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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결과만 놓고 말하자면, 상황은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면 끝도 없는 상황이고, 기사의 법도대로 가자면 부기사단장이 죽어야 하거나 입을 건방지게 놀린 놈이 죽어야 하는데, 그걸 백작가가 그냥 둘 리도 없고.

         

       그렇다고 이한이 작정하고 날뛰고자 해도 교관 직을 막 단 입장에서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법.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사건은 어느새 일단락 되어버렸다.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그리고 이러한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심히 불쾌한 인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화려하게도 날뛰었더구나.”

         

       아이시스는 신문을 내려놓으며 가볍게 차게 식은 음료로 목을 축였다.

         

       그림과 같은 모습.

         

       누가 보면 화보를 찍는 줄 알겠으나, 저것은 그저 그녀의 일상일 뿐.

       일상이 곧 화보인 여자가 아닐 수 없다.

         

       허나 그 화보와 같은 몸짓 속에는 자그마한 불쾌감이 있음을, 그녀를 잘 아는 이들이라면 알리라.

         

       “…너무 뭐라 하지 마쇼. 안 그래도 학장한테도 혼났으니까.”

         

       그리고 상대의 맞은편에 앉아 슬쩍 고개를 돌리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 남자.

       오늘자 신문의 일면을 차지한 이한은 속이 타는지 음료를 마셨다.

         

       “허허, 이한 경의 인물이 사는군요.”

       “네, 멋져요!”

         

       한편 이한의 속도 모르는지 알버트와 레이라는 신문 속 사진을 보며 눈을 빛내기 일쑤였고, 이한의 쓴웃음은 갈수록 길어져야 했다.

       하여튼 이 세상은 중세 월드면서 이상하게 기술이 발달한 요소가 많다.

       카메라가 그러했고.

         

       ‘언제 찍혔지?’

         

       하여튼 야만적인 중세기자 놈들, 초상권을 아주 엿으로 본다.

         

       …다 부셔버리고 싶게.

         

       * * *

         

       [충격적인 사건, 왕립 학술원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

         

       [백작가는 왕가와 등지려고 하는가?]

         

       [버림받은 사자가 백은사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쫘악!

         

       “이것들 보게?”

         

       신문의 내용 중 절반가량이 이한을 욕하는 내용이었고, 그를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그중엔 입에도 못 담을 내용도 많았고.

       백작을 건드리자니 뒤가 무서워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합의를 봤나 보다.

         

       …놀 같은 것들.

         

       “허허, 이한 경의 명성을 좀 알렸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터인데, 그 점은 좀 아쉽군요.”

       “일부러 통제한 것도 아닌데요, 뭘. 지들이 멋대로 오해하고 정보를 안 믿는데, 어쩌겠어요.”

       “그것도 그렇군요.”

         

       누군가는 이상하게 여길 만도 했다.

       비록 이한은 천민 출신이지만. 그는 ‘이래봬도’ 전쟁 참전용사 출신이며, 천민 출신으로 기사단까지 들어간 인재다.

       무엇보다 ‘그’ 발타르 그레이스가 직접 뽑은 기사.

       이것만으로도 이미 그는 상당한 인재였으며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있음이 맞았다.

         

       한데도 기자들은, 아니 기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그를 만만하게 여기니, 말 그대로 지랄 맞은 상황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한의 이러한 ‘업적’을 모른다.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은 믿지 않지요. 이한 경이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니 말입니다.”

         

       놀랍게도, 이 나라는 이한이 행한 일들을 모두 믿지 않는다.

       아니, 부정한다는 게 맞는 표현이리라.

         

       그가 전쟁 참전용사란 사실?

       그냥 전쟁에 참여해서 운 좋게 살아남은 병사1에 불과하다.

         

       발타르 그레이스가 직접 뽑은 기사란 사실?

       이건 왕실의 윗선이 정보가 퍼지는 걸 막았다.

         

       이유?

       간단하다.

         

       높으신 분들은 ‘제2의’ 발타르가 탄생하길 원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통제 불가한 초인을 더는 사양하고 싶은 거다.

         

       이와 같은 이유로 그가 가진 비범한 무력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판이다.

       물론 누군가가 술김에, 혹은 장난으로 이한이 가진 비범함에 대해 떠벌리기도 했으나, 놀랍게도….

         

       -투기법을 익히지 않았는데도 기사들을 이긴다고? …무슨 헛소리야?

         

       -몰락귀족 출신인가? 그도 아니면 멸망한 왕국의 후손?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천민 출신이라니, 분명 비겁한 방식으로 기사가 된 자로군.

         

       -명가의 기사들을 모조리 제압한 기사라, 하하 재밌는 소재군요. 음유시인에게 팔면 썩 재밌겠습니다.

         

       이렇듯, 이한의 얘기를 아무리 방영해도 믿는 이들이 없다.

       생각해 보아라.

