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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18 – 도착, 입학시험장>

     

    경비들에게 단단히 찍힌 탓에 결국 도박장을 이용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도박장에서 돈을 벌려고 했던 목적은 조나에게 화해의 A세트를 사주기 위한 것.

    탈출포트에서의 대화 이후, 조나와의 관계가 개선되었으니 이제는 선물을 살 필요가 없었다.

     

    “해냈다!”

    “축하드립니다, 아가씨. 몇 년 뒤에는 대식가 대회에 출전해도 되겠군요.”

     

    수련, 식사.

    수련, 그리고 또 식사.

     

    뷔페영업시간을 노린 적극적인 식사 덕분에 어느덧 뷔페에서 판매하는 100종의 요리를 모두 식품도감에 수집할 수 있었다.

     

    “대식가 대회? 맛있는 음식 많이 나와요?”

    “보통 한 종류의 음식을 많이 먹는 대회입니다.”

    “그럼 안 갈래요. 전 딱히 음식 하나만 많이 먹고 싶은 게 아닌걸요.”

     

    곧바로 다음 수집코너를 찾는 것이 조금 속물스럽기는 하다만, 플레이어라면 모름지기 수집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법!

    어느 지역을 가든 어떤 음식이 유명한지, 어디가 맛집인지 찾는 건 훌륭한 플레이어의 기본소양이다.

     

    “아, 엄마아. 저는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요. 그래야 근육이 많이 붙는다고 형이 말했는걸.”

    “얘도 참, 편식 하면 못써요. 고기를 많이 먹을거면 야채도 많이 먹어야지. 브로콜리를 갈아 만든 채식요리만 가득 담았던 저 애를 본받으렴.”

     

    귀족가 사모님의 꾸중을 받던 아이가 흠칫 놀랐다.

     

    “막스?”

    “오크노디!”

    “아는 사이니?”

    “어제 키즈존에서 만났어요. 저희 막내랑 잠깐 놀아준 착한 애에요.”

    “어머, 친절하기도 해라. 우리 애들이랑 놀아줘서 고맙구나, 오크노디양. 혹시 가문의 이름이…”

    “실례합니다, 부인. 오크노디 아가씨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본가로부터 성을 드러내는 것을 아직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저런. 안된 일이군요. 부디 그 아이가 가문의 이름을 허락받기를 기원할게요.”

     

    귀족부인은 오크노디를 외면하고 막스의 귀를 잡아끌었다.

     

    “자, 막스. 여자아이에게 한눈 팔지 말고 얼른 피망이랑 파프리카도 먹으렴. 자꾸 채식을 피하려고 하면 제일 맛없는 채소인 오이도 올릴 거란다.”

    “아, 안 돼요! 오이만큼은 제발!”

     

    귀를 잡히고 끌려가면서도 무언가 뜻을 전하려는 것처럼 두 눈에 힘을 주어 시선을 주던 막스.

     

    “하룻밤 사이에 소년을 한 명 홀리셨군요.”

    “그런 거 아니에요. 막스는 그냥 친구인걸요. 그것도 어제 처음 안면을 튼.”

    “아신다면 다행입니다.”

     

    도감수집은 끝났다.

    비공정의 여행도 끝났다.

     

    [승객 여러분, 본 비공정은 목적지인 시험의 섬에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즐거운 여행이 되셨길 바라며 다시 여러분을 모실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승무원들의 안내를 따라 내리는 승객들.

    이번 <입학시험장>은 건조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피부건강에 해로운 섬이었다.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를 따라 마차가 연달아 들어오고, 바다로는 여객선이 들어오며, 공중으로는 멀리 비공정 몇 대가 느릿느릿 날아오고 있다.

    게임 인트로 영상에서 몇 번이고 보았던 풍경. 입학시험장으로 모여드는 수험생들의 모습을 담은 컷씬 사이로 슬쩍 지나가는 광경 중 하나다.

     

    참고로 이 게임.

    처음에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을 목표로 만들어졌다가 개발과정에서 회사가 한 번 망하고 아카데미 졸업까지 학생을 키우는 육성물 게임이 됐다.

    갑자기 왜 이런 소리를 하냐면, 저기 막 배에서 내리는 밀짚모자 소녀가 눈에 띄어서 그렇다.

     

    “아앗 내 모자!”

     

    모자가 바람에 흩날리더니 높은 나뭇가지에 걸렸다.

    그 광경을 눈으로 ‘인식’한 탓인지 머리가 가볍게 지끈거렸다.

