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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이, 이해가 가지 않아요.”

        “……뭐가?”

        “기분이 이상해요. 당신이…… 정말 제 반려인 것처럼 느껴진다구요!”

       

        잔뜩 붉어진 얼굴의 한유리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소리쳤다.

       

        뻔한 일이다. 이 회색빛 도시의 부여받은 ‘캐릭터’의 감정에 영향을 받은 거겠지.

       

        “속는거다.”

        “네? 속는… 다?”

        “그래. 그건 네 감정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네가 담당한 ‘캐릭터’의 감정. 그러니까 한마디로 거짓된 감정이란 뜻이지.”

        “거짓된…… 감정?”

       

        혼란스러운 얼굴의 한유리아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믿기지 않겠지. 자신이 담당한 ‘캐릭터’가 자신을 조종한다는 괴상한 현상을 겪는다는 것이.

       

        “하, 하지만! 이 아이들은……!”

       

        그리 말한 한유리가 황급히 두 아이를 가리켰다.

       

        임하늘, 임소미. 두 귀여운 아이가 마치 인형처럼 껴안은 채로 잠들어있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래. 이 아이를 사랑하는 우리의 감정도 ‘거짓’ 이겠지.”

        “……!”

       

        설마하니 내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걸까?

       

        차가운 의사표현에 한유리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나도, 두 아이가 참 사랑스럽다. 나의 모든 걸 바치더라도 지키고 싶을 만큼.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 감정 자체가, 그러니까 ‘부성애’라는 것 자체가 애당초 거짓일 확률이 지극히 높았다.

       

        “만약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캐릭터가 도대체 뭔데요? 감정을 조종한다는 자는 또 누구고?”

        “간단히 말하자면, 이 세계는 ‘꿈’이야. 이 회색빛 세계를 만든 것은 빌런, ‘꿈을 걷는자.’ 놈은 자신의 세계를 무대라고 생각해. 한마디로 우리는 놈이 만든 영화의 ‘캐릭터’가 된 거다.”

        “……그런, 믿을 수 없는 소리를.”

        “꿈의 원주민은 모두 가상의 캐릭터다. 두 아이도…… 마찬가지로.”

       

        한유리의 동공이 세차게 떨렸다.

       

        믿기지 않겠지.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만큼이나 사랑스러운 두 아이가 이 꿈속에서 만들어진 가짜에 불과하다는 것이.

       

        사실대로 고하자면, 나도 가슴이 아프다. 실제 내 혈육처럼 느껴지는 두 아이가 ‘가짜’라는 사실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여기서 고꾸라지면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한마디로 빌런이 바라는대로, 자아를 잃은 채로 이 회색 세계의 주민이 된다는 뜻이다.

       

        톡톡.

       

        “……?”

        “오셨군요?”

       

        심각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는데, 한 남성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반갑습니다. 신경외과 부교수 이남준이라고 합니다.”

       

        흰색 가운에, 안에는 푸른색 병원복을 입은 남자다.

       

        “……임혜성 입니다.”

        “저, 저는 한유리에요.”

        “두분 잠시, 나누고싶은 얘기가 있는데 자리를 옮겨도 괜찮을까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힌 의사가 더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분위기가 워낙에 무거워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몸을 돌린 의사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

       

        잠시 한유리와 시선을 교환한 나는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레 찾아온 만남. 적어도 ‘빛’을 품지 않은 걸 보아하니, 그 역시 이 세계의 주민이다.

       

        그런 그가 나와 한유리에게 할 말은 무엇일까.

       

        몇분이나 앞장선 남자를 따라 걸었더니, 그는 우리를 텅 빈 휴게실로 안내했다.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그, 놀라실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꼭 드려야 할 말 같아서요.”

       

        잔뜩 경직된 표정의 남자가 어렵사리 입을 연다.

       

        “자녀인 하늘이가 ‘마나 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맞습니다.”

        “하늘이와 함께 있던 아이. 그러니까… 따님도 같은 증세를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네? 뭐라고요?!”

       

        잠자코 남자의 말을 듣던 한유리가 놀라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문 밖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릴 정도다.

       

        “본래 ‘마나 종양’의 발병이란 환경이 십 할입니다. 높은 확률로…… 작은 아이도 같은 증세를 앓고 있을 겁니다. 다만 어린만큼, 그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것 뿐이죠.”

        “……!”

       

        ‘동화’의 영향일까. 그 두려운 한마디가 이토록 차갑게 느껴질 수가 없다.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감각 속에서 말했다.

       

        “마나 종양. 그 질병을 앓은 사람의 생존률이 얼마나 됩니까?”

        “……많이 낮습니다. 괜히 인류가 정복 못할 불치병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니까요.”

       

        남자가 무거운 표정으로 답한다.

       

        그리고.

       

        “어, 어떡하죠? 여보!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들 어떻게 해요?”

        “…….”

       

        나 네 남편 아니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입이 쉬이 떨어지질 않는다.

       

        빌런, 꿈속을 걷는자. 놈의 세계의 ‘동화’는 나조차 쉽게 떨칠수 없었으니까.

       

        “……어?”

       

        그러던 중,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세계는 가짜다. 

       

        정해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하나의 ‘시나리오’이며, 아마 회색빛 도시의 주민들은 셀 수도 없이 같은 나날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Z급의 능력자라 할지라도 또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치 내가 ‘우주’ 규모의 능력을 사용하면 강력한 패널티를 입는 것과 흡사하단 뜻이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이 세계를 ‘삭제’ 해버린다면, 말 그대로 존재조차 하지 않는 허무로 돌려버린다면.

       

        이 거짓된 가짜 세계에도 모종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모두를 구원할 방법이야.’

