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

   ​

    레갈리아는 제 앞에 선 여성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번뜩였다.

    ​

    “비라? 아니 자네. 팔다리가…….”

    “헤헤- 그렇게 됐네요. 아가씨.”

    ​

    비라는 쑥스럽다는 듯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 의수 따위로는 재현할 수 없을 그 움직임에 레갈리아는 입을 떡 벌렸다.

    ​

    분명 팔다리 하나씩 잃어버렸던 과거의 호위가 잃어버린 팔다리를 되찾은 뒤 돌아왔다. 분명 그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고칠 수 없던 장애였거늘.

    ​

    잠시 눈망울 붙잡으며 감동의 쓰나미를 버텨내던 레갈리아는 휘몰아치는 감정을 애써 갈무리한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어떻게 된 거지?”

    “팔다리 만들어달라고 징징대니까 과학자가 만들어 주던데요-!”

    “과학자가…… 그렇군.”

    ​

    레갈리아는 미쳐 생각지 못 했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과학자는 이미 갈름의 부상을 치료하고 전성기의 힘을 끌어내게 한 전적이 있었다. 그걸 생각해보면 비라의 장애를 고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

    그걸 진즉에 떠올리고서 비라의 부상을 고쳐줬어야 했다. 이건 레갈리아의 실책이었다. 그녀는 제 앞에 있는 호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

    “미안하군. 비라. 여의 실책일세.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었는데…….”

    “아니아니아니-! 아니에요 아가씨! 고개를 들어주세요!”

    “여의 아둔함으로 자네가 며칠이나 더 고통 속에 있었다니.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치욕일세.”

    “저는 괜찮으니까요! 잘못이 있다면 병실에 틀어박혀서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은 제…….”

    ​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사과의 말을 주고 받는 가운데, 이 사과의 연쇄가 끝없이 이어진다는 걸 깨달은 두 사람은 저항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팔다리 한짝씩 없을 땐 그토록 우울하기 짝이 없었는데, 고작 팔다리가 다시 돋아났다고 이렇게나 웃음이 만개하다니? 

    ​

    이게 인체의 신비라는 걸까─ 한참을 웃음 터트리던 두 사람은 웃다가 배가 아파오기 시작할 때쯔음에서야 웃음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

    “활기를 되찾은 모양이라 다행이군.”

    “그럼요! 저 팔다리뿐만 아니라 초능력도 되찾았다니까요? 보실래요?”

    “……초능력까지?”

    ​

    그리 말하며 초능력을 발휘해보이는 비라를 보며 레갈리아는 충격을 받았다. 비라의 초능력은 신체의 말단. 그러니까 팔다리를 기반으로 생성되는 능력이었다. 그렇기에 팔다리를 잃었을 때 그녀의 초능력도 동시에 소실되었다. 

    ​

    그런데 단순히 팔다리를 고치는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초능력까지 복구되다니? 이래서야 단순히 팔다리 재생시킨 것이 아니라 더 엄청난 무언가라는 뜻 아닌가.

    ​

    심각한 표정으로 비라를 바라보고 있자, 비라는 무얼 생각했는지 초능력을 거두고 어물쩍거렸다.

    ​

    “어…… 역시 허락 없이 초능력 쓰는 건 조금 그랬나요. 아가씨?”

    “아니, 그런 게 아닐세.”

    “그렇다면 괜찮지만…… 아-! 초능력도 돌아왔으니, 저도 이제 아가씨 호위로 돌아갈 수 있는 거겠죠?”

    ​

    비라는 자신의 옛 지위를 떠올리며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레갈리아의 호위. 이블스 기업의 후계자였던 그녀의 최측근이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

    그러나 그녀에게는 퍽 아쉽게도 레갈리아는 그녀를 제 호위로 되돌릴 생각이 없었다.

    ​

    “여의 호위 자리는 이미 가득 찼네. 이제 와서 새로운 호위를 들일 수는 없겠군.”

    “아…… 그, 그렇죠? 하긴 실무에서 몇 년이나 떨어져 있던 퇴물이 최고 엘리트들만 모인 아가씨 호위직을 차지하는 건 욕심이겠죠…….”

    “─그건 아닐세. 비라 자네라면 지금도 충분히 여의 호위 자리를 맡을 실력이 있을 테니까.”

    ​

    거절 당하고 실망한 비라를 보며 레갈리아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다른 누구라면 모를까, 비라라면 믿을 수 있었다. 

    ​

    그 날 있었던 습격에서 스스로의 팔다리를 희생하면서까지 그녀를 구하려던 충신 아닌가. 초능력 없을 때라면 모를까 팔다리와 함께 능력마저 돌아온 지금 그녀를 기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다만, 그게 그녀의 호위가 아닐 뿐이다.

    ​

    “자네, 과학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네? 물론 좋게 생각하죠. 제 팔다리 고쳐준 은인이니…….”

    “잘 됐군. 앞으로는 여가 아니라…….”

    ​

    지금은 그녀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 인물의 호위를.

    레갈리아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여성에게 맡겼다.

