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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후다다다다다다닥.

       

        얼마나 달렸을까.

       

        후우…후우우욱…후우우우우욱…

       

        아주 거친 숨을 내쉬었다.

       

        분명 방금 전에는 강남역 근처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압구정역이었다.

        아주 부끄러운 얼굴로 정신없이 달리기.

        그 자리에서 도망쳐나올 수 밖에 없었다.

       

        ‘어? 이수아다.’

        ‘응? 이수아? 어디에?’

        ‘뭐야? 어딜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거야?’

        ‘이수아 맞아?’

       

        정신이 없이 달리는 와중에 주변에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었다.

        평소였으면 신경을 썼겠지만 오늘은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분명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그녀였다.

        절대로 이렇게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자신의 이미지가 곧 길드의 이미지이기도 했으니까.

        블루 길드는 국내 5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하… 뭐… 뭐야…?’

       

        방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완전히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다.

        무슨 이상한 약물이라도 투여받은 것 마냥.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거의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느낌.

        제대로 생각이나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아… 아니… 내가 진짜 뭘 한 거야…?’

       

        거의 몸이 제 멋대로 움직여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목각인형처럼 자신의 팔 다리에 이어진 줄이 자신을 조종하고 있는 듯한 느낌.

       

        ‘수… 수아야… 이수아. 정신 차려. 너 왜 이러는 거야…’

        ‘하.. 하지만… 참을 수가 없는 걸.. 이상한.. 이끌림…’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단 말이야!!!’

       

        아주 거친 숨을 내쉬면서 정신없이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강남역에서 압구정역까지 거침없이 주파를 했기에 회복이 되는 데는 아주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다.

       

        방금 전의 상황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거의 기억상실로 기억을 잃어버리고 싶은…

       

        ‘아니.. 나 답지 않았어. 근데 심지어 결과물은 더 최악이었어.’

       

        매우 우발적인 행동들의 연속.

        그런데 결과값은 으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부끄러웠다.

       

        ‘저… 같이 퇴근하시죠.’

        ‘아 저는 선약이 있는데요?’

       

        “아악!!!!!!!!!!!!”

       

        이수아는 자신도 모르게 압구정 한복판에서 소리를 질렀다.

        너무 부끄러웠다.

       

        “뭐야? 이수아 아냐?”

        “응. 그러게…? 왜 저래? 어디 아픈가?”

        “막 그 S급들 뭐 어디 아프다며. 그거 아닐까?”

        “에휴. 안타깝다… 영웅이긴 한데 아주 고생이 많아…”

        “우리가 신고라도 해줘야 될까? 병원 가야할 것 같은데…”

       

        주변의 사람들은 이수아를 바라보며 아주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길 한복판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부정적으로 바라보겠지만, 대상은 이수아였다.

        어느 정도 S급 헌터로서의 고충과 고생을 다들 이해해주는 느낌이었다.

        혹자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요새 던전 공략이 꽤 힘든 가봐…”

        “뭐 하긴 S급이면 아주 힘든 던전만 공략할 거 아냐? 빡세긴 하겠어.”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오늘 공략했던 던전이 아주 힘들었나봐…”

        “얼굴 빨개진 것 좀 봐…”

       

        이수아는 사람들이 자신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을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지금 당장 자신의 부끄러운 우발적 행동에 대해 정신력으로 소화해내기 바빴다.

       

        ‘아니… 야. 이수아… 왜 그랬어…? 너 고작 본지 2일밖에 안된 사람에게 왜 퇴근길을 함께하자고 한 거야?’

       

        다시 천천히 생각을 해도 자기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나도 나를 잘 몰라~ ]

       

        라는 가사가 떠올랐다.

       

        ‘게다가 상대는 E급 헌터. 우리 팀의 최 말단이야. 너는 A팀의 수장으로서 팀원을 잘 이끌고 관리해야지. 도대체… 무슨 행동을 한 거야…?’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완전 말도 안되는 일을 해버린 것.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행동은 한 적이 없었다.

        아니, 아예 떠올리거나 상상을 해본 적도 없었다.

