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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쿠울···”

“으음···”

자,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더라.

침대 한가운데에 껴서. 양옆을 미소녀로 채운 현 상황에 이르게 된 연유를 재고해 보았다.

이는 바야흐로 어젯밤. 집에 와서 짐을 푼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몸도 같은 방에서 자겠노라.”

-“···뭐?”

아스트레아를 저택의 새 식구로 들이고. 그녀가 쓸 방을 고르던 중.

대뜸 튀어나온 폭탄선언이 그 시발점이었다.

-“이미 아해랑도 같이 자는 모양인데, 이 몸이라고 못 할 거 있더냐?”

-“마리아는 아직 애잖아. 애. 너랑 같냐?”

-“응. 마리아는 이제 오빠 없으면 잠 못 자.”

-“뭘 그리 튕기더냐. 어차피 그대, 허수아비라서 자지도 없잖느냐.”

-“야 미, 미쳤어?? 애 앞에서 지금 뭔 소릴···”

-“···없긴 해.”

-“뭣.”

그렇게 나는 KO패. 대업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느니, 밀어붙이는 아스트레아를 막지 못하고 현재에 이른다.

마리아도 베개 싸움 좀 하고 나니까 서로 친근하게 대하는 거 같더라. 아스트레아도 어쩌면 이걸 노렸던 걸까.

“오빠아···마리아가, 달아줄게에···.”

넌 대체 뭔 꿈을 꾸는 거니.

“두 사람 다! 슬슬 시간 됐어. 그만 일어나. 오늘 길드 가기로 했었잖아.”

“우움···마리아, 2시간만 더어···흐걋?”

덮은 이불을 냅다 치워버리며, 예상했던 농성도 가볍게 저지했다.

옆에서 동료가 발바닥 한 방에 당하는 걸 목격한 아스트레아는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우우···오빠는 돌아오자마자 일 생각만 해. 마리아는 좀 더 알콩달콩한 시간이 필요해.”

“어린 소녀의 약하고 민감한 부분을 알고서 정확히 찌르다니. 안 달렸다고 만만히 볼 게 아니었구나.”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는 오빠가 어제 설명해 줬잖아. 자, 얼른 밥부터 먹자.”

발바닥을 가린 채 쌉소리를 지껄이는 아스트레아는 무시한 채. 비틀대는 마리아를 식당에까지 데려갔다.

비몽사몽 빵을 우물대는 모습은 조금이라도 재워주고 싶은 마음이 물씬 차오르나. 안타깝게도 오늘 만나야 할 인물, 길드 마스터는 바쁜 인물이었다.

* * *

A급 모험가의 지위는 별다른 약속 없이도 길드 마스터와의 만남을 찔러볼 정도는 되었다.

그것도 최연소, S급 유망주의 요청은. 마침 안정기인 일정과도 겹쳐 무사히 자리가 성사되었다.

“모험가들 사이에, 배신자가 숨어 있다?”

모험가 길드, 여펨아을 지부의 길드 마스터. 전직 S급 모험가 그랜드는 눈을 좁히며 그리 되물었다.

이마가 훤히 드러나, 잿빛의 머리와 인상적인 콧수염이 일부 하얗게 세서는. 피로에 찌든 눈으로, 미안함을 자극해 왔다.

“네.”

그러나 일전, 황녀의 호위 마차를 습격한 도적단 사건. 여기에 숨겨진 내막이 존재함은 겨우 그런 사유로 묻어갈 안건이 아니었다.

원래는 나 역시 크게 관여하지 않으려 했던 입장으로서. 이리 말할 자격은 없을지 모르지만.

천마신교 길드를 다녀온 이래, 많은 생각이 들었다. 

“거의 확실합니다.”

현실로 돌아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게 최우선 목표라는 점에는 일절 변함이 없다.

허나 이 세계를 좋아했고, 이제는 직접 살아가는 한 사람의 주민으로서. 적어도 눈앞에 당면한 문제만은 힘이 닿는 한 해결하고 싶어졌다.

“···납득시킬 근거는 들고 왔다고 믿겠네.”

“이번 디스포제행 호위 의뢰에서 벌어진 도적단의 습격, 마스터도 들으셨을 거로 압니다. 그 규모도요.”

A급 모험가만 둘에, 거기다 황녀의 호위 무사도 낀. 단순 호위 의뢰라기엔 명백히 오버 파워였던 파티가 전멸할 뻔했다.

이처럼 양과 질이 되면 대형 상단이나 노리는 한 철 장사가 보통이다. 아무리 시대가 지났어도 이건 마찬가지일 터.

평민이나 가끔 지나가는 길목에 무작정 죽치고 있었을 리가 없다는 거다.

“마침 나타난 대박 건수를, 그 많고 많은 길목 중에서 정확히 기다렸다가 습격했습니다. 이게 정녕 우연으로 벌어질 만한 일일까요?”

“···그러니까 외부로 정보를 유출한 내부의 공범이 있을 것이다. 이 얘긴가?”

“그 말대롭니다.”

“하아···.”

그랜드가 한숨을 깊게 내리셨다.

본인 임기에, 그것도 하필이면 말년일 때 이런 봉변이 터졌으니. 환장할 법도 하다.

“도적놈들이 직접 캐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러면 결국 걔들이 어떻게든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는 소리니까. 경비 소홀이든 내통이든 영주님을 걸고넘어지게 되겠죠”

사실 영주도 의심망에 들어와 있기는 하다.

