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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전선은 지옥이었다.

       

       거대한 성벽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몰려오는 마물들.

       

       아르게미악은 전장의 상황을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쉽지 않군….”

       

       적의 숫자가 너무나 많았다.

       더군다나 서쪽은 가장 성벽이 낮고 약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런 다수의 마물들을 막기에 적합한 상태가 아니다. 하물며 적의 숫자는 가히 압도적인지라, 숲을 기점으로 끊임없이 벌레 형태의 마물들이 몰려와 서로를 밟고 밟아 길을 만들고 있었다.

       

       “일부러 숲을 노렸단 말인가…….”

       

       

       그의 부대에 있는 관측의 용사.

       다른 건 몰라도 적의 숫자를 파악하고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 있어 그 누구보다 뛰어난 용사였기에, 언제나 그를 믿고 있었다.

       

       다만 그의 시야는 상대적으로 높기에, 울창하고 빽빽한 숲에서 취약했을 뿐.

       

       하지만 그걸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어차피 마물들은 일자로 돌진해오고, 숲이라 해봐야 끝도 없이 포탈에서 빙 돌아야 성벽에 닿을 정도이기에.

       

       이 정도의 병력을 단번에 끌어모아 숲을 공략한 점은 무척이나 이상했다.

       

       마치, 그들 뒤에도 그들을 조종하는 누군가 있는 것만 같았다.

       

       아르게미악은 용사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그의 능력은, 그가 링크한 모든 이들에게 동시에 통신을 연결하는 것.

       

       각 부대를 중심으로 뛰어난 이들이 링크를 받아, 거대한 연결의 장이 만들어졌다.

       

       – 전방 300m! 놈들이 거대한 벽을 쌓고 있다!

       

       – 마법을 쏴서 벽을 무너뜨려!

       

       – 우측, 성벽이 허물어지려 한다! 전선을 조금 뒤로 후퇴한다!

       

       거대한 고함과 외침.

       그들의 필사적인 울부짖음이 링크된 연결을 통해 서로 오간다.

       

       아르게미악은 자신의 마법으로 화력을 지원하면서, 입술을 짓씹었다.

       

       ‘…수가 부족해.’

       

       적이 너무나 많았다.

       저런 수많은 병력을 막기에, 서쪽의 성벽은 너무나도 낮았다.

       

       지금은 서로간에 연결을 통해 필사적으로 성벽을 넘지 못하게 막고 있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다.

       

       이렇게 몇 시간, 며칠 동안 계속해서 군세가 이어진다면.

       누군가의 실수로 단 한 치의 틈이라도 생긴다면, 수많은 이들이 뒤에서부터 고립되어 몰살당할 것이다.

       

       선택을 내려야 했다.

       

       – 전원, 후퇴! 후방 성벽, 지스트라까지 후퇴한다! 성벽과 이어진 길목에 시한 폭발 마법을 설치해라!

       

       명력은 신속했다.

       전방의 성문을 버리라는 명령.

       

       그 절대적인 명령에 그들은 끝까지 전선을 유지하며, 최전방의 성벽 카르텔을 버려야 한다.

       

       그들은 앞 전선이 몸을 빼낼 수 있도록, 아껴두었던 포션을 들이키며 단번에 전선을 잠시 밀어내었다.

       

       비록 몸에 끔찍한 과부화가 걸리는 포션이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사실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을 살아가는 것. 그렇기에 그들은 압도적인 화력을 보이며 일시적으로 전선을 밀어낸 뒤, 동시에 퇴각하기 시작했다.

       

       – 진형을 유지하라!!

       

       전선에서 모두가 몸을 빼는 것과 동시에.

       그 틈을 눈치 채고 벌레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며 빠르게 성벽을 넘어온다.

       

       최전방의 성벽이, 검은 물결의 파도로 뒤덮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벌레들은 하늘을 날아, 그들에게 산성이 담긴 체액을 던지며 퇴각하는 병사들을 노려왔다.

       

       간간히 마법사들의 마법이 그들에게 적중하였으나, 저 압도적인 군세 앞에서는 순식간에 다시 전선이 밀리기 마련이다.

       

       [키르르르르——!!]

       

       벌레들이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퇴각하는 병사들의 몸을 침으로 찌른다. 순식간에 주입되는 무언가에, 병사들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아르게미악은 그 잔혹한 광경에 눈을 찌푸리면서도, 끝까지 그들의 광경을 눈에 담은 채 타이밍을 쟀다.

       

       ‘조금만…….’

       

       서쪽의 가장 취약한 성벽.

       그 성벽이 밀리고 적군이 들어온 때를 대비하기 위해, 서쪽의 성벽 카르텔 부터 지스트라까지 이어진 길에는 수많은 마법석이 매장되어 있었다.

       

       특별한 룬이 새겨져.

       그 룬을 이용할 수 있는 각인이 새겨진 자가 정신을 집중한다면, 한순간에 압도적인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

       

       그것이 서쪽의 성벽 많이 유독 약한 이유이자.

       지스트라까지 이어진 길목이 복잡하고 길을 외위지 않는다면 도달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적들이 길을 헤매며 물량이 밀리는 순간, 압도적인 화력으로 최대한 적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그리고 지금 적들은.

       그 마법석의 위에 서있다.

       

       ‘조금만 더…….’

       

       아직 이르다.

       

       녹색의 체액을 뿌리는 벌레들이 괴성을 지르며 병사에게 붙으려 들고, 기괴한 겹눈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적들을 탐색하는 순간.

