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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불사자.

   크림슨가든 아우구스트.

     

   크라슈는 사실 오래전 그녀의 불사를 훔치려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뜻은 아니었다.

     

   ‘아서.’

     

   그가 크라슈에게 눈앞에 크림슨가든에게 그리하라 말하였다.

   하지만 크라슈는 실패했다.

     

   그녀의 불사를 훔치기 위해서 생성된 단 하나의 다이얼 때문이었다.

     

   조건은 간단했다.

     

   크림슨가든 아우구스트보다 강할 것.

     

   그리고 그 단 하나의 조건을 크라슈는 채울 수 없었다.

   그때의 크라슈는 그저 명이 좀 질긴 저주 덩어리였을 뿐이었으니까.

     

   아서는 크라슈가 훔치지 못하더라도 별말 하지 않고, 크림슨가든을 토막 내 용암굴에 직접 담가 두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평생토록 녹고 회복되기를 반복하며 영생을 살 것이란 말을 덧붙이면서.

     

   ‘그때 아서 그 자식이 내게 불사를 훔치게 하려는 건 나를 죽지 않는 저주 흡수 도구로 써먹으려는 거였겠지.’

     

   그러니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크라슈는 눈앞에 현재의 크림슨가든을 바라보았다.

   크라슈가 스킬을 보여준 후 그녀는 여전히 굳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스킬은 그녀에게 저주 같은 불사를 지워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침묵하던 크림슨가든이 다시 입을 연 것은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거래 조건은.”

     

   그리고 그녀의 눈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변했다.

   방금까지 비아냥거림은 한 치도 남지 않고, 자신을 올곧게 바라보는 크림슨가든의 눈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불사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우고 싶은 것이었다.

     

   “내가 강해지게 도와.”

     

   그리고 크라슈는 그 즉시 처음부터 생각했던 거래의 내용을 입 밖으로 꺼냈다.

     

   크라슈는 분명 강해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강해질 것이다.

     

   스킬을 더 많이 훔치고, 비기를 터득하고, 연마하여 끝내는 강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작해야 천재의 영역일 뿐이다.

   그리고 크라슈는 멸망 앞에 천재가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천재는 세상을 바꾼다.

   그러나 천재는 세상을 지키지 못한다.

     

   세상은 천재보다 더한 놈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설령 눈앞에 있는 이가 세계 침식자라 해도 크라슈는 닥치는 대로 모두 집어삼킬 생각이었다.

     

   크림슨가든은 자신이 다루는 종만으로 아서와 비견 되던 강자.

   그녀의 도움이 있다면 지금보다 확실히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난 세상이랑 같이 멸망할 마음 없어.’

     

   사실 크라슈에게 있어서 세계는 좆같았다.

     

   반푼이로 태어나 갖은 고생은 다 하다 인정받기는커녕 동료에게 배신까지 당했으니.

   마음 한쪽에 그냥 멸망해 버려라 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자기가 살아가는 세계다.

     

   세계가 없으면 자신도 없다.

     

   타인을 위한 마음이 아니다.

   오직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멸망을 막는다.

     

   그러니 크라슈는 아득바득 버티고 또 버텨, 다시금 멸망을 막고자 하였다.

     

   그것이 크라슈 발하임.

   독종 취급받는 반푼이였다.

     

   “이건 네 불사를 지워주기 위한 조건과 같아.”

     

   크림슨가든의 다이얼을 풀려면 그녀보다 강해질 필요성이 있었다.

   그 강함이 단순한 눈에 보이는 것인지 혹은 그녀의 인식인지는 아직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다이얼은 그것을 제시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크라슈와 크림슨가든의 목적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크라슈가 강해지면 다이얼의 조건이 채워져 크림슨가든의 불사를 뺏어줄 수 있다.

   그러니 크림슨가든도 크라슈를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스킬에 부여된 조건이라는 게냐.”

   “그래, 그 조건을 채우지 못하면 나라도 네 불사를 빼앗을 수 없어.”

     

   크라슈의 말을 들은 크림슨가든은 팔짱 낀 자세로 그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은 아니군.’

     

   애초에 회귀자가 아무 생각도 없이 자신에게 이런 거래를 제안했을 리도 없다.

     

   ‘강하게 해달라라.’

     

   어째선가 크핫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 아이는 알기나 할까.

     

   무려 용왕족의 제자가 된다는 뜻을 말이다.

     

   ‘……그래, 세계 침식의 등급을 올리며 무의미한 것을 쫓는 것 보단 눈앞에 있는 확실한 걸 키워 보는 것도 괜찮겠지.’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자.

   그자를 찾기 위해 세계 침식의 등급을 올리며 일부러 조사했던 그녀다.

     

   하지만 눈앞에 대뜸 크라슈가 나타났다.

     

   불사를 없애 주겠다면 영혼까지 팔 수 있다.

   제자 따위 무슨 대수인가.

     

   그녀의 입가에 오랜만에 도발적인 웃음이 그려졌다.

