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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모르핀은 1800년대 초에 발견되었다.

        

       하긴, 애초에 모르핀 자체가 아편의 일종이었으니 시대 배경을 따로 조사하지 않아도 대충 그때쯤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다. 게다가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도 모르핀은 병사들 진통제로 자주 나왔으니까.

        

       인류가 자연상에 존재하는 식물에서 추출한 것으로는 최강의 진통제인 모르핀은 그 효과 자체도 강력하고, 뇌에 영향을 미치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 그래서 2차세계대전까지는 병사들에게 미친 듯이 뿌려졌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2차세계대전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을 개고생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애초에 그 유명한 ‘아편’의 한 종류다.

        

       중독성도 매우 강력하여 현대에도 최후의 최후, 다른 진통제가 도저히 듣지 않을 때나 쓰는 마약성 진통제였으니까.

        

       약의 효과만 보고 부작용이 비교적 덜 연구되었던 과거였으니 쓴 것이다. 게다가 사실 딱히 대신할만한 약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방 안에 그 모르핀을 쟁여두고 있었다.

        

       “……이게 뭐야?”

        

       “…….”

        

       그렇다. 과거라고 해서 딱히 아편의 해악성을 모르던 것이 아니다. 그 왜, 영국에서도 아편을 청나라에 아주 열심히 팔았고, 그 아편 때문에 나라가 망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청나라가 반발해서 일어난 유명한 전쟁이 아편 전쟁 아니던가.

        

       이쪽 세계라고 그 효과를 모르고 쓴 것이 아니다.

        

       ‘알고서도’ 쓴 거지.

        

       그리고, 지금 나는 방 안에 쟁여두었던 모르핀의 위치를 하나하나 죄다 드러내고 있었다.

        

       내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침대 아래나 옷장 위 같은 곳을 뒤지고 있는 앨리스 때문에.

        

       “황녀님.”

        

       “……설마, 아니지?”

        

       침대 위에 올라가 있는 모르핀을 보고 앨리스가 물었다.

        

       많은 양은 아니다. 애초에 나한테 많은 양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딱 한 두 번 맞을 수 있는 양이면 충분했으니까. 혹시 모르니 여유분으로 작은 병으로 세 개 정도.

        

       하지만 앨리스의 의심을 사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응? 중독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

        

       “……황녀님.”

        

       나는 엄청나게 불안하다는 듯 물어보는 앨리스를 침착하게 불렀다.

        

       “제가 아편 중독 같은 증상을 보인 적이 있습니까?”

        

       “…….”

        

       모르핀을 맞은 뒤 겉으로 가장 쉽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는 동공이 작아지는 것이다. 나는 이미 몇 번 실제로 보았다. 몇 년 전에 백작령에서.

        

       게다가 내가 진짜로 모르핀 ‘중독’이라면, 이미 티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르핀 같은 아편에 취하면 한동안 제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미친 사람같이 되는 데다가, 금단증상으로 대놓고 구토, 발열, 설사 같은 대놓고 티 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내 몸은 엄청나게 멀쩡했다. 필요할 때는 엄청나게 바쁘게 일하니 당연히 그런 금단증세가 일어나야 할 텐데 나는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상하게 그 흔한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럼, 이런 건 왜 가지고 있는 거야?”

        

       앨리스가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비상용입니다.”

        

       “……성내에 마법사들이 있잖아.”

        

       그렇다.

        

       이 세계는 마법이 실존하는 곳이다. 마력석을 이용하여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이 실존하는 곳.

        

       몸이 망가진 곳을 거의 흉터조차 남기지 않고 치료해내거나, 최근에는 아예 잘린 다리를 이어 붙이는데 성공하기까지 했다는 모양이다.

        

       “마법으로 몸을 치유하는 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그럼 그동안……!”

        

       “그리고 치유되지 않은 몸은 통각을 느끼고, 따라서 둔해집니다.”

        

       아무리 훈련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다치기 전과 다친 후에 완전히 똑같이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필요할 경우 뇌를 속여 통각을 가리고 급하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했다.

        

       ……솔직히 조금 억울했다. 나는 진짜로 아직 써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필요할 때는 사용한 뒤 한 번 상황을 경험해보고 다시 시간을 돌릴 생각이었다.

        

       마약에 의존하게 되는 데는 정신적인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육체적인 작용 때문이다. 특히 뇌와 신경계에 미치는 해악이 아주 심각하다. 마약에 중독되었을 때 마약을 찾는 것은 그저 ‘입이 심심해서 음식을 찾는’ 것과는 다르다. 허기진 사람이 절박하게 음식을 찾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이미 뇌는 배가 고프다고 속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뇌와 신경계의 중독도 그대로 취소해버릴 수 있다.

        

       그러니, 한 번 크게 다쳐서 알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가능성이라면 최대한 버티며 미래를 본 뒤 다시 그 아이디어를 적용해 새로 도전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최종적인 상태에서는 마약 없이.

