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
나를 가장 먼저 때렸던 키 큰 여자가 아픈 것 같았다.
치료를 해야 하는 것 같았다.
세린… 씨가 치료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잘 모르겠다.
방금 전부터 그녀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하지!! 치료해야 하나? 아, 안 되는데…]
그냥…
치료하면 되는 거 아닌가?
사람이 다쳤는데…
어…
어떻게 하지…?
말해야 하나?
근데.
또 아프면 어떻게?
또 아프게 하면 어떻게?
근데 사람이 아파하는데…
어어.
안 되는데.
그녀의 상태가 전부터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까 전부터 내게 가까이 붙어 나에 대해 뭐라 뭐라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무서워서 머리가 하얘지는 바람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
잘 모르겠다.
그녀는 나한테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걸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는 박지원을 치료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허락… 허, 허락을 맡으면 되는 거야…]
세린… 씨가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무서웠다.
또.
또 나를 아프게 하려는 걸까?
무슨 허락을 받는다는 걸까?
이제 그만 아팠으면 좋겠는데…
그녀의 눈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녀가 나를 올라타 목을 조르던 그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내 앞에서 손톱을 뽑으며 비명을 지르는 나를 직시하던 그녀의 얼굴이 생생하게 보였다.
내가 눈이 하얘지는 그 끝까지 내 눈을 직시하며 광기에 젖어있던 그녀의 눈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정신을 놓아버리는 그 순간까지 손톱을 뽑으며 웃는 그녀의 표정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숨이 막혀 컥컥거리는 나를 향해 조용히 하라며 손에 힘을 주던 그녀의 잔인함이 온몸을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오줌을 지리며 기절해 가는 나를 향해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있다며 희열에 젖던 그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내 턱이 붙잡히며 고개가 그녀 쪽으로 돌아간 것도 제대로 눈치를 채지 못한 채.
나는 그 두 눈을 직시했다.
이제는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
아니 이제는 그마저도 흐릿하게 밖에 보이지 않는.
그 눈으로.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아.”
아.
“아으.”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나 또 아픈 거야?
어떻게 하지?
목이.
목이 답답해.
“끄윽… 케흑…”
손으로 목을 쓰다듬어 봤지만, 이번에는 손이.
손이 아팠다.
손톱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았다.
“아. 으. 아…”
아프다.
그리고 무섭다.
또 내 목을 조를까 봐.
또 내 손톱을 뽑을까 봐.
이번에는 새로운 고통이 찾아올까 봐.
무서웠다.
싫었다.
어떻게 하지?
[허락. 허락. 허락. 제발.]
머릿속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기 싫었다.
무서웠다.
그녀의 속마음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어, 어떻게 해야되는 거지?
어, 어떻게.
도, 독심을 꺼야 하나?
나는 독심을 껐다.
그리고.
눈.
눈.
눈.
눈.
고요.
혐오.
관심.
사방에서.
그것들이.
모두 나를 조여왔다.
그리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이세린.
그녀의 눈이.
너무나도.
내 몸을 저릿거리게 만들었다.
아.
아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빠져나가고 싶었다.
내 턱을 붙잡고 있는 이세린의 손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다시.
다시 독심을 켰다.
[허락해 주세요. 허락해 주세요.]
그렇게 반복하는 이세린.
허락.
나한테 허락을 구하고 있다.
무서운 그녀.
무슨 허락인지 모르겠다.
안 하면 나를 더 아프게 할 거 같다.
차라리.
차라리.
안 아프게 죽여줬으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다.
그, 그래.
일단은 안 아픈게 중요하니까.
그냥 허락하는 거야.
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히히.
끄덕.
나는 조용히 끄덕였다.
말을 꺼내는 건 어려웠다.
그저 고개를 까딱 할 뿐이었다.
그리고.
타다닥-!
이세린은 다친 박지원을 향해 뛰어갔다.
아.
하하.
히히.
살았다.
안 아프다.
히히!
안 아픈 거야.
히히!
이게 정답이었어!
말.
말을 잘 들으면.
안 아픈-.
퍽!!
“아…”
아프다?
어디가?
얼굴이?
왜?
