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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

        

        

        많은 학생들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사실 대학교 교직원들의 범주엔 교수와 조교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포함된다.

       

        

        가령 경비원이 교내 경비와 안전을 담당하고

        또는 사무보조가 행정직 업무를 통틀어 관리하는 것처럼

       

        

        마치 식사 중엔 식당을 청소하는 직원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의식하지 않으면 주변 시야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정원사도 그와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엘리자베타가 이반을 정원사에 꽂아 넣은 것이었다.

        

       

        교수와 조교처럼 눈에 띄는 직군도 아니고, 그 어디에 박혀 있더라도 이상할 것 없는 한직이며,

        

       

        동시에 정해진 업무가 없는 보직이다. 애초에 정원이 있어야 정원사가 필요한 법인데, 얀스크 대학엔 정원이 없었으니까.

        

        

        “음.”

        

        

        당연한 일이다. 수도 한복판에 만들어진 대학교에 정원이나 화원 따위로 부지를 낭비할 리가 없지 않은가.

        

       

        따라서 왕녀가 자리를 만들어준다 하더라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정말 중요한 인물이거나, 또는 엘리자베타가 대학 내에서 무언가 뒷공작을 벌이려 한다면 이보단 중요한 직군에 요원을 배치했으리라 생각했을 테니.

        

       

        왕자파는 아마도, 엘리자베타의 부하 중 하나가 슬쩍 자기 지인을 취업시켰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 정도는 왕국에 만연한 ‘아는 사람 낙하산 꽂아서 연금이나 빼먹기’ 정도의 사소한 탈법에 불과하니까. (위법은 아니다. 귀족원에서도 이 정도의 비리는 오히려 청렴하다는 인식이 있는 탓이다.)

        

        

        “역시 여기였군.”

        

        

        따라서 얀스크 대학의 정원사는 시간이 많다.

        

        충분한 여가 활동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이 시점, 얀스크 대학 정원사의 여가 활동은 폭발물 제거였다.

        

        

        ‘경비원의 동선과 교내 인구의 이동 반경, 그리고 각 건물의 시야각을 모두 고려했다.’

        

        

        이 녀석들은 ‘전문가’다.

        

        이반은 세 번째 폭발물을 제거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조잡한 사제 마력 폭탄이었지만, 그렇기에 범인군을 특정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반이 폭발물을 특정하고 찾아다닌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하나, 아카데미 입학식에 습격이 일어나는 것은 ‘상식’이니까.

        

        하나, 하늘에 폭격기가 떠 있고, 방첩사령부의 경계가 극도로 치솟은 지금 시점에서, 아카데미를 습격할 수 있는 조직은 반드시 ‘전문가’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상대의 동선을 역설계하면 폭탄을 심을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

        

        경비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

        그러면서 동시에, 혹시 모를 민간인에게 노출되지 않는 음지.

        거기에다 각 건물의 창문에서 누군가가 포착할 수 없는 사각.

        

        그 조건들의 교집합을 뒤지고 다니면 폭탄이 나온다. 이쯤 되면 알감자를 수확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대충 위치를 파악하고, 설렁설렁 걸어가서, 툭 하고 집어 오면 그만.

        

        

        “이젠 이게 누구 소행이냐, 그것 뿐인데.”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짚이는 놈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

        

        마족, 가능성이 가장 낮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의심스럽다.

        

        이 녀석들은 얀스크 대학을 테러할 동기가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이 녀석들이 머저리가 아니라면 지난 실패 직후에 또 다시 이런 짓을 저지를 리가 없다.

        

        

        엘프, 오히려 의심스럽다. 하지만 동기가 희미했다.

        

        군함 자체를 지금도 얀스크 대학 상공에 띄우고 있으니, 이런 짓을 저지르기에 가장 수월하다.

        

        그러나 엘프가 이런 짓을 저질러 크라실로프의 위신을 실추시킨다 하더라도 얻는 것이 너무나 적다.