       실질적으로 고귀한 핏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투기법도 모르는 자가 오러 유저와 싸울 정도로 강하다는 게 말이나 되겠는가?

         

       누구한테 말해줘도 믿는 사람이 극단적으로 적은 이유였다.

         

       이렇다 보니 이한에 대한 소문은 헛소문으로 판정되었고, 자연스레 이한의 명성은 묻혀버렸다.

         

       만약 이한이 명성을 얻고자 발버둥 치며, 출세욕구가 있는 기사였다면 얘기는 또 달랐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자면 지금이라도 검술 명가들을 찾아가 대련을 신청하고 이를 대중이 보는 앞에서 증명하면 그만이다.

       마치 마상시합과 검술시합을 통해 무인이 명성을 얻듯이.

         

       허나.

         

       ‘내가 그런 걸 왜 해?’

         

       이한은 구경거리가 될 마음도, 명성과 권력을 얻고자 하는 출세욕구도 없다.

       그의 바람이 있다면 누구도 그를 함부로 억압하지 못할 무력을 손에 넣는 것이라 할 수 있으리라.

       즉, 그는 명성을 얻고자 하는 시간에 ‘진짜배기’가 될 노력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 느낀 것이다.

         

       물론 이는 그의 개인적인 가치관일 뿐, 누군가에게 강요할 바가 아니었다.

         

       ……뭐, 그렇기에.

         

       “참으로 거지같은 가치관이로다.”

       “…우린 이런 걸 보고 낭만이라고 합니다.”

       “낭만이 밥을 먹여주더냐?”

       “……으음.”

         

       누군가는 납득하지 못할 얘기이기도 했고.

         

       본의 아니게 힘숨찐이 되어버린 이한은 쓰게 웃었고, 아이시스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미간을 구길 따름이었다.

         

       * * *

         

       큰 사고를 쳤다는 자각은 있다.

       조금 짜증이 났던지라 더욱 크게 사고를 친 감도 있고.

         

       다만.

         

       “거기서 안 그랬으면 날 얼마나 만만하게 봤겠습니까. 만만하게 보이면 내가 접근할 감시 대상들을 떠보는 것도 어려워질 테고.”

       “…….”

       “그래도 좀 과하게 날뛴 건 인정합니다. 그러니까 화 좀 그만 내시죠.”

         

       이한은 나름 아이시스의 기분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안 하겠는데, 일단 물주님 아니겠는가.

         

       …순도 2%짜리 암브로시아를 가져오기도 했고.

         

       이를 봐서라도 어느 정도 비위를 맞춰주는 이한이었으나, 쉽게 안 풀린다.

         

       ‘아니, 근데 욕 먹는 건 난데 이 아줌마가 왜 이래?’

         

       가만히 보면 좀 이상함을 느끼고 있자니,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쳤다.

         

       “여가 지금 그 때문에 화를 낸 것 같으냐?”

       “……예에?”

         

       일순 차갑게 쏘아지는 언성.

       이한은 뜬금 무슨 말인가 싶으니.

         

       “여가 화가 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백작도 아닌, 겨우 백작의 차남 따위가 여의 의동생을 모욕했다는 것. 또 하나는 제대로 사정도 알아보지 않은 채 여의 의동생을 무도한 이로 몰고 가는 더러운 언론에게 경멸을 느껴서이다! 역병보다 천한 것들-!”

       “……으음.”

         

       지극히 귀족주의적인 말투였고, 듣고 있는 천민 출신 입장에선 좀 떨떠름하긴 한데, 그를 옹호해주고 있으니 마냥 나쁘게 들리지도 않는다.

       이 누님이 웬일이지?

         

       “흥, 여의 사람이 욕을 먹는다는 것은 여 본인 또한 욕을 먹는다는 의미. 이를 좌시하는 것은 왕가의 굴욕이다! 한데 어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으랴.”

       “…아아, 그런 거였어요?”

         

       어쩐지, 내가 욕먹은 것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냥 자기 위신이 떨어져서 화가 난 거구나.

         

       …그럼 그렇지.

         

       이한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한 번 젓고는 정정을 좀 해주기로 했다.

       

       “누님의 말 중 두 가지를 정정해주죠. 하나는 다른 사람들은 누님이랑 내가 친분이 있는 걸 모른다는 거, 또 하나는 내가 누님의 사람이 아니란 거. 하여간 누님이 욕먹은 거 아니니까 화 좀 그만 내쇼. 내가 다 무서워지니까.”

       “…건방진 것.”

       “나처럼 겸손한 놈이 어디 있다고.”

       “…….”

       “그만 노려보쇼.”

         

       눈빛으로 암기를 날릴 수 있다면 몇 십번은 날렸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 정도로 강렬하고도 살벌한 시선.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돌연 그녀는.

         

       “백작을 어찌 해주길 원하느냐.”

       “…?”

       “원한다면 죽여주마. 혹은 그 지위를 박탈해줄 수도 있다. 원하는 걸 말해라.”

