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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춘봉이가 일어난 뒤, 좀 밍기적거리다 흑호문으로 향했다.

   

    얼마 안 되는 세간살이들을 보따리 하나에 우겨넣고 가고 있는데, 여전히 졸린지 눈을 비비던 춘봉이가 작게 하품을 했다.

   

    “하암…. 괜히 아쉽네. 일 년이나 살던 집인데.”

    “그 집에서 일 년이면 오래 살았지. 내가 봤을 때 자다가 안 무너진 게 천운이야.”

   

    서준의 말에 춘봉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맞긴 한데 참. 왜 이렇게 한 대 치고 싶지?”

    “어허, 금춘봉. 그런 못된 소리 하는 거 아니에요.”

   

    뒷목을 주물러주자 느갸악-! 이상한 소리를 내며 춘봉이의 몸이 굳는다. 뭐야, 얘. 고양인가?

   

    “아무튼…, 어? 어이, 거기!”

   

    험상궂게 생긴 친구 하나가 보이길래 불렀다.

   

    “사, 살귀…?”

    “오, 나 좀 유명해지긴 했나 보네. 이제 뭐 다 알아봐.”

    “시끄러워.”

   

    낄낄 웃으며 그 친구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친구, 근처에 아는 애들 없어? 열 명은 넘으면 좋겠는데.”

    “도, 동료를 팔라는 거냐?”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해. 팔다니. 그냥 평소에 아니꼬운 놈들 있으면 걔네 어디 있나 말만 좀 해주면 되는 거 가지고.”

   

    데굴, 친구의 눈이 굴러간다.

   

    “…잠깐 걸으면 흑사파라는 놈들이 있다.”

   

    빙고.

   

   

    *

   

   

    친구의 말대로 얼마 걷지 않아 허름한 건물 하나가 보였다.

   

    “그, 그럼 난 이만.”

    “어허, 어딜 가려고. 너도 같이 가야지.”

    “알려주면 보내준다 했잖아!”

    “내가 언제?”

   

    진짜 그런 적은 없는데?

   

    머리를 긁적이자 사내도 기억이 애매한지 인상을 찌푸린 채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뭐, 저건 저대로 두고.

   

    콰앙-!

   

    대문을 걷어차고 들어간 서준이 크게 소리쳤다.

   

    “우리 건전한 노동 할 친구 열 명 구해요!”

   

    당연히 반응이 곱진 않았다.

   

    “저건 또 뭐 하는 미친놈이야?”

    “별 병신이 다 있다니까.”

   

    서준을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던 흑사파 사내들이 손에 연장 하나씩을 들고 몰려왔다.

   

    그야 문짝을 부순 미친놈이니 손을 봐줘야 할 것 아닌가.

   

    그게 패착이었다.

   

    “하여간 이 친구들은 항상 맞아야 말을 듣는다니까.”

   

    서준이 검집을 들었다.

    .

    .

    .

    피 묻은 검집을 내려놓았다.

   

    “휴, 이제 가자 얘들아.”

    “…예, 형님.”

   

    원없이 얻어맞고 나니 호칭이 형님으로 바뀌었다. 꼭 맞아야 말을 들어요.

   

    노동자 친구들을 이끌고 뒷골목을 행진하니 시선이 몰려든다.

   

    구걸하는 거지는 몸을 숨긴 채 훔쳐보고, 흑도 친구들은 지나가는 척 예의주시한다.

   

    무시하고 걷기를 잠시, 어쩐지 오랜만에 오는 것 같은 흑호문에 도착했다.

   

    “오…, 개판이네.”

    “쓸 만한 건 싹 다 털렸겠구만.”

   

    춘봉이의 말처럼 흑호문은 이미 뒷골목 친구들에게 싹 다 털리고 난 뒤였다.

   

    어차피 중요한 건 건물이지 내용물이 아니다. 

   

    서준이 어기적어기적 뒤따라오는 노동자 친구들에게 말했다.

   

    “자, 얘들아. 많은 거 안 바란다. 우리 딱 시체만 치울까?”

    “예에….”

   

    건물에 들어서니 시체 썩는 내가 진동을 한다.

   

    복도에 주욱 늘어져있는 온갖 시체들.

   

    거칠게 살아온 흑도 놈들도 기겁을 했지만, 얻어맞는 것보단 시체를 치우는 게 나았나 보다. 군말 없이 시체를 치우는 이들을 바라보며 춘봉이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도 죽었네.”

    “죽어도 싼 놈들이지.”

    “그건 그렇지.”

   

    온갖 인간군상이 다 있는 게 흑도라지만, 흑호문은 개중에서도 악질이었다.

   

    다들 인신매매 정도는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 놈들이었으니까.

   

    그렇게 흑도 친구들의 자발적인 봉사로 시체들을 전부 치운 뒤, 서준이 흑호문 건물 앞에 섰다.