다만 당장에 건드릴 껀덕지가 없기에. 우선 집중하는 건 모험가 길드에 한해서다.

정말 영주도 도적들과 한통속이었고, 내부 스파이까지 잘려 나가면 어련히 움직임을 보이겠지.

“그래···알겠다. 길드 차원에서 조사해 보도록 하지.”

“아뇨. 아무래도 그러면 늦죠. 눈치라도 채면 도망칠지도 모르고요. 배신자도 저희가 특정하겠습니다. 마스터는 모험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등, 협조만 부탁드릴게요.”

“모험가들을 불러 모아서 어쩔 생각이지?”

“하나하나 검증하려고요.”

“하나하나, 검증을 해?”

허. 마스터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곤 꽉 쥐는 주먹에선 분노와 짜증. 그 애매한 경계에 걸친 감정이 느껴졌다.

“마리아의 체면을 봐서라도 여태 참았건만, 적당히 해라! 하나하나 검증하겠다고? 대체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벌컥-

“얘기 정돈 들어볼 수 있잖아요!!”

“?”

“?”

각오는 했던 마스터의 일갈이 엄습하려던 차.

마스터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붉은 머리의 여인이 나타났다. 볼에 문짝과 똑같은 문양이 벌겋게 새겨진 것이, 내내 귀를 대고 엿들은 모양이었다.

“샐리 너 뭐야. 설마 접수대도 내팽겨치고 여지껏 문밖에서 훔쳐 듣고 있었냐?”

“1, 10분 뒤면 점심시간이잖아요!  어차피 이 시간엔 모험가도 잘 안 온다고요···!”

글쎄, 우리 못해도 20분은 전부터 얘기하고 있지 않았나?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최소한 어떤 방법으로 검증할지부터 들어보자고요. 무작정 화부터 내지 마시고!”

“이게 갑자기 고향도 아닌 웬 시골 바닥 내려간답시고 휴가를 내더니만. 왜 돌아오자마자 유난이야? 뭐 잘못 처먹었어?”

“오빠. 언제 여자를 또 꼬셨어.”

“내가 뭘. 저 사람 모험가 등록한 이후로 처음 보는 거 마리아 너도 알잖아.”

어쨌거나 기대도 안 한 지원사격은 고마울 따름이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막무가내인 면이 없지는 않았는데.

뭐, 이유야 아무렴 어떤가. 본인한테 접수받으러 오는 사람 중에 배신자가 있다고 하니 무서웠는갑지.

“냅다 추궁하겠다는 게 아니라, 뭔가 방법이 있으신 거잖아요. 그렇죠?”

아무리 그래도 저 신뢰 가득한 눈빛은 진짜 통 영문을 모르겠다.

황궁까지 가서 포상을 받아온 거 때문에 저러나? 그걸 감안해도 지나치다. 본캐 키울 적에도 저런 취급은 거의 끝물에서나 받았었다.

“예, 뭐어···제 스킬을 이용할 거긴 합니다. 방식도 형태도 추궁이랑은 거리가 멀 거고요.”

“하아···그래 좋아, 어디 들어나 보자고.”

이해가 안 가기는 마스터도 매한가지였는지. 반쯤 해탈한 태도로 발언을 시켰다.

“고정 데미지 10을 주는 콩알탄을 대량으로 준비해 주세요. 길드 관련인 전부가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떠먹여 준 기회를 내다 버릴 이유는 없었다.

* * *

여펨아을에서 활동하는 모든 모험가는 길드 마스터로부터 호출 명령을 받았다.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순차적으로.

그들이 불린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길드에서 새로 장만한 허수아비에 콩알탄을 사용하는 것.

순 이상한 주문에 의아해들 하다가. 반항했다간 더 귀찮아질 게 뻔했기에 다들 잠자코 순응했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오빠가 알몸으로···많은 사람들 앞에서···헉.”

“마리아야 그게 무슨 소리니.”

그 허수아비는 당연 나였다.

나는 로브를 벗고 받침대에 발을 고정한 상태로 배치되어. 찾아오는 모험가들한테 콩알탄을 맞았다.

“그대와 있으니 재밌는 일이 끊이지를 않는구나. 이 몸이 주인 하나는 잘 삼은 거 같으니라.”

“조만간 엄청 부려 먹어줄 테니까, 지금의 여유나 잘 만끽해 두셔. 천마 나으리.”

이런 자해 돌림빵 이벤트를 연 까닭은 내가 변태라서 거나 그런 게 아니다.

[아군 보정:자신 및 아군으로부터 받는 데미지가 30% 감소한다.]

료나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얻은 패시브 스킬. 아군 보정.

이것과 10이라는 고정 데미지를 주는 콩알탄의 조합으로 아군과 적을 구분할 계획이었다.

[7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아군 보정이 적아를 판단하는 기준은 마리아와 아스트레아의 조력으로 철저하게 검증했다.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식별을 못 해도, 전지적 시스템 시점으로 편리하게 구분 및 적용을 알아서들 해준다.

즉 이런 식으로 데미지가 30% 깎여서 들어오면 우리 모험가 동료.

[1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깎이는 거 없이 다이렉트로 들어오면.

그놈은 배신자라는 소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마리아는 무작정 가운데를 간지럽히는 것보다도 옆면을 쓸어내리는 걸 더 간지러워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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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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