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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낭만주의는 문학의 영혼이다.

       

       시적 상상력, 개인적 통찰, 고통─ 현대까지도 예술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러한 요소들은 낭만주의를 통해 완성된 하나의 패러다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낭만주의의 숨결을 문학에 불어넣은 작품이 바로.

       

       

       “이, 이건─ 너무, 고통스럽잖아요…? 그런데 굉장히 아름답고…. 또, 영혼을 빼앗기는 기분이에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원고를 읽은 돌링 사장님은 혼이 빠져나간듯 멍한 표정을 짓다가, 곧 황홀함에 물들어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이 소설은 반드시 성공할 거예요!”

       “예. 그렇겠죠.”

       

       “…작가님? 표정이 조금 안 좋아 보이시는데….”

       “이 작품이 성공하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거든요.”

       

       “골치 아픈 일이요…?”

       

       

       베르테르 효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주인공이 권총으로 자살하며 끝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판된 이후, 이 책을 읽은 다수의 청년들이 베르테르의 죽음을 따라 자살했다는 일화가 있다.

       

       실제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청년들을 자살로 유도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유의미한 통계를 찾아보기 어렵고, 단순히 자살하려던 사람이 베르테르 흉내를 낸 것과 베르테르를 흉내내서 자살하는 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이 책이 자살을 옹호하거나 신성시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어서요.”

       

       

       하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분명하다.

       

       이 소설은 자살 충동에 빠진 청년들의 성서가 될 테다. 교회 측에서는 기겁하며 이 소설을 통제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금서로 지정될 수도 있어요.”

       “에이, 대단한 명작이기는 하지만… 이건 그냥 문학이잖아요?”

       

       “영혼을 뒤흔드는 문학이죠.”

       “그건 그렇─ 확실히, 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해요…. 특히 교황청은 청년들의 자살에 굉장히 예민하니까요.”

       

       

       물론 나름대로 준비는 해뒀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역시 주인공이 자살하는 것으로 끝나는 소설이었다. 죄와 이성 사이에서 번뇌하던 주인공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이건 지킬이 하이드를 죽이기 위해 희생한 순교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자살이되 자살이 아닌 모호한 결말이다.

       

       이 소설을 읽은 경험이 ‘주인공의 자살’이라는 결말에서 느낄 충격을 줄여줄 것이다.

       

       

       “그래도 작가님의 책이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어린 왕자 덕분에 호메로스 작가님을 시복해야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을 정도니까요!”

       “작가와 작품은 별개잖아요. 이 책만 금서로 지정된다는 가능성도 없진 않죠.”

       

       “그건 그렇네요….”

       

       

       그리고 ‘어린 왕자’는 독자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어주는 거울이었다.

       

       눈을 가리는 갈망에서 벗어나 주변을 살피도록 만든다.

       

       이는 자살위험자를 죽음으로 몰아세우는 맹목성, 좁은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으으… 어렵네요! 그렇다고 출판을 안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런 명작을 저만 보는 것도 수많은 애서가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고요! 흐아아….”

       “역시 직접 출판하고 싶으시죠?”

       

       “당연하죠! 다른 출판사에 맡기시면 안 돼요! 무조건 제가 출판할 테니까요! 헤헤.”

       

       

       또한 펄프 픽션인 코난 사가를 통해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환상(Fantasy)─ 도파민이라는 마약을 이 세계에 풀어두었다.

       

       지친 사람들이 고난한 하루를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싸구려 마약.

       

       그것이 하류 문화인 펄프 픽션의 역할이었다. 부작용 없는 아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돌링 사장님의 역할이 중요해요.”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전부 했다.

       

       이제는 문학에 ‘낭만주의’라는 영혼을 불어넣을 시간이었다.

       

       

       “우선, 팬레터를 보낸 독자님들의 주소를 전부 모아주세요.”

       “네?”

       

       “우리 팬을 위한 이벤트 한번 하죠.”