        

       “…….”

        

       앨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 때문이야?”

        

       “…….”

        

       음…….

        

       ‘앨리스 때문만’은 아니다. 정확히 따지자면 그냥 모든 상황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준비해둔 준비물이었을 뿐이었다. 혹시라도 정말로 황제를 암살해야 할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황제는 개인의 무력도 이 세계 최강급이다. 루카스조차 검으로 이기지 못할 정도니, 아마 지금 이 세계에서 ‘검성’이라고 알려진 사람보다도 압도적으로 강하겠지.

        

       그래도 사람인 이상 아주아주 미세한 틈은 있을 것이고.

        

       하지만 그 틈은 너무 미세해서, 제대로 찾아내 파고들려면 수 천 번을 초 단위로 반복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이 모르핀들은 그 과정에 약간의 효율을 더해주기 위한 물건들이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뭐라고 생각한 것인지, 앨리스가 나에게 확 손을 뻗었다.

        

       앨리스는…… 사실 ‘재능’만 따지면 나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그’ 황제의 딸이다. 육체 능력도 최상위급이고, 머리도 엄청 좋다. 솔직히 내가 시간을 돌리지 않는다면 1대1로 마주했을 때 나는 절대로 앨리스를 이기지 못한다.

        

       게다가 공부도 그렇다.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책을 몇 번이고 읽고, 가정교사에게 수백 시간의 강의를 듣고도 남들과 같은 시간만 투자할 수 있는……아니, 마음만 먹으면 그냥 없었던 일로 만들고 지식만 뽑아먹을 수 있는 나였으니 그럴 수 있는 거지, 그냥 공부했다면 나는 아카데미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애초에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못했을 거고.

        

       그러니까, 음.

        

       이렇게 갑자기 멱살을 잡아버리면 나는 못 피한다. 그대로 얼굴이 앨리스 얼굴과 주먹 하나 정도 떨어진 정도까지 확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시간을 돌릴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가, 조금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일단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

        

       왜냐하면, 앨리스도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였으니까.

        

       기왕이면 함께 보낸 시간을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야.”

        

       아.

        

       큰일 났다.

        

       앨리스가 진짜로 화가 난 모양이다.

        

       “지금부터 내가 물어볼 테니까, 똑바로 대답해.”

        

       “…….”

        

       표정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평소에 공들여 연습하던 게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너,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너는 뭐라고 생각하는 거고.”

        

       “황녀님은 제국의 황제가 되실 분입니다. 저는 그걸 돕는 역할이고요.”

        

       “아버지께서 시키신 대로?”

        

       “…….”

        

       아니, 이건 내 의지였다.

        

       만약 앨리스가 여기 있지 않았다면 나는 얼른 도망쳤을 거다. 기왕이면 클레어 근처라거나…… 히로인이나 남주인공, 그리고 조금 내키지는 않지만 남자 캐릭터가 있는 곳이라도 가서 도움을 요청하고 숨어있을 생각이었다. 법국 빼고.

        

       내가 대답하지 않는 것을 뭐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앨리스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럼 바꿔 물어볼게. 만약 아버지께서 내가 아니라 너를 황태녀로 지목하시면 어쩔 거야?”

        

       “그런 일은—”

        

       “만약 아버지께서 그런 일을 벌이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한다면, 너는 크게 착각하고 있는 거야.”

        

       ……음.

        

       착각은 앨리스가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런 말을 할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저는 황권이 정당한 위치로 옮겨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게 아버지의 명령이더라도?”

        

       “예. 그게 올바른 일이니까요.”

        

       이건 그래도 진심이었다.

        

       내가 황제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 사실 스토리를 따져봤을 때 진행된 곳까지만 보면 황제가 황권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은가. 황제는 악의 제국의 수장이었으니까.

        

       결국 마지막에 승리하는 존재는 주인공이 될 거고, 그 옆에서 돕는 히로인과 다른 남자 일행이 있을 거다.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조력자도.

        

       아직 결말이 난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마지막이 민주혁명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곤 했다.

        

       앨리스는 황제 자리는 이어 나가지 못해도 민중의 영웅은 될 수 있겠지. 그리고 그게 앨리스의 미래에도 훨씬 나을 거고. 아무리 현실에서 따온 부분이 있어도 결국 게임이니까. 제작사를 생각하면 황족 목이 죄다 따이는 일은 아마 없을 거다.

        

       “너의 몸을 망쳐가면서라도?”

        

       앨리스의 눈이 침대 위에 있는 모르핀 병을 향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물론 끝까지 사용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대답하면 내가 굳이 모르핀을 모으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 핑계 겸 그렇게 대답했다.

        

       “…….”