       

        분명 자신은 왠지 모를 이끌림에 꼭 오늘 마무리 해야하는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퇴근을 해버렸다.

       

        이 행동에서부터 이미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책임감이 없게 말도 안되는 우발적 행동.

       

        근데 심지어 이제 막 팀에 들어온 막내에게…

       

        ‘너 왜 그랬어?!!!’

       

        자신의 머리를 콩하고 쥐어박으며 고개를 좌우로 세게 흔들었다.

        상념을 떨쳐버리고자.

       

        하지만 힘들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부끄러운게 너무 부끄러웠다.

        견딜 수도 없이.

       

        심지어 백지훈의 대답은 가관이었다고 생각했다.

       

        ‘형석이랑 선약이…’

       

        완전히 자신에게 관심이…

        아니 호감이 1조차도 없는 것 같은.

        완전한 냉랭한 것 같은 대답.

       오히려 뭔가에 화난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나한테.. 화났나…? 오늘 내가 너무 많이 불렀나…?’

       

        거의 목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나한테… 관심이 아예 하나도 없나…?’

        ‘아니면 급한 일이 있었나…?’

        ‘급할게 뭐가 있어? 형석 군이랑 술자리가 뭐가 급해…?’

       

        이수아는 완전히 충격을 받고는 넉다운 된 상태였다.

        살면서 처음 당해보는 반응이었다.

        정말로 단 한차례도 이런 적이 없었다.

       

        ‘이것 좀 해오세요.’

        ‘이거 언제 할 건데요?’

        ‘이거 하자고요.’

        ‘우리 여기로 가요.’

        ‘저랑 함께 이거 하실래요?’

        ‘저는 이게 좋을 것 같아요.’

       

        20년을 넘게 살면서 언제나 슈퍼슈퍼슈퍼 갑의 위치에 있었다.

        그 정도 미모였으니까.

        게다가 능력까지.

       

        이수아가 뭘 말해도 사람들은 네넵! 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을 들어줬었다.

        마치 홀린 듯이.

        단 한번도 거절을 당한 적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미모.

       

        물론 이수아가 그걸 이용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것이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제시했었으니까.

        문제일 것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살면서 처음으로 완전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거절의사를 받아본 것이었다.

       

        ‘선약…? 형석이와…?’

        ‘왜… 어… 어째서…? 그럴리가…?’

       

        이수아의 머리 속은 완전히 혼란스러워졌다.

        자신의 미모나 S급 지위를 으스대고 다녔던 적은 없다.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게 모두들 자신을 좋아해줬었다.

        이건 분명히 이상한 상황이었다.

       

        이상한 점이 한두개가 아닌 총체적인 난국.

        자신의 상태가 이상했던 것도 문제이지만, 충격의 거절.

       

        점점 더 혼미해져가는 중이었다.

        너무 어질어질해져서 머리를 짚고는 흔들거릴 수 밖에 없었다.

       

        ‘아아… 이수아… 어쩌다가… 이런 일이…’

       

        백지훈 헌터가 길드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뭔가 이상한 일이 마구 벌어진다고 생각이 되는 중이었다.

       

        ‘아니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왜 나를 거절했냐는 거야… 어째서…?’

       

        부심을 부리고 다녔던 것은 아니지만 분명 자신의 외모는 출중했다.

        심지어 피지컬까지.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수아 젖탱이라며 불리는 성희롱도 자주 감내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충격의 거절.

       

        ‘자. 이수아. 차분히 생각을 해보자.’

       

        이수아는 길거리에 놓여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저히 이 상태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니까…내가 했던 행동을 빼고, 왜 백지훈 헌터가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따져봐야 해.’

        ‘분명… 형석 군과 선약이 있다고 했어.’

        ‘그래 그럴 수 있어. 형석 군과 함께 있었으니까. 분명 퇴근을 함께 하려고 했던 것 같기는 해.’

        ‘우리 길드 로비에서 만났던 것이기도 하고…’

       

        이수아는 차근차근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왜? 내 제안을 거절했어?’

