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갈리아는 제 앞에 선 여성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번뜩였다.
“비라? 아니 자네. 팔다리가…….”
“헤헤- 그렇게 됐네요. 아가씨.”
비라는 쑥스럽다는 듯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 의수 따위로는 재현할 수 없을 그 움직임에 레갈리아는 입을 떡 벌렸다.
분명 팔다리 하나씩 잃어버렸던 과거의 호위가 잃어버린 팔다리를 되찾은 뒤 돌아왔다. 분명 그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고칠 수 없던 장애였거늘.
잠시 눈망울 붙잡으며 감동의 쓰나미를 버텨내던 레갈리아는 휘몰아치는 감정을 애써 갈무리한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지?”
“팔다리 만들어달라고 징징대니까 과학자가 만들어 주던데요-!”
“과학자가…… 그렇군.”
레갈리아는 미쳐 생각지 못 했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과학자는 이미 갈름의 부상을 치료하고 전성기의 힘을 끌어내게 한 전적이 있었다. 그걸 생각해보면 비라의 장애를 고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진즉에 떠올리고서 비라의 부상을 고쳐줬어야 했다. 이건 레갈리아의 실책이었다. 그녀는 제 앞에 있는 호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군. 비라. 여의 실책일세.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었는데…….”
“아니아니아니-! 아니에요 아가씨! 고개를 들어주세요!”
“여의 아둔함으로 자네가 며칠이나 더 고통 속에 있었다니.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치욕일세.”
“저는 괜찮으니까요! 잘못이 있다면 병실에 틀어박혀서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은 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사과의 말을 주고 받는 가운데, 이 사과의 연쇄가 끝없이 이어진다는 걸 깨달은 두 사람은 저항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팔다리 한짝씩 없을 땐 그토록 우울하기 짝이 없었는데, 고작 팔다리가 다시 돋아났다고 이렇게나 웃음이 만개하다니?
이게 인체의 신비라는 걸까─ 한참을 웃음 터트리던 두 사람은 웃다가 배가 아파오기 시작할 때쯔음에서야 웃음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활기를 되찾은 모양이라 다행이군.”
“그럼요! 저 팔다리뿐만 아니라 초능력도 되찾았다니까요? 보실래요?”
“……초능력까지?”
그리 말하며 초능력을 발휘해보이는 비라를 보며 레갈리아는 충격을 받았다. 비라의 초능력은 신체의 말단. 그러니까 팔다리를 기반으로 생성되는 능력이었다. 그렇기에 팔다리를 잃었을 때 그녀의 초능력도 동시에 소실되었다.
그런데 단순히 팔다리를 고치는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초능력까지 복구되다니? 이래서야 단순히 팔다리 재생시킨 것이 아니라 더 엄청난 무언가라는 뜻 아닌가.
심각한 표정으로 비라를 바라보고 있자, 비라는 무얼 생각했는지 초능력을 거두고 어물쩍거렸다.
“어…… 역시 허락 없이 초능력 쓰는 건 조금 그랬나요. 아가씨?”
“아니, 그런 게 아닐세.”
“그렇다면 괜찮지만…… 아-! 초능력도 돌아왔으니, 저도 이제 아가씨 호위로 돌아갈 수 있는 거겠죠?”
비라는 자신의 옛 지위를 떠올리며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레갈리아의 호위. 이블스 기업의 후계자였던 그녀의 최측근이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퍽 아쉽게도 레갈리아는 그녀를 제 호위로 되돌릴 생각이 없었다.
“여의 호위 자리는 이미 가득 찼네. 이제 와서 새로운 호위를 들일 수는 없겠군.”
“아…… 그, 그렇죠? 하긴 실무에서 몇 년이나 떨어져 있던 퇴물이 최고 엘리트들만 모인 아가씨 호위직을 차지하는 건 욕심이겠죠…….”
“─그건 아닐세. 비라 자네라면 지금도 충분히 여의 호위 자리를 맡을 실력이 있을 테니까.”
거절 당하고 실망한 비라를 보며 레갈리아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다른 누구라면 모를까, 비라라면 믿을 수 있었다.
그 날 있었던 습격에서 스스로의 팔다리를 희생하면서까지 그녀를 구하려던 충신 아닌가. 초능력 없을 때라면 모를까 팔다리와 함께 능력마저 돌아온 지금 그녀를 기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그게 그녀의 호위가 아닐 뿐이다.
“자네, 과학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네? 물론 좋게 생각하죠. 제 팔다리 고쳐준 은인이니…….”
“잘 됐군. 앞으로는 여가 아니라…….”
지금은 그녀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 인물의 호위를.
레갈리아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여성에게 맡겼다.
