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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18화. 성공한 실험 사례.
     
     
     
     
     
     
     
     
   “의사나 과학자들의 종교인 비율이 일반인보다 높다는 걸 알고 있나?”
     
   인데르가 정면을 응시한 채 물었다.
   갑작스럽기도 했거니와 상황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질문에 강호는 즉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뒤에 있던 레이나가 응했다.
     
   “네 들어봤어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본질에 다가설수록 신의 뜻이라는 믿음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 아닐까요.”
     
   그녀의 말에 인데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네. 그리고 지금 저것도 그런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거라네.”
     
   그 순간, 어쩐지 흑염체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 보였다.
   정말 그런 건지 착시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걸 보던 인데르가 또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정말로 테라포밍에 성공했나 보군.”
     
   강호는 더 이상 혼자 고민하기를 포기했다.
   확실히 인데르는 뭔가 아는 것 같으니, 직접 물었다.
     
   “대체 저게 뭡니까?”
   “나도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건 다른 우주의 진화한 과학 문명이 만들어낸 비물질 에너지라고 했다.
   굳이 예로 든 것이 홀로그램인데, 그것과 다르게 실제로 본체와 동일한 힘을 가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흑염체의 힘은 무엇입니까?”
     
   강호가 핵심을 물었다.
   그리고 인데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본체를 모르니 알 수 있겠나? 다만, 저 앞에 펼쳐진 풍경이 답 아니겠는가.”
     
   다시 모두의 시선이 시체 산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 순간, 흑염체를 바라본 모두의 몸에 그것과 같은 검은 불길이 둘렸다.
     
   화륵.
     
   “아!”
   “어어?”
   “으악! 어떡해!”
     
   갑자기 혼란이 일었다.
   사람들은 팔을 휘젓고 펄쩍 뛰었다.
   심지어 바닥을 구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
   “어라?”
     
   다시 잠잠해졌다.
   물론 안심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을 살피려는 듯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강호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착시? 환각?’
     
   자신이 지겹게 겪었던 환청과 끊임없이 의심해야 했던, 바로 그 환각 증상.
     
   ‘뇌파 감지, 신경계 뉴런, 심리상태에 따라 반응하는 에너지 반사체인 건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현실처럼 구현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느끼는 혼란과 공포를 필요에 맞게 이용하려는 의도.
   그것이 잠깐 사이에 이루어진 강호의 추측이었다.
   그리고,
     
   ‘물론 그게 저 흑염체가 가진 힘의 본질은 아니겠지.’
     
   인데르의 말대로 본체가 뭔지 알아야 눈앞의 흑염체가 어떻게 위험한 것인지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흐음.’
     
   그의 고민과 시름이 깊어질 때였다.
     
   [모르는 척하게. 그리고 잘 듣게.]
   “……!”
     
   갑자기 귀 뒤쪽에서 이명처럼 인데르의 목소리가 쨍하고 울렸다.
   강호는 지금 그의 목소리가 자신에게만 들린다는 걸 바로 알았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아무 일 없는 듯 흑염체만 보고 있었다.
     
   [못다 한 이야기가 있어 전하려고 하네.]
   “…….”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 했다.
     
   [정치적인 얘길 수 있네.]
     
   이전에 설명했던 내용과 이어지는 것이었다.
     
   세계 종 보관소는 지구의 안전, 혹은 인류의 존속을 위해 과학이 발 벗고 나선 만큼, 가능한 모든 것을 했다.
     
   그 진행 과정에서 유전자 변이 등을 통한 강한 인류를 만드는 것 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의 행성을 찾는 게 더 빨랐다.
   그런데 한 가지 예측을 벗어난 일이 생겼다.
     
   [자네라면 평행 우주나 다중 차원에 대해 굳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
     
   강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바로 인데르의 설명이 시작됐다.
     
   실제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탐색 좌표에는 없던 세계와 연결됐다고 했다.
   의견이 오고 갔고, 프로토타입의 교류를 협의했다.
     