“이 미친 새끼가 세린 씨한테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퍽!!
“케흑!”
이번에는 명치?
아픈데.
왜지?
나 말 잘 들었잖아?
퍽!
“끄윽…!”
다시 얼굴.
아프… 다?
뭘 잘못한 거지?
아!
고개 끄덕이는 걸 잠깐 망설여서 그런가?
퍽!
어.
잘 모르겠다.
“너 때문에 다 좆될 뻔 했잖아!!”
“맞아 지원 씨가 죽을 뻔 했다고!!”
퍽!
아.
나 때문에?
그런가?
퍽!
“끄히익!!!”
나 때문에.
그 키 큰 여자가 죽을 뻔 했다.
어…
그럼 나 또 살인범이 될 뻔 했던 거야?
어.
다행인가?
아직 안 죽었으면.
그, 근데 미안한데.
어떻게 하지?
나, 나 때문에 죽을 뻔 했던 거면.
너무.
너무 미안한데.
사, 사과 해야되나?
어떻게 하지?
잘 모르겠다.
그, 그럼.
나는 벌 받는 건가?
퍽!
“에흑…!!”
아.
벌 받는 게 맞구나.
내가 벌 받는게 맞는 거였어.
그래.
사과.
사과는 못하니까.
이걸로라도 속죄하는 게 맞아.
그, 그럼 나 용서해 주겠지?
내가 다.
내가 다 잘못한 거니까.
히히.
그럼 이걸로 그건 용서 받을 수 있는 거겠지?
다행이다.
그럼.
아민이.
아민이한테 한 짓은 어떻게 속죄해야 하지?
어…
퍽!
“끅!”
잘 모르겠다.
***
박지원이 살았다.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온 이세린이 살려냈다.
아니.
정신을 차렸다고 하기에는 뭣할까.
오기 전까지 이 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곳으로 달려왔으니까.
도대체 무슨 짓을 했을까.
도대체 이세린의 성좌가 무슨 짓을 해놨길래 하나 뿐인 친구가 죽어가는데도 저 강간마 새끼한테 집착하는 걸까.
그리 생각하니 그녀는 속에서 불이 지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523회차 동안 함께 지내던 전우이자 친구가 고작 저런 쓰레기 새끼 때문에 허무하게 죽을 뻔 했다.
그 사실이.
그녀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럴까.
그녀가 이 설의 앞까지 걸어간 것도 그 분노가 시킨 짓이었다.
이 설.
그는 이미 피떡이 되어 있었다.
분노한 생존자들에게 이리저리 맞아서 얼굴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그녀는 화가 났다.
필요할 때 포션 하나 꺼내주지 않던 새끼들이, 이제 와서 복수랍시고 분노를 퍼부었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 설에 대한 분노가 강했다.
아.
이러면.
참을 수가 없잖아.
퍽!!
망가진 이 설의 얼굴에 정면으로 발을 차 넣었다.
투두둑!
아직 빠지지 않았던 이 설의 몇 이빨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마 전부 빠졌을 터.
그녀는 그 이빨들을 들었다.
“세린 씨. 치료해요.”
“아…”
“이세린.”
“아…!”
“치료하라고.”
“네, 네…!”
옆에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이세린이 손을 올려 치료를 한다.
녹색의 기운이 이 설을 감싸며 그의 몸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우드득.
뿌득.
부러졌던 팔다리가 돌아오고 뭉개진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강제로 입을 벌려보니 피에 젖어 있지만, 완전히 새로 재생한 그의 이빨들이 보였다.
그 멀쩡해진 입에.
끄득. 끄득.
이세린은 빠졌던 이빨 전부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뿌득!
“끄흐으으읍…!!! 끄으으…!!!!”
이설의 입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안에서 수십 개의 이빨이 부러진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 설의 입을 꽉 틀어막아 이빨을 뱉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세린 치료.”
꾸드드드득!
다시금 이빨이 치료되어 새로 나오고.
뿌득!!
“끄르을르르쁘븍….!!”
다시 입에 주먹을 박아 넣어 부러뜨렸다.
“치료.”
다시 치료.
뿌득!!
다시 부러뜨리기.
“끄그그그긃!!!!!!”