     

    <호감도 이벤트>

    밀짚모자소녀의 아이덴티티, 밀짚모자가 높은 나무의 가지에 걸려버렸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하얀 원피스에 샌들을 신은 청초한 아가씨에게 호감을 따고 싶다면 지금이 바로 기회.

    나무를 오르든, 사다리를 구해오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가장 먼저 모자를 구해 아가씨에게 전해주도록 하자!

     

    참 헛웃음이 나오는 호감도 이벤트다.

    입학시험에서 소녀의 호감도를 사서 어쩌자는 건지.

     

    “구해주실 생각입니까?”

    “딱히? 저 정도도 자기 힘으로 되찾지 못할 거면 입학시험에 지원을 하질 말았어야죠.”

    “매정하시군요. 아가씨.”

    “누구 덕분에요.”

    “오해마시길. 칭찬이었습니다.”

    “저도 칭찬이었어요.”

     

    NPC들은 또 좋다고 저걸 나무를 오르다가 자빠지고, 너무 높이 올라갔다가 내려가기 무서워서 엉엉 울고, 또 그걸 구해줬더니 구해준 남자애가 얼굴을 붉히며 덩치 큰 남자에게 반하고 난리가 났다.

    훈훈하게 박수를 치는 관중들 사이에 섞여서 같이 박수를 치고 있자니 밀짚모자녀 표정이 굉장하다.

    해탈했다고 해야 하나.

    그냥 새 거 사야지, 하고 체념하고 있다.

     

    ‘불쌍하긴 하네.’

     

    조연급 NPC라도 나왔으면 밀짚모자를 구해주는 NPC도 한 명쯤은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덩치 큰 털보가 나무 밑에 섰다.

     

    “비켜라, 쥐방울들아. 다치기 싫으면.”

    “오옷, 원숭이 수인이잖아!”

    “원숭이들은 나무를 잘 탄다지?”

    “저 덩치로?”

    “오르다간 나무가 부러질 것 같은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젤이 난처한 웃음을 짓는 모습이 보였다.

    호위랍시고 고용한 놈이 존나 지 맘대로 설쳐서 곤란한가보다.

     

    “저것만 보고 가죠.”

    “시험관에게 덤볐던 당돌한 수인이군요.”

     

    조나와 리프와 함께 셋이 나란히 서서 구경을 하고 있자니, 원숭이수인놈이 등에 짊어진 봉을 꺼내고는 어깨를 뒤로 잔뜩 당겼다.

    나무오르기와는 전혀 동떨어진 자세에 곧 일어날 일을 깨닫고 뒤늦게 거리를 벌리는 관객들.

     

    쿠우웅─!

     

    묵직한 타격음이 고막을 강타하더니, 나무가 내지르는 비명처럼 잎사귀가 흔들리고 쏟아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후두둑

    후두두두둑

     

    “꺄아아아악!!”

    “버, 벌레다!!”

    “아아악, 장수풍뎅이한테 손가락을 물렸어!”

     

    벌레 피하랴, 잎사귀 피하랴, 난리가 난 구경꾼들.

    이쪽으로도 바람을 타고 벌레와 나뭇잎이 일부 날아왔지만 간식바구니와 양산을 들고 있던 리프가 양산을 앞으로 내밀었다.

     

    빙글

    타다다닷

     

    가볍게 돌린 양산에 좌우로 튕겨나가는 잎사귀와 벌레들.

    주변에 있다가 옆으로 튄 파편들에 맞은 구경꾼들이 불만스레 쳐다보다가 조나의 험악한 얼굴을 보고는 우물쭈물하며 거리를 벌렸다.

     

    사르륵

     

    난리통에서 봉을 빙글빙글 휘두르며 혼자만 벌레와 나뭇잎들을 전부 쳐낸 원숭이수인.

    그가 봉 끝으로 밀짚모자를 받아내고 밀짚모자녀에게 내밀었다.

     

    “왜 그리 풀이 죽었나, 아기꽃사슴.”

     

    우욱 씹.

     

    “이 모자를 받으면 기운이 좀 돌아오겠나? 나의 갈색꼬리사슴.”

     

    밀짚모자녀는 하나도 안 고마운 얼굴로 말했다.

     

    “후에에에엥!! 아저씨 때문에 벌레 비를 맞았단 말이에요. 머리에도, 원피스에도, 온통 진딧물에 벌레 투성이잖아요! 으아아앙!!”

     

    [밀집모자녀의 호감도이벤트가 종료됐습니다.]

    [아무도 호감도를 얻지 못했습니다.]

     

    뭐, 이런 일도 있는 법이다.

    편법공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고인물이 아니면 저런 역효과도 보기 마련이다.

