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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순간 뇌 정지가 와버려서 머리 안이 텅, 비는 기분이 들었다.

         

       잠깐의 정적.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내가 미아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기 시작했다.

         

         

       “엥….”

         

         

       지, 진짜로?

         

       이렇게 뜬금없이 갑자기 미아가 되어버린다고?

         

         

       혼란스러운 머리를 붙잡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무연의 흔적은 단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도 이미 나 혼자 남았다 서사하고 있었다.

         

         

       아니지.

         

       나는 그냥 잘 왔는데, 무연이 미아가 된 게 아닐까?

         

       워낙 나랑 조금 거리를 두고 뒤에서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잠깐 한눈팔다가 길을 잃어버린 거지.

         

       자기 합리화를 하며 기분이 좀 나아지고 나서야 상황을 살펴볼 여력이 좀 되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어째선지 그 경계를 넘어 패닉이 올 것 같진 않았다.

         

       주변이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꽃밭인 것도 있고,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라서 그런 거려나.

         

       이게 시체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조금 오싹해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 시각이 무언가를 인지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 만큼 막 충격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일단 눈에 보이는 것만 멀쩡하면 그다지 무서워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일단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아까 말했던 대로 내가 미아가 된 것을 전제로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거는 조금 이상했다.

         

       일단 내가 앞장서고 있었고, 만약 내가 길을 이상한 곳으로 갔다면 무연이 분명히 뒤에서 뜯어말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까 정문에 있던 글귀를 보는 걸로 그렇게 호들갑 떨던 사람인데, 가만히 있었겠냐고.

         

         

       그렇게 되면 무연이 미아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되는 건데….

         

         

       사실 이게 가장 유력하긴 했다.

         

       외신에 의해 잡혀갔을 가능성도 있을 수도.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

         

       겁쟁이의 마음은 겁쟁이가 가장 잘 안다고.

         

       최악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혹시 나를 버리고 그냥 혼자 도망쳐 버린 건가?

         

         

       생각하고서도 설마 그럴 리가 있냐고 넘기고 싶었지만, 오는 길에 있었던 무연의 말을 떠올리자니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내 겁쟁이 센서가 찌리릿 하고 울린다.

         

         

       아, 진짜 이건가?

         

       너무 그럴싸한데?

         

         

       “후우….”

         

         

       아니다, 진정하자.

         

       지금 너무 피해망상에 찌들었다.

         

       일단은 외신에 의해 서로 떨어진 것이라고 합리화하기로 했다.

         

         

       뭐가 어찌 됐건 지금 상황에서 뭘 더 하는 것은 말이 안 됐다.

         

       실질적 전투력은 전혀 없는 내가 혼자서 정원사를 어떻게 상대해…

         

         

       아마 무연도 혼자 남았으면 바깥으로 나가는 걸 목표로 삼을 테니, 나도 바깥으로 나가는 게 정배겠지.

         

         

       그래서 돌아가기 위해서 몸을 돌리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라.

         

       그런데, 어디가 출구였지?

         

         

       최소한 길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다시 되돌아가려고 하니 내가 걸어왔던 길이 정확하게 어디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무연이 길 안내해줄 때는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는데.

         

       네비게이션의 중요성을 한 번 더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아, 어쩔 수 없나?

         

         

       여기서 마냥 혼을 빼고 하염없이 무연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건 하수나 할 짓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진짜는 무섭지 않게 항상 친구를 품속에 넣고 다니는 것이다.

         

       일명 휴대용 공포 해소제.

         

       조심히 호주머니를 열자, 소외신이 머리만 쏙 뺐다.

         

         

       처음 보는 곳이라서 그런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던 소외신은 이내 고개를 젖혀 날 바라보더니 반갑다는 듯이 빵긋 웃었다.

         

       조금 착잡했던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참 귀여워.

         

         

       “친구야, 내가 나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아무리 급이 다르다고 하지만, 어쨌든 같은 외신이니까 나가는 방향을 대충 감으로라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며 물었더니,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파악한 소외신이 호주머니 바깥으로 나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내 근처에서 그렇게 멀어지지 않게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소외신은 뭔가 파악이 됐는지 환하게 변한 표정으로 다가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찾은 거야?”