* * *
“─그렇게 되어서, 오늘부터 내가 너의 전담 호위가 됐단 말씀!”
고객이 가져온 오래된 기계를 수리하고 있던 나는 대뜸 찾아와 그리 말하는 비라를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갑자기 호위라니 그게 무슨?
“그쪽, 간부 아니었습니까? 간부가 같은 간부의 호위를 맡는 건 무슨-.”
“보스 명령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자 너는 약골이잖아? 갈름이 그러던데? 남자 구실 못 하는 허약한 녀석이라고.”
“그 사람 기준으로보면 누굴 데려와도 죄다 약골일 텐데…….”
“아아-! 말대꾸 금지! 이건 결정사항이야! 보스의 명령을 거부할 셈? 자꾸 거절하면 나 질질 짠다?”
“이제 팔다리 다 달린 정상인이니, 질질 짜도 별로 마음 아프진 않는데요.”
“앗-!”
맹점이었다는 듯 탄성 내뱉는 비라를 보며 나는 고장난 기계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내가 호위를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거절한다고 해서 그녀가 돌아갈 것 같지도 않았고.
보스의 명령 아닌가? 보스가 이곳으로 그녀를 보낸 이상 내가 아무리 거절한다고 해도 소용 없었다. 보스와 완전히 반기를 들 생각이 아니라면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보스를 거스를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이 세계로 막 떨어진 나를 구원해준 은인이라는 걸 떼어놓고 생각해도 그러했다.
‘배신을 왜 해? 여기 있으면 책임 없는 쾌락을 즐길 수 있는데.’
보스는 이 세상에 몇 안 되는 선인이었다. 공돌이한테 연구를 맡기면서 시간과 예산을 무제한으로 준다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그런 착한 사람 밑에서 꿀 빨 수 있을 때 빨아야지. 혼자 자립하겠다고 나서면 그때부터 지옥 시작이다.
“일하는 거 방해만 하지 마세요.”
“응! 호위니까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비라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제 가슴을 툭툭 두들겼다. 그 모습을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던 나는 시계의 수리를 끝마치고 다음 망가진 물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일거리 삼아서 연 가게답게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30분 정도 망가진 것들을 수리하면 일주일치 일이 모조리 끝난다.
그리 일을 끝마치고 나면? 그때부터는 자유였다. 남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 정말이지 짧은 시간이지만 일을 끝마쳤다는 성취감을 가진 채 휴식까지 취할 수 있었다.
“─뭐야, 일 끝났어?”
“예. 그런데요.”
“그럼 뭐해! 당장 나가자!”
미리 준비해둔 서적을 들고서 침대로 향하던 나는 비라의 방해를 받은 뒤에야 불청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비라의 말투만 봐도 알다시피, 그녀는 무척이나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팔다리가 반씩 없어서 외향적인 성격도 반으로 잘려나갔었을 뿐.
그 잘려나갔던 팔다리가 돌아온 지금, 그녀는 수 년간 쌓아온 인싸 에너지를 방출하고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왜 나가야 하는데요……?”
“왜긴! 이런 방구석에서 하루종일 있으면 사람이 썩는다고! 햇빛도 좀 보고! 바람도 좀 쐬고! 그래야지!”
“그건 비라 씨가 바라는 일인 게…… 전 오늘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책이나 읽으려고 했는데요.”
“네가 무슨 문학소년이야? 나가자고!”
기 빨린다 기 빨려.
옆에서 쫑알거리는 비라를 보며, 나는 그녀가 내 호위로 있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대체 세상 어느 호위가 호위 대상을 집 바깥으로 끌고 나가지 못 해서 안달이 나 있단 말인가?
자고로 이불 밖은 위험하고 초능력 쓰는 빌런들이 실존하는 이 세상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함부로 나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징징거리는 그녀를 무시하고 침대에 엉덩이 붙이자, 비라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안 나갈 거야?”
“─예. 저는 오늘 집 바깥으로 한발자국도 안 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여기로 레비땅이랑 갈름이 불러야겠다. 걔네들은 내 팔다리 나은 거 아직 모르니까, 여기서 축하를─.”
“뭐 하십니까? 비라 씨. 준비 안 하시고.”
가게 문 앞에 선 나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는 비라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이지- 오늘 같은 날 언제까지 방구석에서 느그적거리고 있을 생각이란 말인가?
한심하다는 듯 비라를 바라보자,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오는 게 그렇게 싫어?”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제가 왜 싫겠습니까? 그냥 오늘 같은 날씨에 집 안에 있는 게 아까워서 그렇지요.”
“그으래- 응. 그렇게 싫으면 부르진 않을게…….”
