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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태양을 숨긴 달의 메인 악역이라 할 수 있는 조영대군 역을 맡은 윤종혁은 힐끗 시선을 살폈다. 바로 은혜대비 역을 맡은 정은선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윤종혁 또한 오랜 시간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해온 베테랑 배우라 할 수 있으나, 정은선과 비교하면 경력이 짧았다.

       그래도 함께 출연한 드라마도 몇이나 있었고, 오랜 세월 함께한 친분도 있었기에 그녀의 심기가 현재 불편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누님이 그렇게 신경 쓰는 건 처음 봤습니다.”

       

       나름 분위기를 풀고자 한 말이었으나, 정은선의 칼 같은 시선에 윤종혁은 순간 움찔했다.

       

       “아니, 거 좀 이번엔 말 좀 무난무난하게 합시다. 아직 아역인데, 뭔 참……. 누님은 같은 말을 해도 참 뭐같이 말해서 걱정이요.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그러다 바로 뉴스에 나옵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기는, 윤종혁은 입술을 씰룩거리며 더 말할까 했지만, 굳이 더 말하진 않았다.

       어차피 말해봐야 들을 인간도 아니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참.’

       

       윤종혁이 바라보는 정은선은 독선적인 사람이다.

       이전에 있던 일을 듣고 윤종혁은 이마를 탁하고 두드렸을 정도다.

       

       당시 촬영장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굳이 눈으로 안 봐도 알았다.

       그는 경험이 많은 배우였고, 원로 배우의 한마디가 촬영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았다.

       

       그런데 6세의 아역에게 그런 말을 다 보는 앞에서 했으니…….

       

       ‘그만큼 걱정된 건지, 아니면 뭐 그냥 하고 싶어서 말했을 수도 있고.’

       

       늙은 사람의 고집이다. 

       옛 시대의 촬영장에서야 꽤 흔한 경우였다.

       타인의 보는 앞에서 말을 하면 그만큼 더 압박이 되는 법.

       걱정이 됐다는 건 알겠으나 그 방법이 참 거칠기 짝이 없다.

       

       “그 지랄 맞은 성격 좀 고쳐야지, 쯧.”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당연히 정은선은 들었는지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윤종혁은 그저 자신의 아내가 정은선과 같은 성격이 아니라 참 다행이라 여겼다.

       

       “자, 그럼 곧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공정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찍을 장면은 S#24.

       

       조영대군이 반정을 일으켜, 현 왕을 폐위하고 본인이 왕위에 앉게 되는 내용이었다. 

       이후 폐위 된 왕은 유배 되며, 그 딸인 연화공주 역시 먼 곳으로 떠나게 된다.

       

       연화공주는 은혜대비를 찾아와 아비의 결백을 토로하고, 조영대군의 반역에 역정을 낸다.

       하지만, 연화공주가 은혜대비에게 말하던 도중, 조영대군은 그런 은혜대비의 침소에 찾아와 연화공주를 끌어낸다.

       

       그리고, 이후 연화공주는 몇몇의 식솔들과 함께 궁을 떠나게 된다.

       

       “은혜대비의 침소는 다소 어두울 수 있으니 반사판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좀 더 움직여 주세요!”

       

       조영대군이 은혜대비의 침소까지 군을 이끌고 걸어가는 장면은 롱테이크로 촬영될 예정이었다.

       이번 태양을 숨긴 달의 메인 악역인 만큼 그만큼 임펙트를 주기 위함이다.

       

       더불어, 침소에 들이닥치게 되는 만큼 광원에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윤종혁 배우님은, 전에 말하신 것처럼 최대한 사납게 연화공주를 노려보셔야 합니다.”

       “거야 뭐 가능합니다만, 괜찮습니까? 제 얼굴이 좀 이래갖고 애가 보기엔 좀 무서울 텐데요?”

       

       윤종혁이 능글맞게 말하자 몇몇 스태프들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처럼 윤종혁의 외모는 상당히 무서운 편이었다.

       

       눈은 부리부리했으며, 얼굴의 주름과 각진 턱선은 분명 호남의 상이다.

       허나, 연기에 들어간 그의 표정과, 눈빛.

       그리고 굳은 입매는 가히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냈다.

       

       많은 드라마, 영화의 악역에서 활약해온 그의 연기는 아역이 아니라, 평범한 배우들도 큰 압박을 느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정말 제대로 해주셔야 합니다. 조영대군이 어떤 인물인지 이번 화에 확실히 보여줘야 하니까요. 자칫…….”

       “자칫…….”

       “혹여나 애라고 무시하시다간, 조영대군의 캐릭터가 아쉽게 될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그런 공정태 감독의 말에 윤종혁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이것 봐라?’라는 얼굴. 

