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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모든 준비를 마친 2황자는 마법진의 위에 몸을 뉘었다. 미치광이 마법사와 자색 마탑주는 마법진의 동쪽과 서쪽에 자리 잡고 마력을 흘려 넣었다.

       

       보랏빛의 광채가 마법진의 홈을 타고 흐르며 주변을 은은하게 밝혔다.

       

       준비는 끝났다. 

       동선도, 적을 상대하는 움직임도, 그녀를 구해낼 방법도. 2황자 이리드는 오늘, 틀림없이 자신의 사랑을 구해 낼 것이었다.

       

       유일하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아직, 이리드는 그녀에게 건넬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지 못했다.

       

       손아귀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목적을 완수하고, 센트라의 미소를 볼 수 있을까. 그녀의 행복을 기원할 수 있을까. 이리드의 머릿속에서는 폭풍우가 치는 듯했다.

       

       그러나 이리저리 마음이 흔들릴지언정, 온갖 미혹이 자신을 괴롭힐지언정,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잊지 않았다. 센트라를 구한다. 이리드가 골몰하고 매달려야 할 것은 그것뿐이었다.

       

       이리드는 작전 회의의 내용을 곱씹으면서, 마법사에게 말을 걸었다.

       

       “남은 시간은?”

       

       “현실 시간으로 한 시간 가량입니다 황자님. 마력 탱크의 용량 부족으로 유지 시간이 줄었습니다만⋯⋯ 그래도 해후를 즐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남겠군요. 변수가 없다면 말입니다.”

       

       변수. 이리드는 짐작 가는 것이 있어 다시 한번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마법사. 이 마법은 절대적으로 안전한가?”

       

       “네, 물론입니다.”

       

       “내가 반대편에서 죽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래⋯⋯ 나는, 준비가 끝났다.”

       

       이리드는 눈을 감았다. 남은 건, 해내는 것이다.

       

       ===============================================================

       

       

       째깍.

       

       로즈마리의 잔향, 밀려든 검은 연기로 가득한 복도, 흩어지는 잔해, 폭발.

       

       째깍. 째깍.

       

       굳어져 있던 시간이 부드럽게 풀려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천천히, 애달프도록 느긋하게. 당신은 손가락을 꿈틀거렸습니다. 긴장한 전신 근육의 섬유 하나하나가 느껴질 정도로 집중했습니다.

       

       시간이 다시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흐르기 전에, 당신은 머릿속으로 작전 회의를 되새겼습니다. 화염 마탑의 원로 펄선과 1황녀 일레인의 조언.

       

       “그 아이와 함께 같은 방으로 들어갔다고 했지? 그렇다면── 적들도 당연히 네 존재를 알 거야.” 

       

       

       “스크롤을 통한 격발이라면, 내 생각엔 원격 기폭장치를 사용했을 것 같소. 창문 너머로 표적의 동태를 확실히 보고 마력을 흘려 넣는 것이지.”

       

       

       “그럼, 저들은 네가 살아있다는걸. 폭발에 함께 휘말리지 않았다는 걸 알아.”

       

       

       째깍. 째깍. 째깍. 틱.

       

       귓가에 울리는 시계 소리가 멀어집니다. 시간은 이제, 원래 그랬던 것처럼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방위국 요원 C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갈고리 총이라⋯⋯ 여관방의 마룻바닥 아래를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무기와 장비들을 숨겨놓는다면, 그 부분이 유력합니다.”

       

       검은 연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기 전에, 당신은 마룻바닥이 묘하게 삐걱거리는 부분을 세게 밟아 부수었습니다. 숨겨진 공간이 있었고, 당신은 손을 뻗습니다.

       

       전신 타이즈 슈트, 갈고리 총, 단검 두 자루. 

       갈고리 총을 주워 허리춤에 걸고, 단검은 그대로 뽑아 들어 한 손에 쥐었습니다.

       

       그때쯤, 검은 연기는 방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희끗하게 느껴지던 로즈마리의 향기는, 화염과 잿가루, 폭력의 냄새에 지워져 버립니다.

       

       이어서 회상합니다. 

       

       “폭발에 휘말리지 않았다는 걸 안다면, 멀쩡한 황자님을 먼저 노려올 것이오.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고 했지, 폭발을 일으켜 누군가를 무력화시키고 싶다면 시야를 막는 건 손해요. 폭발에 휘말린 목표가 어디로 몸을 숨기고 도망칠지 모르잖소?”