“치료.”
다시 부러뜨리기.
치료.
부러뜨리기.
그렇게 반복을 하자, 이 설의 입 속은 부러진 이빨로 가득 찼다.
아마 피도 가득 찼을 테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 설에게 말했다.
“삼켜.”
“…”
“삼키라고.”
꿀꺽.
이 설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하기도 어려울 만큼 목젖이 튀어나오지도 않은 그 목울대가 이빨과 피를 삼키기 위해 움찔거렸다.
“끄긁…!! 끍!!”
이설이 고통을 느끼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입을 틀어막고 있는 내 손을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삼켜. 전부. 삼키라고.”
꿀꺽.
꿀꺽.
뜨득- 꿀꺽.
들리면 안 되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들려왔지만, 이 설은 삼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끅. 끅. 끅.”
이 설이 내 손이 아닌 자신의 목을 부여잡는 것이 느껴졌다.
당연한 것이었다.
뾰족하게 부러진 이빨들을 그냥 마구잡이로 삼켰으니, 기도는 상처도 나고 뚫리기도 했을 터.
그럼에도.
“삼켜.”
이 설은 내 말을 들으며 꾸역꾸역 그 이빨들을 삼켜 넣었다.
고통의 발버둥을 치면서.
눈물 대신 피눈물과 코피를 흘리며.
그렇게.
전부.
삼키고는.
“븍…!”
눈을 까뒤집고 정신을 잃었다.
털썩.
입을 붙잡은 손을 놓자 그대로 쓰러지는 그.
목이 파랗고 빨갛게 부은 채로 숨조차 쉬지 않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몇 초만 더 있으면 죽을 터.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이세린에게 말했다.
“치료.”
덜덜덜.
이세린이 덜덜 떠는 손으로 그를 치료했다.
기괴할 정도로 부어있던 목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그의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새액… 새액…”
정상적으로 호흡하는 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그 상황에서 이시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두려움.
그리고 존경.
그리고 통쾌함.
여러 가지가 혼돈처럼 섞인 생존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느낌을 받으며, 그녀는 이세린에게 말했다.
“한 번 더.”
“…”
“한 번 더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
“이것보다 더 심한 짓을 하겠습니다. 세린 씨.”
“…”
“대답.”
“네, 네…”
이미 멘탈이 나간 것처럼 보이는 이세린이였지만, 이시현은 그녀를 무시한 채, 생존자들을 뚫고 지나갔다.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는 인파.
그녀는 그대로 박지원에게 향했다.
어느샌가 흐릿하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박지원이 보였다.
“보셨습니까…”
“네… 봤어요…”
“…”
“뭐라고 안 할게요… 제가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고… 분노할 만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
“하지만. 세린이한테는…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닐 거 아니에요…”
“…”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이시현은 그리 말하며 박지원의 근처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검을 들었다.
“시현 씨.”
“왜 그러시죠.”
“저희 이제 친구 맞죠…?”
방금 전과는 다른 박지원의 가벼운 물음.
그 말에 이시현은 헛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헛웃음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당연합니다.”
“하하… 그럼 저 좀 일으켜 주세요.”
방금까지 치명상을 입고 죽기 직전까지 간 그녀였지만, 이시현은 망설임 없이 그녀가 내미는 손을 잡고 일으켜 주었다.
이 편이, 그녀에게는 더 나았으리라.
“이제 다시 가보죠.”
박지원이 말한다.
뼛속까지 전사인 그녀의 모습을 보니 어딘가 마음이 안심이 되었다.
“네 일단 저 괴물이 뚫고 온 방향으로 가보죠, 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생존자들은 다시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모두의 두 눈에 그녀의 모습을 각인 시켰기에, 이번에는 강아현 없이도 모두를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그녀는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아픈 알 수 없는 느낌을 그저 품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한 편으로 밀어 놓으며 애써 무시하면서 말이다.
[봉인 해제: 2Y 11M 16D 3H 21M]
오늘따라 하얀 카운트 다운이 붉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이시현이 그를 고문하던 방식의 일부를 524회차에 처음 드러냈기에 그랬다는 것을.
그녀는 아직은 알지 못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