       물론 그런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의 외모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아휴, 감독님. 아무리 그래도 서연 양은 여섯 살인데…….”

       “이제 일곱 살이랍니다.”

       “아, 그래요?”

       

       주변 스태프가 그런 공정태 감독에게 작은 야유를 보냈다.

       너무 오버해서 말한다고 생각한 탓이다.

       

       그야 방금 공정태의 감독의 말 뜻을 설명하면 이랬다.

       

       ‘너, 연기 제대로 안 하면 먹힌다?’

       

       존재감이 먹히는 것.

       배우에겐 가장 큰 굴욕인 상황이다.

       다른 배우보다 연기력이 상대보다 달린다는 걸 인정하는 거니까.

       

       근데 고작 여섯 살 아이에게?

       아마 이건 윤종혁이 혹여 제대로 연기를 하지 않을까 봐 하는 도발일 것이다.

       그야 상대는 아직 여섯 살의 어린아이였으니까.

       특히 최근 정은선 배우의 일도 있었으니, ‘배려’라도 할까 싶었겠지.

       

       거기에.

       

       ‘공정태 감독은 절대 허언을 하는 인물은 아니다.’

       

       공정태는 아직 젊은 감독이다.

       이제 겨우 서른 중반이 넘은 나이.

       이런 대형 사극을 맡기엔 조금 젊다고 할 수도 있었다.

       

       아마 태양을 숨긴 달 자체가 가상 사극이기도 했고, 젊은 층을 노린 작품이라 그럴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공정태의 커리어는 그가 능력이 있는 인물임을 증명했다.

       또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아, 그가 주변인들을 무척 신경쓰는 성격임도 알고 있었다.

       

       ‘고 아이 물건이긴 한 모양이군.’

       

       윤종혁은 대략 눈치를 챘다.

       동시에 정은선 배우가 떠올랐으나, 뭐 어떤가.

       

       “뭐, 그럽시다, 다만 애가 울어도 전 모릅니다?”

       

       배우는 연기로 말하는 법이다.

       

       ***

       

       씬 넘버 S#24.

       이 드라마의 분기점이 되는 2화 마지막을 장식하는 씬이다.

       

       참고로 서연이 아는 전생에서는 2화의 초반으로 넘겨진 장면이었다.

       정확히는 당시에는 총 3화이던 아역 파트가 2화로 줄어든 탓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만큼 조서희의 연기가 공정태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겠지.

       

       ‘즉, 내가 아는 원작……의 연기는 할 수 없어.’

       

       조서희의 연기는 참조되지 않는다.

       

       사실 서연은 씬 넘버 S#24 씬이 그리 중요한 장면이라 여기지 않았다.

       전생에서 보았던 ‘2화 초반’에 등장한 S#24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렇다 할 임펙트는 없었으니까.

       단지 롱테이크로 등장하는 조영대군이 무척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는 기억 뿐.

       

       그러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이라 여겼다.

       적어도 연화공주에겐.

       

       ‘하지만이건, 연화공주가 변하는 계기가 된 장면이야.’

       

       1화의 연화공주는 천방지축인 인물이다.

       공주의 신분으로 궁 밖을 빠져나가 서민들과 어울리는 소녀.

       

       하지만 2화로, 연화공주는 ‘공주’여야 했다.

       반정으로 아버지를 비롯한 그녀의 가족이 풍비박산나게 되는 상황.

       

       그 증오를, 제대로 나타나야 했다.

       아이의 인생을 바꿀 정도의 충격임을 보여줘야 했다.

       어찌 보면 아역 파트가 끝나는 3화보다도 중요한 장면.

       

       “서연아.”

       

       촬영의 시작 전, 수아가 서연의 손을 꼭 잡았다.

       수아는 서연이 그동안 계속 연기를 연습했다는 걸 알았다.

       

       서연이 여태 연습했던 두 개의 장면.

       그중 하나.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네.”

       

       뭐라 말해줄까 고민했던 수아는, 그렇게 말하며 서연이를 꼭 안아줬다.

       여러모로 걱정이 되긴 했으나, 딸이 바라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응원하는 것 뿐이었다.

       

       “화이팅!”

       

       등을 두드리며, 말하는 수아의 말에 서연은 씩 웃었다.

       드물게 자신만만하게 웃는 딸의 얼굴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마주 웃었다.

       

       “이번 씬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공정태는 말하며, 카메라의 옆에 붙어 주변을 훑었다.

       스태프들의 얼굴도 평소보다 진지했다.

       

       “광원이 중요합니다. 제가 지시하면 바로 바로 움직여주세요.”