       

       

       “어쩌면 너라는 변수를, 처음부터 고려하고 있었는지도. 그러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첫 번째 수는──”

       

       ────지금!

       

       채앵──!!

       

       당신이 단검을 크게 휘두르자, 검은 연기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단검이 튕겨져나갑니다. 

       

       칼날이 날아온 위치와, 언뜻 보인 단검의 손잡이가 무척 익숙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둠 속에서 암습을 가한 적은 여자 용병 로냐입니다.

       

       붉은 머리카락이 언뜻 보였던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

       

       “그런 상황에서 어둠 속에서 싸우는 건 불리해. 왜냐하면, 동생은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지만⋯⋯ 상대는 준비를 했으니까. 어떤 수를 써올지 모른다면, 적어도 시야는 탁 트인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니?”

       

       

       “방위국에 갈고리 총의 시제품이 있습니다. 연습해 보시죠.”

       

       

       “스크롤이라 다행이구먼, 역시 계산이 편해. 폭발력을 감안했을 때, 보호 대상의 위치는 여기쯤⋯⋯.”

       

       챙──!!

       

       당신은 매섭게 날아오는 단검을 한 번 더 쳐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당신의 계획에 따르면, 이 구간에서 한 번 정도는 칼침을 맞는 것도 각오했었으니.

       

       어둠 속의 습격자가 약간 물러섭니다. 연인이 갑작스러운 폭발에 휘말린 상황에서 완벽한 암습을 두 번이나 연이어 막아내다니. 

       

       시간이라도 멈춰 놓고 생각한 게 아니라면, 서류 처리나 하던 샌님은 예상 밖의 실력자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용병들은 보통 자기 목숨을 끔찍하게도 아끼니까, 상황을 보려고 물러나겠지. 그렇다면 드디어 여유가 생겨. 이제는 네 차례야, 이리드.”

       

       

       1황녀는 ‘턴이 넘어온다’고 표현했습니다. 말 그대로, 체스처럼 이어지는 수 싸움에서 귀중한 한 호흡을 벌었습니다. 

       

       당신은 어둠 속에서 로냐의 위치를 가늠하고 의자를 발로 차 날렸습니다. 둔탁하게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마력광. 상대가 자신의 팔에 마력을 불어넣어 막아낸 모양입니다.

       

       데미지를 입힐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시선을 끌기 위한 행동.

       노림수는 이쪽. 당신은 작은 방의 창문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쨍그랑-!

       

       창문이 부서져 나가며, 당신의 몸이 잠시 하늘을 날았습니다. 

       안쪽으로부터 쇳소리 섞인, 앙칼진 고함이 들려왔습니다.

       

       “센트라를 버리고 내빼는 거냐, 으응?!”

       

       “⋯⋯아니.”

       

       공중, 이제 막 추락이 시작되려는 시점. 당신은 허리춤의 갈고리 총을 겨누고, 쏘았습니다. 복도에 난 창문을 향해서. 센트라가 있을 예상 지점을 향해서.

       

       갈고리가 벽에 박히는 느낌이 들자, 당신은 갈고리 총의 모터를 최대로 작동시켰습니다. 무언가에 몸이 끌려가듯이 당겨집니다.

       

       다시 한번, 당신은 온몸으로 창문을 부수고 들어갑니다. 어둠 속에서 손으로 주변을 더듬었습니다. 손끝에 무언가가 닿았습니다. 부드럽고 움찔거리는 게. 

       

       당신은 두 번 다시 놓치지 않도록, 그것을 강하게 쥐었습니다.

       센트라의 얕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으, 이리드⋯⋯?”

       

       “구하러 왔다.”

       

       “⋯⋯시, 심각한 상황에 죄송하지만, 거기는 세게 쥐면 조금, 아픈데요⋯⋯.”

       

       “⋯⋯⋯⋯.”

       

       ⋯⋯당신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기로 했습니다. 

       

       갈고리 총의 손잡이는 창문 밖으로 던져두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벽에 박힌 갈고리로 고정된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즉석에서 발목 함정이 됩니다.

       

       센트라의 몸을 들쳐 업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뛰었습니다. 센트라를 구해냈다는 기쁨에 들뜬 마음도 잠시뿐. 액체로 축축하게 젖어가는 자신의 등을 느끼면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비릿한 냄새.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 축 늘어진 센트라의 팔이 당신의 불안을 부추깁니다. 서둘러서 연기 속을 빠져나가 상처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쿠당탕-!

