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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루크는 다이튼의 주장에 기겁했다.

    보호자라는것이 ‘그런’ 보호자인줄 몰랐던 루크는 더욱 충격이 심했다.

    ‘뭔가 절차가 있어야한다길래 그러려니 했던 것이거늘…….’

    다이튼은 고개를 조아리면서 다시 한마디를 했다.

    “부끄러운 일인건 아는데, 어떻게든 안되겠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하거라. 애초에, 그런건 예르나가 결정할 일이지, 내가 이야기한다고 될게 아니지 않느냐.”

    실로 그렇다.

    애시당초에, 루크가 ‘잘 말해줄’ 내용도 없었다.

    “그러니 경솔하게 그러지 말고,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부터 말해보거라.”

    아무리 서류상이라지만, 루크는 부부의 연을 그렇게 맺는다는게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결코 없었다.

    다이튼에게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추측을 한 루크는 당사자에게 직접 사정을 듣기를 청했다.

    “하아, 그래.”

    다이튼은 크게 한숨을 쉬면서 말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된건 지금으로부터 1년정도…….”

    ——-

    “과연, 그렇게 되었던 겐가.”

    사정을 들은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튼의 말주변이 별로 없어서 꽤나 두서없이 설명되기는 했지만, 요약하자면 이랬다.

    예르나를 1년 전부터 짝사랑을 해왔던 다이튼은, 사실 몇번이나 고백을 할 기회를 엿보고있었다.

    하지만 숫총각인 그로써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는게 서툴렀고, 또 마음을 표현한다는게 마냥 쉽지만은 또 않은 일이어서 1년이 어영부영 지나가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다이튼도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것은 아니어서, 예르나와 몇번 사적으로 만난적도 있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부끄러움과 상황탓에 고백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걸 1년동안 반복한 것이다.

    다이튼으로써는 이쯤되면 눈치를 채주면 좋으련만, 차라리 에둘러 거절이라도 해준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겠건만, 예르나는 다이튼에게 ‘아직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

    굳이 따지고본다면, ‘편한’사이라는게 맞을 터.

    인간의 기준으로 1년이라면 꽤 긴 시간이기는 하나, 엘프의 관점으로 보자면 꽤 짧은 기간인데다, 아직 ‘젊은 엘프’인 예르나는 애초에 ‘인간 남성’과 연애를 생각조차 않고 있었기에 더욱 다이튼의 감정에 둔감했던 것이다.

    그나마 예르나가 아직 배우자를 원하지 않는듯한 모습인지라 다이튼은 그것만을 위안삼고 있었던 것인데…….

    그녀가 ‘루크’의 영향으로 ‘배우자’를 급하게 찾고 있다는 소식에 놀라 황급히 달려온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정리해보니 다이튼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것은 아니었으나…….

    루크는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말했다.

    “아무리그래도, ‘서류상으로라도 좋다’라는건, 너무 막무가내가 아니었는가. 반성하거라.”

    루크의 탓하는 듯한 목소리에 다이튼은 어깨를 움츠리며 반성하는 자세로 말했다.

    “아, 역시 그렇겠지. 미안, 아깐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이튼은 무릎을 꿇은채로 다시한번 고개를 푸욱 숙였다.

    “아무튼, 그만큼 급했다는 거야.”

    “뭐, 그렇겠지.”

    1년간 짝사랑하던 여인이 남편감을 찾는다는 이야기이니, 혹하지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게 부탁하지 말고, 그대의 감정은 직접 이야기하거라. 말로 전하기 어렵다면, 편지도 괜찮은 방법이다.”

    다이튼이 다짐했다는듯이 이야기했다.

    “알겠어. 편지라……. 그건 해본적이 없네. 근데 난 글솜씨가 없어서…….”

    “그렇다면 내게 갖고오게나. 검수정도는 해주도록 할터이니.”

    “그건 고맙네.”

    그렇게 말은 했어도, 다이튼은 자신의 글솜씨가 10살짜리 여자애한테도 검수를 받아야 할 정도까지는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지마는.

    이미 머릿속에선 고백을 성공하고 알콩달콩한 가정을 상상하던 다이튼은 문득, 루크에게까지 생각이 미쳤다.

    애초에 예르나가 배우자가 될 남성을 찾는 이유가 루크때문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루크는 자신의 딸이 될텐데.

    루크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루크, 만약에 내가 네 아빠가된다면 어떻겠냐.”

    루크는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건 질색이구나.”

    “야.”

    마치 배신당했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루크는 걱정 말라는 듯이 손을 저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 훼방을 놓지는 않겠다고 맹세하지. 결정은 내가 아니라, 예르나가 하는 것이니까.”

    “그러냐……?”