       

       미리 있을 상황을 지시하고.

       

       “카메라 감독님은, 상황을 넓게 찍기보단 되도록 감정이 잘 드러날 수 있게 경우에 따라 잘 조절해주세요.”

       “물론이죠.”

       

       이어 공정태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배우 쪽이었다.

       

       “정은선 배우님은 그 복잡한 심경이 잘 드러나야 합니다. 아들인 조영대군과, 손녀인 연화공주를 향한 감정이 말이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니, 됐습니다. 배우님이면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

       

       그런 의문이 깃든 시선을 보냈으나, 공정태는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았다.

       정은선 배우와 이전에 트러블이 있었지만, 그녀는 배우다.

       

       그것도 연기파 배우.

       그러니 그것을 직접 본다면, 절대 지난 번과 같은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자, 큐 들어갑니다.”

       

       카메라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윤종혁과 서연에게 교차 되었다.

       

       이번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두 명.

       둘에겐 따로 연기 지시가 없었다.

       

       그 뜻은, 이미 사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의미.

       

       “자, 액션!!”

       

       공정태 감독의 외침과 함께 연기가 시작되었다.

       

       ***

       

       ==

       늦은 밤.

       본디 조용했을 궁은 소란스러웠다.

       불길이 일었다.

       

       

    손에 횃불을 든 이들이 거칠게 소리치며 돌아다녔다.

       손에 검을 쥐고, 거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비명이 울렸다.

       궁녀의 것인지, 아니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연화공주, 이혜월은 그들의 눈을 피해 달렸다.

       이대로, 그들의 눈에 띈다면 꼼짝 없이 끌려가게 될 테니까.

       

       궁에서,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내쫓기게 될 테니까.

       그러니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이를 찾았다.

       

       

       어린 이혜월이 떠올린 이는 한 명.

       작은 발을 열심히 움직여, 겨우 그곳에 닿을 수 있었다.

       

       

    「대비마마!!」

       

       비명과도 같은 이혜월의 외침이 작은 호롱불 속에 고요히 앉아있던 은혜대비의 시선을 움직였다.

       그 눈은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현 국왕의 어미이자, 지금 반정을 일으킨 조영대군의 어미.

       

       「조영대군을 막아 주시옵소서!」

       

       사실 막무가내의 말이었다.

       은혜대비에겐 힘이 없다.

       단지, 그녀가 조영대군의 어미라는 게 전부다.

       그리고 은혜대비가 이 일에 대해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방관 뿐이었다.

       

       「이는 반역입니다. 저들은 역도란 말입니다. 어찌, 감히! 아바마마의 은혜를 입은 자가. 어찌하여 저럴 수 있다는 말입니까!!」

       

       

    비명처럼 외치는 외치는 연화공주의 말에, 은혜대비는 그저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이혜월은 언제나 은혜대비에게 ‘할머님’이라 말하며 친숙하게 굴던 손녀였다.

       

       

    「이건 무언가 잘못 되었습니다. 제발 답해주십시오, 대비마마!!」

       

       

    하지만, 지금 그녀는 연화공주였다.

       분노, 그리고 증오가 절절히 그 작은 몸에서 느껴졌다.

       

       그러니, 은혜대비는 차마 그런 이혜월을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

       

       

       그 광경을 모두가 숨죽인 채 보았다.

       카메라가 움직이고, 반사판이 움직여, 은혜대비와 이혜월의 얼굴이 어둠 속에 가리지 않도록 만들었다.

       카메라는 둘이 나올 수 있도록 잠시 뒤로 빠졌다.

       

       둘의 감정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뭔가.’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던, 스태프들은 점차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뭔가, 평소보다…….’

       

       어린 이혜월 역, 서연은 평소부터 주변을 몰입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긴장감이 느껴졌다.

       무언가 터질 것 같은 감정이 절절히 주변에 번져나갔다.

       

       은혜대비의 눈이 지그시 감기고.

       그에 따라 이혜월의 눈도 질끈 감겼다.

       

       안 것이다.

       은혜대비는 반정을 막을 마음이 없다고, 아니. 

       막을 수 없다고.

       

       그리고.

       

       콰앙!!

       

       문이 부서져라 열리며, 군을 이끌고 한 남자가 은혜대비의 침소에 들이닥쳤다.

       매와 같은 눈매에, 굳은 입술.

       

       시커먼 눈동자에 넘실거리는 광기에 순간 숨을 멈췄다.

       씰룩거리는 입매가 비틀려 올라갔다.

       

       바로, 조영대군의 등장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사실 대단한 이유는 아니고… 늦잠을 자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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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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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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