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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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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다! 배가 온다! 놈들이 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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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만이 땅을 비추는 어두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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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책 너머 바다를 바라보던 무인의 시선에 커다란 선박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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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초는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지르며 적습을 알리는 북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곧이어 봉화에 불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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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화살에 불을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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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누비는 배를 멀리서 가라앉히기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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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좋은 방법은 대포를 쏴 갈겨 침몰시키는 방법이지만, 군대가 아닌 이상 대포를 쓸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차선책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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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전(火箭)을 준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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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 항구를 맡기로 한 해남검문의 장로, 이두승의 외침에 마교와의 전쟁에 자원한 마을 사람들과 해남검문의 무인들이 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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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을 쏘되, 적들이 접근하면 마을 주민들은 미리 전해둔 은신처에 숨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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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겠으니 걱정 말게. 바닷일로 단련된 근육의 힘을 보여줄 테니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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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무에 자원한 촌장이 호기롭게 외치며 가장 먼저 시위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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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 도망치지 않고 싸움에 임하니, 어찌 마을 장정들이 나서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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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에 대한 재능이 없어도 오랜 어부 생활로 다져진 근력으로 활시위 정도는 당길 수 있을진대. 명중률을 장담할 수 없더라도 숫자로 어떻게든 상쇄할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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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수십명의 장정이 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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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풍인가. 하지만 바람이 강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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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로가 몸을 밀어내는 바람을 느끼며 얼굴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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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가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바람이었다. 어떤 배도 역풍을 받으면 쉽게 나아가지 못할 터. 하지만 지금은 순풍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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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화살이 멀리 가지 못하고 바람에 꺾이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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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구 주변에 두른 목책은 바닷물을 잔뜩 머금어 불이 붙지는 않겠지만, 목책에 불이 붙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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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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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장은 입을 떼지 않고 목책 너머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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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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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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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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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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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으로 보이던 배가 엄지 만하게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이 달렸다. 

       

       그때, 이 장로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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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순간 시위를 놓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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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말로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그 말을 알아듣고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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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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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 누구도 시위를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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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당기는 시위 한 번에 해남의 운명이 걸려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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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윽고,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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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를 놓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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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승 장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늘에 불꽃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바다에 떨어져 사그라들고 말았지만, 일부는 배를 향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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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가면 도착하기도 전에 배가 타버릴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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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할 별동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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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쳐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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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되면 몸으로라도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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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든 배를 항구에 박아야 한다. 벽력탄이 제대로 효용을 발휘하려면 어떻게든 배를 해남도에 대야만 했으니까. 별동대의 검이 어지럽게 하늘을 뒤덮은 불의 비를 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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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시…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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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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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눈팔지 말고 막아! 다른 건 몰라도 돛대만은 사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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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가 불타도 괜찮다. 어떻게든 도착하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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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돛이 타버리면…그들의 마지막 모험은 허무하게 끝나게 될 터. 별동대는 이를 악물고 돛 하나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분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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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운일까, 아니면 지옥으로 가기 전 신고식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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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차례 화살비가 끝나고 별동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돛에 불이 붙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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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갑판에 불이 붙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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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육호, 불 끌 방법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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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거 없으니까…이대로 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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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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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 사실은 북쪽 항구를 수비하고 있는 무인들에게 그리 좋지 않은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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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이 항구에 배를 대려 한다! 해남검문의 무인들이여! 발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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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얄궃게도 바람은 저들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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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력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저 불타는 배가 곧 부두에 부딪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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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승은 허리춤에 매달려있던 검집에서 검을 뽑고 단전에서 내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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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전을 떠나 혈도를 타고 질주하는 내공이 이윽고 검을 타고 푸른 기로 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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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기(劍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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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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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시선을 끌기 위함인가, 아니면 더 큰 무언가를 노리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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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로는 이윽고 부두에 부딪혀 산산이 조각나는 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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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배에서 튀어나오는 여덟 명의 무사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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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재림! 만마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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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두에 뛰어내리자마자 십육호의 팔이 원을 그렸다. 전형적인 투척 자세. 이 장로의 시선이 일순간 십육호와 마주치고, 그도 동시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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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 많은 무인으로서의 직감이 저 물건이 위험하다 경고를 보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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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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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로의 강맹한 내력이 실린 좌수검이 거침없이 심지에 불이 붙은 채 날아오는 구체를 향해 휘둘러졌다. 이윽고 1척짜리 검기에 베인 벽력탄이, 북쪽 항구를 폭음과 함께 빛으로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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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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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높으신 분을 하나 처치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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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뭐하냐. 다 죽게 생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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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이라도 해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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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몸뚱아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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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십이호가 킬킬대며 화살이 관통한 팔을 보란 듯이 흔들었다. 직전에 먹은 술 덕분인지, 통증은 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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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그냥 죽어가고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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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를 잔뜩 흘린 그의 눈이 흐릿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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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어먹을 인생, 평생 훈련만 받다 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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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고통. 어지러운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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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십이호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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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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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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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북쪽 항구에서 일어난 폭발에 불길한 상상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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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벽력탄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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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중후반 부터 나오는 벽력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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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에서 폭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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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혹스러워하는 무광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하지만 그런걸 신경 쓸 여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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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력탄으로 보이는 폭발이 일어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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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이 열세를 뒤집을 수 있는 패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기존에 계획해두었던 전술을 재고할 필요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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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더라도 벽력탄 하나에 병력이 쓸려나갈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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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멸하지야 않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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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문인, 가능하면 독화살로 저들이 접근하기 전에 끝장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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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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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문인도 방금전의 폭발에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듯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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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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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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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령아, 지금은 널 봐주지 못할 것 같으니 돌아가서 대기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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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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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다시 돌아들어갔다.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니 내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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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주변이 조용해지자 곧바로 장문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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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전의 폭발, 인위적으로 일어난 폭발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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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그렇게 느꼈다네. 수십 년 전의 일이 떠오르는군…벽력탄이라니. 다시 돌아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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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문인의 탄식이 밤공기에 섞여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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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폭발을 보고 바로 얼굴을 굳히더라니, 역시 벽력탄을 본 적이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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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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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력탄의 위험성을 알고 있냐 모르느냐는 아주 큰 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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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목인인 내가 벽력탄을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니,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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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들이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온다면 벽력탄인지 뭔지 하는 걸 쓸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함에 잘 밀봉해서 들어올 가능성도 있으니, 안심은 하면 안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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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밀봉한 함에 담아서 왔다면 잠깐 물에 들어간 정도로는 완전히 젖지 않을 테니까.