     

    “구경거리 하나는 알차게 즐겼군요.”

    “그러게요.”

     

    밀짚모자녀도 참 고생이다.

    호감도 이벤트 같은 웃기지도 않는 것 때문에 저런 고생이나 하고 다니다니.

    히로인이라는 여캐들이나 그걸 <구원>하겠답시고 고생하는 남캐들이나 피차 억지스러운 게임이벤트 때문에 고생이 많다.

     

    “어이, 아가씨. 시험장은 여기 언덕이잖아.”

    “저 사람들, 어딜 가는 거야?”

    “저희는 신경 쓰지 마세요. 관광하러 왔거든요.”

     

    시험생들에게 대충 그리 변명하며 손인사를 하니 좋다고 또 인사를 받아준다.

    아쉽다는 얼굴로 언덕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수많은 참가자들과 재밌다는 얼굴로 내 뒤를 따라 드문드문 샛길로 향하는 사람들.

     

    “원숭이수인도 따라오는군요.”

    “골드티켓까지도 이쪽인가봐요.”

     

    슬슬 티켓의 차이가 나오나보다.

    아이언, 브론즈, 실버 티켓 소지자들의 시험장소가 언덕 위인 것과 달리.

    골드, 플래티넘 티켓 소지자들의 시험장소는 섬의 보다 깊은 곳으로 이어졌다.

     

    30분가량이 지났을까.

    이만하면 꽤 들어왔다 싶을 때, 수학여행을 갈 때마다 종종 보고는 했던 광경을 발견했다.

     

    “석탑?”

     

    크고 작은 돌들이 여기저기에 탑을 쌓아 올라가있는 광경이 보였다.

    별 관심 없이 지나가는 참가자들과 달리, 나는 입학시험의 기믹을 알고 있다.

    시험장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특별한 풍경은 곧 이어질 시험에 대한 힌트.

    입학시험 1차 관문은 아무래도 돌탑 쌓기 인가보다.

     

    “안 됩니다.”

    “…제가 뭘 했다고 안 된대요?”

    “그냥 해본 소리입니다.”

    “거짓말. 제가 돌을 삼킬까봐 그런 거죠?”

    “아시면 부디 주의해주십시오. 시험이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저희가 지켜봐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가.

    조나와 리프도 시험이 시작되면 함께할 수 없다.

     

    “외부인의 출입은 여기까지입니다. 입학시험에 참석하러 오신 분들은 티켓을 보여주십시오.”

     

    아치형의 관문을 앞두고 승려복에 빗자루를 든 문지기 스님이 나타났다.

    조나와 리프가 뒤에서 말했다.

     

    “아가씨라면 충분히 합격하시리라 믿겠습니다.”

    “사탕주머니입니다. 출출하실 때마다 하나씩 꺼내어 드십시오.”

    “고마워요, 조나. 리프. 꼭 합격할게요!”

     

     

    * *

     

     

    이따금 고개를 돌리며 배웅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살펴보는 오크노디.

    그 소심한 모습에 리프가 손을 흔드는 자세 그대로 입만 달싹이며 말했다.

     

    “걱정이군요. 아가씨는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가 싶다가도 정이 든 사람에게는 너무 약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걱정 마라. 시험장에는 우리가 아니라도 아가씨를 지키려는 사람이 있다.”

     

    원숭이수인과 함께 옆을 지나치는 지젤.

    조나와 리프의 시선에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는 모습이 오늘만큼은 다행이구나 싶었다.

     

    “이때를 생각해서 저 자를 살려두셨습니까?”

    “잊지 마라. 모시는 우리에게야 아가씨지만 조직에게는 일개 ‘장학생’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다른 예비장학생들이 아가씨를 견제할지도 모른다.”

     

    입학시험 자체는 걱정하지 않는다.

    조나가 걱정하는 것은 경쟁자들의 습격.

    암상인 지젤은 조직 내부의 경쟁자들로부터 아가씨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번견이었다.

     

    “아가씨도 이제 보이지 않는군요.”

    “합격선물을 준비하도록 하지.”

    “먹을 거면 되겠죠.”

    “의견이 일치했군.”

     

    집사와 메이드는 아가씨의 합격과 무사귀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고는 확신했다.

    두 사람 다 보이지 않는다.

    이쯤이면 절대로 들키지 않겠지.

     

    “아앙”

     

    입을 크게 벌리고는 돌탑에서 몰래 훔친 스탯석을 쏙 집어넣었다.

     

    [스탯석을 사용했습니다.]

    [랜덤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들키면 스탯석 압수 당할까봐 눈치 보느라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헤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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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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