    꽤나 어른스러운 대답이었다.

    다이튼은 도리어 자신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루크를 감당할 수 있을까.’

    솔직히 그건 자신이 없었으니까.

    곧 다이튼이 러브레터를 쓰겠다며 자리를 비우자, 루크는 마치 폭풍이 지나간 것같은 황량함을 느꼈다.

    다이튼은 여러모로 몰아닥친 폭풍과도같은 남자였다.

    “후우…….”

    루크는 나즈막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안도감과 불안감이라는 상반되는 감정이 섞여나온 것이었다.

    다이튼 앞에서야 아무렇지않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내심 굉장히 놀랍고 불안했던 대화였다.

    “예르나의 혼인인가…….”

    뭐, 다이튼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예르나가 결정할 일이니 그것을 제쳐두고서라도, 문제는 결국 예르나가 혼인을 해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보호자라는건, 그런 의미였단 말인가?

    하긴, 아무리 고아라고해도 아이를 아무한테나 넘겨서야 노예제도랑 크게 다르지도않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보호라고 한다면 당연히 입양일것이라고 생각했어야했지만, 5000년 이후의 사회에서는 뭔가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 줄 알았던게 잘못이었다.

    이래서야 자신의 탓으로 얼결에 결혼을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닌가.

    ‘예르나에겐 정말이지 계속해서 면목이 없구나.’

    결혼이라니.

    물론, 임시보호기간이 충분히 연장된다면 더할나위가 없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

    루크는 임시보호라는 제도에 대해서 아는것은 없으나, 그것에 ‘임시’라는 이름이 붙은 이상 끝이 다가오는것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아프구나…….”

    하루빨리 독립을 할 수 있다면 이런 골치아픈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을텐데 말이다.

    ——-

    시간이 조금 지나자, 루크는 출출해졌다.

    가져온 통조림이라도 먹을까 해서 몸을 일으킨 순간.

    “루크, 혹시 밥은 먹었냐?”

    정말 기가막힌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겠다.

    루크는 속으로 저것도 나름 대단한 재주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다이튼인가. 나는 가져온 통조림이 있으니 걱정 말게나.”

    “통조림?”

    다이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루크의 손에 들린 참치통조림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그냥 생으로 먹는다고?”

    “무슨 문제 있는가? 내게는 충분히 맛있네만.”

    “이녀석, 누가 고양이 수인 아니랄까봐 입맛 참 특이하네. 이리 와봐.”

    다이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루크를 끌고 나왔다.

    해를 가하려는것은 아닌듯 하여 얼결에 그를 따라간 루크는, 깜짝 놀라버렸다.

    접이식 테이블 위에 놓여진 꼬치.

    물론 그냥 꼬치라면 꽤 흔하겠지만, 도대체 무슨 향인지 모를 자극적인 향기가 인상적이었다.

    “이게 대체 무언가?”

    “크흠, 내가 솜씨를 좀 발휘해봤지.”

    당당하게 가슴을 펴는 다이튼.

    그가 요리를 했다는것인가?

    솔직히, 루크는 이 몸으로 깨어난 이후 ‘구운’요리를 입에 대본적이 없기는 했다.

    예르나가 불을 다루는 요리를 할 줄 몰랐다는게 가장 큰 이유였고, 참치통조림의 오묘한 맛으로도 이미 충분한 만족감을 얻고 있었다는게 두번째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눈앞에 놓여진 따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고기가 꿰여진 꼬치를 보니, 침샘에서 제멋대로 침이 분비되어, 정신을 잠깐 놓으면 입에서 흐를 것만 같았다.

    꿀꺽.

    “그대에게 이런 재주가 있는줄은 정말 몰랐구나…….”

    “답지 않아서 놀랐냐? 하하! 얼른, 식기전에 먹어라.”

    “자, 잘 먹겠다.”

    루크는 긴장해서 거의 달달 떨리는 손으로 갈색으로 윤기나게 구워진 아름다운 자태의 꼬치 요리에 손을 가져가며 생각했다.

    마치 예술품과도 같은 모양. 하지만 음식의 존재 의의는 그것을 섭취하는것에 있었다.

    마침내 자리에 앉은 루크가 꼬치를 조심스럽게 쥐어들자, 안그래도 자극적이던 달콤한 향기가 코를 후벼왔다.

    ‘이게 대체 무슨 향신료란 말인가?’

    단언컨대, 이런 향은 5000년 전의 부족할것 없는 생활을 하던 루크로써도 느껴본적 없는 향기였다.

    향만으로도 이토록 자극적인데, 입 안에 넣고 씹어낸다면 어떨까.

    긴장스러운 순간.