     

   “좋다. 그게 조건이라면 키워주마. 널 이 세계에서 최강으로 성장시켜주지.”

     

   자신감 넘치는 크림슨가든을 보고 크라슈는 속으로 겨우 한시름 놨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잘 부탁해. 크림.”

   “그래, 나도…… .”

     

   그 순간 크림슨가든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뭐, 아이야? 방금 뭐라 불렀느냐.”

   “크림슨가든은 부르기 길잖냐.”

     

   크림슨가든은 기막힌 표정을 지었으나 크라슈는 태연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나를 크림으로 부른 녀석은 그놈뿐 이거늘.’

     

   설마 이 세계에서 또 한 번 자신을 크림이라 부르는 이가 나타날 줄은 몰랐던 그녀는 후하고 숨을 내쉰 뒤 주먹을 쥐었다.

     

   “스승이라 불러라.”

     

   그리고 크라슈의 머리를 스승으로서 내려쳤다.

     

     

   * * *

     

     

   설마하니 꿀밤을 맞을 줄 몰랐던 크라슈는 이후 조사원으로 돌아온 크림슨가든의 종과 함께 조사를 마쳤다.

   아직까지도 머리가 얼얼한 기분을 느끼며 머리를 만지고 있으려니 크라슈가 올라탄 마차 창문 쪽에 새 한 마리가 부리로 툭툭 쳤다.

     

   색깔이 무척이나 새빨간 새는 목에 검은색 별점이 있었다.

   크라슈가 창문을 열어주자 그 새는 크라슈의 어깨 위에 올라왔다.

     

   “크림, 색이 너무 눈에 띄는 거 아니냐?”

     

   크림이라 부르자마자 부리로 자신의 볼을 쪼아 들려는 새였다.

   이 새는 다름 아닌 크림슨가든이 보낸 또 다른 종이었다.

     

   “걱정 말거라. 색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크림슨가든은 자기 깃털 색을 검은색으로 바꿔 보였다.

     

   “어떠냐. 못난 제자 놈의 머리색이랑 맞춰줬는데. 까마귀 같은 게 너와 똑 닮았구나.”

   “칭찬 고마워. 까마귀는 머리가 좋거든.”

   “속이 시커먼 게 까마귀랑 딱 어울려서 한 소리다.”

     

   이 새 조만간 구워 먹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크라슈였다.

     

   “그래서 본체는?”

     

   종을 보냈다는 건 본체는 다른 곳에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크라슈가 질문하자 그녀는 자신의 털을 골랐다.

     

   “너도 대충 알고 있지 않으냐?”

   “그놈의 회귀자 취급은.”

     

   그 말마따나 크라슈는 그녀의 본체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다.

     

   그녀는 불사다.

   정확히는 영원히 잠들어 있는 불사다.

     

   그녀의 본체는 이 세계 어딘가에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다.

   그리고 그 잠에서 깨어날 방법은 불사를 지우는 것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는 불사를 지우고 싶어 한다.

   영원한 잠은 어찌 보면 죽음 보다도 더 지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크림슨가든은 세계 침식자 중에서도 가장 많은 종을 다루고 있었다.

   그들의 눈으로 꿈이 아닌 현실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그 종들로 아서와 비등한 전투력을 냈었지.’

     

   물론 그 과정에서 종들이 죄다 죽어 나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것만 보면 크림슨가든의 본체는 아서 보다도 강하지 않을까.

     

   ‘결국 몸이 토막 나 용암에 빠트려지긴 했지만. 모르는 일인 법이지.’

     

   그 사이 마차의 덜컹거림이 느껴졌다.

     

   드디어 마차가 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긋지긋한 본가도 이제 안녕이다.

     

   당분간은 절대로 돌아오지 말아야지.

     

   ‘어차피 머지않아 아버지가 돌아오면 결국 한 번쯤 들르긴 해야겠지만.’

     

   그때까지는 안녕이다.

     

   그렇게 마차에서의 4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크라슈는 드디어 청송관에 도착했다.

     

   고작해야 며칠 남짓 떠났었는데 집에 돌아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으려니 마차 쪽으로 도도도 걸어오는 백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크라슈는 순간 백색의 병아리를 떠올렸다.

     

   그런 병아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비앙카였다.

   그녀는 마차에서 내리는 크라슈 앞에 다가와서는 말했다.

     

   “다녀오셨어요.”

     

   약혼자이니 마중 나온 건가.

   책을 품에 꼭 안고 있는 걸 보아하니 읽다가 마차 소리를 듣고, 급히 온 모양이다.

     

   여전히 무표정한 비앙카는 크라슈의 주위를 한 바퀴 가볍게 돌았다.

   무슨 행동이고 하고 보고 있자 비앙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치시지는 않으셨네요.”

   “어디 다쳐 오기 바랐냐.”

   “위험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요.”

     

   나름의 걱정을 해준 건가.

     

   “빨리 오실 것처럼 말씀하시고, 며칠이 지나서야 오시기도 하셨고요.”