        ‘아니 뭐. 내 제안을 꼭 들어줘야되는 건 아니지. 이수아 너 뭐 돼? 너가 하잔대로 하면 남자들이 다 해줘야돼? 그건 아니잖아?’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고자 했다.

        자신은 말도 안되는 자신감을 가진 채 얼빠지게 행동하는 여자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니. 근데 지금까지 살면서 내 말을 거절했던 남자가 있어?’

       

        분명 모든 남자들은 자신이 뭔갈 제안할 때마다 힐끗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고는 후다닥 수락을 했었다.

       

        ‘근데… 백지훈 헌터는… 전혀… 미동도 없었어…’

        ‘아예 나에 대한 호감이 단 1도 없던게 맞는 것 같아…’

        ‘아닌가…? 내가 너무 높아서 그랬던 걸까…?’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너무 높아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얼핏 신문 기사에서 비슷한 내용을 봤던 것 같다.

       

        [ 남성들은 자신보다 너무 높거나 성공한 여성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 그에 따라 사회적 성공에 집착했던 여성들이 나이가 차고도 남성들에게 기피 대상이 되는… ]

        [ 과도한 여성의 성공은 결혼이나 연애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

       

        분명 기억이 선명했다.

       

        너무 높으면 남자 쪽 입장에서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기사.

       

        ‘아냐. 근데 지금까지 분명 내 밑에서, 혹은 나와 함께 일했던 남자들은 다 안 그랬단 말이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가설이었다.

       

        ‘그럼… 도대체가 왜…’

       

        이수아는 도저히 자신의 혼란과 부끄러움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유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는 집에 갈 수 없다고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아니, 아예 오늘 이불킥을 하며 잠에 빠져들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미친 듯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고민을 하던 이수아의 시선에 누군가가 눈에 띄었다.

       

        압구정 한복판에서 서로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누군지 모르는 평범한 두 남자.

       

        ‘아….’

       

        이수아는 머리 위의 전구가 번쩍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표정이었다.

        뭔가를 크게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

       그리고 다행이라는 듯한.

       짧은 탄성.

       

        분명했다.

        아까 전에 자신의 동행을 방해하는 것 같은 형석 군을 아주 무섭게 노려보자 형석 군이 했던 행동.

        당황하는 표정으로 백지훈의 손목을 잡았다.

       

        이수아는 깨달았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덮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합리화를 해야 했으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쥐구멍에 숨거나 죽어버리고 싶을 것 같았으니까.

       

        자신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없고,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일단 부끄러움을 없애야 했다.

        그리고 결국 그 해답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수아. 너 아직 안죽었어.’

        ‘자신감 잃지마.’

       ‘여자에겐 가슴이 곧 자신감 이라고.’

       ‘그래. 나는 백지훈 헌터에게 거절당한 것이 아니야.’

       ‘내가 설마 거절당하겠어?’

       

        미친듯이 아무 생각이나 하는 것이었다.

       길고 길었던 생각의 끝.

        그리고 그에 대한 심오한 결론.

       

        ‘그래. 백지훈 헌터는 게이야.’

       ‘응. 그래. 맞아.’

       ‘그래야만 해.’

       

       ‘그리고 내가 아직 숙취가 안가셔서 그래…그래서 실수를 해버린 거야.’

       ‘오랜 만에 너무 술을 많이 마셨어…’

       

       이수아는 아주 확신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상황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저질러버린 부끄러운 실수.

       

       도저히 자신의 상태를 이해할 수 없어서, 아무렇게 생각을 해버리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이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그래… 거절은 그렇다 치자… 그럼 왜 자꾸 생각이 나는 건데…’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엥….?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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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Betrayed But It’s Okay haha

I Was Betrayed But It’s Okay haha

배신당했지만 괜찮습니다ㅎㅎ
Status: Ongoing Author:
"I was the one who boosted your rank. Yet you stabbed me in the back? Fine. Goodbye. I'm taking it back. You're finished now. Thanks to you, I now have an abundance of skill points for a prosperous hunter life. But... after spending some of those points, the S-Ranks are starting to get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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