         

         

       내 말에 소외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귀여운데 유능하기까지 하다니.

         

       떠맡겨지듯 데리고 왔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이런 게 치트키지.

         

         

       “잘했어.”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무연이 만약 도망친 거라면 이제 이 안에는 사람이 없는 것일 테니 소외신도 조금은 자유를 누려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내 오른쪽 어깨에 올라오라고 손가락으로 툭툭 치니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살포시 날아와서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어깨에 앉더니, 저번처럼 또 세상 포근해 보이게 찹쌀떡처럼 녹았다.

         

         

       “가보자고.”

         

         

       방향이 정해지니 가는 건 쉬웠다.

         

       소외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나갔다.

         

       그렇게 가다 보니 이상함을 느꼈다.

         

         

       어, 어라?

         

       뭔가 왔던 길이랑 느낌이 많이 다른 거 같은데?

         

       원래 사람이란 게 집중하지 않는 이상 달라진 점을 찾는 게 쉽지 않은데, 아무리 그래도 가장 특징적인 것이 바뀌게 되면 모를 수가 없는 법이었다.

         

         

       그래.

         

       가장 특징적인 것이 바뀌어 있었다.

         

         

       내가 지나오면서 봤던 것은 각양각색의 꽃으로 구성되어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던 정원이었다.

         

       하지만 소외신이 안내한 곳의 정원은 오직 한 가지 색깔로 통일되어 있었다.

         

         

       빨강.

         

       그것도 오직 장미로만 이루어져 검붉은 색을 띠고 있는 것이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분명히 이런 꽃밭은 오면서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이 길이 맞아?”

         

         

       ‘소외신아 날 속인 거니?’ 하는 얼굴로 바라보니 소외신이 날개를 퍼덕이며 정말 맞다는 식으로 내 왼쪽을 가리켰다.

         

       마치 저쪽에 찾던 것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소외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어?”

         

         

       그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 있었다.

         

         

       눈을 가리는 긴 녹색 빛 머리카락.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점은 기다란 사슴뿔이 난 해골.

         

       그걸 가면인 양 쓰고 있는 소녀가 손에 흙을 묻힌 채 앉아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 하지 않을 것 같은 차림새와 한창 성장기의 아이와 같은 육체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이 세상에 강림한 이질적인 존재.

         

       외신.

         

       그것도 우리가 찾고 있던 정원사, 라고.

         

         

       지금 벌써 이렇게 만나는 게 맞는 걸까.

         

       아직 제대로 공략법을 얻은 게 하나도 없는데.

         

       젠장, 이럴 거면 커뮤니티에서 보스 공략법 좀 볼걸!

         

       무서운 게 싫어서 스포일러 몇 개만 봤지 싸우는 건 직접 알아보고 싶다며 공략 탭을 보지 않은 과거의 어리석은 내가 이토록 한탄스러울 수가.

         

         

       소외신과 함께 얼음 땡 상태로 정원사를 보고 있자니 땅바닥을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괜찮아? 곧 있으면 나을 수 있을 거야.”

         

         

       잔잔한 목소리.

         

       세상을 망가뜨리고 수많은 사람을 시체로 화하여 꽃으로 장식한 외신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어투다.

         

       슬쩍 눈치를 보아하니 아직 이쪽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 들키기 전에 일단은 후퇴하는 게 낫겠어.

         

       소외신이 왜 정원사를 탈출할 수 있는 키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나 혼자였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조심히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이미 들어온 건 알고 있었어.”

         

         

       무덤덤하게 내게 말을 걸어오는 정원사.

         

         

       하하.

         

       여기가 탈출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게 생을 마감해서 탈출하라는 뜻이었구나?

         

       그래, 그것도 탈출하는 방법 중 한 개긴 하지.

         

         

       그런 의미를 담은 눈빛으로 소외신을 봐주자,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힘껏 좌우로 흔들었다.

         

         

       눈물까지 흘리려고 하길래 일단은 봐주기로 했다.

         

         

       “이번 녀석은 꽤 정신이 강고하네. 꽤 급이 높은 기사인가 봐?”

