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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야, 뭐, 뭐해?”

        “네?”

        “빠, 빨리 내 손 안 잡고 뭐하냐고.”

       

        나는 프리나의 재촉에 창을 들지 않은 반대쪽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우리는 그 이후 1승을 더 거두며 무려 4강까지 진출해 버렸고, 마침내 준결승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살아남은 팀이 단 넷뿐인 상황에서 마법제의 인기는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몇 배는 더 커진 경기장에 입장하자, 인식저해 마법을 뚫고 들어온 호기심 어린 시선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그, 극혐……! 어차피 학파도 다 까발려졌는데 뭐가 더 궁금하다고 엿보고 난리야! 진짜 마법사란 놈들 다 하나같이 나사 빠졌어. 너, 너도 빨리 후드 눌러 써.”

        “괜찮으세요 선배?”

        “괘, 괜찮거든? 그, 그리고 이 손은 네가 먼저 잡자고 말 꺼낸 거다? 난 인싸 놈들처럼 빈말 하는 거 진짜 질색이니까!”

       

        프리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선 게 처음인지 반쯤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남들 다 보는 앞에서 꼭 잡은 손을 놓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마치 변명하듯 혼자 계속 중얼거렸다.

       

        “다음에 밥 한 번 살게-. 라면서 끝까지 연락도 안 해. 저번에 술자리에서 했던 약속? 에이, 그거 다 재밌자고 한 거지-. 이러고 웃어넘기기는……! 사, 사람과의 대화가 장난이야? 말은 언제나 뱉은 이를 향해 돌아오게 되어 있어. 아, 아무튼 나도 싫지만 네가 꺼낸 말을 지켜줘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나는 그, 그런 무책임한 인간들이랑은 다르니까.”

        “근데 손잡고 싸울 수는 없잖아요.”

        “아……!”

       

        상대방이 경기장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기에 프리나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녀가 제대로 마법이나 쓸 수 있을지 의문인 상태였지만 오히려 좋았다.

       

        이제는 정말 해주학파에 씌워진 콩깍지를 걷어내고 모두에게 진실을 알려야 했으니까.

        때마침 이 사태에 종지부를 찍어줄 주인공은 내게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다.   .

       

        “오랜만이네, 클락.”

        “다른 사람과 착각하신 것 같군요. 저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내가 너인 걸 모를 것 같아? 어줍잖은 연기는 집어치워.”

        “…….”

       

        얜 또 왜 이렇게 화가 났어.

        5년 전에 이어 또다시 마법제에 참여해 파죽지세로 연승을 쌓아온 시엔은 현재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인식저해 장막과 은폐영창으로 정체를 숨긴 탓에 갤러리 내부의 여론은 반으로 갈려 있었지만 나는 이번에 반드시 우리가 패배할 거라 확신했다.

       

        “시엔, 혹시 최근 갤러리에 쓴 글 있어?”

        “네가 다 쓰지 말라고 했잖아.”

        “그럼 다른 유명한 닉네임 중에 알고 있는 사람…….”

        “몰라. 그리고 지금 그런 거 하나도 안 중요하거든?”

       

        왜냐하면 갤러리와 담을 쌓고 사는 시엔을 상대로는 신비를 쓸 수가 없었으므로.

        내가 주딱이라는 사실을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그녀에게 저주명을 덮어씌우기란 불가능했다.

       

        “그럼 전 뒤에 빠져있겠슴다.”

       

        프리나가 제 발로 리타이어되고 시엔의 페어 역시 발을 빼자 단둘이서만 마주하게 되었다.

        영석이라는 물건이 약간은 탐났지만, 마법을 못 쓰는 이상 마법제에서 우승하는 건 의미가 없다.

        적당히 기회를 봐서 기권하려던 나와 달리 시엔은 진심이었다.

       

        “만물의 완결, 그 아버지가 여기에 있다. 힘은 흙으로 통합되며, 모호함 대신 체계와 확신만이 자리할 것이다.”

       

        현자의 약관.

        부동, 파마(破魔), 그리고 영속을 의미하는 세 개의 구절을 동시에 읊자 세검이 은은한 빛을 품었다.

