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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말을 마친 교장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답을 기대하는 눈길이 몹시도 부담스럽다.

       

       

       “…일단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래, 그래. 무엇이 그리 궁금하더냐? 어서 물어보려무나.”

       

       내가 흥미를 보인다고 여겼는지, 교장이 반색하며 순식간에 자리를 고쳐 앉았다.

       

       

       “우려하시는 부분은 대충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직접 나서시는 게 더 나은 거 아닌가요?”

       

       “음, 음.”

         

       “잘은 모르지만, 명문 아카데미의 교장이라면 권력도 상당할 거 같은데요. 실력도 뛰어나실 거 같고…그걸로 어떻게든 하면 되지 않나요? 굳이 저에게 부탁하실 이유가…”

         

       “뭐, 나도 아직 어디 가서 꿇리는 몸은 아니긴 하지.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서 말이다…”

         

       해월화가 미간을 살포시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요람의 권력은 나와 교육위원회 양측으로 절묘하게 배분되어있단다. 그리고 교육위원회의 위원들은 각 가문의 이권을 대표하는 자들로 구성되어있지. 그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침해당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 파벌이 어떻든,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버리니…”

       

       “그럼…”

       

       “정 힘으로 찍어누르라면 못할 것도 없다만, 반발 역시 그에 비례해서 더욱 거세질 테지. 그럼 아마 처음에 얻고자 했던 것의 반의 반절도 이루지 못할 게다.”

       

       말을 마친 교장이 확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내가 대안으로 선택한 방법이 바로 너라는 거지. 효과는 말할 필요도 없을 거고, 표면적으로는 학생들 사이의 일이니 내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반발도 훨씬 덜하지 않겠니?”

       

       

       “…말씀의 저의를 잘 모르겠습니다. 전 일개 학생이지 않습니까. 더구나 가문도 뭣도 없는…제가 뭐라고 그런…”

       

       “뭐? 얘야. 너는 자신의 가치를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구나. 혹시나 했지만, 그런 쪽으로는 아예 언질도 안 하고 보낸 모양이네…”

       

       해월화가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기색으로 혀를 두어 번 차댔다.

       

       

       “알고 있니? 요람에서 매년 추천 입학생들을 받긴 하지만, 그들에 대한 주변의 인식은 썩 좋은 편이 아니란다. 숨은 보석을 발굴하겠다는 처음의 취지와 달리, 지금은 개인적인 친분이나 금전적인 거래를 통해 명문 아카데미의 졸업장을 딸 수 있는 통로로 변질 된 지 오래거든.”

         

       “그렇다면 저도 그럴 거라는 얘기…”

         

       “하지만 넌 다르지. 다섯 가문의 일원인 흑련 사씨의 추천장을, 그것도 무려 18년 만에 얻어낸 입학생이지 않니. 아마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될 게다.”

         

       말은 마친 교장이 돌연 손을 뒤쪽으로 뻗었다. 그 손끝에서 녹색의 빛이 가닥가닥 뿜어져 나오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낡은 책상 위에 있던 종이봉투가 교장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물론 실력 없는 쭉정이라면 되려 더 큰 비웃음을 사고 말겠다만…”

         

       교장이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자 작은 글씨들이 빼곡히 적힌 서류집이 보였다. 교장은 그중 맨 위에 있던 한 장을 집어 들고는 돌연 내용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이름 유진현, 나이 17세, 출생지는 남부 웅주의 F147 3등 개척촌…뭐, 프로필 중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모르겠다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테지…”

         

       교장이 중얼거리는 말에 가슴 한구석이 살짝 찔려왔다. 그 내용 중 어느 것 하나도 실제와 맞지 않던 탓이었다.

       

       다행히 교장은 내 프로필의 진위여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했다. 명색이 교장이라는 사람이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녀가 관심을 보인 건 프로필이 아니라 그 아래의 내용이었다.

       

       

       “보자. 공식 및 비공식 통합 21회의 임무 참가. 3계급 마족 17마리 토벌, 2계급 마족 23마리 토벌, 수배 등급 황색 이상 범죄자 53명 사살 및 213명 포획, 1급 지정 마수종 7마리 토벌…그 외에…이건 너무 많아서 다 읽지도 못하겠네.”