       

       그리고, 가장 앞에 서있는 벌레의 털이 달린 다리가 땅바닥을 더듬는 순간.

       

       “지금이다!”

       

       그가 룬 어를 발동시키는 것과 동시에.

       

       ———!!—!!!

       

       거대한 섬광이 전장을 휩쓸었다.

       순간, 전장에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없이 밝기만 한 고요 속, 그 뒤를 잇듯이 거대한 폭발음이 뒤이어 들려왔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전장을 뒤엎는다.

       그와 동시에 끝도 없이 몰려오던 벌레들의 군세에 틈이 생겼다.

       

       비록 그 뒤로 끝도 없이 몰려오는 물량을 처리하기엔 한없이 부족했지만, 모든 병력들이 성벽 지스트라로 퇴각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게 성벽 지스트라로 퇴각한 뒤.

       아르게미악은 그 성벽 위에 서서 전장을 내다보았다.

       

       그곳은 복잡한 숲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울퉁불퉁한 평지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느리지만 군세들이 몰려온다.

       

       마력석의 폭발과 함께 생긴 수많은 마나의 잔재들을 몸으로 지워버리며, 끝도 없이 밀려오고 밀려오는 적들의 군세를.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1시간? 2시간? 하루? 사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은 저 병력을 모두 막아낼 수 없다.

       

       이들은 모두 인간이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휴식이 필요하고, 잠이 필요하고, 숨 돌릴 틈이 필요하다.

       

       그런 인간이기에.

       그들은 저 압도적인 군세를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설령 화력으로 전장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일시적일 터였기에.

       

       끝도 없이 몰려드는 군세는, 그들의 사기와 정신을 좀 먹고 마침내 모든 성벽을 갉아먹을 터였다.

       

       아르게미악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다른 곳에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지난 수천 년간, 마계와 이어진 포탈은 이곳 하나 뿐이 아니었고.

       

       끝도 없이 생겨난 포탈을 기준으로 성벽을 뒤늦게 세우는 것 또한 힘들었기에, 다른 전장 또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요즈음은 국가 사이에서 협력을 하지 못하고 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더욱이 지원을 바라기란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저렇게 많은 군세가 성벽을 뒤덮는다면, 지원군이 올 길 또한 끊길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말이다.

       

       순식간에, 군세의 파도가 몰려온다.

       지평선을 끝도 없이 채운 검은 물결을 바라보며, 아르게미악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까지인가….’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녀석들의 병력은 단순히 서쪽에서 끝이 아니었다. 비록 서쪽에 비하면 그 수가 적었지만, 성벽에 있는 모든 이들을 말려 죽이겠다는 듯 보급로를 끊어버린 것이었다.

       

       저 어마어마한 물량의 군세를 모두 처리할 수 있을까.

       

       그는 회의적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마물들이 갑작스레 후퇴하는 사실을 보고 크게 경각심을 가지지 않았을 때?

       

       어느 순간부터 몰려오는 마물의 수가 줄어들고, 숲에서 간간히 발견된 마물들만 처치하는 일들이 늘어났을 때?

       

       그도 아니면.

       어쩌면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일 지도 모른다.

       

       더욱 냉철하고, 더욱 경계하고, 더욱 두려워 했어야 했다.

       

       다른 그 누구든 인간이 되었다면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자신만큼은 실수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 대가리 빈 것 마냥 돌진하던 마물들이 머리를 쓸 줄이야.”

       

       그 대가리는 무언가를 물어뜯고 좆같은 괴성을 지를 때나 쓸 줄만 알았는데.

       

       “해보자.”

       

       포기하기엔 이르다.

       이 전장에 있는 모두가 포기하더라도, 자신만큼은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게 모든 이들을 이끄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이자, 그들이 자신에게 목숨을 맡겨준 보답이었다.

       

       아르게미악이 다시금 병사들을 다독이며, 성벽을 방어할 준비를 할 때였다.

       

       “흠…?”

       

       일순간.

       한없이 밝기만 하던 전장에 그림자가 졌다.

       

       처음엔 구름이 태양을 가린 게 아닐까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일정 부분을 넘어, 자신이 보이는 모든 곳에 그림자가 질 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했다.

       그렇다기엔 너무나 어두웠다.

       

       마치 태양이 거대한 무언가에 가려진 것처럼.

       

       아르게미악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보고야 말았다.

       거대한 하늘이 좌우로 갈라지며, 거대한 천지를 끝도 없이 둘러싸버리는.

       

       한없이 파멸적이고, 한없이 고요한.

       

       거대한 존재를.

       

       기다란 몸체로 유유히 부유하며, 그 존재는 한없이 고요한 눈으로 전장을 지켜보았다.

       

       더 정확히는, 끊임없이 몰려드는 마물들의 군세를.

       

       [하찮구나.]

       

       그가 그리 말하는 것과 동시에.

       전장을 가득 메우던 모든 벌레들이, 순식간에 소멸했다.

       

       아무런 흔적 조차 남기지 않은 채.

       

       그리고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전장은 평화로운 고요를 지키고 있었다.

       

       끊임없이 몰려오던 벌레들의 군세도 사라지고, 지평선을 가득 메우던 거대한 존재도 사라져 있었다.

       

       아르게미악은 자신이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야… 나 뺨 좀 때려봐라.”

       

       “아… 넵.”

       

       

       찰싹!

       

       

       “…아프네.”

       

       아르게미악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신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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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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