       

       “이 빌어먹을 새끼가아-!!”

       

       밧줄에 발이 걸려 넘어진 것 같습니다. 다시 한 호흡을 벌었습니다. 

       

       열두 칸짜리 계단을 단숨에 뛰어내렸습니다. 동시에, 검은 연기 속에서도 빠져나옵니다. 당신은 망설이지 않고 2층의 벽면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벽면에 손을 짚고 마력문을 그려냅니다. 덜덜 떨리는 손이지만, 실수는 용납되지 않기에 필사적으로 그렸습니다. 방위국의 문양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벽면이 열리며 비밀 통로가 드러납니다.

       

       달렸습니다. 잠시 뒤를 돌아보면, 서서히 닫혀가는 비밀 통로의 문 사이로 달려오는 로냐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시간은 충분합니다. 

       

       희미한 조명이 밝히는 어슴푸레한 비밀 통로를 내달립니다⋯⋯.

       

       

       ===============================================================

       

       비밀 통로의 중간, 당신은 누워 있는 센트라에게 응급처치를 마쳤습니다.

       

       센트라는 다행히도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폭발이 있던 순간, 모든 마력을 끌어올려 방어해 냈다는 모양입니다. 축축하던 건 흘러내리는 피가 아니라, 센트라가 소지하고 있던 『물 방패』 스크롤의 여파였습니다.

       

       덕분에 상처라고는 생채기에, 약간의 화상, 마력 탈진으로 당분간 힘이 안 들어가는 정도로 끝났지만. 『물 방패』로 흠뻑 젖어버린 얇은 평상복 차림은, 응급처치를 힘들게 했습니다.

       

       ⋯⋯응급처치를 하려면 봐야 하니까!

       

       센트라는 거의 다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는 걸 너그러이 허락해 줬습니다. 서로 얼굴을 붉힌 채로 종군 사제에게 배운 『화상 흩어놓기』를 시전하기를 몇 분.

       

       센트라가 슬쩍 말을 걸었습니다.

       

       

       “⋯⋯능숙하시네요?”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널 구하기 위해서.”

       

       “그 말은, 그러니까⋯⋯ 갔다가, 다시 오신 거예요?”

       

       “그래.”

       

       “⋯⋯위험하잖아요! 그냥, 원래 세계에서 있으면. 위험할 일도 없었는데. 봐요, 잘생긴 얼굴에 상처가⋯⋯.”

       

       “내 얼굴이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칭찬 아니거든요!”

       

       “마음에 들지 않나?”

       

       “⋯⋯그건 아니지만요.”

       

       

       당신은 그제야 웃었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당신의 얼굴에는 한 조각의 미소도 담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센트라와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니 신기한 일입니다.

       

       그녀의 상냥함에 감화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그녀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그냥 당신이⋯⋯ 첫 눈에 반했던 거거나.

       

       당신은 센트라가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네가 살아있으니 모든 걸 바로잡을 수 있을 거다. 과격파 놈들을 처리하는 것도, 『맥주와 노래』를 성공시키는 것도.”

       

       “⋯⋯이리드?”

       

       센트라가 의아해하며 손을 뻗었지만, 당신은 잡지 않았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할 일이 남은 것 같군. 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처리하고 올 테니.”

       

       당신은 몸을 일으키고, 단검을 쥐었습니다.

       통로 저편으로부터 누군가의 뜀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행운이 따라서 싸우지 않고 끝낼 수 있기를 바랐지만⋯⋯ 거점을 점거한 레지스탕스가 비밀 통로의 존재를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심증이지만, 레지스탕스의 전신이 방위국이라는 생각도 했었으니까요.

       

       “⋯⋯도망, 은. 안 가실 거죠?”

       

       “그래.”

       

       “그럼, 그러면⋯⋯ 다치지 말고, 멋지게 싸워서 이겨주세요. 꼭!”

       

       “약속하지.”

       

       사랑하는 이의 응원도 받았으니, 당신이 패배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마지막 싸움을 준비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시 안 됐으니까 세이프 맞죠?

    혹시 그⋯⋯ 지존최강 아이돌 아마네 카나타님을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오늘은 센트라가 나오는 씬 마다, 아마네 카나타 천사님의 하늘의 정원, Instrumental 버전을 들으면서 썼습니다.

    진쟈 갓곡이니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오늘의 메뉴, 부디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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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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