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

       

       

       

       

       

       

       “우웁. 젠장. 아직도 역겨운 맛이 가시질 않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몬스터 요리는 처음인데, 과연 천한 새끼들이나 먹는 음식답더군요.”

       “대공녀의 식성이 괴랄한가 봅니다. 그나저나, 엘든 그 자식은 잘도 먹더군요.”

       

       대공녀와의 첫 회동을 마친 이들이 채 가시지 않은 구역감을 억누르며 대전 바깥의 구석에 모여있었다.

       카일이 블런드와 데론에게 이르듯, 말을 건넨다.

       

       “그보다 대공녀께서 엘든 그 자식에게만 웃으시는 거 보셨습니까?”

       “웃기만 하셨는가. 그 놈과 다시 만나 ‘기쁘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거들떠 보시지도 않았다네.”

       

       심통이 제대로 난 카일이 그리 고하자, 블런드도 합세해 집단 린치의 서막을 알렸다.

       옳다구나, 싶은 카일이 더 격정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공공의 적을 까내리며 결속하는 건, 악인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기권했다 해놓고 뒤에선 대공녀와 독대까지 했지 않습니까.”

       

       “어디 그뿐인가? 쓰레기 같은 요리를 꾸역꾸역 먹는 우리를 보며 비웃기도 했다네.”

       

       “그뿐이겠습니까? 저희에겐 기권한다 해놓고 그 쓰레기 같은 요리를 일부러 맛있는 척 먹는 거 보셨지 않습니까? 대공녀께 잘 보이기 위함이 틀림없습니다.”

       

       “우릴 능멸했어. 기권 선언으로 우리의 방심을 유도해놓곤 뒤에선 대공녀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작질을 펼친 게지.”

       

       

       엘든에게 느낀 굴욕감을 토해낸 카일과 블런드가 침묵을 고수하던 데론을 쳐다본다.

       보스의 명이 하달되길 바라는 졸병의 눈빛들이다.

       계급장 떼고 맞붙는 혼약대전이라지만, 아카데미 때부터 형성된 상하 유착 관계는 자연스런 조직 구도를 만들고 있었다.

       물론.

       실금 하나만 생겨도 금세 깨져버릴 유리성 같은 관계였지만 말이다.

       팔짱을 낀 채, 고민에 잠겨있던 데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 그런 간교한 수를 생각해낼 리는 없을 테고, 꽤나 유능한 집사장을 두었나보군.”

       “그러게 말입니다. 데론 공자님의 은덕이 아니었으면 수석 졸업은 꿈도 못 꿨을 놈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데론 공자님이 더 화가 나시는 것 아니겠는가. 짐승도 거두어준 은혜는 아는 법이거늘. 금수 새끼가 따로 없단 말이지.”

       

       카악, 퉷.

       

       말을 마친 블런드가 가래를 한가득 모아 바닥에 뱉었다.

       평가단이 없기에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그럼에도 입 속에서 가시질 않는 찝찝함과 불쾌감.

       그것은 괴식에 의한 것과 더불어 엘든이란 괴인에 의한 것이었고, 해소하지 않으면 안될 화마와 같았다.

       데론을 위하는 척, 그리 얘기하고는 있지만 블런드 역시 엘든의 단독 질주가 무척이나 아니꼬운 상태였다.

       블런드가 데론에게로 고개를 가까이하며 물었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데론 공자님. 분수를 모르고 까부는 놈에겐 어디에 서있어야 하는지 교육을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

       

       데론이 말을 아꼈다.

       섣부른 접근은 화를 자초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일엔 어떠한 이유가 숨겨져 있는 법이다.

       기권을 선언한 엘든도 이해되지 않지만, 그것을 승인치 않고 보류하고 있는 윈터펠 대공가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

       대공께서 보류한 것인지, 대공녀가 보류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막을 알아내기 위해선 부딪히는 수밖에였다.

       

       “흠…….”

       

       특히나 기권을 선언한 이후부터 엘든 라펠리온은 다른 사람이 된 것마냥 굴고 있다.

       꼴 같지도 않은 자아성찰에, 마치 자신들의 과거를 책하는 듯한 말까지.

       이래 저래 눈꼴 시려운 녀석이었기에, 평가단이란 족쇄가 사라진 만큼 한 번 만나볼 필요성은 있었다.

       

       엘든 라펠리온.

       

       어쩌면 무언갈 눈치채고 선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애당초 수많은 지원자 중, 왕립 아카데미 동기생 4명이 최종 후보가 된 것도 의아한 일이었었다.