   “나도 최선을 다해 빨리 온 게 이거야.”

     

   비앙카도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오늘따라 비앙카의 표정이 더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러는 순간 알리오드가 크라슈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래, 청송관에 별일은 없었지?”

   “크라슈 도련님 앞으로 편지 한 장이 온 것을 빼면 없었습니다.”

   “편지?”

     

   크라슈가 의아함을 보인 순간 알리오드는 미리 준비해놨다는 듯 편지를 꺼냈다.

   그리고 크라슈는 그 편지를 보자마자 수신인이 누군지 알았다.

     

   편지에 이렇게 입술 자국을 찍어서 보낼 여자는 한 명밖에 없었다.

     

   ‘달링.’

     

   달링 단펠리온, 미래의 연금성주의 것이었다.

     

   별의 성지에 다녀온 지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일찍 연락할 리가 없는데.

     

   크라슈가 편지를 뜯어 내용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크라슈는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난 놈은 난 놈이라 이건가?’

     

   그것은 다름 아닌 변색병의 치료제를 만들어 냈으니까 곧 찾아오겠다는 말이었다.

   그 단시간에 변색병의 치료제를 만들어 내다니.

     

   크라슈는 알리오드를 보았다.

     

   “이건 너에게 좋은 이야기인가 보다.”

   “예?”

     

   변색병에 걸려 있는 딸이 있는 알리오드이기에 크라슈는 그리 말해주곤 편지를 잘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조만간 손님이 올 거야. 달링 단펠리온, 그 녀석이 오면 들여보내 줘.”

   “예, 알겠습니다.”

     

   크라슈의 말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바로 고개 숙이는 알리오드는 그야말로 프로다웠다.

   그러니 크라슈가 그를 옆에 두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크라슈의 눈에 아직도 자기를 멀뚱히 서서 자기를 보고 있는 비앙카가 보였다.

     

   “크라슈 도련님, 비앙카 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 사이 알리오드가 크라슈에게 몰래 말을 전하였다.

     

   “비앙카가 걱정했다고?”

     

   그 비앙카가?

     

   과거로 돌아오고 난 뒤 나름대로 비앙카와 친해지긴 했다만.

   그렇다 해서 그녀가 걱정까지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크라슈 도련님께서 세계 침식 일에 휘말리셨다고 하셨을 때는 본가로 가시려 했습니다.”

     

   하지만 본가까지 찾아오려 했다는 말을 듣고 크라슈는 진심임을 깨달았다.

   감정은 없어도 걱정이라는 것은 한다 이건가.

     

   하긴, 그건 감정이라기보다는 생각의 영역이긴 하니.

     

   그러고 보면 최근 비앙카에게 다이얼을 확인해 보지 않은 지 오래됐는데.

   이쯤이면 그녀의 친구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크라슈는 바로 블랙 후드를 발동시켜 보였다.

     

   그 순간 눈앞에 다이얼이 나타났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다이얼을 보던 크라슈는 잠시 후 그 눈을 크게 떴다.

     

   ‘첫 번째 다이얼이 풀렸다.’

     

   그동안 막혀 있었던 비앙카의 첫 다이얼이 풀린 것이다.

   크라슈는 무표정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비앙카를 마주했다.

     

   이렇기는 해도 이제 나름 비앙카의 친구 정도는 된 모양이다.

   그동안 옆에서 챙겨준 보람이 느껴졌다.

     

   이제 남은 다이얼은 하나.

   이걸로 비앙카는 곧 감정을 되찾게 될 거다.

     

   왜인지 기분이 좋아진 크라슈는 손을 들어 비앙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비앙카는 영문도 모르는 표정으로 크라슈를 보았다.

     

   하지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싫지는 않은지 가만히 있었다.

     

   “비앙카, 밥은.”

   “아직이요.”

     

   아직 한참 커야 할 날인데 굶어서 쓰나.

     

   “알리오드, 맛있는 걸로 준비해 줘.”

   “예, 알겠습니다.”

     

   알리오드가 바로 준비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차에서 비적비적 걸어 나온 까마귀 모습의 크림슨가든이 크라슈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것을 보고, 비앙카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아, 그러고 보니 소개하는 걸 깜빡했네. 새 식구야.”

     

   크라슈는 어쩐지 비앙카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고, 자세를 낮춰 크림슨가든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그러자 비앙카는 조심스럽게 작은 손을 들어 크림슨가든의 털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워요.”

   

   

   

   

     

   크림슨가든도 그런 비앙카의 손길이 마냥 싫지는 않은지 가만히 있어 주었다.

     

   “이름이 뭐예요?”

     

   어째서 까마귀를 데려왔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비앙카가 동물을 좋아했던가.

     

   이름을 묻는 비앙카를 보고 크라슈는 입가에 악동 같은 웃음을 지었다.

     

   “크림.”

     

   이후 크림슨가든에게 한 번 더 쪼인 건 비밀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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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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