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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봐도 저건 사람을 그린 게 맞았다.

         

        설마하니 옷을 입고 있는 침팬지를 그린 건 아닐 테니까.

         

        역시 이 세계에는 인간이 존재했다.

         

        내가 방금 먹은 동그란 음식 역시 사람이 만든 것일 거다.

         

        즉, 이 공간에 사람이 방문했다는 거다.

         

        이 동굴에서 귀한 식량을 흘리다니 참 칠칠치도 못한 사람이구나.

         

        애타게 찾고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난거라 생각했다.

         

        임자 없는 물건을 꿀꺽한 거지.

         

        저 경단들도 내 양분이 된 걸 좋아할걸.

         

        가만히 뒀으면 이상한 다지류에게 먹혔을 테니까.

         

        그에 비해 이런 신사적인 도마뱀에게 먹히는 건 얼마나 호상이야.

         

        이런저런 이상한 생각을 하다, 다시 벽화에 집중했다.

         

        곡선과 직선이 기묘하면서도 아름답게 이어져 있었다.

         

        무공의 흔적. 어쩌면 검흔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흔적이었다.

         

        솔직히 내 눈에는 그저 선만 보였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아름다움이 조금이지만 느껴졌다. 무공의 묘리가 담겨 있을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이상의 것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나마 내가 참고할 수 있는 건 그 옆에 있는 벽화.

         

        검흔이 상급자용이라면 이건 초보자용이라고 보면 될 거 같다.

         

        초보자용 코너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검을 휘두르는 사람의 그림이었다.

         

        가로로 베고.

         

        세로로 베고.

         

        찌른다.

         

        응, 삼재검법이네.

         

        삼재검법이란 기본 중의 기본인 검법이었다.

         

        천지인의 묘리가 들어 있는 검술로,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검술을 일컫는다.

         

        기초부터 배운다면 역시 삼재검법을 배워야 할 거다.

         

        물론 내가 사람이라는 가정하에.

         

        아쉽게도 이 몸은 꼬리가 길 뿐인 도마뱀이었다.

         

        발톱을 최대한 날카롭게 세워봤지만, 검의 대체는 될 수 없을 거 같다.

         

        더 진화한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그린 바실리스크의 발톱으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검법은 아쉽지만 패스다.

         

        삼재검법을 지나친 후 다른 그림을 살펴보았다.

         

        속을 쫙 펼치고 적에게 맹공하는 그림이 보였다.

         

        장법. 아니, 수법이라고 부를 만한 무공이었다.

         

        동작도 꽤나 많은 것이, 익힌다면 굉장히 유용할 거 같은 무공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도 패스다.

         

        왜냐고?

         

        그려진 사람이 대머리였으니까.

         

        다른 그림들은 머리카락이 그려져 있는데 이 벽화에만 머리카락이 없었다.

         

        대머리가 쓰는 무공을 배울 순 없지.

         

        내가 딱히 대머리 혐오증에 걸린 건 아니다.

         

        나는 그들을 존중한다.

         

        심지어 멋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무공이라는 건 참 신기하게도, 사용자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종류가 있었다.

         

        쓰면 성불구자가 된다거나, 평생 동정으로 살아야 한다거나, 초절정 미소녀로 바뀐다거나.

         

        …마지막은 악영향이 아닌가?

         

        아무튼 머리카락이 모조리 빠져버리는 무공일 수도 있다는 거다.

         

        물론 강해질 수 있다면 머리카락 정도는 희생할 수 있다.

         

        그런데 난 머리카락이 없다.

         

        도마뱀의 몸이었으니까.

         

        머리카락에 대응되는 건 어쩌면 비늘일지도 모른다.

         

        비늘이 빠진다면 난 생존에 굉장히 취약해질 테고.

         

        그러니 내가 저 무공을 거르는 이유는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겍겍.”

         

        벽화를 계속 살폈지만 마땅히 내가 배울 만한 무공은 없어 보였다.

         

        검이나 창 같은 무기를 쓰는 건 아예 배제했고 권법도 내 손과는 잘 맞지 않았다.

         

        다리 힘이 세니 각법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긴 한데, 잘 와닿지 않았다.

         

        씁.

