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

    지옥의 한복판을 계속 달리고 있었다.

    후배도 아끼던 망치를 어딘가에 던져버리고 자료만 손에 든 채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일상을 구가하고 있었을 시가지는 피와 비명이 가득한 지옥의 한복판이 되었다.

    불타는 볼링공같이 도로를 질주하는 공벌레는 사람을 볼링핀처럼 날려버렸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돌멩이는 고압의 물을 뿜어내 사람을 토막 냈다.

    오브젝트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한 나도 처음 보는 오브젝트가 잔뜩 튀어나와서 사람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매초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외눈 안경이 그 오브젝트의 특징을 빠르게 보여주면 그거에 맞춰서 대응 방식을 정해야만 했다.

    [움직이는 물체를 공격한다.]

    “멈춰!”

    거대한 눈알이 인상적인 올챙이는 허공에 둥둥 뜬 채 주변을 휙휙 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저 오브젝트가 어떤 능력을 가진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 끔찍한 외형에 놀라서 그저 등을 돌리고 도망갈 뿐이었다.

    그렇게 도망간 사람들의 말로는 끔찍한 것이었다. 

    눈알 올챙이는 눈에서 눈물을 뿜어냈고 도망가던 사람은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녹아내려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죽어갔다.

    ‘젠장, 역시 거래를 한 게 실수였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부지런히 도망친 덕분인지, 어느새 송파구 외곽까지 도착했다. 

    뒤를 돌아보니, 지친 후배의 모습과 피와 시체로 이루어진 길이 보였다.

    단 한순간의 선택으로 송파구는 지옥이 되어버렸다.

    나와 후배가 경계를 돌파한 것과 동시에 군대가 도착해서 바리케이드를 쌓고 봉쇄를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살았다.

    하지만 돌아서서 봤던 피로 물든 도로가 눈에 계속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

    시끄러운 헬기 소리가 귓가를 시끄럽게 울렸다.

    이미 중앙 연구소가 있던 송파구 일대는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영상으로 얻어낼 관심과 조회수가 ‘데일리 오브젝트’ 에게는 훨씬 중요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고, 여기저기 박살난 도로는 더 이상 그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중앙 연구소에서 격리 중이던 수많은 오브젝트들이 풀려나와서 송파구 인근은 인세의 지옥이 강림했다고 봐야 할 정도가 되었다.

    더욱 끔찍한 점은 따로 있었다.

    정부가 사실상 송파구 주민을 포기했다는 점이었다.

    송파구 외곽을 빙 둘러서 만들어진 차단선에서는 군인들이 화력을 쏟아 넣어 가며 전선을 유지하기 급급했다. 

    안 그래도 중앙 연구소로 이송됐던 오브젝트들은 사설 연구소에서 격리가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위험한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외곽까지 도망쳐 온 시민의 보호? 폭탄에 육편이 돼도 순식간에 재생하는 거대 사마귀가 날아오고 있는 와중에 신경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데일리 오브젝트’의 카메라는 다른 오브젝트에는 관심이 없었다. 

    송파구 외곽전선의 치열한 공방? 그것도 역시 관심사는 아니었다.

    카메라는 그저 중앙 연구소 부지 위에서 신나게 치고 박고 싸우는 두 오브젝트만 비추고 있었다.

    30년 전, 한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아귀.

    서울숲 마을 전소 사건으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던 회색 사신.

    인터넷 vs놀이에서 빠지지 않던 매치가 진짜로 벌어진 것이다.

    ***

    세희 연구소의 모니터에서 시끄러운 헬기 소리와 함께 실시간으로 부서지고 있는 서울 한복판을 비춰주고 있었다. 

    전투는 사신이가 불리해 보였다.

    아귀는 건물을 마구잡이로 박살내며 사신이를 향해 촉수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공격을 가하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워낙 맹렬해서 콘크리트가 가루가 돼서 흩날릴 정도였다.

    사신이는 작은 보폭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이상한 행동을 가끔 보여줄 뿐이었다.

    신호등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잡아당기다가 도망치거나, 아귀가 자동차를 밀치도록 유도하는 등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는 행동들이 대부분이었다.

    간간이 자신의 한쪽 팔을 대가로 아귀를 공격하기도 했는데, 그 공격은 철저하게 아귀의 주의를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귀의 피부는 수십억의 미사일에도 흠집 하나 안 나는 거로 유명하죠. 하지만 저! 회색! 사신은! 간단하게 박살내버리는군요!”

    그런 장면이 보일 때마다 ‘데일리 오브젝트’의 리포터는 침을 튀겨가며 사신이의 무서움을 부각시키곤 했다.

    특히 사신이와 아귀의 싸움으로 발생하는 재산상의 손실을 대략적인 수치로 알려주기도 했는데, 아귀와 사신이가 부순 건물값만 해도 엄청난 금액이 되어 있었다.

    잠깐의 충돌만으로 노란 불꽃이 확 치솟으며 사신이의 왼팔과 아귀의 촉수 하나가 사라졌다.

    여전히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엉망진창으로 뜯겨나간 것 같은 왼팔은 굉장히 아파보였다.