   결과는 불행했다.
   탐색차 차원문을 건너갔던 연구진의 소식이 갑자기 끊긴 것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생사 확인조차 안 되던 선발대 중 일부가 귀환했다.
   다른 행성, 혹은 차원에서 돌아왔으니, 그들은 규정과 절차대로 각종 검사를 받게 됐다.
     
   그런데, 검사 도중 귀환자들이 돌변했다.
   갑자기 의사와 연구자들을 인질로 잡고 무언가를 요구했다.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는지 거버넌스 의회에서는 협상 대신 진압 부대를 투입했다.
   결국 생존자 0이라는 불행한 결과를 만들었다.
     
   [모든 것이 비밀로 묻혀야 하는 순간이었지. 그리고 2년 전,]
     
   무엇 때문인지, 의회는 그 당시의 경험으로 외계 혹은 이세계의 고등한 생명체에 대응할 수 있는 변이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비밀리에, 하지만 공공연하게 세계 종 보관소에서 그 실험에 자본과 인력을 집중했다.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기 쌓여있는 이들은 어쨌든 이능력을 가진 뮤턴트네. 그리고 자네들도.]
   “…….”
     
   강호는 턱이 아플 정도로 어금니를 꽉 물고 있었다.
   꼭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투입됐던 그 테러 진압 작전이….’
     
   그렇다면 그때 본 좀비가 귀환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인데르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아는 한, 지금 저 흑염체는 그 이세계의 것이라네.]
     
   그리고 그것이 지금 하는 일은 지구로 넘어오려는 자신들의 ‘적’을 미리 제거하는 중일 거라는 추측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판단일 뿐이야.]
   “…….”
     
   강호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일이 또 이렇게 연관되는지부터, 자신에게만 들리는 인데르의 목소리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세계에서 왔다는 흑염체의 이질적인 힘이 내뿜는 공포감 때문에 숨이 가빴다.
     
   그런 중에 강호는 가장 먼저 전음을 시도해 봤다.
     
   ‘이렇게 하면 될까?’
     
   – 생각을 하면, 성대를 거쳐 소리를 내는 대신 뇌로 곧장 의미 전달이 되는 건가?
   [오! 리사가 자네더러 천재라고 하더니, 원리를 간파했군!]
     
   어이없게도 바로 됐다.
   정말로 강호의 추측대로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 의문은 바로 풀렸다.
     
   [내 뇌에도 나노칩이 있네. 자네가 재난 매뉴얼을 외우고 이상 현상이 있었단 말을 듣고 나와 같음을 알았지.]
   – 아!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올 뻔한 걸 겨우 삼켰다.
   하지만 결정적인 게 달랐다.
     
   [참고로 나는 재난 매뉴얼을 외우지는 않았네.]
     
   여러 의문 중 하나가 해소됐을 뿐, 정작 중요한 의문이 눈앞에 위협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지금까지의 설명, 왜 저에게만 하신 겁니까?
     
   강호의 다음 질문이었다.
   그리고 인데르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굳이 다른 사람들을 불안하게 할 필요 있겠나?]
     
   어차피 흑염체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도 결국 자신과 강호, 그리고 이능력자들이라고 했다.
     
   [내가 자네들을 성공한 실험 사례라고 한 이유네.]
     
   정말 그랬다.
   환각 증상을 직접 겪지 않는 건 강호 일행과 인데르 뿐이었다.
     
   ‘아, 혹시?’
     
   강호는 한 가지 가정을 해봤다.
   만약 흑염체가 다른 차원의 본체와 어떤 단말로 연결되어 이곳의 상황과 정보를 그대로 전송하고 있는 것이라면….
     
   – 박사님. 혹시, 저 흑염체의 목적이 우리를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종류에 상관없이 저 많은 뮤턴트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마 저들도 탈출을 위해 모여들었다가 예상치 못한 벽에 가로막혀 주검이 됐으리라.
     
   ‘지금까지 각층 마다 비슷한 상황을 목격하고 겪었다.’
     
   처음 허브 쉘터의 누더기 골렘 때부터 오염된 쉘터를 지나면서까지, 내내 같았다.
     
