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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 * *

       

       

       혐성국이 이렇게나 러시아를 챙겨줬었나.

       

       그도 아니면 내부에 공산주의자가 뿌리를 내리고 있거나.

       

       그럴 만하지. 어느 나라든 빨갱이는 있기 마련이니까.

       

       그놈들을 뽑아내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대장인 소련이 무너져야 한다.

       

       이건 작거나 크게 열강들도 엮여 버린 것이다.

       

       황가 멱을 딴 이야기는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자기들도 해낼 수 있다는 야망을 품게 만들었을 테니까.

       

       그래. 뭐.

       

       애초에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잃어 버린 지역을 굳이 회복하다 민족주의자들의 게릴라에 당하는 것보다 무역으로 뽑아내는 쪽이 낫다.

       

       굳이 발트나 우크라이나 진출할 거면 나중에 기회가 생길 지도 모르고.

       

       오히려 북만주와 몽골을 혐성국에게 공인받으니 나쁘지 않은 거다.

       

       결국 이건 서로에게 윈윈이라는 것.

       

       자, 그럼.

       

       이건 밀약 정도로 남겨두는 것이 좋겠지.

       

       대중에게 알려서 좋을 거 없다.

       

       

       “오늘의 일은 밀약으로 남겨둬야 할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당장 빨갱이놈들만 하더라도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어지간히도 원성을 많이 받았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것으로 만주랑 몽골은 공인받았다.

       

       미국과 프랑스도 일단은 인정했으니까.

       

       참 그 지역이랑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놈들이 그걸 허락하네 마네하는 것도 웃기지만.

       

       어쩌겠나.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 오대양을 걸친 대제국인 대영제국이 허락받으라 하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문제는 만주에서 가까운 일본인데.

       

       

       “북만주는 일본이 좀 걸리는데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일본이야 배상금도 두둑이 챙겼는데, 제 놈들이 뭘 어쩌겠습니까. 공식으로 인정하지 않아도, 일본도 암묵적으로 묵인할 겁니다.”

       

       

       따지고 보면 황녀의 몸으로 근본도 없이 사는 세월보다 한국에서 산 세월이 많으니까.

       

       없으면 없는 대로 지금의 근본 러시아 본체만을 개발하면 되겠지.

       

       오히려 영국은 우크라이나에서 꽤 고생할 거다.

       

       러시아만 무근본으로 사상적 갈등이 많은 건 아니니까.

       

       우크라이나에도 무정부주의자, 빨갱이 등 있다 이 말이지. 영국군도 아마 꽤 고생할 거다.

       

       그래도.

       

       이 인간 좀 짜증 난다.

       

       갈리폴리에서 그렇게 시원하게 말아드신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그래. 그럼. 하다못해 좀 놀려 먹어야지.

       

       

       “알겠습니다. 미스터 갈리폴리 경.”

       “예?”

       “그 의용군으로 와서 아군의 전차 훈련을 맡은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경을 미스터 갈리폴리 경이라 해서, 원래 그런 칭호가 있으신 줄 알았습니다. 갈리폴리에서 대승을 하신 거 아닙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그런 게 아닙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절대 아닙니다.”

       

       

       이 대머리새끼. 상대가 황녀니 함부로 대할 수 없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보인다.

       

       화는 나는데, 상대가 아무것도 모르는 황녀라 답답한 거겠지.

       

       이럴 때 정말 아무것도 모른 척. 처칠을 칭찬하는 거다.

       

       당신은 갈리 폴리에서 오스만 튀르크를 박살 낸 영웅입니다!

       

       이런 소소한 재미라도 줘야지.

       

       

       “쑥쓰러워하지 마세요.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저와 달리 갈리폴리에서 오스만군을 섬멸하고 그런 호칭을 받으신 거 아닙니까. 저는 경이 너무 부럽습니다.”

       “크흠.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그렇게 미스터 갈리폴리는 돌아갔다.

       

       그리고.

       

       

       “검은 남작께서는 불만이 많아 보이시는군요.”

       

       

       검은 남작 표트르 브란겔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럼 어쩌랴. 힘이 있는 사람의 시대인데.

       

       

       “이 굴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저 볼셰비키를 때려잡으려면 열강들의 도움은 필수적이니까요.”

       

       

       만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지원을 끊고 영국은 폴란드, 독일을 붉은 역병을 막아 낼 방파제로 삼을지도 모른다.

       

       아쉬운 건 우리니 어쩔 수 없지.

       

       물론, 영국도 꽤 고생할 거다.