       게다가 대공녀의 목소리가 왜인지 낯이 익었으며, 괴식을 권유하는 의도가 다분히 억지스러웠었다.

       엘든의 기권이 무언갈 눈치챈 도피성인지, 선두로 치고 나가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선 놈을 만나보는 수밖에.

       데론이 팔짱을 풀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만나봐야겠군. 가지들.”

       

       그런 그들의 눈에, 폐쇄된 공간에 홀로 서성이는 엘든 라펠리온은 훌륭한 먹잇감이었다.

       

       “귀하신 세 분께서 귀한 걸음을 하셨군요. 어쩐 일들이십니까?”

       

       훈련장으로 들어선 데론이 너스레를 떠는 엘든에게로 곧장 다가갔다.

       판을 깔아주면 미처 날뛰기만 하던 짐승이 차분하다 못 해 여유를 부린다.

       이죽거리는 꼴이 아니꼬워 당장이라도 응징을 해버리고 싶지만, 부들대는 주먹을 애써 참으며 비꼬는 데론이었다.

       

       “독서에 훈련이라… 엘든, 자네는 참으로 태평하군?”

       

       물론 단 두 번 만에 인내심이 바닥을 찍고 말았지만.

       얄밉게 어깨를 으쓱이며 웃는 엘든에 의해 말이다.

       

       “기권자니까요.”

       

       

       

       

       **

       

       

       

       

       3 대 1의 대치 상황.

       

       물론 ‘대치’라는 것이 비등한 조건을 가진 이들끼리의 신경전을 뜻하지만, 기세로만 놓고 봤을 때 결코 3에 밀리지 않는 엘든이었다.

       

       “이 기권자에게 다들 볼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엘든의 말에 데론이 조소를 지으며 직접 나섰다.

       

       “자네. 계속 기권, 기권 운운하는데. 대공녀님께 편애를 받고 대공녀님께 이쁨 받기 위해 그 역겨운 괴식도 맛있는 척 먹어대는 자가 과연 기권자라 할 수 있는가?”

       

       엘든이 황당한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것 참…. 맛있어서 맛있게 먹은 것을 그리 매도하시면 섭섭할 따름입니다. 데론 공자님.”

       “장난도 적당히 하지. 기권 선언이 우릴 방심시키려는 수작질이었다는 걸 아직도 모른다 생각하는 건가? 봐주는 것도 정도껏이니 적당히 까불게.”

       

       데론이 힐난을 퍼붓는 동안, 카일과 블런드는 뒤편에 서서 엘든을 주시하고 있었다.

       언제든 참전해 공공의 적을 뭉개뜨릴 각오를 다지며 말이다.

       그 이목의 주인공, 엘든이 외려 데론에게 한 발자국 다가섰다.

       불쑥 튀어나온 기행에 주춤하는 데론.

       그런 그의 두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눈에 힘을 주는 엘든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미리 설계된 작전의 시작이자, 잠시나마 미치광이 엘든으로 돌아갈 시간을 뜻했다.

       앞서 얘기했듯, 악명은 적당한 쓸모가 있는 법이니까.

       

       “이 진솔한 두 눈을 보십시오. 정녕 수작을 부릴 눈으로 보이십니까?”

       “……!”

       

       명백한 조롱이다.

       쇠퇴한 백작가의 독자가 흥성한 공작가의 차남에게 조롱을 건넨 것이다.

       데론은 치가 떨려옴을 느꼈다.

       제 분수를 모르고 까불던 이가 기어코 조롱 섞인 도발을 저질렀기에, 속에서부터 화마가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엘든은 자신이 부리던 짐승 새끼 중 하나일 뿐이었다.

       부리던 짐승에게 물어뜯긴 상처는 곱절로 갚아주어도 아물지 않으리라.

       부리던 짐승이 감히 이빨을 세우면 응당 매질을 해야 하리라.

       그럼에도 데론은 평정을 잃지 않고자 했다.

       하찮은 미물이 배짱을 부리는 데엔 이유가 있을지 모르니까.

       

       “웃기지 말게. 그 역겨운 요리가 맛있었다고? 지나가던 짐승도 쳐다보지 않을 음식이었네.”

       “제 입맛이 그쪽 취항인가 봅니다.”

       “그보다, 자네가 기권 선언을 했는데 어째서 대공가에서 결정을 미루고 있는 거지?”

       “저도 모를 일입니다. 그토록 궁금하시면 대공께 직접 물어보지 그러십니까?”

       “지금 내게 명령을 하는 겐가?”