       

       

       이것으로 문학은 또 한 발자국 나아갈 것이다.

       

       

       “어, 전부요? 수천명, 아니 만 명은 넘을 것 같은데요…?”

       “어려우시겠어요?”

       

       “당연히, 할 수 있죠! 맡겨만 주세요!”

       

       .

       .

       .

       

       

       팬레터를 보냈던 독자들에게 ‘초대장’이 도착했다.

       

       

       [‘호메로스 작가와의 만남’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팬미팅이었다.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인 호메로스와 만날 수 있는 팬미팅. 제국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선망할 수밖에 없는 황금같은 기회였다.

       

       

       “흐아아아! 초, 초대장이라니. 이, 이거 꿈 아니지?! 나 진짜로 호메로스님 뵐 수 있는 거지?! 천주님 감사합니다!”

       “호메로스 작가님은 신이야!”

       

       

       당연히 팬미팅 소식은 빠르게 알려지며 제국 곳곳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아이솔렛 공녀님! 그, 그건 설마─ 그거인가요?”

       “후후, 네. 호메로스 작가님의 초대장이랍니다. 저는 이미 저번 공모전에서 한번 작가님을 뵈었지만… 이렇게 초대를 받았으니 안 갈 수도 없네요. 후후후….”

       

       “끄으, 그, 그렇다면 저에게 팔아주시는 건─.”

       “어머? 초대장을 팔다니, 그런 천박한 짓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렇겠죠….”

       

       

       호메로스 작가의 초대장이 같은 무게의 황금과 비슷한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아니, 황금보다 더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었다.

       

       

       “저, 정말인가요?! 초대장을 팔면… 아버지의 치료비를 전부 대신 내주신다고요?”

       “물론입니다. 치료뿐만이 아닌, 생활을 위해 필요한 모든 걸 후원해드릴 생각도 있습니다. 그 초대장 한 장만 주시면 됩니다.”

       

       “호메로스 작가님을 직접 뵈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아버지의 치료가 더 중요하니까요. 대신 약속은 꼭 지켜주셔야해요!”

       “여기, 계약서를 준비해뒀습니다.”

       

       

       초대장을 구했느냐, 구하지 못했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희비가 교차했다.

       

       그리고 마침내, 호메로스 작가의 첫 공식 팬미팅 날이 다가왔다.

       .

       .

       .

       

       팬미팅이 이루어지는 회장.

       

       기껏해야 수백명에 불과했던 공모전 시상식과는 달리, 이번에는 수천명의 사람이 참여했다.

       

       나는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옆에서 돌링 사장님이 한껏 과장된 어조로 나를 응원했다.

       

       

       “작가님! 힘내세요! 긴장 푸시고요!”

       “저보다 사장님이 더 긴장하신 것 같은데요…?”

       

       “헤헤. 저는 혹시 사고라도 생기면 바로 대처해야하니, 긴장을 놓을 수 없죠!”

       

       

       거울을 바라보았다.

       

       하이드 물약을 마신, 전생과 현생의 모습이 절반씩 섞인 모습이다.

       

       심호흡을 한 뒤 대기실에서 나왔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미리 연습했던대로 개회사를 시작했다.

       

       이 개회사야말로 내가 이 ‘팬미팅’을 연 이유였다.

       

       

       “본격적으로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에 앞서,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진인사대천명.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나, 성사를 결정하는 건 하늘이라는 말이 있다.

       

       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도 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즉, 일을 꾸미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일을 성사시킬 수 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쓴 글을 표절하면 된다.

       

       그래서 표절했다. 연설문을.

       

       

       “그 꿈은 저의 문학과 여러분의 문학에 깊이 뿌리 내린 꿈입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제 책을 읽고 자란 어린이들과, 제 책을 읽으며 과거를 추억하는 어른들이, 천주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소중한 ‘말씀’으로 서로를 돕고 이해하리라는 꿈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

       

       표절했다.

       

       

       “천년 전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구세주의 말씀을 직접 들은 바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세주께서 천주의 곁으로 돌아가신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되었습니다.”