       

       

       “그래도 대러시아의 땅을 이렇게 떼주는 것이.”

       

       

       대러시아의 땅이고 뭐고 그거 어차피 영국이 없어도 지금 러시아의 힘으로 독립하려고 하는 놈들 다 때려잡는 건 힘든 일이다.

       

       

       “그 대신 몽골과 북만주를 얻었죠.”

       “그 둘은 잃은 땅과 비교하면 쓸모가 없는 땅이잖습니까?”

       

       

       그렇겠지.

       

       몽골과 북만주에 자원이 있다고는 하나. 소련이 독일과 맺은 조약으로 떨어져 나간 걸 생각한다면야.

       

       

       “아마 영국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굳이 우리에게 군사적 지원하지 않아도. 여러 핑계를 대면서 소련을 잡아먹을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다들 지친 탓이겠지요.”

       “예. 그리고 저 빨갱이놈들은 결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사탄으로 몰려 있다면, 내부단속이라도 하기 위해 외부로 눈을 돌리겠죠.”

       

       

       지금 소련은 수세에 몰려 있고, 모두에게 왕따당하는 처지다.

       

       내부에서는 ‘소련이었던 것’상태로 지금 레닌도 뭐 할지 감도 못 잡고 있을 테고.

       

       아마 가만히 있으면 인민들이 레닌의 멱을 딸 수도 있으니 나를 따라 하기라도 하겠지.

       

       여기에 독일이 물러났으니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 파기를 외치며 잃은 우크라이나도 받아가려고 할 거다.

       

       일단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려야 하니까.

       

       영국이 군사적 개입을 못 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우크라이나를 처먹으려 하겠지

       

       내부단속을 위해 툭하면 시비를 거는 북한이나, 대만을 위협하던 중공과 같이 말이지.

       

       레닌도 지금 배 째라거든.

       

       지금의 1차 세계대전은 대영제국과 미국이 소련의 계획이 퍼지면서 사회주의자가 날뛰기 시작하니, 공산주의가 퍼지지 못하게 독일을 비롯한 동맹국을 좀 봐줬을 뿐이다.

       

       

       독일이 패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소련은 독일과의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을 무효화 한다.

       

       실제 역사에서만 해도 그랬는데, 지금은 뭐 다를까.

       

       심지어 소련은 실제 역사보다 너무 극단적으로 몰려 있다.

       

       영국은 의용군 외에 독일이 전쟁을 못 하도록 무기를 우리 쪽으로 지원하게 하고 있었다.

       

       소련이 좀 발칙한 상상을 할 만하지 않을까?

       

       제국주의 놈들 군사를 지원할 여력이 없다고.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발트 3국 핀란드 등. 잃어 버린 땅을 조금이라도 회복해 보려 하지 않을까.

       

       트로츠키가 재건한 군대만 해도 무려 500만이다.

       

       물론 머릿수만 많은 군대고, 실제 역사와 다르니 이 세계에서 재건될 소련의 군대는 처참하기 짝이 없을 거다.

       

       그렇다고 해도 우크라이나 지역에 있는 영국군 정도는 그 물량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대전쟁의 승전국 영국군을 물리쳤다! 선전 효과를 보이겠지.

       

       실제 역사처럼 폴란드랑 전쟁나서 줘털리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그전에 우리도 할 일은 해야지.

       

       

       “그러면. 우리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 아닙니까.”

       “유감스럽게도 소련도 아마 꽤 고생할 겁니다. 우크라이나에 민족주의자가 많다는 것은 남러시아에 계시던 검은 남작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소련이 그걸 다 뿌리 뽑는데 얼마나 걸릴까?

       

       개혁은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황녀를 따라 하기만 하다가 전쟁만 하며 인민들 갈아버리는 소련이 얼마나 버틸까?

       

       혁명의 아이돌 레닌이라도 당장 소련 인민들이 단두대 들고 와서 멱을 따려고 하지 않을까?

       

       물론 가능성의 영역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미 한번 혁명으로 무너진 나라다.

       

       레닌이라고 로마노프 꼴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자, 그럼 선동은 저놈들의 전매특허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시다. 소련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땅을 죄다 독일에 던져 주는 매국노 짓을 했지만, 우리는 북만주와 몽골을 대영제국으로부터 공인받았다고 말이죠.”

       “예. 황녀님.”

       

       

       이 소문은 폭주하기 시작한 볼셰비키가 붉은군대를 움직이기 전에 퍼트려야 한다.