       

        물론, 진정한 의미의 구원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반복된 죽음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것. 나는 그게 진정한 구원이라 생각한다.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파괴’가 아닐까.

       

        “한유리.”

        “네? 여보…… 아, 아니! 임혜성!”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좋은…… 생각?”

       

        고개를 끄덕인 나는 휴게실을 나섰다. 지금 내가 꺼내는 말은 듣는이가 없어야만하니까.

       

        자리를 옮겨 대형병원의 정원. 

       

        그곳 벤치에 한유리를 앉힌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물었다.

       

        “한유리, 네 능력은 얼마나 쓸 수 있지?”

        “……평소의 절반. 창조의 힘을 오롯이 쓸 수는 없지만, 능력의 사용은 가능해요.”

        “절반. 절반이면 충분해.”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넣어 수첩을 꺼냈다. 수도 없이 읽어 너덜너덜해진 수첩의 중간, 과거의 내가 읽었던 페이지에 적힌 것.

       

        [ 다음 인물을 조사에서 제외한다. 김인만, 최영웅, 안젤리카. ]

       

        과거의 내가 작성한 ‘일기’에 적힌 명단이다. 그곳에서 주목할 사람은…….

       

        “우리는 이제 성녀를 찾는다.”

        “네? 그건 또 무슨 멍멍이 소리에요?”

        “<성녀> 안젤리카. 그녀를 찾아야해. ‘호스트’를 찾아 동화를 해제하고, 빌런을 처치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빠른 방법이 있어.”

        “자, 잠깐만요. 그러니까…… 당신과 저처럼, 성녀도 이 세계에 있을 것이다? 그건 무슨 확신이에요?”

        “무슨 확신이냐고?”

       

        사람들이 모르는 성녀의 비밀. 나는 그걸 알고 있다. 그 비밀을 떠올리면 이 회색빛 도시에서 성녀가 있다는 건 반쯤 확신할 수 있었다.

       

        “빌런… 꿈속을 걷는자의 꿈속에 갇힌 사람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모르겠어요.”

        “바로 현실도피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라는 거다. 뭐, 나는 경우가 다르겠지만.”

        “……?”

       

        내가 바라는 건 아카데미 생활의 탈출이 아니라, 빈곤한 생활의 탈출. 하지만 분명 묘한 간극이 있다고해도 ‘정신 방벽’엔 충분히 영향을 줬을 거다.

       

        그러니 내가 이 빌어먹을 곳에 있는 거겠지. 그리고 그녀또한 이 회색빛 도시의 상업 지구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아무튼.

       

        “분명 성녀는 이 도시 어딘가에 있을 거야. 내가 보증할 수 있어.”

        “그, 그래요. 성녀가 있다고 치자구요. 그리고 그 성녀와 함께 움직인다고 치고요. 다음은? 어떻게 이 세계를 나가겠다는 건데요?”

       

        씨익.

       

        어딘가 불안한 얼굴의 한유리를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뭐긴 뭐야?

       

        “폭발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 세계를 멸망시킨다. 한마디로 빌런을 죽이는 빌런이 되는 거야.”

        “네,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세계를 멸망시킨다고요? 어떻게? 아니, 왜? 왜 이 세계를 멸망시킨다는 건데요?”

       

        황당한 얼굴의 한유리가 말을 더듬거리며 내게 묻는다.

       

        “그야…….”

        “……?”

        “그게 아버지니까.”

       

        끄덕.

       

        짧게 답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유리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임하늘과 임소미… 두 아이를 생각하는 건 그녀와 같다.

       

        지킨다. 그리고 파괴한다.

       

        두 아이를 지키는 아빠의 마음으로, 나는 이 세계를 파괴하겠다.

       

        * * *

       

        “아, 안돼! 왜 나만! 또! 이런 시련을!”

       

        펑!

       

        “……또 지랄 시작이네.”

        “냅둬. 우리 교대시간 얼마 안 남았어.”

       

        회색빛 도시, 상업 지구 골목에 자리한 한 PC방.

       

        괴성을 지르는 한 손님의 추태에 두 알바생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이 피시방에 나타난 건 약 일주일 전.

       

        손님들은 물론, 카운터를 지키던 알바생들도 모두 입을 쩍 벌릴 아름다운 여성은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마력의 소유자였다.

       

        찬란한 보석도 빛바래게 할 백금발에, 푸른 눈. 마치 신이 빚어 만든 착각이 드는 아름다운 몸매까지. 

       

        ……아마 사내는 물론 여성이라도 그녀의 매혹적인 미모를 본다면 절로 군침을 삼킬 것이다.

       

        다만 문제는.

       

        “가, 강등? 강등이라고?”

       

        콰아아앙!

       

        “또 아이언이에요. 또! 왜 나만 팀운이 없는 건데요!”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한 성격의 보유자라는 것이다.

       

        “천벌이 떨어질 겁니다! 제 점수를 처참하게 약탈한 이들에겐 신의 분노가 내릴 거에요!”

       

        쾅!

       

        떨그렁!

       

        두 알바생은 알았다. 또 게임을 하다 발작버튼이 눌렸구나. 그리고 화가 나 내려친 샷건에 에너지 드링크 캔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겠구나.

       

        ……그런 주제에 신을 찾는 건 좀 그렇지 않나?

       

        “하아. 네가 가서 좀 말려봐.”

        “어떻게? 무슨 수로?”

       

        두 알바생은 몰랐다.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고, 저 바깥 세상에선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으아아아악!”

        “……나 무서워.”

        “……나도.”

       

        헬쓱한 얼굴의 두 알바생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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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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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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