   [역시, 자네라면 그리 판단할 줄 알았네.]
   – …….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실마리는 잡은 것 같았다.
   이제 문제는 흑염체의 목적을 깨부수고 살아 나가는 것이다.
     
   – 정말, 방법이 없습니까?”
     
   물을 수밖에.
   저런 건 재난 매뉴얼에도 없는 현상이었으니까.
     
   인데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강호의 질문에 가만히 고개를 저을 때였다.
     
   쿠우우웅.
     
   바닥 저 깊은 어딘가에서 엄청난 울림이 몸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심상치 않은 진동이 따라왔다.
     
   드드드드드.
     
   강호와 일행은 서로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느껴봤던 진동이고 울림이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또?!”
     
   사토시가 먼저 한탄이라도 하듯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모두가 격납고를 향해 돌아섰다.
   그런데,
     
   츠즈즈즛.
   치직.
     
   흑염체가 어느새 격납고 입구에 들러붙어서 면적을 넓히고 있었다.
   그 괴이한 장면을 보고 있자니, 처음 봤던 문장이 절로 떠올랐다.
     
   ‘신의 인도는 여기까지.’
     
   강호는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갖게 됐다.
     
   ‘설마 했더니, 정말로 그게 목적이었나.’
     
   그리고 다시 한번 폭발음과 진동이 이어졌다.
     
   꾸우웅.
   투우우우.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몸을 감쌌던 검은 불길 대신 목적지를 틀어막고 있는 흑막이 더 절망적이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레이나가 달려 나갔다.
     
   타타탓.
   
   허리춤에서 시퍼런 마체테 두 자루가 엇갈려 뽑혀 나왔다.
     
   츠앙.
   챙.
     
   그녀는 흑염체 근처에 다다라 마치 3단 멀리뛰기라도 하듯 보폭을 크게 밟았다.
     
   탓, 탕. 파앙.
     
   레이나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며 바닥에서부터 위로 솟구쳤다.
     
   후웅.
   휘리리릭!
     
   그녀의 회전은 강력한 한 줄기 토네이도 같았다.
   검날이 흑막을 난도질할 때마다 푸른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치카카캇.
   취하아아악!
     
   그 장면이 또 장관이었다.
     
   하지만, 레이나의 용오름은 마무리되지 못했다.
     
   파츠츠츠츠.
     
   “으악!”
     
   그녀의 몸에 전류가 퍼지더니 이내 튕겨 날아왔다.
     
   “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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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성공한 실험 사례.

“의사나 과학자들의 종교인 비율이 일반인보다 높다는 걸 알고 있나?”

인데르가 정면을 응시한 채 물었다.

갑작스럽기도 했거니와 상황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질문에 강호는 즉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뒤에 있던 레이나가 응했다.

“네 들어봤어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본질에 다가설수록 신의 뜻이라는 믿음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 아닐까요.”

그녀의 말에 인데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네. 그리고 지금 저것도 그런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거라네.”

그 순간, 어쩐지 흑염체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 보였다.

정말 그런 건지 착시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걸 보던 인데르가 또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정말로 테라포밍에 성공했나 보군.”

강호는 더 이상 혼자 고민하기를 포기했다.

확실히 인데르는 뭔가 아는 것 같으니, 직접 물었다.

“대체 저게 뭡니까?”

“나도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건 다른 우주의 진화한 과학 문명이 만들어낸 비물질 에너지라고 했다.

굳이 예로 든 것이 홀로그램인데, 그것과 다르게 실제로 본체와 동일한 힘을 가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흑염체의 힘은 무엇입니까?”

강호가 핵심을 물었다.

그리고 인데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본체를 모르니 알 수 있겠나? 다만, 저 앞에 펼쳐진 풍경이 답 아니겠는가.”

다시 모두의 시선이 시체 산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 순간, 흑염체를 바라본 모두의 몸에 그것과 같은 검은 불길이 둘렸다.

화륵.

“아!”

“어어?”

“으악! 어떡해!”

갑자기 혼란이 일었다.

사람들은 팔을 휘젓고 펄쩍 뛰었다.

심지어 바닥을 구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

“어라?”