    “으, 사신이 괜찮겠죠?”

    아귀랑 사신이는 언제나 동시에 다치고 있었지만, 아귀가 훨씬 유리해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같은 크기의 신체 손실이라고 해도 몸 크기 차이가 워낙 크니 말이다.

    “괜찮을 거야. 저렇게 타오르는 사신이는 정말 대단하다고.”

    세희 언니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희 언니의 말을 듣고 모니터에 비춰지는 회색 사신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귀에 비해 너무 작아서 눈치채기가 힘들었을 뿐이었다. 

    “사신이가 뿜어내는 빛이 점점 밝아지고 있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신이는 점점 강해지고 있는 거지.”

    ***

    몸에서 힘이 넘치고 있었다.

    그만큼 주변에서 고통 속에 죽어간 인간들이 많다는 뜻이겠지.

    내 힘이 강해지는 만큼 나는 더 멀리, 더 넓게 죽음을 볼 수 있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힘을 모조리 토해내는 기분으로 수많은 죽음의 방법을 뇌리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도미노를 쌓는 기분으로 그 조건을 하나하나 쌓아 나갔다.

    목적은 아귀의 무력화.

    내 눈에 보이는 모든 물체를 붕괴시킨다는 각오로 ‘파괴의 방법들’을 쌓아나갔다.

    내 눈에 보이는 ‘파괴하는 법’은 오브젝트를 대상으로는 모호한 힌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브젝트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대상으로는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알 수 있었다.

    방법이라기보다는 운명에 가까운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전혀 상관없는 행동들이 모여서 나비효과처럼 죽음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돌멩이 하나를 3m앞에 두고 박수를 치고 한 바퀴 돌았더니, 그걸 보고 놀란 토끼가 돌을 밟고 넘어져서 죽는 식이었다.

    지금 아귀와 싸우면서 수많은 붕괴의 조건을 하나하나 성립시키고 있었다.

    이제 그 도미노의 결과를 볼 때다.

    ***

    아귀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확고한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저 작은 것의 재생은 그 끝이 있는 것이 분명했기에.

    주변에서 끝없이 힘을 흡수하던 작은 것도 주변에 인간이 사라지자 그 힘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 저 작은 것을 마구 씹어 먹어 버리는 것만 남은 것이다.

    작은 것이 멈춰 서서 발을 구르자, 바닥이 마구잡이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지면의 붕괴도 아귀에게는 가소롭게 느껴졌다.

    땅이 무너지는 정도는 별로 위협이 되지도 못 했기 때문이다.

    금세 절벽을 기어 올라와서 반드시 먹어치워 줄 것이다.

    !

    그때 지면으로 낙하하던 아귀의 귀에는 ‘세계가 지르는 비명’이 들린 것만 같았다.

    거대한 ‘어떤 것’이 세상 저편에서 아귀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작은 것 뒤에 서있던 ‘어떤 것’은 금세 사라졌지만, 아귀는 여전히 끝없는 공포를 느꼈다.

    아니, ‘어떤 것’의 격을 느낄 수 있던 모든 오브젝트들은 그러했다.

    공포에 질린 아귀는 스스로 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졌다.

    ***

    거대한 붕괴가 일어났다.

    초특급이라고 불러야할 정도의 거대한 붕괴. 

    수km에 달하는 직경, 그리고 그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깊이의 싱크홀이 발생한 것이다.

    쉬지 않고 사신이를 씹어대던 데일리 오브젝트의 리포터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잊어버렸다.

    사신이가 갑자기 멈춰 서서 박수 두 번, 그리고 작은 발로 바닥을 콩콩콩 세 번 찍자 지면이 붕괴한 것이다. 

    과정 자체도 드라마틱했다.

    작은 차량이 넘어지고, 핀볼처럼 쓰러진 자동차는 차량이 뭉친 곳에 흘러들어가 폭발.

    그곳에 있던 탱크로리도 폭발.

    그 진동이 도미노처럼 주변 건물들을 한 방향으로 쓰러트리고, 가스관이 일제히 폭발하더니 벌어진 일이었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아귀는 그 붕괴에 휘말려 들어가 무저갱 같은 싱크홀에 빠져 그 위치를 볼 수도 없게 돼버렸다.

    “와…와아? 사신이 정말 대단하네요?”

    “그…그러게?”

    TV로 중계를 보던 세희 연구소 사람들도 모두 사신이 일으킨 엄청난 사건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

    회색 붕괴 사건이라 불리게 된 참사로부터 3일, 세상은 충격에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모두 공포에 떨었다.

    서울을 버리고 떠나야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싱크홀에 떨어진 오브젝트 중에는 비행 능력이 있는 오브젝트도 많았고, 아귀같은 통제 불능의 오브젝트도 빠져들어 갔으니 그랬다.

    언제 서울을 멸망시킬 괴물이 올라올지 모르는 무서운 곳!

    서울을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오브젝트들이 올라오질 않고 있었다. 

    몇몇 잔챙이들이 올라오는 것이 관측됐지만 그런 녀석들은 화기로 제거가 충분히 가능했다.

    그렇게 서울은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