        

        

        왕세자파. 예상컨대 가장 범인에 가깝다.

        

        이 녀석들은 얀스크 대학을 공격할 방법도, 동기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어려웠을 것이다. 엘리자베타의 분노를 직격으로 받은 방첩사령부가 눈에 불을 키고 이 근방을 지키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짚이는 놈들이 너무나 많은데.

        누군지 특정할 수 없는 비밀스런 조직이, 굉장히 유능한 공작원을 지금 아카데미 내에 심었다는 뜻이다.

        

        

        ‘평범한 아카데미물이군.’

        

        

        이쯤에서 이반은 오히려 마음을 놓았다.

        

        그래. 아카데미 입학식에 습격도 일어나고, 아카데미 내부에 비밀 공작원들이 심어져 있어야 아카데미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안 그래도 이번 신입생들 중엔 발도를 하거나 천마라고 자기를 소개하거나, 입에 풀잎을 물고 펌프액션을 쏴대는 카우보이거나, 이상하게 욕을 잘 하는 어린 여자아이 탱커이거나 하는 녀석들이 없어서 불안하던 차였다.

        

        이반은 고개를 흔들며 쓴웃음을 짓고는 다음 폭발물 예상 지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때,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아주 희미하게.

        

        

       -저건 또 뭐야. 산타클로스야?

        

        

        이반의 눈이 날카롭게 뜨였다. 그는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 체 허리를 숙였다.

        

        딱 적당한 자갈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신발끈을 묶는 것처럼 자갈을 손에 쥐고, 그대로 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투척했다.

        

        

       -카앙!

        

        

        무언가 튕겨낸 소리, 동시에 이반의 몸이 벼락처럼 튀어나갔다. 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곧게.

        

        탓, 타닥! 재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이반은 결국 멈춰서고 말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얀스크 대학의 외부, 입학식이 끝나길 기다리는 수많은 인파들 사이로.

        

        

        “산타클로스라.”

        

        

        이반은 헛웃음을 지으며 뒤를 돌았다. 온 길을 돌아오니 잠시 뒤, 깨끗하게 반으로 갈라진 자갈이 보였다.

       

        차곡차곡 정보를 분해해 재조립한다.

       

        

       -검술.

        

       -어린 남성, 또는 여성. 남성이라면 적어도 변성기가 오기 전의 나이.

        

       -목소리를 특정하기엔 너무 흐릿해서, 두어 번은 더 들어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고.

        

       -키는, 확인하지 못했다.

        

       -재빠른 몸놀림. 신속한 반사신경. 이건 아마도, 사선 감지.

        

       -학생 수준에서 갖추기 어려운 능력이지만, 학생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는 방향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교내로.

        

        얀스크 대학에 가장 위험한 곳을 향해서. 엘리자베타가 입학식을 참관하고 있을 대강당을 향해서.

        

        그리고 그 근방에 반드시 있을, 방첩사령부의 현장 통제실을 향해서.

        

        

        “산타… 클로스라.”

        

        

        이 세계에는 산타클로스라는 민간 전설이 없다.

        

        당연하게도, 크리스마스도 없다. 양말에 사탕과 장난감을 넣어주는 정의로운 붉은 도적 같은 노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저 별 것 아닌 혼잣말에도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였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빙의자.”

        

        

        이 녀석도 [감사의 5,700자 비평문]을 작성한 것인가? 아니면 어떤 우연의 산물인가? 트럭에 치였나? 한강에 다이빙 하는 건 너무 낡은 스타일이니 아니라고 치자. 물론 원작자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도 많으니까.

       

        

        어떤 계기로,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에 떨어졌을까.

       

        

        하지만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게임이 아카데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 빙의자가 굳이 대학에 입학, 또는 취업했을 이유는 그것 밖에 없으므로.

        

        그렇다면, 이 녀석은.

        

        [원작]을 알고 있다.

        

        이후 펼쳐질 내용을 알고 있다.