    ​

    ​

    * * *

    ​

    ​

    “─그렇게 되어서, 오늘부터 내가 너의 전담 호위가 됐단 말씀!”

    ​

    고객이 가져온 오래된 기계를 수리하고 있던 나는 대뜸 찾아와 그리 말하는 비라를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갑자기 호위라니 그게 무슨?

    ​

    “그쪽, 간부 아니었습니까? 간부가 같은 간부의 호위를 맡는 건 무슨-.”

    “보스 명령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자 너는 약골이잖아? 갈름이 그러던데? 남자 구실 못 하는 허약한 녀석이라고.”

    “그 사람 기준으로보면 누굴 데려와도 죄다 약골일 텐데…….”

    “아아-! 말대꾸 금지! 이건 결정사항이야! 보스의 명령을 거부할 셈? 자꾸 거절하면 나 질질 짠다?”

    “이제 팔다리 다 달린 정상인이니, 질질 짜도 별로 마음 아프진 않는데요.”

    “앗-!”

    ​

    맹점이었다는 듯 탄성 내뱉는 비라를 보며 나는 고장난 기계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내가 호위를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거절한다고 해서 그녀가 돌아갈 것 같지도 않았고.

    ​

    보스의 명령 아닌가? 보스가 이곳으로 그녀를 보낸 이상 내가 아무리 거절한다고 해도 소용 없었다. 보스와 완전히 반기를 들 생각이 아니라면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

    그리고 나는 보스를 거스를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이 세계로 막 떨어진 나를 구원해준 은인이라는 걸 떼어놓고 생각해도 그러했다.

    ​

    ‘배신을 왜 해? 여기 있으면 책임 없는 쾌락을 즐길 수 있는데.’

    ​

    보스는 이 세상에 몇 안 되는 선인이었다. 공돌이한테 연구를 맡기면서 시간과 예산을 무제한으로 준다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그런 착한 사람 밑에서 꿀 빨 수 있을 때 빨아야지. 혼자 자립하겠다고 나서면 그때부터 지옥 시작이다.

    ​

    “일하는 거 방해만 하지 마세요.”

    “응! 호위니까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

    비라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제 가슴을 툭툭 두들겼다. 그 모습을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던 나는 시계의 수리를 끝마치고 다음 망가진 물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

    소일거리 삼아서 연 가게답게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30분 정도 망가진 것들을 수리하면 일주일치 일이 모조리 끝난다. 

    ​

    그리 일을 끝마치고 나면? 그때부터는 자유였다. 남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 정말이지 짧은 시간이지만 일을 끝마쳤다는 성취감을 가진 채 휴식까지 취할 수 있었다.

    ​

    “─뭐야, 일 끝났어?”

    “예. 그런데요.”

    “그럼 뭐해! 당장 나가자!”

    ​

    미리 준비해둔 서적을 들고서 침대로 향하던 나는 비라의 방해를 받은 뒤에야 불청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리고 비라의 말투만 봐도 알다시피, 그녀는 무척이나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팔다리가 반씩 없어서 외향적인 성격도 반으로 잘려나갔었을 뿐.

    ​

    그 잘려나갔던 팔다리가 돌아온 지금, 그녀는 수 년간 쌓아온 인싸 에너지를 방출하고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

    “왜 나가야 하는데요……?”

    “왜긴! 이런 방구석에서 하루종일 있으면 사람이 썩는다고! 햇빛도 좀 보고! 바람도 좀 쐬고! 그래야지!”

    “그건 비라 씨가 바라는 일인 게…… 전 오늘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책이나 읽으려고 했는데요.”

    “네가 무슨 문학소년이야? 나가자고!”

    ​

    기 빨린다 기 빨려.

    옆에서 쫑알거리는 비라를 보며, 나는 그녀가 내 호위로 있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대체 세상 어느 호위가 호위 대상을 집 바깥으로 끌고 나가지 못 해서 안달이 나 있단 말인가?

    ​

    자고로 이불 밖은 위험하고 초능력 쓰는 빌런들이 실존하는 이 세상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함부로 나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

    징징거리는 그녀를 무시하고 침대에 엉덩이 붙이자, 비라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안 나갈 거야?”

    “─예. 저는 오늘 집 바깥으로 한발자국도 안 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여기로 레비땅이랑 갈름이 불러야겠다. 걔네들은 내 팔다리 나은 거 아직 모르니까, 여기서 축하를─.”

    “뭐 하십니까? 비라 씨. 준비 안 하시고.”

    ​

    가게 문 앞에 선 나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는 비라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이지- 오늘 같은 날 언제까지 방구석에서 느그적거리고 있을 생각이란 말인가?

    ​

    한심하다는 듯 비라를 바라보자,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

    “……두 사람 오는 게 그렇게 싫어?”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제가 왜 싫겠습니까? 그냥 오늘 같은 날씨에 집 안에 있는 게 아까워서 그렇지요.”

    “그으래- 응. 그렇게 싫으면 부르진 않을게…….”

    ​

    비라는 그리 말하며 나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눈부신 태양이 얼굴에 쏟아져내렸다. 

    그녀의 말대로 가게에 박혀 있기엔 아까운 날씨기는 했다.