   

    흑호문의 여러 건물들 중 가장 커다란 건물이었다.

   

    “이건 필요 없겠지?”

    “둘이 살 거면 그렇지.”

   

    필요 없다는 말이다.

   

    씩 웃은 서준이 검을 뽑아들었다.

   

    새로이 만들어가는 중인 혼원신공이 그의 심상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점검만 할까?’

   

    거칠게 흐르는 강물, 밝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하늘.

   

    심상에 구축한 하나의 세계를 관조한다.

   

    청류검에서 얻은 것은 그 심상과 기의 흐름. 서준은 검법을 보고 베꼈을 뿐이지만, 사실 심법을 가져온 것과 같다.

   

    물론 구결은 모른다지만 심상과 기의 흐름을 가져왔으면 심법의 구 할은 가져온 셈이다.

   

    세 가지 심법이 입맛대로 섞여 새로운 무언가로 탄생했다.

   

    “스으….”

   

    숨을 들이쉰 서준이 검을 들어올렸다. 검 위로 혼탁한 금빛 검기가 거칠게 일렁인다.

   

    “너…, 그건 또 뭔….”

   

    춘봉이가 눈을 땡그랗게 뜰 때, 서준이 검을 내리그었다.

   

   

    콰자자작────────!!

   

   

    건물의 기둥과 함께 벽 한 면이 완전히 박살났다. 거칠게 남은 검흔에 서준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나쁘지 않아.”

    “아니, 씨발. 이거 뭐냐니까? 난 이런 거 가르쳐준 적 없는데?”

    “아아, 이것 말인가. 이것은 혼원신공이라는 것이다.”

    “너 황운신공에 뭐 섞었냐!? 이 새끼가 미친짓을 하고 앉아 있어! 너 그러다 뒤져!”

    “에이, 괜찮아.”

   

    검으로 집을 철거하는 미친놈을 보며 흑도 친구들이 오들오들 떨었다.

   

    서준은 그들을 흘낏 바라보곤 자신을 노려보는 춘봉에게 말을 걸었다.

   

    “야, 금춘봉.”

    “뭐.”

    “나 초절정이 가고 싶어졌어.”

    “지랄 진짜.”

   

    콰직-!

   

    서준이 기둥 하나를 또 부쉈다.

   

    “초절정이 뭐 누구 집 개 이름이냐?”

    “절정도 개 이름은 아닌데?”

    “…할 말 없게 만드네.”

   

    우지끈-!

   

    기둥이 세 개 부서졌다.

   

    그쯤 되자 건물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신음하기 시작했다.

   

    서준은 손짓으로 춘봉이를 물러서게 하며 다시금 검을 들어올렸다.

   

    그런 서준을 보며 춘봉이 말했다.

   

    “그래도 초절정은 달라. 그건 기를 잘 다룬다고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야. 아무리 너라도 십 년은 더 있어야 될걸?”

    “십 년? 열흘이면 돼.”

    “그건 진짜 지랄인데.”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열흘은 그냥 막 뱉은 거고.

   

    초절정이라….

   

    초절정超絶頂이라 함은 절정絶頂을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절정이란 무엇이냐. 단어 뜻 그대로 최고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아닌데요? 그 위에 초절정이니 화경이니 뭐 많은데요?

   

    그런 소리를 하는 머저리들이 있지만 그냥 멍청한 소리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소리니까.

   

    그 말을 달리 생각하면 초절정부터는 인간이 아닌 인간 언저리라는 뜻이 된다.

   

    

    우르릉-!

   

   

    내지른 검격에 기어코 무너지는 건물을 보며 서준이 씩 웃었다.

   

    “아따, 거 시원하게도 무너지네.”

    “콜록…! 아오 먼지!”

    “에구구 우리 춘봉이 먼지 먹었어요?”

    “…너 요즘 자꾸 기어오른다?”

    “앗, 죄송.”

   

    서준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밟고 올라섰다.

   

    아직 하늘 꼭대기에 오르지 못한 태양 아래 드높이 서서 숨을 들이켰다.

   

    “야──호────!!”

   

    춘봉이 진심으로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쟤 어디 맛 간 거 아니겠지?”

   

   

    *

   

   

    검으로 건물 무너뜨리기.

   

    버킷리스트 하나를 채운 서준이 콧노래를 부르며 새집 단장을 시작했다.

   

    무너져내린 커다란 건물 옆에 있는 아담한 건물이 그들의 새집이었다. 아마 전에는 창고로 쓰지 않았을까?

   

    노동자 친구들? 걔네는 집에 돌려보냈다.

   

    “좋지 춘봉아? 여기는 진짜 무너질 걱정은 없겠다.”

    “응. 니가 무너뜨리지만 않으면.”

    “내가 미쳤냐? 집을 무너뜨리게.”

    “하하.”