       

       심지어 북만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러일전쟁으로 러시아는 북만주에서 영향력이 꽤 축소되었으니까.

       

       극동의 비문명국 섬나라에 털렸다는 사실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가.

       

       일본과 다시 전쟁을 치러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북만주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소련에 있는 러시아인들도 기뻐하리라.

       

       대가리가 빈 것이 아니고서야 자기들이 조약으로 팔아먹은 땅을 징집한 병력을 꼬라박으면서 되찾는다.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소련이겠지만.

       

       오로지 외교로 인정받아 낸 것은 다른 의미지.

       

       물론 만주에 있는 군벌 세력은 몰아내야 하지만 그건 몽골 부총독이 될 세묘노프와 운게른에게 맡겨볼까.

       

       분명 장쭤린이나 장쉐량 이런 애들. 다시 북만주를 탈환하려 하지 않을까.

       

       뭐 알아서 하겠지.

       

       아무렴. 대영제국이 북만주를 인정해줬다는 것은 즉, 중국 군벌들에게 북만주는 러시아 땅이니 건드리면 너희 주옥 됨 이런 거나 마찬가지니까.

       

       즉, 군벌들은 북만주를 러시아 땅으로 인정한 열강의 심기를 건드릴 수는 없다.

       

       통일 중국도 아닌 군벌들이 난립한 중국이 만주에 신경 쓸 거 같지도 않으니 어렵지 않을 거다.

       

       자, 그럼 오흐라나를 풀어서 선동을 해봐야지.

       

       

       “황녀께서 영국놈과 담판해서 몽골과 북만주를 우리 땅으로 인정했다던데.”

       “몽골의 군주란 작자가 왕관을 우리 황녀님께 바쳤다더라!”

       “역시 땅덩이를 팔아먹은 볼셰비키 놈들이 매국노였어!”

       “상식적으로 저 사탄 놈들이 지금 하는 게 있나? 아, 있네, 교회 탄압하고 군대 머릿수 채우는 거 말이지?”

       “황녀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예카테린부르크! 우리 황녀님은 예카테리나 2세의 뒤를 이으실 분이시다!”

       

       

       신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몽골이 대칸의 자리를 나한테 넘겼다는 소문은 언제 퍼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주가 상승에 기여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있는 도시가 예카테린부르크라고 나를 전 러시아 제국의 여제인 예카테리나 2세의 뒤를 이었다고 한다.

       

       원래 예카테린부르크가 예카테리나 1세에게서 따온 이름인 걸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지만. 굳이 그걸 부정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레닌을 엿먹일 수 있으니까.

       

       아마 레닌은 지금쯤 혀를 깨물고 자살하고 싶지 않을까.

       

       이제 백군은 어느 정도 여유로웠다.

       

       최근에는 볼셰비키 정권치하에서 레지스탕스가 일어나 반대로 크고 작은 도시를 우리 쪽에 바치고 있으니까.

       

       소비에트가 매국노란 소문이 꽤 큰 타격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이제 레닌에게는 길이 많지 않다.

       

       이대로 서서히 무너지거나, 한타 싸움에서 우리를 이기고 러시아를 차지하거나 말이다.

       

       설령 후자가 있다고는 하나 이대로라면 덩치 큰 북한이 될 뿐이겠지.

       

       

       “검은 남작.”

       

       

       나는 검은 남작 표트르 브란겔을 불렀다.

       

       서서히 서진해야 하니까.

       

       

       “예. 황녀님.”

       “예카테린에 합류한 남러시아의 백군, 시베리아의 백군, 카자크 군단을 통솔하여 모스크바 방면으로 천천히 진출하십시오.”

       “드디어 때가 된 것입니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모스크바 쪽으로 진군만 할 것이다.

       

       모스크바를 향한 맹공은 당분간 소련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결정해도 될 일이다.

       

       지금 상황에서 원래 역사처럼 5백만 대군을 모으기 위해 징집하면 분명히 소련이란 모래성은 무너질 테니까.

       

       

       “모스크바는 당장에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조금만 더 놈들을 흔들어 털어봅시다.”

       “예.”

       

       

       뭐 그렇다해도 어쨌든 군대를 보내는 일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공격을 시작할 때다.

       

       

       

       

       “시간은 이제 우리 편이란 거지.”

       

       

       쌍두독수리를 베어낸 노동자의 낫과 망치를 짓밟고.

       

       쌍두독수리는 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작품 사실상 여주물인데 의외로 옆동네에서도 반응이 괜찮은…!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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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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