        

        엔딩을 알고 있다.

        

        

        “어, 잠깐. 거기 정지! 여긴 통제 구역입니다!”

        “드미트리를 불러라.”

        “뭐요? 지금 어디서 뭘 듣고 왔는지….”

        

        

       -우드득!

        

        

        이반은 자신을 가로막는 제복군인의 팔을 꺾었다. 그 즉시 반응한 군인이 소매에서 권총을 뽑자마자, 걸쇠를 틀어 물 흐르듯 분해시켜 버렸다.

        

        팔이 잡힌 군인은 자신의 손에 쥐인, 그립만 남은 권총을 멍하니 바라봤다.

        

        

        다음 순간 철컥, 철컥. 순식간에 총구들이 튀어 나왔다.

        

        다섯. 훈련 상태가 좋군. 변장도 잘 했고.

        

        그를 포위한 다섯 명의 군인은 각자 다른 행색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나 볼법한 평범한 시민처럼.

        

        주위의 군인들을 한 차례 훑어보고, 이반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다시 짧게 내쉬었다.

        

        분노가 일렁인다. 초조함이 타닥타닥 인내심을 살라먹고 있었다.

        

        

        “드미트리를 불러.”

        “중령님과 아시는 분이십니까? 여기서 소란을 피우지 말고, 조용한 곳에서….”

        “이반.”

        “…예?”

        “내 이름은 이반 페트로비치다. 절멸부대 출신, 이 자리에 있나?”

        “제가 마지막 기수였습니다. 선배님. 실례지만 혹시 얼굴을 확인해도…?”

        

        

        이반에게 붙잡혀 무릎 꿇려 있던 군인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아직까지 쥐고 있던 권총 그립을 천천히 내려놓고, 손을 활짝 펴며.

        

        그는 이반의 얼굴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한참동안 살피다가, 한 손을 들어 이반의 코 밑을 살며시 가렸다.

        

        

        “맙소사. 진짜… ‘작은’ 이반…?”

        

        

        눈매와 콧대, 이마 등을 살펴보던 군인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떨어졌다.

        

        그는 황급히 눈짓하며 주위의 군인들을 물렸다. 그는 공손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페트로비치 중령님.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이름은?”

        “오시프 소레노프입니다. 아마 모르실 겁니다. 제 3 타격대 출신이고, 직접 뵌 적은 아주 멀리서 한 번 뿐이라서.”

        “이제 기억했다. 오시프.”

        

        

        이반은 군인의 팔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오시프는 무릎을 두어번 털고 일어나서 공손하게 손을 뻗었다. 이반은 손을 마주 잡고 악수를 나눴다.

        

        

        “먼저 떠난 이들을 애도하지 말라.”

        “나 또한 그들과 같은 대열에 서 있으니.”

        “전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중령님. 국립묘지에 중령님 명패를 분명히 봤었는데….”

        “나 또한, 3번 타격대에 생존자가 있으리라 생각 하지 못했는데.”

        “이 시대에 가장 훌륭한 사내들 대신 살아남았지요.”

        “우리 모두가 그렇지.”

        

        

        절멸부대의 모든 타격대가 받았던 마지막 임무는 ‘칠용장 암살’이었다.

        

        그러므로, 유일하게 생환한 이반의 타격대를 포함해서. 혹여나 다른 생존자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그저 가장 훌륭했던 사내들에게 목숨을 빚진 잔류자들이다.

        

        이반은 오시프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고 다시 말했다.

        

        

        “드미트리를 불러다오. 그리고 입학생… 아니. 학부생 전원의 명단과 교직원 전원의 명부가 필요하다고 전해. 입학식에 참석한 참관인, VIP, 그들의 가족, 지인, 친지. 지금 얀스크 대학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의 명단이 필요하다고 전해다오.”

        “예, 중령님. 어이, 체르카토프 중령님께 말씀드려! 긴급 상황 발생이라고!”

