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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야영장으로 돌아가는 길.

         

       시장에서 벗어난 원더스타인은 잡고 있던 유라크네의 손을 놓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데서 부부 연기를 계속할 필요는 없었다.

         

       ‘제기랄.’

         

       머리가 지끈거렸다.

       ‘급속 경직’ 덕분에 출혈은 많지 않았고, ‘웃는 남자’ 덕분에 고통은 적었다.

       그러나 그를 정말 화나게 만든 것은 얻어맞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또 나서고 말았어.’

         

       그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

         

       어디까지 게임 속일 뿐이라고,

       원더스타인이라는 배역을 연기할 뿐이라고 잘난 척 지껄였었는데,

       방금은 진심으로 나서고 말았다.

       게임 공략이니 호감도니 하는 것과 관계없이 몸을 들이밀었다.

         

       몸으로 총알을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른 상황이었다.

       그때는 퀘스트를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웃는 남자 때문이야.’

         

       돌발적인 무모한 행동.

       이건 이 몸에 서린 그 저주 때문이다.

       아니라면 감히 그런 쇳덩이를 맨몸으로 받을 생각을 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 되뇌었지만, 찜찜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아이 트래커.

       전동 휠체어의 컨트롤러.

       복지원 도우미의 수발.

         

       자신은 태어나서 한 번도 스스로 일어서고 행동한 적이 없었다.

       팔도 다리도 없는 병신은 늘 무언가의 힘을 빌리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움직일 수 있었다.

       수동적인, 방어적인, 보신적인 선택에 익숙했다.

         

       게임 공략이나 퀘스트가 아닌 개인적인 사유로,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주체적으로 나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유라크네는 혼자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를 의문이 뒤섞인 표정으로 바라봤다.

         

       자신을 지키려다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그 사실에 대해 특별히 감상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는 칼날도 맨몸으로 튕겨내고, 손가락으로 두개골도 부수던 남자였다.

       고작 주먹만 한 쇳덩어리에 맞았다고 위험할 리 없었다.

         

       하지만……그래도 신경을 안 쓸 수 없었다.

       자신을 보호하려다 난 상처였으므로.

       

       “저…….”

       “그 사람들에게 위해를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

       “네?”

       “그걸 물으려던 게 아니었나요? 엘라 양은 제가 무슨 작은 일이라도 당할 때마다 그걸 걱정하더군요. 그저께 배에 타는 걸 거절당했을 때도 그렇고.”

         

       지금까지 그가 저지른 짓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할 만한 걱정이다.

       하지만 유라가 지금 묻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저, 저기, 그러니까…….”

       

       묻고 싶은 것은 많았다.

       하지만 막상 말을 꺼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머뭇거리기를 몇 번.

       어쩌다 튀어나온 질문은 평소에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의문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 단장님은 왜 화를 안 내세요? 어떻게……계속 웃을 수 있죠?”

         

       원더스타인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되물었다.

       

       “왜 그게 궁금하시죠?”

       “……그, 그냥……다, 단장님을 좀 더 이해하고 싶어서요.”

         

       얼떨결에 튀어나온 고백 비슷한 말에 유라크네는 얼굴을 붉혔다.

       다행히 단장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긴 당신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가겠군요. 제가.”

       

       그는 유라크네를 보지 않고 허공을 바라봤다.

         

       그녀가 오물 세례를 맞을 때는 꼼짝도 하지 않던 퀘스트 창이 이런 사소한 질문 하나에는 반응해 활성화되었다.

         

         

       *단원 퀘스트-미소의 의미

       : 유라크네는 당신의 미소가 진심인지 궁금해합니다.

         

       달성조건

       :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녀가 납득하게 만드십시오.

         

       성공 시 보상

       : [데볼루트 +2]

         

       실패 시 페널티

       : [유라크네의 호감도 –1]

         

         

       퀘스트가 뜨니 안심이 됐다.

         

       그가 따라야 할 이정표.

       이 무대에서 그에게 주어진 지시문.

         

       거짓을 꾸며댈 자신이 없는 그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유라크네 씨, 저도 맞으면 아파요.”

         

       그가 이마에 묻은 피를 손으로 슬쩍 닦으며 말했다.

         

       “모욕을 당하면 화가 나고, 죽음을 보면 슬픔을 느끼죠.”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도 감정을 느끼는 인간이라고.

       악마나 괴물 따위가 아닌.

         

       “그럼 왜…….”

       “병? 아니, 조금 안 맞는군. 저주라고 해야겠군요. 네. 저주입니다. 전 웃을 수밖에 없는 저주에 걸렸어요. 아무리 화가 나고 슬퍼도 웃는 것 외에는 감정표현을 못 해요. 눈물을 흘리는 것도 안 되죠. 그저 웃는 것만 가능합니다.”