    다이튼이 웃기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겨우 꼬치 하나로 뭘 그렇게 달달 떨어.”

    “아, 미안하구나. 조금 긴장을 했다.”

    “뭘 식사하면서까지 긴장을 다 하냐. 너 참 피곤하게 사네.”

    다이튼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씨익 웃었다.

    루크는 역시 그렇겠지, 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어째서 겨우 꼬치 하나로 이토록 긴장한 것이지? 이런 식사는 이전에도 많이 해보았을 텐데…….’

    루크는 눈을 딱 감고, 꼬치를 한입 씹는다.

    파슥, 하는 소리와 함께 바싹하게 구워진 겉면이 이빨에 바스라진다.

    그러자 그 껍질 안에 들어있던 따끈한 육즙이 마치 과일을 씹은듯이 터져나오며 혀를 적셨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러운데, 짭짤하고 달콤한맛의 오묘하고 완벽하게 조율된것에서 루크는 감동마저 느끼고 말았다.

    요리에 감동한것은 처음이었다.

    루크에게 요리란, 그저 생존을 위한 식사였다.

    그도 그럴것이, 루크의 시대라면 향신료라면 소금과 설탕이 대부분인 시대였다.

    그마저도 향신료가 너무나 비싸서 사치품으로 사용되던 시기.

    따라서 서민들의 음식은 과하게 싱거웠고, 귀족의 음식은 무작정 향신료로 덮어 과하게 자극적이었다.

    그런 시대에서 살아온 루크가 처음으로 맛본, 인간의 마법기술로 철저히 계산된 ‘맛있도록 설계된’ 향신료는 놀라우리만치 훌륭할수밖에 없던 것이다.

    단순한 꼬치구이마저도 말이다.

    “……아.”

    입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모른채, 입안에 들어온 고깃조각을 순식간에 목으로 넘겨버렸다.

    ‘옛날의 생각이 나는구나…….’

    아련하게 과거에 묻어둔 사람들이 떠오를 정도의 맛이었다.

    과거, 레니에와 케일이 권유하여 억지로 입 안에 넣어졌던 노점의 꼬치가 떠올랐다.

    그 맛은 전혀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이것이 훌륭했지만, 너무나 훌륭한 꼬치라는 점에서 그 둘이 떠오르고 만 것이다.

    ‘그들에게도 이 맛을 알려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들이라면 분명히 무척이나 좋아했겠지.

    그러자 루크의 눈가에서 주륵, 하고 눈물이 흐른다.

    그것은 그야말로 감동의 눈물.

    “뭐, 뭐야? 갑자기 왜 우냐?”

    하지만 다이튼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루크에게 안절부절할 뿐이었지만.

    루크는 재빨리 눈물을 닦아내고는 다이튼에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정말로, 정말로 훌륭한 맛이로구나!”

    “그, 그정도까지는 아니지 않나?”

    다이튼은 괜히 쑥쓰러워져서는 뒷통수를 긁적이며 루크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지 않다. 이런건 처음이야. 이런 요리를 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다이튼은 그말에 멈칫, 하고말았다.

    ‘뭐지? 그냥 꼬치에다가 마트에서 파는 소스를 바른것 뿐인데……. 이런걸 처음 먹어본다고? 대체 어디서 어떻게 자란거야?’

    “뭐어……. 네가 그렇다면야. 많이 먹어라. 부족하면 좀 더 해줄 테니까.”

    “정말인가? 고맙구나, 고마워! 그렇다면 몇개만 더 부탁해도 되겠는가?!”

    “뭐, 분부대로…….”

    다이튼은 곧장 몸을 돌려서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겨우 꼬치정도로 이렇게 행복해해도 되는것인지, 다이튼은 그 어린 소녀의 해맑은 미소에 가슴 한켠이 뜨끔거렸다.

    다이튼은 루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무에 머리를 박으며 생각했다.

    쿵.

    ‘이런 꼬맹이한테 나는 대체 무슨짓을 한거야…….’

    다이튼은 오늘따라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 꼬치나 더 굽자…….”

    그동안 이런 흔한것조차 먹어보지 못한채 살아왔다니.

    그 어린것이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다니!

    다이튼 역시 숲지기인만큼, 정의감만은 남다른 사내였다.

    ‘제기랄, 결국 썩어빠진 어른들이 문제지…….’

    예르나에게 루크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들었던 다이튼은 이빨을 빠득 하고 갈면서 생각했다.

    적어도 오늘은 배부르게 해주고 싶다고.

    그날, 루크는 배가 빵빵해지도록 꼬치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이튼 게네퍼, 세탁기 ON.

    사실 본업이 숲지기인만큼 심성이 나쁜친구는 아닙니다.
    머리가 좀 모자라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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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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