         

        저 대머리 무공이 그나마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아니야, 뭐가 더 나오겠지.

         

        스스슥.

         

        그렇게 무공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미끄러지듯 바닥을 기어다니는 소리였다.

         

        스르륵.

         

        곧장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사아악!”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뱀 한 마리가 공격적인 태세를 취했다.

         

        【티타노보아 LV1】

       【상태】

       「적개심」「새끼」

       

       __________________________

       【티타노보아】

         

        가장 거대한 뱀이며 몸길이는 최대 15m, 몸무게는 최대 1.2t까지 자랍니다.

        몸통의 가장 두꺼운 부분은 1m를 넘고 머리 크기만 70cm를 넘습니다.

        2m가 넘는 물고기나 작은 악어를 주식으로 삼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티타노보아!

         

        설명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녀석이었다.

         

        물론 설명만 들었을 때 이야기다.

         

        “사아악!”

         

        임마. 티타노의 이름이 울겠다.

         

        많이 쳐줘 봐야 유혈목이쯤 될 거 같은데.

         

        내 앞에 나타난 녀석은 티타노보아라기엔 너무 작았다.

         

        피라냐 한 마리랑 생사결을 해야 할 수준이었다.

         

        내 상대가 될 리가 없지.

         

        “게게겍!”

         

        뱀 고기를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돈다.

         

        배는 채웠지만, 고기는 또 다른 이야기다.

         

        뱀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티타노보아는 크기 때문에 무서운 거지, 독 같은 능력은 없다고 알고 있다.

         

        즉 크기가 작은 티타노보아는 내 단백질이 될 뿐이었다.

         

        완전 낙승이네.

         

        촤악.

         

        철썩!

         

        사늘한 감각이 내 뺨을 스쳐 지나갔다.

         

        하얀 채찍과도 같은 뱀의 꼬리였다.

         

        활처럼 몸을 구부린 후 탄력을 이용해 꼬리를 튕긴 것이다.

         

        …티타노보아가 이런 식으로 사냥을 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저 녀석이 이상한 거다.

         

        “사아아악.”

         

        꼬리를 회수한 하얀 뱀은 혀를 날름거렸다.

         

        까딱.

         

        묘한 자세로 꼬리를 세우더니 끝부분을 살짝 움직였다.

         

        …너 뱀 아니지.

         

        저건 아무리 봐도 도발의 의미로 보였다.

         

        저 사아악거리는 소리는 덤비라는 의미겠지.

         

        저런 수준 낮은 도발에 걸려들지 않는다.

         

        나는 야생의 도마뱀이 아니라 지성을 가지고 있는 품격 있는 도마뱀이니까.

         

        이런 동굴 출신이랑 궤를 달리한다.

         

        까딱까딱.

         

        “게게겍!”

         

        소룡등천보로 녀석과의 거리를 좁혔다.

         

        탕!

         

        그러나 탄력을 받은 꼬리가 내 접근을 제지했고 녀석은 꼬리의 반동을 이용해 거리를 다시 벌렸다.

         

        과연 뱀.

         

        그야말로 사권(蛇拳)의 고수라고 부를 만 했다.

         

        거리를 좁히려고 하면 멀어지고, 멀어진 상태에선 녀석이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유형의 적이었다.

         

        압도적인 크기도, 독도, 단단한 방어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

         

        이대로라면 어이없게도 이 조그마한 뱀에게 지고 말 거다.

         

        탕!

         

        녀석의 꼬리가 날 향해 날아들어 왔다.

         

        내게 놈을 이길 방법은 없었다.

         

        이전의 나라면 말이다.

         

        발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채찍처럼 날아드는 놈의 꼬리를 향해 휘둘렀다.

         

        콰각!

         

        꾸우우욱.

         

       뱀의 꼬리를 잡아냈다.

         

        하얀 뱀이 당황한 게 느껴진다.

         

        날 평범한 도마뱀이라고 생각했겠지.

         

        이것이 이름 모를 대머리의 무공이다.

         

        내가 잡은 꼬리가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과연 꼬리를 이용해 공격하는 녀석이라 그런지 근육량이 엄청났다.

         

        하지만 꼬리는 녀석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철썩!

         

        내 기다란 꼬리로 뱀의 대가리를 후렸다.