       “정말인가요…….”

         

       그런 단순한 이유였다니.

       유라크네는 믿기 힘든 듯 고개를 내저었다.

         

       단원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릴 때도.

       그녀가 그를 피해 다닐 때도.

       그가 짓던 미소는 사실…….

         

       “그럼……. 그럼 왜……왜 지금까지 말씀하지 않으셨던 거죠? 그랬다면……오해가 없었을 텐데…….”

       “무슨 오해요?”

       “네?”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평소와 똑같은 미소였다.

       꾸민 듯, 비웃는 듯, 만들어진 미소.

         

       그러나 진실을 알아버린 지금, 그녀에게 그 미소는 다르게 읽혔다.

       씁쓸함, 고통, 슬픔, 그리고……외로움.

       그녀의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사람을 괴롭히고, 망가뜨리고, 죽인 사실이 사라지나요? 단장님이 사람들의 머리를 터뜨리고 다녔을 때, 웃은 게 아니라 사실 울고 있었군. 그는 악마가 아니었어. 이렇게 받아들이기라도 하실 건가요?”

       “그, 그건…….”

         

       그의 말이 맞았다.

       그가 저지른 짓들을 떠올려봤다.

       확실히 그가 웃기만 하는 저주에 걸렸다는 사실은 변명으로 부족했다.

         

       “사실을 알아봤자 아무것도 달라질 건 없어요. 당신들이 저를 두려워하고 피하는 건 당연합니다. 이해해요.”

         

       원더스타인은 그렇게 말하곤 등을 돌렸다.

       담담히 자신을 미워해도 좋다고 말하는 그.

       그는 그렇게 말하곤 뚜벅뚜벅 걸어갔다.

         

       유라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그가 한 말을 곱씹어 보았다.

       사실을 알아봤자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고?

         

       ……아니.

       아니다. 그건 아니었다.

       달라지는 게 있었다.

         

       “제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그의 고백을 듣는 순간부터, 계속 궁금했던 게 있었다.

         

       “……단장님은 웃고 계셨죠.”

         

       앞서가던 원더스타인의 발이 딱 멈췄다.

         

       “그때…… 원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싶으셨나요?”

       

       원더스타인은 그 자리에 서서 꼼작도 하지 않았다.

       뒤따라가던 유라가 점점 그와 가까워졌다.

       그 거리가 한 발자국 남았을 때쯤, 원더스타인이 입을 열었다.

         

       “그때만큼 이 저주가 싫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유라의 발걸음도 멈췄다.

       그의 바로 등 뒤에.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눈물 흘리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저도…….”

         

       원더스타인이 유라를 돌아봤다.

       너무나 환한 미소가 그의 입에 걸려 있었다.

         

       “울고 싶었다면 믿어 주실 건가요?”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조용히 막사를 향해 걸어갔다.

       유라는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서 그가 남긴 웃음을 되새겨 보았다.

         

         

       ***

         

         

       다음날, 괴물서커스단의 아침 식사는 평소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유라크네가 전날 약속했던 생선조림.

       그건 기대보다 실망스러웠다.

       생선 살은 찾아볼 수 없었고, 감자 역시 왠지 덩어리가 작았다.

         

       “원더스타인 때문이야.”

         

       스벤이 뼈를 딱딱거리며 확신에 가득 차서 말했다.

         

       “어제 새벽에 봤는데, 원더스타인이 유라 씨를 괴롭히고 있더라고. 시장 나서는 데까지 따라가던데.”

         

       야밤에 그런 일이?

       단원들은 유라크네 혼자서 원더스타인을 상대했다는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아저씨는 뭐 했어요?”

       “나는 돌아와서 다시 잤지.”

       “치사해.”

       “내가 감히 단장을 상대할 배짱이 되나. 어쨌든 뭔가 안 좋은 일을 당한 게 틀림없어. 돌아온 유라 씨의 모습을 봤는데, 완전 엉망이더라고.”

         

       다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했지만, 당사자인 유라크네가 그 일에 관해 입을 열지 않았다.

         

         

       ***

         

         

       일어나니 해가 하늘에 걸려 있었다.

       새벽까지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서 늦잠을 자버렸다.

       상처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출혈을 억제하는 ‘급속 경직’과 자기 전에 3.0에 맞춰둔 세포 재생력 덕분이다.

         

         

       이름: 프랑크 원더스타인

       나이: 27

       직업: 바이오맨서

       -데볼루트: (2/20)

       -근육 강도: 2.0 (운동부)

       -조직 경도: 2.0 (가죽 갑옷)

       -세포 재생력: 3.0 (뛰어감)

       특성

       : [웃는 남자], [급속 경직]

         

         

       세포 재생력의 문구가 1.0일 때는 ‘기어감’. 2.0일 때는 ‘걸어감’. 이제는 ‘뛰어감’으로 변했다.