   

    영혼 없이 웃은 춘봉이 걸레로 바닥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그나저나 혼원신공은 뭔 혼원신공이야? 내가 가르쳐준 건 어디다 팔아먹고. 애초에 그게 신공은 맞냐?”

    “나중에 밖에 나갔을 때 써먹을 무공도 있어야 될 거 아니야. 니가 밖에서는 황운신공 쓰면 안 된다며.”

    “흥.”

   

    아, 삐졌다.

   

    황운신공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난 춘봉이라 다른 무공을 만든다 하니 질투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후후.”

   

    하지만 이제 나도 금춘봉 마스터다. 전공은 금춘봉 심리학. 저 정도 삐짐은 몇 번 건드려주면 풀린다.

   

    “얍.”

   

    말랑말랑한 볼따구를 사정없이 주무르니 춘봉이 발작을 했다.

   

    “아 좀! 좀! 좀! 볼 좀 그만 만져! 닳겠다!”

    “앗, 그건 안 되지. 내 삶의 낙인데.”

    “뭔 또 삶의 낙까지….”

   

    한숨을 내쉰 춘봉이 문질러져 살짝 붉어진 뺨을 챱챱 두드렸다.

   

    서준은 그런 그녀를 보며 팔짱을 끼고 오만하게 섰다.

   

    “아무튼 지금 당장은 신공이라 부르기 애매하긴 한데, 나중에는 다를 거야.”

   

    애초에 기본 토대가 황운신공이다. 자신이 입맛대로 건드린 탓에 오히려 격이 낮아진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그건 지금 당장의 얘기에 불과했다.

   

    혹시 아나? 나중에는 혼원신공이 천하제일의 무공이라 불릴지.

   

    지금 당장만 해도 스스로에게 딱 맞춘 무공이라 오히려 황운신공보다 잘 맞는 느낌도 있었다.

    

    “그때는 꼭 황운신공이 원조라고 기록이라도 남겨라?”

    “알았다 인마.”

   

    서준이 춘봉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렇게 청소가 일단락되고 난 뒤, 한숨 돌린 춘봉이 서준에게 물었다.

   

    “근데 오늘 청하문도 간다며. 언제 가게?”

    “글쎄. 그냥 내일 갈까? 갑자기 좀 귀찮은데.”

   

   

    – 안에 있는 거 다 안다! 당장 나와라!

   

   

    느닷없이 들려오는 큰 소리에 서준과 춘봉이 서로를 마주 봤다.

   

    “데리러 왔나 본데?”

    “내 이럴 줄 알았다.”

   

    춘봉이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 챙겨. 혹시 싸움 나면 정파라고 손속 두지 말고. 일단 뭐가 됐건 네가 살아남는 게 우선이야.”

    “감동인데?”

    “뭐래.”

   

    밖으로 나오자 푸른 계열의 옷을 입은 사내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 선두에 선 자의 얼굴이 꽤 익숙했다.

   

    “아, 그 청 뭐시기.”

    “청운이다. 문주께서 부르시니 따라와라.”

    “넹.”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청운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같이 온 문도들에게 손짓하며 걸음을 옮겼다.

   

    “가자.”

   

   

    *

   

   

    어디 좆소 문파인 줄 알았던 청하문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서준을 데려온 청운은 잠시 문지기와 대화를 나누더니 서준에게 다가와 말했다.

   

    “똑똑히 들어라. 절대 문주님 앞에서 경망스러운 언행을 보이지 말도록.”

    “넹.”

    “지금 같은 언행을 말하는 거다!”

    “사형, 바로 문주전으로 들라 하십니다.”

    “쯧.”

   

    고개를 끄덕인 청운이 앞장 서서 어딘가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문주전. 꽤 웅장해보이는 건물 앞에서 청운이 허리를 숙였다.

   

    “문주님, 청운입니다.”

    “들어와라.”

   

    목소리가 꽤 중후하다. 청운의 뒤를 따라 걸어들어간 서준은 곧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중년 사내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저놈이 그놈이냐?”

    “예, 문주님.”

    “저런 보잘것없는 흑도 나부랭이한테 네가 졌다고?”

    “…예.”

    “허참, 수련을 좀 더 해야겠구나.”

   

    뒷담을 까듯 앞담을 해대는 문주. 서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저기 아저씨.”

    “조용. 입 다물고 있어라, 천박한 것.”

    “아니….”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닥쳐라.”

   

    쯧, 혀를 찬 문주가 다시금 청운에게 말을 시작했다.

   

    무림에서 방심은 곧 죽음이라느니, 흑도와 싸울 때는 비열한 수를 조심해야 한다느니.

   

    멍하니 서있던 서준이 방긋 웃었다.

   

    “허허, 이 씹년아. 사람 말 좀 하자 새끼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챱챱즈 님, 후원 감사합니다!
힘내서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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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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