         

       놈의 꼬리는 봉쇄당한 상태.

         

        오직 나만이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이봐 나를 공격한 뱀 지금 어떤 기분?

         

        철썩!

         

        나도 꼬리의 힘은 상당했다.

         

        제3의 다리처럼 사용하는 게 바로 꼬리였으니까.

         

        꼬리로 머리를 가격하는 것과 동시에 내 발톱이 녀석의 살을 파고들었다.

         

        “키에에에!”

         

        녀석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 파고들어 간 발톱은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철썩!

         

        그대로 이어지는 무차별적인 꼬리 폭격.

         

        녀석이 뇌진탕에 걸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지금, 곧바로 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득!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사권의 고수.

         

        적이지만 훌륭했다.

         

        “겍겍!”

         

        뱀 고기가 되어버린 적을 밟고 포효했다.

         

        존경하는 의미로 너의 고기는 요긴하게 써줄게.

         

        텁.

         

        와그작.

         

        근육이 많아서 그런가? 좀 질겼다.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잔뼈가 많이 나오는 게 흠이긴 했어도 나름대로 맛은 있었다.

         

        후, 좋네.

         

        이제 좀 사람 사는, 아니. 도마뱀 사는 곳 같다.

         

        벌레가 아닌 식량도 있고 기연이라고 불러도 좋을 저 벽화까지 있으니 남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런데, 방금의 전투에서 나 좀 멋지게 활약하지 않았나?

         

        무공 같은 것도 쓴 거 같고 적 공격도 따라 하고.

         

        뭐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상태창을 쓱 쳐다봤다.

         

        공격기.

         

        공격기 주세요.

         

        상태창을 노려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무공을 쉽게 주진 않는다는 건가.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니 저 벽화를 씹고 뜯으면 뭐든 나오겠지.

         

        카이만의 내단도 먹었겠다, 한 번 운기조식이나 해볼까.

         

        무공을 깨달을 수도 있으니까.

         

        뱀 가죽 조각으로 눈을 가린 후, 가부좌를 틀었다.

         

        하단전에서 시작된 내공이 온몸으로 순환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맑아진다.

         

        내가 먹은 내단과 아까의 경험이 오롯이 나의 것이 되어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나를 감싼 듯한 포근함이었다.

         

        적당히 말랑거리는 촉감.

         

        거기에 어렴풋이 맡아지는 꽃향기.

         

        대주천을 넘어서, 삼화취정의 경지에 다다른 건가.

         

        내 성장이 너무나 무섭다.

         

        몸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들어본 적이 있다.

         

        내공이 심후한 고수가 운기조식을 취하면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고.

         

        “참으로 신기하구나.”

         

        게다가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까지 들렸다.

         

        분명 선녀의 목소리일 거다.

         

        오기조원.

         

        난 벌써 삼화취정을 넘어서 오기조원에 다다른 거다.

         

        “가부좌를 트는 도마뱀은 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이제 등선을 하는 거다.

         

        “몸이 허한 게, 안 그래도 몸보신하려 했는데 잘 되었구나.”

         

        도마뱀의 몸을 집어 던지고 새로운….

         

        몸보신이요?

         

        선녀가 할 말이 아닌 거 같은데?

         

        앞발을 이용해 내 눈을 가린 가죽 조각을 슬쩍 벗겨냈다.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살구색 무언가가 눈에 보였다.

         

        되게 말랑말랑하고 쫀득할 거 같은 색과 모양이었다.

         

        와앙.

         

        텁.

         

        본능적으로 부드러운 살결을 깨물었다.

         

        내 단단한 이빨이 들어가지 않았다.

         

        분명 말랑하다.

         

        그런데 단단하다.

         

        이 모순과도 같은 상황은 대체 무엇일까.

         

        잘근잘근 씹어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누구의 손가락이길래 이런 질감을 가진 거지?

         

        잠깐만, 손가락?

         

        나는 왜 이걸 손가락이라고 생각한 거지?

         

        손가락을 깨문 채 시야를 조금씩 돌렸다.

         

        푸른색 눈동자가 보였다.

       

       눈동자의 주인은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내가 그쪽을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본녀의 손가락이 그리 맛있더냐?”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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