다시 잠잠해졌다.

물론 안심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을 살피려는 듯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강호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착시? 환각?’

자신이 지겹게 겪었던 환청과 끊임없이 의심해야 했던, 바로 그 환각 증상.

‘뇌파 감지, 신경계 뉴런, 심리상태에 따라 반응하는 에너지 반사체인 건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현실처럼 구현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느끼는 혼란과 공포를 필요에 맞게 이용하려는 의도.

그것이 잠깐 사이에 이루어진 강호의 추측이었다.

그리고,

‘물론 그게 저 흑염체가 가진 힘의 본질은 아니겠지.’

인데르의 말대로 본체가 뭔지 알아야 눈앞의 흑염체가 어떻게 위험한 것인지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흐음.’

그의 고민과 시름이 깊어질 때였다.

[모르는 척하게. 그리고 잘 듣게.]

“……!”

갑자기 귀 뒤쪽에서 이명처럼 인데르의 목소리가 쨍하고 울렸다.

강호는 지금 그의 목소리가 자신에게만 들린다는 걸 바로 알았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아무 일 없는 듯 흑염체만 보고 있었다.

[못다 한 이야기가 있어 전하려고 하네.]

“…….”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 했다.

[정치적인 얘길 수 있네.]

이전에 설명했던 내용과 이어지는 것이었다.

세계 종 보관소는 지구의 안전, 혹은 인류의 존속을 위해 과학이 발 벗고 나선 만큼, 가능한 모든 것을 했다.

그 진행 과정에서 유전자 변이 등을 통한 강한 인류를 만드는 것 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의 행성을 찾는 게 더 빨랐다.

그런데 한 가지 예측을 벗어난 일이 생겼다.

[자네라면 평행 우주나 다중 차원에 대해 굳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

강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바로 인데르의 설명이 시작됐다.

실제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탐색 좌표에는 없던 세계와 연결됐다고 했다.

의견이 오고 갔고, 프로토타입의 교류를 협의했다.

결과는 불행했다.

탐색차 차원문을 건너갔던 연구진의 소식이 갑자기 끊긴 것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생사 확인조차 안 되던 선발대 중 일부가 귀환했다.

다른 행성, 혹은 차원에서 돌아왔으니, 그들은 규정과 절차대로 각종 검사를 받게 됐다.

그런데, 검사 도중 귀환자들이 돌변했다.

갑자기 의사와 연구자들을 인질로 잡고 무언가를 요구했다.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는지 거버넌스 의회에서는 협상 대신 진압 부대를 투입했다.

결국 생존자 0이라는 불행한 결과를 만들었다.

[모든 것이 비밀로 묻혀야 하는 순간이었지. 그리고 2년 전,]

무엇 때문인지, 의회는 그 당시의 경험으로 외계 혹은 이세계의 고등한 생명체에 대응할 수 있는 변이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비밀리에, 하지만 공공연하게 세계 종 보관소에서 그 실험에 자본과 인력을 집중했다.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기 쌓여있는 이들은 어쨌든 이능력을 가진 뮤턴트네. 그리고 자네들도.]

“…….”

강호는 턱이 아플 정도로 어금니를 꽉 물고 있었다.

꼭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투입됐던 그 테러 진압 작전이….’

그렇다면 그때 본 좀비가 귀환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인데르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아는 한, 지금 저 흑염체는 그 이세계의 것이라네.]

그리고 그것이 지금 하는 일은 지구로 넘어오려는 자신들의 ‘적’을 미리 제거하는 중일 거라는 추측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판단일 뿐이야.]

“…….”

강호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일이 또 이렇게 연관되는지부터, 자신에게만 들리는 인데르의 목소리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세계에서 왔다는 흑염체의 이질적인 힘이 내뿜는 공포감 때문에 숨이 가빴다.

그런 중에 강호는 가장 먼저 전음을 시도해 봤다.

‘이렇게 하면 될까?’

– 생각을 하면, 성대를 거쳐 소리를 내는 대신 뇌로 곧장 의미 전달이 되는 건가?

[오! 리사가 자네더러 천재라고 하더니, 원리를 간파했군!]