         

         

       침착하자.

         

       그래, 어쩌면 대화가 통할지도 모르잖아.

         

       감시자 때처럼 좋게 끝날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먼저 선빵을 때리기로 했다.

         

         

       “그, 안녕? 나는 기사는 아니고 기사 예정자라고 해야 하나? 다름이 아니라….”

         

       “너, 내 친구를 해치러 온 거지.”

         

         

       어떻게든 분위기를 조금 풀어보려고 했으나, 이미 정원사는 눈살을 한껏 찌푸린 채 나를 보고 있었다.

         

       하하, 시작도 전에 망해버리다니.

         

       이거 큰일인걸.

         

         

       “아,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식겁하며 반박해보려 했지만, 머리카락으로 반쯤 가려진 정원사의 눈이 되려 커졌다.

         

         

       “나랑 말이 통한다고?”

         

         

       그러고는 내 어깨에 있는 소외신을 한 번 쓱, 보고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게 아닌가.

         

       어, 어라.

         

       왜 그래요.

         

         

       “…그렇구나, 왜 말이 통하나 했더니 너 그 여자의 추종자구나.”

         

         

       그 여자의 추종자라니?

         

       그 여자는 또 누군데.

         

         

       나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이야기인 것 같았지만, 이미 정원사는 확정을 지은 눈빛이었다.

         

         

       “아니야! 나는 너를 해치려고 온 게 아니야, 우리 일단 대화를 하면서….”

         

       “거짓말! 그렇게 티를 내고 있는데 내가 모를 것 같아?”

         

         

       그 말을 끝으로 정원사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힘을 모으는 듯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이 아닌가.

         

       뭔가 좋지 않은 게 날아올 거라는 것은 확실했고, 대비하기 위해 몸을 웅크렸지만.

         

         

       “크아앙!”

         

         

       정원사가 귀여운 목소리로 울부짖었지만, 주변에 일어난 일은 귀엽지 않았다.

         

       갑자기 주변이 정적이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느끼는 체감 시간이 느려졌다고 해야 하나.

         

         

       바닥에서 튀어나온 줄기가 보였지만, 신체 능력이 부족했던 내 몸은 반응하지 못했다.

         

       결국 두꺼운 줄기에 맞을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속도가 정상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저 멀리 튕겨 나갔다.

         

         

       “으아악!”

         

         

       한참을 날아가던 내 몸이 지면에 닿았을 때에는 속도를 주체하지 못해 한참을 과격하게 굴러댔다.

         

       마침내 추진력이 사라지고 나서야 내 몸은 멈추었고, 두들겨 맞은 것처럼 전신에 아찔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도 내 친구를 건드릴 수는 없어.”

         

         

       식물 줄기들이 서로 손을 잡듯 정원사의 주위를 감싸는 듯하더니, 커다란 원을 형성했다.

         

         

       “널 해치러 온 게 아니야! 우선 대화를…!”

         

         

       그러나 정원사는 완전히 귀를 닫아버린 건지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

         

       그 대신 나타나는 것은 얼굴에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달고 있는 것 같은 꽃들.

         

         

       “이런 젠장.”

         

         

       생긴 것만 봐서는 하찮기 그지없었지만, 그 꽃 중 하나가 줄기를 위로 확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것이 방금 날 공격했던 줄기라는 것을 알았다.

         

         

       깨닫자 마자 그것은 반응도 못 할 속도로 내 몸을 향해 내려찍었고.

         

         

       뿅!

         

         

       소리는 장난감 인형을 누르는 소리 같았지만.

         

         

       “허윽….”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고통이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아아.

         

       사람이 이렇게 죽는 건가.

         

         

       점점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하며 소외신의 다급한 표정을 마지막으로 내 의식은 암전되었다.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슈퍼 겁쟁이 모드 다크 판타지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The super cowardly me installed Super Coward Mode, and the terrifying extraterrestrials started to look cute. “Eating the flesh of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re not human! Ew!” “Even withstanding mental manipulation? What kind of monster are you!” “Enslaving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 must be out of your mind.” …And then, the reactions around me becam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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