       

       

       존 F. 케네디의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연설.

       

       표절했다.

       

       

       “우리의 신앙이 이제는 타파되어야할 낡은 구습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읽어줍시다. 종교에 신실한 사람들을 미련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읽어줍시다. 종교가 사람의 의지를 막아서는 걸림돌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읽어줍시다. 냉담한 이들에게 성경을 읽어줍시다!”

       

       

       위대한 연설의 내용을 전부 성경을 읽으라는 내용으로 바꿔버렸지만, 그 본질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건 호소다.

       

       

       “인생은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 있음에도, 우리는 그 방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간절히 바라는 호소.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내리꽂히는 호소.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분명 성경적으로 불경한 책이다. 사람의 영혼을 붙잡고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마력을 지닌 책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성경 말씀을 그 이상으로 강력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인쇄기에서 매일 수만권의 성경이 인쇄되는 오늘날, 모두가 책장마다 성경을 한 권씩 가지고 있으면서도 삶이 바빠 신앙에서 눈 돌리는 오늘날.

       

       성경을 되새기도록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천주께서 직접 지으신 가장 위대한 문학─ 오래된 영가를 함께 읽으며 그분의 말씀에서 사랑과 평화를 배우고 이 땅에 실현하리라는 꿈입니다!”

       

       

       성경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문학이었으니까.

       

       모든 문학 작품─, 소설, 극본, 시와 연설이라는 것은 결국 성경이라는 위대한 문학의 재해석에 불과했다.

       

       그래서 표절했다.

       

       전생의 기독교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던 수많은 명연설들을─ 전부 표절하고 짜집기하고 편집하고 재해석해서 하나의 연설로 만들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은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몇 번이고 연습했지만 제대로 외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마침내 연설이 끝났을 때.

       

       

       “긴 연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악수회를 시작─.”

       

       “꺄아아아아악─!!!”

       “와아아아아아아아!!!”

       

       

       우레같이 터져나오는 함성 소리로 인해, 나는 한동안 귀를 막아야만했다.

       

       .

       .

       .

       

       “아, 사장님. 팬미팅 준비 수고하셨어요. 덕분에 잘 끝났네요.”

       “작가님…. 그 연설이, 겨우 책 하나 출판하시려고 만든 연설문이라고요…?”

       

       “아, 네.”

       “작가님. 제가 이런 말씀을 안 드리려고 했는데… 조금 미친놈 같아요.”

       

       “자주 듣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든 문제를 표절로 해결하는 주인공!

    설마 연설문을 표절할 것이라고 예상하신 독자님이 계실까요? 후후….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진짜 할 말도 많고… 하고싶은 말도 많은 작품인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할지 감이 안 잡히네요.

    작중에서는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하여 출판 순서가 다소 뒤로 밀렸지만, 실제 역사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8세기에 발매된 소설입니다. 만약 주인공이 다소 가벼운 작품들로 먼저 ‘예방 접종’을 하지 않았다면, 그 어떤 문학 작품 이상의 큰 파급력을 가지게 되었을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는 문학의 발전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오히려 파급력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시기에 이 책을 출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은… 굉장히 강력하거든요.

    #####

    그, 흔히 ‘고통은 창작의 원동력이다. 그러니까 고통을 계속 주면 창작을 계속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이 말이 맞나요? 뭔가 잘못 쓴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개인의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영감을 고통이라는 마중물을 통해 길어올리는, ‘예술가’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가 확립된 계기가 바로 낭만주의입니다.

    오히려 요즘 들어서야 다시 예술가도 운동해야한다, 예술가도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한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게 또 극단적으로 가면 ‘고통은 사실 창작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독자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무려 250년 전(1774년)에 쓰인 소설이지만, 현대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고전 중 하나입니다.

    지금 읽어봐도 왜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나왔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현대인의 감성으로도 공감하기 쉬운 명작이니 한번쯤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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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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