        

        

        사태를 미처 따라오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요원들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입학식이 한창인 대강당을 바라보며, 이반은 천천히 숨을 몰아 쉬었다.

        

        빙의자.

        

        한국인일까. 아니, 무엇이든 상관 없다. 지구인이란 뜻이니까.

        

        고향의 동포다. 슬프게도 그랬다.

        

        그랬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김선우도, 이반도.

        

        죽여야 할 테니까.

        

        엔딩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고,

        엔딩으로 향하는 변수를 없애야 했으며,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나는 NPC 따위가 아니다.”

        

        

        이반은 눈을 감았다.

        

        나는 NPC 따위가 아니다. 내 기억, 내 경험, 내 경력은 프롤로그가 아니다. 나는 NPC 따위가 아니야.

        

        내 삶은 스쳐가는 배경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다. 나는, 나는.

        

        살아남아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너를 살려둘 이유보다, 죽여야 할 이유가 더 많다고 하겠다.

       

       

        네 그 빌어먹을 ‘원작’에 내가, ‘이반 페트로비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

       

       

        늦기 전에. 반드시.

        

        

       *

        

        

        “헉, 허억… 헉… 뭐야 그 미친놈은…! 선공 몬스터? 아니 시발 그런 게 있다곤 못 들었는데! 제기랄, 제기랄 어디서부터 꼬인 거야!”

        

        

        식은땀을 훔치며 한참 숨을 헐떡이고 있자니 문득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였다.

        

        

        “왔느냐. 어디서 뭘 했길래…. 됐다. 한심한 것.”

        “아버지….”

        “앉아라. 화장실 하나 다녀오는 데 이런 소란이라니, 여전히 변변치 않구나.”

        

        

        이 빌어먹을 ‘망나니 막내’.

        

        ‘망나니’라면 보통 빙의 직후부터 나데나데 받는 정통 판타지가 아닌가.

        

        이번 ‘아카데미 습격’을 멋지게 막아내고 이제부터 분위기 반전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갑자기 퀘스트가 취소되어 버렸다!

        

        

        [“D급 퀘스트” 아카데미 습격 저지 -취소됨-]

        [아카데미는 신원 미상의 집단에 의해 공격 받고 있습니다! 입학식에서 대강당과 학부 시설을 향한 습격을 저지하십시오!]

        [목표 : 교내 폭발물 제거 3/3(제거됨)]

        [선택 목표 : 침입자 제거 -취소됨-]

        [선택 목표 : 신입생 보호 0/322 -취소됨-]

        [보상 : -취소됨-]

        

        

        “제기랄.”

        

        

        중요한 초반 퀘스트 하나를 잃어버렸다. 아카데미 습격이란 것이 원래 주인공을 위한 데뷔 무대가 아닌가.

        

        히로인들과 미래의 동료들에게 확실한 인식을 심어주고, 교관들에게 인망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갑자기 퀘스트가 저 혼자 취소되길래 깜짝 놀라 달려가봤더니, 산타클로스를 닮은 괴인을 마주치고 말았다!

        

        거기다, 이건 또 뭐야.

        

        

        [“???급 퀘스트” 성 얀스크 대학의 정원사.]

        [당신은 그의 눈에 띄었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목표 : 성 얀스크 대학 정원사, 이반 페트로비치 처치]

        [선택 목표 : 이반 페트로비치 회유]

        [선택 목표 : 정보 은폐]

        [추가 목표 : 생존]

        [실패 패널티 : 사망]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꿀팁) 망나니 1왕자 이래로 망나니물은 정통판타지다(사실임)
    개꿀팁) 이 소설은 유쾌상쾌통쾌 아카데미 캐빨 로코 씹덕 하렘물이다 (사실임)
    리빙포인트) 절멸부대 앞에서 혼잣말을 하면 안 된다. (사실이 아닙니다.)

    행복회로불타요옷 님, 쿠로버 님, haw****님, 양갈비구이 님, kkf5u 님, 암컷천마 님!!

    후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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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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