       “답을 찾을 쉬운 방법을 일러드린 것뿐입니다.”

       

       좀체 물러서지 않는 짐승의 기세.

       외려 교전이 오갈수록 수세에 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데론이 어금니를 씹으며 힐긋 뒤를 보았다.

       카일과 블런드.

       부리던 수족들이 보고 있다.

       물러섰다간, 체면을 구기게 될 터였다.

       

       “한 가지만 묻지. 신중히 답하는 게 좋을 거야. 답에 따라, 자네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서슬퍼런 경고이자 협박.

       엘든이 기꺼이, 그리고 태연히 받아주었다.

       

       “어떤 질문이십니까?”

       “이제 와 기권 선언을 한 것에 숨은 속뜻은 없다는 말인가? 정녕 퇴진을 위함이었고, 우릴 기만한 전략이 아니었냐 묻는 것일세. 평가단도 없으니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게나.”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 주제를 이제야 파악해 기권하는 것이라….”

       

       데론이 엘든의 말을 잘랐다.

       

       “아니. 답이 틀렸어. 자넨 지금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있다네.”

       

       그리고선 재차 노기를 담아 말을 잇는다.

       

       “지금 내게 모든 진실을 토해야 했고, 우릴 기만한 것에 대한 사죄를 하며 예전처럼 고개를 굽혔어야 옳네. 그것이 네놈의 주제니까.”

       

       하지만 능구렁이가 되어버린 엘든에겐, 간접 피해조차 끼치지 못 할 겁박이었다.

       

       “기만한 적 없으며, 사죄를 할 일이 없기에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보기와 달리, 그 정도 주제는 파악하고 있답니다.”

       

       데론의 미간이 극도로 구겨진다.

       변절자가 내뱉는 역한 언사들.

       몬스터 요리만큼이나 구역감이 이는 뻔뻔함.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보잘 것 없는 쇠퇴한 가문, 지켜줄 핏줄조차 없는 천애고아에게 당하는 수모는 참을 수 없는 역정을 일으킨다.

       데론이 푸른 동공에 투지를 벼려냈다.

       

       “최종 평가전이기에 지금껏 참아준 것이다. 한 번만 더 나를 욕보이려거든,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여긴 보는 눈도, 듣는 귀도 없으니까.”

       “여기 하나, 둘, 셋, 네 쌍이나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엘든의 너스레는 끝나지 않았고, 결국 두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화난 데론이 소매를 걷으며 엘든에게 다가간다.

       내쉬는 한숨이 떨리는 것으로보아, 엘든이 바라던 극대노였다.

       

       이성을 잃을 정도의, 상황 분별력이 흐려질 정도의 극대노.

       후일을 도모하는 것보다 당장을 도모하게끔 부추기는 극대노.

       이성보다 본능을 강요하는 극대노.

       최악의 상황을 최상으로 뒤집어줄 극대노.

       계획대로, 데론 켈리드에게서 그것이 발현한 것이다.

       

       그리고.

       

       엘든은 그것을 위해 아무도 없는 훈련장을 고른 것이었으며.

       그것을 위해 자신을 미행하던 그들을 이곳으로 유인한 것이며.

       그것을 위해 일부러 도발을 걸었던 것이었고.

       또한 그것을 위해 빙의 첫째 날 밤, 노집사장께 특별히 부탁해두었던 것이 있었다.

       원작의 데론 켈리드가 원터펠 북부령의 음지에서 구해 늘 품에 챙기고 다니던 [마나레코드]와 똑같은 것을 말이다.

       악인들은 늘 뒤가 구린 법이니까.

       

       그리고 도발에 응하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카데미 때와는 현격히 달라진 상황.

       그것을 유리하게 사용할 머리가, 다행히 이준우에겐 있었다.

       

       “흐으음……. 아무래도 네놈, 아카데미 때의 기억을 완전히 잊은 모양이군.”

       

       후웅!

       

       일순간 엘든의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데론의 주먹.

       

       퍼억!

       

       그것이 얼굴에 적중하기 직전, 엘든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고 그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전해져 왔을 때, 짐승이 배짱을 부린 이유가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은 데론이었다.

       하물며, 업신여기던 미물의 농간에 놀아났음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던 데론이었다.

       

       

       “예전처럼, 순순히 맞아드릴 줄 아셨습니까?”

       

       

       히죽 미소짓는 엘든.

       전투광(戰鬪狂)이란, 개망나니란 악명에 어울리는 실로 흉광한 미소였다.

       

       

       

       

       

    다음화 보기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