       ​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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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역에도 비슷한 게 있습니다.”

       ​

       나는 장문인의 의아함 섞인 물음을 적당히 얼버무렸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으니까.

       ​

       그리고…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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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문인. 삼대제자들을 시켜 물을 긷어와 나무 위로 올라가게 시켜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물이 담긴 호리병도 하나 갖고 오라고 해주십시오.”

       ​

       원작에서도 벽력탄은 귀한 물건이라고 했으니 많이 들고 오지는 않았겠지.

       ​

       원작 최종 전투에서도 사용한 벽력탄이 열 개 남짓이었으니,

       ​

       많아도 3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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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가 북쪽에서 터졌다고 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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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 정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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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이어도 두 번만 어떻게 막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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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여기 물 담아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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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령이 물을 직접 떠다 준 건가. 나는 물이 가득 찬 호리병을 혜령에게서 받아들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호리병. 

       ​

       이 정도 물이면 충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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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령, 잊지 마라. 앞으로 나오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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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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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무거운 목소리로 경고했기 때문일까. 혜령이 갓 전입한 신병처럼 빠릿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넌지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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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치지 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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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도요. 그리고 장문인…아니 큰아버지도 다치시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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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 걱정하지 말거라. 저런 쭉쩡이들에게 내가 당할 것 같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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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문인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호기롭게 웃으며 혜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정이 진하게 묻어나는 손길에, 혜령의 걱정 섞인 눈빛이 장문인을 스쳐 내게도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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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하지 마라. 단 200명으로 1만의 군세를 패퇴시킨 적도 있으니.”

       

       그때를 생각하면 이건 그렇게 큰 위기도 아니다.

       ​

       “장문인! 남쪽에서 봉화가 타오르고 있습니다!”

       ​

       …그렇게 스스로를 되뇌이며, 산 위에서 남쪽을 내려다본다.

       ​

       슬슬 시작인가.

       ​

       나는 흥분으로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고, 흙바닥에 꽂아둔 폴액스를 뽑아 어깨에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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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살아서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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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발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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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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