        

       앨리스는 한동안 나를 노려보고 있다가, 꽉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아주었다. 나는 최대한 비틀거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번에도 거의 십 년 가까운 노력이 결실을 보았는지, 꼴사납게 비틀거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건 내가 챙겨갈 거야.”

        

       “…….”

        

       앨리스는 침대 위에 있던 모르핀을 집었다.

        

       그리고 나를 보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쓸 일은 없어. ‘일국의 황녀’가 모르핀 중독일 수는 없잖아?”

        

       그리고 그 ‘일국의 황녀’라는 말은 나를 향해 하는 말이기도 했다.

        

       “…….”

        

       “그리고, 내가 반드시 황궁 내에서 이런 물건을 구할 수 없도록 조치하도록 하겠어. 앞으로 이런 물건은 전문적으로 꼭 필요한 순간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만 만질 수 있을 거야. 황녀 같은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알겠어?”

        

       “……알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앨리스는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로 휙 돌아서서 내 방을 나가버렸다.

        

       “…….”

        

       내는 대충 30초 정도 센 뒤에,

        

       “후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누가 황제의 딸 아니랄까 봐, 기백 하나는 장난 없다. 멱살 잡혀있는 내내 눌려버리는 줄 알았네.

        

       다행히 표정 관리에는 성공해서 시간을 되돌려야 할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조금 전, 앨리스의 뒤를 따라갔더니 황제는 이미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황제를 직접 만났다고 해도 상황이 해결되었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 해결할 가능성조차 미처 보지 못했다는 점이 앨리스의 성질을 제대로 건드린 모양이었다.

        

       씩씩거리면서 다시 내 방으로 돌아온 앨리스는 제 분을 못 이겨서 방 안을 돌아다니다가, 내 가방을 확 열어젖혔다.

        

       순간 뭐하나 했더니, 가방 안에 있던 짐들을 죄다 풀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내 물건이라서 막 집어 던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가방을 싸기 전’의 모습으로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이가 없어서 멀거니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내 가방에서 짐을 꺼내던 앨리스가 모르핀 한 병을 발견하고, 그 소동이 일어난 거다.

        

       “……음.”

        

       솔직히, 앨리스가 모르핀을 적발하겠다고 해도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도시 구석진 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아편굴이 있는 세상이다. 물론 불법이었지만, 제국은 하층민의 고달픈 삶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덕분에 귀족 사이에서도 아편이 어느 정도 유행하고 있기도 했고. 물론 귀족은 하층민보다 더 잡기 어렵다. 백작도 암살당하기 전까지는 당당하게 그 짓거리를 하고 살았으니까.

        

       ……그래도, 황궁 안에 모르핀을 다시 들여놓는 건 좀 위험하겠지.

        

       다음에 앨리스한테 걸리게 되면 이번에는 진짜로 중독자라고 의심받고 요양원에 강제로 입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정신병원은, 좀…… 야만적인 구석이 있지 않던가. 별로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음…….”

        

       모르핀이 아니라면……

        

       글쎄, 몇 가지 떠오르는 의약품이 있긴 했다. 진통제는 아니더라도 내 시도에 성공확률을 비약적으로 올려줄 수 있는 약물이.

        

       예를 든다면, 그래, 이 시대에는 너무 최근에 발매되어서 아직 그 해악성과 부작용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물건도 있다.

        

       복용하면 집중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여 평소에 하던 일을 두 배의 속도로, 거기에 평소보다 더 확실한 정확도로 끝낼 수 있도록 하는 약물. 무슨 마법의 약 같은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도 있는 마약이었다.

        

       메스암페타민.

        

       실제로 일반의약품으로 당당하게 유통되기도 했던 물건이다.

        

       현실에서 그 의약품의 상품명은 ‘필로폰’.

        

       그 제품 제약회사가 일본 회사였기에 일본어 독음을 그대로 따라 ‘히로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물론 마약답게 인체를 심각하게 마모시키기는 하지만. 도파민 수용체가 영구적으로 손상된다고 했던가? 그리고 도파민은 인간의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된다. 즉, 한 번 복용하면 다시는 일상적인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마약을 복용하지 않는 이상은.

        

       나는 시간을 돌려서 고치면 그만이긴 했지만.

        

       “……역시 그만둘까.”

        

       모르핀이라면 ‘가능성 탐구’용으로 활용해볼 수 있을지 몰라도, 메스암페타민은 철저하게 ‘결과 내기용’ 약물이다. 이 마약으로 얻은 결과는 활용할 수 없다.

        

       그 약을 먹고 암살에 성공해도, 나에게는 평생 마약중독자로 살아가거나, 마약 외에는 모든 쾌락을 느끼지 못하게 되거나, 아니면 결국 시간을 되돌려 약 없이 다시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선택지밖에 없을 테니까.

        

       정말 쉬운 일이 없구만.

        

       나는 다시 한 번 숨을 길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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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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