비라는 그리 말하며 나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눈부신 태양이 얼굴에 쏟아져내렸다.
그녀의 말대로 가게에 박혀 있기엔 아까운 날씨기는 했다.
* * *
아이들이 공원 한가운데를 뛰어다닌다.
그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중 몇몇은 다른 아이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다리에서 가시가 돋아나 더 빨리 뛰게 해주거나, 아니면 아예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초능력. 세상 사람들 모두가 초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이 세계에서 저런 모습을 보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으흐응-! 내 두 다리로 걷는 게 얼마만인지!”
비라는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 덜덜 떨리는 팔다리 근육이 자라난 팔다리가 그녀의 몸에 잘 안착했음을 알려주었다.
슬쩍- 곁눈질로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약이 제대로 통했음을 깨닫곤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 솔직히 말해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효과를 보일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능력이라는 신기한 능력이 존재하고, 그를 발현하는 기관이 몸에 직접 자라나 있는 세계 아닌가.
이 세계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르니 같은 약을 쓰더라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었고.
‘잘 붙은 모양이네.’
일단 그런 경우는 보고된 적 없지만, 약으로 재생된 팔다리가 기괴하게 자라나 다시금 잘라내야 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지구인에게는 나타난 적 없는 부작용이지만.
그렇게 한참 비라의 팔다리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제 시선을 느꼈는지 싱긋 웃으며 나를 마주보았다.
“뭘 그렇게 봐-? 응? 이 누나의 팔다리가 그렇게 매혹적이니?”
“확실히 티가 나긴 하네요. 오른팔이랑 왼발만 하애요.”
“……그걸 꼭 집어서 이야기 해야해?”
그녀는 호위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널널한 복장- 그러니까 민소매에 숏팬츠 따위를 입고 있었는데, 어울리는 복장이기는 했지만 덕택에 그녀의 새하얀 팔뚝이요 허벅지가 완전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막 재생되어서 피부색이 완전히 다른 두 팔다리가 대조되어 비추었다는 뜻이다.
“누가 보면 그쪽만 문신한 줄 알겠네요.”
“대체 누가 이런 문신을 하는데…….”
“글쎄요. 흑인?”
“우와아아…….”
─꺄아아아악!
시답잖은 농담에 비라가 질색하는 가운데, 저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둘은 반사적으로 비명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고, 그곳엔 웬 괴물 한 마리가 사람을 습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비라는 탄성을 내뱉었다.
“오- 각성종이네.”
“각성종이요……?”
“응. 동물 중에서 초능력을 각성한 놈들을 그렇게 불러. 인간과 다르게 동물은 초능력을 각성할 확률이 낮거든.”
그녀는 수인들의 조상이 각성종일 수 있다는 가설이 주된 이론이라느니, 수인이 차별받는 건 그들의 근본이 실제로 짐승이라서 그렇다느니 이 세계 주민만이 알 법한 온갖 잡설을 늘어놓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각성종은 사람을 습격하며 이리저리 뛰어댕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각성종을 피해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리 도망치는 사람들을 뒤쫓던 각성종은 멍하니 벤치에 앉아서 그 모습을 구경하던 우리를 발견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각성종은 미친 듯이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속도가 어지간한 차량보다 재빨랐다.
“어…… 저거 막아야 하지 않아요?”
“응. 막아야지.”
“아니, 언제…?”
“지금.”
순식간에 달려든 각성종이 우리에게 부딪치려는 순간, 비라는 제 오른팔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생성된 역장이 그대로 각성종을 가로막았다.
시속 백여킬로로 달려오다 단단한 역장에 부딪친 각성종은 제 속도를 이겨내지 못 하고 그대로 찌그러들었다. 단단한 벽에 정면으로 충돌한 차량처럼.
그리 찌그러들고서도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꿈틀거리는 모습이 퍽 그로테스크했다.
“이야- 오랜만에 가볍게 몸풀기 했네.”
“……이게 가볍다고요?”
“응. 이 정도는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지? 항공폭탄이 터진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제야 보스가 그녀를 내게 보낸 이유에 대해 깨달았다.
그녀는 세계적인 대기업, 이블스 기업의 후계자였던 레갈리아의 전담 호위 출신의 엘리트.
누군가를 지키는 능력만으로 세계적인 갑부에게 고용된 초능력자였다.
* * *
성명 : 비라Vira
초능력 : 역장 배리어
설명 : 물리적 간섭을 방어하는 역장을 신체말단으로부터 뿜어낸다. 과거 1억 5천만도의 핵열에 의해 소실되었다.
행복회로불타요옷님
ATLAS1359님
김영순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글쓰는 속도가 많이 느려서 연참은 힘들지만 한 편 한 편 꽉꽉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