    ​

    ​

    * * *

    ​

    ​

    아이들이 공원 한가운데를 뛰어다닌다.

    그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중 몇몇은 다른 아이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다리에서 가시가 돋아나 더 빨리 뛰게 해주거나, 아니면 아예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

    초능력. 세상 사람들 모두가 초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이 세계에서 저런 모습을 보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

    “으흐응-! 내 두 다리로 걷는 게 얼마만인지!”

    ​

    비라는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 덜덜 떨리는 팔다리 근육이 자라난 팔다리가 그녀의 몸에 잘 안착했음을 알려주었다.

    ​

    슬쩍- 곁눈질로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약이 제대로 통했음을 깨닫곤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 솔직히 말해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효과를 보일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능력이라는 신기한 능력이 존재하고, 그를 발현하는 기관이 몸에 직접 자라나 있는 세계 아닌가.

    ​

    이 세계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르니 같은 약을 쓰더라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었고.

    ​

    ‘잘 붙은 모양이네.’

    ​

    일단 그런 경우는 보고된 적 없지만, 약으로 재생된 팔다리가 기괴하게 자라나 다시금 잘라내야 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지구인에게는 나타난 적 없는 부작용이지만.

    ​

    그렇게 한참 비라의 팔다리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제 시선을 느꼈는지 싱긋 웃으며 나를 마주보았다.

    ​

    “뭘 그렇게 봐-? 응? 이 누나의 팔다리가 그렇게 매혹적이니?”

    “확실히 티가 나긴 하네요. 오른팔이랑 왼발만 하애요.”

    “……그걸 꼭 집어서 이야기 해야해?”

    ​

    그녀는 호위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널널한 복장- 그러니까 민소매에 숏팬츠 따위를 입고 있었는데, 어울리는 복장이기는 했지만 덕택에 그녀의 새하얀 팔뚝이요 허벅지가 완전히 드러나고 있었다.

    ​

    그러니까 막 재생되어서 피부색이 완전히 다른 두 팔다리가 대조되어 비추었다는 뜻이다.

    ​

    “누가 보면 그쪽만 문신한 줄 알겠네요.”

    “대체 누가 이런 문신을 하는데…….”

    “글쎄요. 흑인?”

    “우와아아…….”

    ​

    ─꺄아아아악!

    ​

    시답잖은 농담에 비라가 질색하는 가운데, 저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둘은 반사적으로 비명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고, 그곳엔 웬 괴물 한 마리가 사람을 습격하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본 비라는 탄성을 내뱉었다.

    ​

    “오- 각성종이네.”

    “각성종이요……?”

    “응. 동물 중에서 초능력을 각성한 놈들을 그렇게 불러. 인간과 다르게 동물은 초능력을 각성할 확률이 낮거든.”

    ​

    그녀는 수인들의 조상이 각성종일 수 있다는 가설이 주된 이론이라느니, 수인이 차별받는 건 그들의 근본이 실제로 짐승이라서 그렇다느니 이 세계 주민만이 알 법한 온갖 잡설을 늘어놓았다.

    ​

    그러는 동안에도 각성종은 사람을 습격하며 이리저리 뛰어댕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각성종을 피해 사방으로 도망쳤다.

    ​

    그리 도망치는 사람들을 뒤쫓던 각성종은 멍하니 벤치에 앉아서 그 모습을 구경하던 우리를 발견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각성종은 미친 듯이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속도가 어지간한 차량보다 재빨랐다.

    ​

    “어…… 저거 막아야 하지 않아요?”

    “응. 막아야지.”

    “아니, 언제…?”

    “지금.”

    ​

    순식간에 달려든 각성종이 우리에게 부딪치려는 순간, 비라는 제 오른팔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생성된 역장이 그대로 각성종을 가로막았다.

    ​

    시속 백여킬로로 달려오다 단단한 역장에 부딪친 각성종은 제 속도를 이겨내지 못 하고 그대로 찌그러들었다. 단단한 벽에 정면으로 충돌한 차량처럼.

    ​

    그리 찌그러들고서도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꿈틀거리는 모습이 퍽 그로테스크했다.

    ​

    “이야- 오랜만에 가볍게 몸풀기 했네.”

    “……이게 가볍다고요?”

    “응. 이 정도는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지? 항공폭탄이 터진 것도 아니고.”

    ​

    나는 그제야 보스가 그녀를 내게 보낸 이유에 대해 깨달았다.

    그녀는 세계적인 대기업, 이블스 기업의 후계자였던 레갈리아의 전담 호위 출신의 엘리트.

    누군가를 지키는 능력만으로 세계적인 갑부에게 고용된 초능력자였다. 

    ​

    ​

    * * *

    ​

    성명 : 비라Vira

    초능력 : 역장 배리어

    설명 : 물리적 간섭을 방어하는 역장을 신체말단으로부터 뿜어낸다. 과거 1억 5천만도의 핵열에 의해 소실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행복회로불타요옷님
ATLAS1359님
김영순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글쓰는 속도가 많이 느려서 연참은 힘들지만 한 편 한 편 꽉꽉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