에서 데메테르와 함께 넥타르를 홀짝이는 나에게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저기 그 난폭한 포세이돈도 말을 거는 신들이 있는데 말이야.. 어째서..

       

       나를 바라보던 데메테르가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넨다.

       

       “그야 당연하지. 네 심기를 거슬리면 타르타로스로 떨어지고, 마음에 들면 지하 세계로 끌려가는데 누가 함부로 다가오겠어?”

       “내가 입 밖으로 생각을 내뱉었나?”

       “…표정에서 다 드러난다. 하데스.”

       

       

       물론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올림포스의 황금 옥좌에 앉을 수 있는 12신을 제외하면 나를 경외시하며 두려워하는 자들은 수두룩하니.

       

       지하 세계, 저승이란 깊고 어둡고 깜깜하고 두렵고 음산하고 침울한 곳… 이긴 하지만..

       그래도 연회인데 대화를 나눌 신은 한정되어 있으니 좀 심심하단 말이지, 흥미로운 일도 없고..

       

       

       그나마 새로 탄생한 몇몇 신들과 안면을 텃다. 

       정확히는 그쪽이 벌벌 떨면서 인사를 하길래 적당히 보냈지만.

       

       “표정 풀어라, 더욱 음울하게 보인다. 누구 하나 타르타로스로 데려갈 것 같은 얼굴을..”

       “아니야.”

       

       데메테르가 떨떠름한 얼굴로 내 외모를 지적한다. 

       

       이거야말로 저승 혐오가 아닌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추천과 선작 감사합니다!

    다..다시는 연참과 헷갈릴 수 있는 공지 예약을.. 걸어두지 않겠습니다 ㅠㅠ
    죄송해요오.. 공지는 바로바로 올릴게요..

    +16화에서 하데스가 티폰의 목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스퀴테를 집어들어 머리를 건드렸다는 묘사를 추가했습니다!
    복붙을 하는 과정에서 누락되어 버린 모양이네요 ㅠㅠ 죄송합니다.

    로벨피아님 10 드라크마 후원 감사합니다!
    헤엄치는새님 10 드라크마 후원 감사합니다!
    김흑우님 10 드라크마 후원 감사합니다!
    이상원_885님 10 드라크마 후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King of Underworld

King of Underworld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Score 3.5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ades, the God of the Underworld from Greek and Roman Myt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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