어이없게도 바로 됐다.

정말로 강호의 추측대로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 의문은 바로 풀렸다.

[내 뇌에도 나노칩이 있네. 자네가 재난 매뉴얼을 외우고 이상 현상이 있었단 말을 듣고 나와 같음을 알았지.]

– 아!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올 뻔한 걸 겨우 삼켰다.

하지만 결정적인 게 달랐다.

[참고로 나는 재난 매뉴얼을 외우지는 않았네.]

여러 의문 중 하나가 해소됐을 뿐, 정작 중요한 의문이 눈앞에 위협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지금까지의 설명, 왜 저에게만 하신 겁니까?

강호의 다음 질문이었다.

그리고 인데르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굳이 다른 사람들을 불안하게 할 필요 있겠나?]

어차피 흑염체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도 결국 자신과 강호, 그리고 이능력자들이라고 했다.

[내가 자네들을 성공한 실험 사례라고 한 이유네.]

정말 그랬다.

환각 증상을 직접 겪지 않는 건 강호 일행과 인데르 뿐이었다.

‘아, 혹시?’

강호는 한 가지 가정을 해봤다.

만약 흑염체가 다른 차원의 본체와 어떤 단말로 연결되어 이곳의 상황과 정보를 그대로 전송하고 있는 것이라면….

– 박사님. 혹시, 저 흑염체의 목적이 우리를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종류에 상관없이 저 많은 뮤턴트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마 저들도 탈출을 위해 모여들었다가 예상치 못한 벽에 가로막혀 주검이 됐으리라.

‘지금까지 각층 마다 비슷한 상황을 목격하고 겪었다.’

처음 허브 쉘터의 누더기 골렘 때부터 오염된 쉘터를 지나면서까지, 내내 같았다.

[역시, 자네라면 그리 판단할 줄 알았네.]

– …….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실마리는 잡은 것 같았다.

이제 문제는 흑염체의 목적을 깨부수고 살아 나가는 것이다.

– 정말, 방법이 없습니까?”

물을 수밖에.

저런 건 재난 매뉴얼에도 없는 현상이었으니까.

인데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강호의 질문에 가만히 고개를 저을 때였다.

쿠우우웅.

바닥 저 깊은 어딘가에서 엄청난 울림이 몸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심상치 않은 진동이 따라왔다.

드드드드드.

강호와 일행은 서로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느껴봤던 진동이고 울림이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또?!”

사토시가 먼저 한탄이라도 하듯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모두가 격납고를 향해 돌아섰다.

그런데,

츠즈즈즛.

치직.

흑염체가 어느새 격납고 입구에 들러붙어서 면적을 넓히고 있었다.

그 괴이한 장면을 보고 있자니, 처음 봤던 문장이 절로 떠올랐다.

‘신의 인도는 여기까지.’

강호는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갖게 됐다.

‘설마 했더니, 정말로 그게 목적이었나.’

그리고 다시 한번 폭발음과 진동이 이어졌다.

꾸우웅.

투우우우.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몸을 감쌌던 검은 불길 대신 목적지를 틀어막고 있는 흑막이 더 절망적이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레이나가 달려 나갔다.

타타탓.

허리춤에서 시퍼런 마체테 두 자루가 엇갈려 뽑혀 나왔다.

츠앙.

챙.

그녀는 흑염체 근처에 다다라 마치 3단 멀리뛰기라도 하듯 보폭을 크게 밟았다.

탓, 탕. 파앙.

레이나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며 바닥에서부터 위로 솟구쳤다.

후웅.

휘리리릭!

그녀의 회전은 강력한 한 줄기 토네이도 같았다.

검날이 흑막을 난도질할 때마다 푸른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치카카캇.

취하아아악!

그 장면이 또 장관이었다.

하지만, 레이나의 용오름은 마무리되지 못했다.

파츠츠츠츠.

“으악!”

그녀의 몸에 전류가 퍼지더니 이내 튕겨 날아왔다.

“레이나!”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Status: Ongoing
When a disaster strikes, I know what to do. Only I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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