       “…뭔 놀 같은 소리야?”

       “헛소리가 아니다.”

         

       그녀의 눈에서 서릿발과 같은 싸늘한 기세가 뿜어졌다.

         

       “그대는 여의 ‘부탁’을 수행하는 중이다. 한데 벌써부터 잡음이 생기는 건 안 될 말. 여는 현재 심히 불쾌하며 이를 빠르게 해결하길 원한다.”

       “…….”

         

       제 마음이 불쾌하기에, 이 불쾌감이 빠르게 해결되길 원한다.

       권력과 힘, 명예와 권위.

       이 모든 것에 정점에 가장 가까운 그녀이기에 가능한 발언이다.

         

       그리고 지금, 이한이 도움을 요청한다면 모든 것이 이뤄질 것이다.

       지금 그는 마검을 휘두를 자격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자, 물이나 마시고 정신 차려요. 누님 눈이 지금 뒤집혔네.”

       “…장난할 기분이 아니다만.”

       “나도 장난할 기분 아닙니다. 그러니 진지하게 말하죠.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쇼. 괜히 나서서 생태계 교란하지 말고.”

       “…여가 방해란 것이냐?”

       “예.”

       “……고얀 녀석.”

         

       단호하고도 칼 같은 말.

       그녀는 도리어 저러한 단호함 때문에 분노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 건방진 의동생 같으니…!

         

       “누님이 그랬죠, 전적으로 나한테 다 맡기겠다고? 그럼 끝난 겁니다. 이 사태 때문에 내가 백작가랑 척을 졌다? 그러면 척 진 겁니다. 그놈들이 다시 시비를 걸면 싸우면 그만이고, 힘이 부치면 도망가면 그만인 거죠, 뭐.”

       “…그대가?”

       “도망 다니면서 백작가랑 관련된 걸 모조리 없애고 다니긴 할 테지만.”

       “…….”

       “왜 그렇게 보십니까?”

       “…여 앞에서 당당히 왕당파 가문 하나를 지워버리겠다고 선언하는 데, 어찌 황당하지 않으랴.”

       “아아, 그 양반이 왕당파였어요? 하긴, 기사 가문 녀석들이 다 왕당파 소속이긴 하죠.”

         

       전날 만난 백작이 제법 경지에 이른 기사임이 생각난다.

         

       “…그조차 몰랐더냐.”

       “관심이 없었으니까. 뭐, 어쨌든 내 입장은 충분히 밝혔습니다. 그러니 그냥 가만히 있으쇼.”

       “……후우.”

         

       아이시스는 그와 대화할 때면 항상 자신이 말리는 느낌을 받았다.

       의동생으로 삼았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그녀가 이상하게 그에게 무른 것일까.

         

       무어가 됐건 참으로.

         

       ‘재밌는 자로다.’

         

       무료한 제 삶 속, 뜻밖의 활력이 되어주는 존재.

       아이시스는 제 통제 밖에서 노니는 그가 내심 마음에 드는지 피식거리며.

         

       “-좋다. 이토록 건방지게 말했으니 여가 더는 참견할 바는 아니겠구나. 여는 더는 참관하지 않겠다.”

         

       다만.

         

       “적이라고 생각하면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내라. 이 누이는 단 한 번도 적을 살려준 적이 없다. 여의 동생이라면 그 정도 패기는 보여야 할 터.”

       “우린 그런 걸 보고 패도라고 합니다.”

       “왕의 길은 곧 패도인 법이지.”

       “…항상 생각하는 건데, 당신이 젤 위험해.”

       “호호, 기분 좋은 말이구나.”

         

       따악.

         

       그녀는 그렇게 부채로 그의 머리를 다시금 때렸고, 어느 순간.

         

       스르륵.

         

       “다음에 보자꾸나.”

         

       태양빛에 녹아버리는 눈 마냥 아이시스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건 흥건히 바닥을 적신 웅덩이 뿐.

         

       “…흑막이 따로 없네.”

       “제가 치울게용!”

       “…시녀님은 가만히 있어주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만.”

       “네엥?”

       “……그냥 치우십쇼.”

       “넹!!”

         

       뇌가 청순한 애를 이해시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시녀랑 어울리다 보니 알게 되더라.

         

       “…영감님은 저렇게 안 사라집니까?”

       “허허, 마법의 신비를 어찌 저 같은 늙은이가 낭비하겠습니까.”

       “그냥 마법이 필요 없는 게 아니고요?”

       “허허.”

         

       …그럴 줄 알았다.

         

       이한은 물웅덩이를 치우다가 넘어져서 울상을 짓는 시녀와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 듯 은밀하게 사라지는 집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기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보면 볼수록.

         

       ‘내가 사파면, 저 인간들은 마교야, 마교.’

         

       어째 인체실험을 당한 저보다 더 해괴한 인간밖에 없는 것 같은 왕실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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