       

       해월화가 서류를 읽다 말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누가 이걸 보고 17살 아이의 전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 나이에 높은 수준의 실전을 경험한 마법사는 정말 드물단다. 1학년은 말할 것도 없고, 2학년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들조차 너와 견줄 수는 없을 거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단장의 거짓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내 공적은 기록되지도 않았다고 했는데. 옆에 있으면 머리를 세게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기에 실력이란 건 감춘다고 감출 수 있는 게 아니지. 처음에야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이 좀 있겠지만, 채 1년도 되지 않아 잠잠해질 게다.”

         

       서류를 살짝 밀어놓은 해월화가 차를 홀짝거렸다.

       

       

       “어쨌든 그런 네가 연가의 편을 들어준다면, 한쪽으로 기울어진 균형이 어느 정도는 다시 맞춰지지 않을까? 최소한 나는 그리 생각한단다. 네 이질적인 가면이 좀 감점 요소가 될 수도 있기야 하겠다만…”

       

       “교장 선생님이라는 분이 그렇게 편파적으로 해도 되는 겁니까?”

         

       “본래 나도 이런 일에 나서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라서 말이야…”

       

       해월화가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로 하기 싫고 귀찮다는 기색이 얼굴에 역력한 게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패천 백씨는 전에 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현 가주는 소탈하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성격으로 민중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 현 공화국 최고 의회의 정치인 중 가장 인기 있는 이들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거기에 사업 기반과 가신들의 결속도 굳건하고, 심지어 그 딸은 하늘에 닿는 재능을 타고난 데다 아비를 닮아 권위보다 인품으로 여러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능숙하게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적화 연씨 가계의 구성원들은 대대로 성격이 파탄 나 있기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지금 문제가 되는 영애는 유별난 오만과 표독함의 소유자였다. 이는 실력에서는 큰 차이가 없음에도 요람에서 입지를 잃고 있는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

       

       그녀는 자연발생한 1세대 마법사들이나 한미한 가문 출신의 학생들을 마치 벌레 보듯 대했다.

       

       그리고 그들은 학생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그녀에 대한 평판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거기에 얼마 전 연가는 자금줄에 큰 타격을 입었단다. 얼마 전 그들 소유의 스텔라이트 광산 여러 곳이 에코 파시스트들의 테러를 받았지. 연가 측에서 테러를 사주한 배후로 백가를 지목했지만, 물증이 없어 되려 명예훼손으로 배상금을 지불하기도 했고. 연가의 영향력 대부분이 스텔라이트 독점 채굴에서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재력에서 비롯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마 그 피해를 복구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란다.”

       

       “그럼…”

       

       “즉, 내우외환이라는 게지. 바깥의 상황도 그러한데 요람 내부에서도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으니, 이를 내버려 두면 연가는 자칫 끝도 없는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을 거고.”

         

       “…”

       

       “더구나 백가의 가주는 위험한 자란다. 그가 분에 넘치는 야심을 품고 있다는 건 아는 이들은 다 알고 있지. 그 딸은 제 아비의 노선을 아주 충실히 따르고 있고 말이야. 아비나 딸이나 속에 능구렁이를 대체 몇 마리를 키우고 있는 건지…”

       

       교장이 길게 숨을 내쉬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백씨는 사씨와도 대대로 사이가 좋지 않았단다. 특히 현 가주는 재혁이 놈에게 특별히 짙은 원한을 품고 있기도 하고. 그런 이가 득세한다면 당연히 그 아이들에게도 그리 좋은 영향이 가지는 않겠지. 지금의 사씨는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라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없으니…”

       

       “…”

       

       “자, 설명은 이만하면 충분할 거 같구나. 이제 네 결정만 남았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부탁이란다. 네가 설령 거절한다 해도, 그 어떤 불이익도 없을 거라고 맹세하마. 신중히 생각하고 답하렴.”

       

       말을 마친 교장이 찻잔을 들고 조용히 홀짝거렸다.