       걸어가는 속도가 기어가는 속도의 4배 정도 됐다.

       뛰어가는 속도는 걸어가는 속도의 또 4배 정도 되나?

       회복속도도 그에 비례해서 올라간 거로 보면 될 듯했다.

         

       즉, 지금 나는 보통 사람의 16배 정도의 재생력을 가지게 됐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기초 능력치는 어차피 언젠가 올려야 했고, 그중에서도 조직 경도와 세포 재생력은 우선순위에 있었다.

         

       게임이었다면 강력한 스킬과 극한의 공격력으로 최대의 전투효율을 뽑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다. 재도전 따위는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었다.

       방어력과 회복력이 먼저였다.

         

       똑똑.

       

       누군가 마차 문을 두드렸다.

       누군지는 실루엣만 슬쩍 봐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내 마차에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은 우몬과 엘라, 둘밖에 없었다.

         

       상대는 엘라임이 확실했다.

       그림자가 작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죠?”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예상외의 목소리였다.

         

       “저……유라크네입니다.”

         

       거미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놀랐지만, 금방 침착해졌다.

       마차로 돌아와 잠들기 전 받았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유라크네의 호감도가 9 올랐습니다. 현재 호감도: 12. (다음 보상: 호감도 15)]

         

       엘라가 9, 우몬이 4, 나머지는 1이나 2인데, 그녀가 하룻밤 만에 3에서 12로 올랐다.

         

       함께 장을 봐준 것 때문인지, 그녀에게 가해지는 린치를 막아준 덕분인지, 아니면 ‘웃는 남자’에 대해 알려줬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지난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 그건 전부 호감도 작업을 위한 거였다고.

         

       그렇게 자신에게 변명할 거리도 생겼고.

         

       “무슨 일이시죠?”

       “저기……아침을 거르셔서……. 어제 그런 일도 당하셨는데……제가 뭐라도 할까 해서……. 죽을 좀 끓여 봤어요.”

         

       끼익.

       문을 열었다.

         

       유라크네가 보랏빛 머리카락을 비녀로 질끈 묶고, 앞치마를 두른 채로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쟁반.

       그 위에 놓인 죽 한 그릇.

       그곳에서 익숙한 향기가 났다.

         

       “전복이군요?”

       “네……. 상인회에서 새벽에 있었던 일 때문에 사죄의 선물을 보내왔어요.”

       “후후, 이런 귀한 것을 주다니. 우리의 공연이 꽤 성공적이었나 보군요.”

         

       나는 쟁반을 받아들였다.

         

       덜덜.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과 눈 아래 드리운 그림자를 보았다.

         

       “설마 한숨도 안 잔 겁니까?”

       “아, 아뇨. 아까 한두 시간 정도……눈 붙였어요.”

         

       단원들의 3끼를 혼자 다 챙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어찌어찌 나누어 자고 시간을 쪼갠다고 했지만, 어제같이 예상외의 사태와 마주하면, 오버페이스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맛있게 먹을게요.”

       

       나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를 묻고 싶은 긴가민가한 표정.

         

       “저, 그……지금은 어떤 표정을 짓고 싶으신가요?”

         

       그것이 궁금했나?

       나는 웃으며 말했다.

         

       “보이는 그대로요.”

         

       나의 말을 들은 그녀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서 눈 좀 붙이세요. 2시간 뒤부터 또 공연 아닙니까?”

         

       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네!”

         

       응?

       나는 빠르게 멀어져 가는 그녀의 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 그녀가 웃었던 거 같은데…….

       아마 이제야 잘 수 있어서 그렇겠지.

         

       나는 마차의 문 앞에 걸터앉아 죽을 떠먹었다.

       저 멀리서 이 광경을 본 단원들이 자기네들끼리 쑥덕대는 게 보였다.

       내가 한번 슬쩍 바라보자 화들짝 놀라 후다닥 흩어졌다.

         

       아직 한참 멀었군.

         

       하지만 나는 가야했다.

       저 모두를 이끌고 서커스 그랑프리에 도전해야 했다.

         

       이제 모든 걸 다 내팽겨치고 산으로 들어가 산다느니 같은 선택은 할 수 없었다.

         

         

       *메인 퀘스트-서커스 그랑프리

       : 하늘도시 히포드롬이 원더스타인을 부르고 있습니다.

         

       달성조건

       :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에 진출하십시오.

         

       성공 시 보상

       : 습득한 모든 데볼루트와 바이오맨서의 능력을 현실로 가져갈 수 있음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언젠가 내 두 다리로 걷고, 내 두 팔로 세상을 느끼기 위해서.

       

       

       

       

       

       

       

       

       

       

       

       

       

       

       

       

       ———

       거미여인 유라크네 끝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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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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