       

       고민이 이래저래 깊어진다. 해월화가 한쪽에 힘을 실어주려는 이유, 내 조력이 필요한 이유, 단장과 누나들에게도 간접적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고 한 이유를 모두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변방의 촌뜨기로 살고 있던 몸이다. 가문이니 정치니 하는 일들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다.

       

       심지어 힘을 실어달라는 대상이 여학생, 그것도 유별난 오만과 표독함의 소유자에 낮은 출신의 학생을 싫어하는 아가씨라…

       

       이야기를 들을수록 무언가 불쾌한 기시감이 느껴졌던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나는 분명 그 원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

       

       잠깐 증세가 심해졌는지, 분명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흉터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퍼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애써 의식을 돌리기 위해 교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나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힘을 실어달라고 하셨는데…어떻게…?”

       

       “으음? 그거야 나도 모르지.”

         

       질문을 들은 해월화가 되려 눈을 땡그랗게 뜨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대답이 몹시도 맥빠진다.

       

       

       “뭐, 개인적으로 친분이 돈독한 모습을 보여준다던가, 여러 사안에서 노골적으로 편을 들어준다든가 하면 되지 않겠니?”

       

       “…”

       

       “후후, 얘야. 내가 왜 부탁이라고 말했겠니. 이리 보여도 닳을 대로 닳은 몸이란다. 요즘 아이들 간의 일을 내가 어찌 알 수 있을까?”

       

       벙찐 내 모습을 본 해월화가 실소를 흘리며 한 마디를 더 던졌다. 사실 그 말에 틀린 부분은 없다. 외관이 저럴 뿐 그녀는 단장과 누나들보다도 한참은 연배가 높은 사람이다.

       

       하지만 아는 게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또래의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대화한 게 언제인지 이제는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평범한 교우 관계를 만드는 것조차 고민해야 하는 처지인데, 거기서 더 나아가 그럴 의지도 없는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

         

       하지만 나는 곧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단장은 내게 우수한 성적으로 요람을 졸업해 그의 가문을 드높이고 오라고 명령했다.

       

       또한 이는 거래 당사자로서의 정당한 권리 요구였으니, 나에게는 어떻게든 그 요구를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뭣도 없는 내가 그런 단장의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한 명쯤 뒷배가 되어줄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요람의 교장이라면 그 뒷배로 더할 나위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고.

       

       거기에 어쩌면, 단장이 말한 밥값을 할 기회가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간접적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단장과 누나들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이상 이를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심지어 그 가주는 단장에게 특별한 원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잠시의 침묵 후, 나는 결국 교장에게 승낙의 답을 들려주었다.

       

       

       “…교장 선생님이 하신 부탁, 받아들이겠습니다.”

       

       “정말이니? 정말?”

         

       대답을 들은 해월화가 폴짝 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얼굴에서는 숨기지 못한 기쁨이 묻어나왔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일단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후후, 잘 할 수 있을 게야. 내가 말했지않니. 적임자로 너만한 사람이 없는 거 같다고 말이야. 내 감은 상당히 잘 맞는 편이란다. 나도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줄 테니,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리고 요람 생활은 걱정하지 말려무나. 네가 그놈처럼 망나니짓을 하고 다닐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내가 무리를 해서라도 막아주마. 어지간하면 졸업까지는 아무 문제 없을 게야.”

       

       “교장이 그래도 되는…”

       

       “당연히 되지. 이런 것도 못 하면 어디 스트레스받아서 그 자리 해 먹을 수 있겠니? 푸흐흐…”

       

       교장이 내뱉는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온실을 가득 메웠다. 신나서 한참을 방방거리던 교장이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나를 바라봤다.

       

       

       “아, 어떤 짓을 해도 좋지만, 이거 하나는 유념하렴. 우리 아카데미는 이성 관계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하단다. 정혼자가 아닌 이상에야 교내연애는 절.대.금.지.란다. 알겠지? 절.대.금.지.야. 이 점만은 나도 상당히 곤란하단다. 총명한 아이이니, 내 말 무슨 뜻인지 알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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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cting the Villainess of the Academy

Correcting the Villainess of the Academy

아카데미 악당영애 교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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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reunited with the girl who left me when I lost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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