        이제 그녀의 검은 신비가 유지되는 이상 절대 깨지지 않고, 마법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을 베어내며,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그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시엔이 떨떠름히 서 있는 나의 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클락, 네가 진짜로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이 자리에서 도망치지 마. 나는 네 창에 패배한 후로 오직 이 순간만을 꿈꿔왔어.”

        “…….”

        “저번에 했던 내기를 다시 한 번 하자. 이번엔 반드시 이길 거야.”

        “네가 이기면 뭐하게?”

       

        순전히 궁금함을 담아 물어본 나의 질문에 매섭던 칼끝이 한순간 흔들렸다.

        대답이 나오는 텀이 길어져 슬슬 갤러리 관리나 해볼까 고민하던 찰나, 문법이 안 맞는 그녀의 바램이 들려왔다.

       

        “내가 이기면 나, 나랑…… 나랑 같은 저, 정보부에 들어와!”

       

        그건 싫군.

        주딱의 입장에서 정보부는 힘이 약할수록 좋은 기관이었다.

        괜히 들어갔다가 꼬리를 밟히면 곤란했으니 그녀의 소원대로 해줄 수는 없었다.

       

        “대신 내가 이기면 다음부턴 이런 싸움 더 안 해도 되는 거지?”

        “그, 그건…… 나랑 싸우는 게 그렇게 싫어?”

        “그런 문제가 아냐. 애초에 이건 사람한테 쓰는 게 아니니까.”

       

        모험가란 무엇인가? 의뢰를 받고 마수를 퇴치하는 직종이다.

        개중에는 현상 수배자나 흑마법사처럼 인간과 인간 언저리에 걸친 자들도 있지만, 전쟁을 전문으로 하는 기사나 용병하고는 성질이 많이 다르다.

        내가 5년간 시엔과의 결투를 피해 온 이유는 단순히 그녀의 성장을 도모해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창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거니와 마법과도 거리가 멀었으니까.

       

        “하지 뭐.”

        “잠깐, 너 방금 뭐라고…….”

        “덤벼. 아니면 내가 갈 테니까.”

       

        어쨌거나 그동안 쌓여왔던 응어리를 한 번은 풀어줘야 한다면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

        나는 위치노트를 집어넣고 창을 들었다.

       

       

       

        *

       

        “루퍼트, 잘 지냈나?”

        “오! 간만이시군요 현자님! 한동안 안 보이셔서 걱정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구내식당 잔반을 노리던 길고양이 녀석들과 영역 다툼을 하고 있었네. 저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힘겨운 싸움이었지만 결국 승리할 수 있었지.”

        “축하드립니다. 과연 현자님이시군요.”

       

        관중석에 앉아있던 루퍼트는 아녜스를 보고 옆자리를 내어 주었다.

        비적비적 다가온 그녀는 팝콘 봉지에 관심을 보였지만 내용물은 하나도 없었다.

       

        “벌써 다 먹었나?”

        “빈 통을 주운 것입니다. 재미있는 경기이니만큼 먹는 흉내라도 내면 더욱 기쁘지 않겠습니까!”

        “으음, 올해 수습생들이 해주학파를 많이 찾는다길래 사정이 나아졌을 줄 알았더니. 아직도 멀었나 보군.”

        “안타깝게도 하나뿐이었던 창구가 불타 버려서 신입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 친구 덕에 걱정하던 문제는 제법 해결된 참입니다.”

       

        루퍼트는 정보부의 에이스를 상대로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싸우는 클락을 가리켰다.

        그가 이번 마법제에서 프리나와 함께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해주학파의 안 좋은 이미지는 많이 희석되었다.

        아직은 갤러리 내에서 주로 회자될 뿐 가시적인 변화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점점 나아질 것이 분명했다.

       

        “역시 내가 마탑에 들어올 때부터 점 찍어둔 아이답다.”

        “그러셨습니까?”

        “음, 과거의 나만큼이나 탑을 오르고자 하는 비원이 느껴졌었지. 헌데 이상하군, 그때 본 신비의 크기에는 절반밖에 못 미치는 것 같은데.”

        “정말입니까? 저는 충분한 재능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내색하진 않았지만 루퍼트는 속으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날 만큼 놀랐다.

        벽난로를 불태워버리던 화력이 고작 절반이었다고?

        그렇다면 굳이 저주명을 더 약한 것으로 고른 이유가 뭐지?

        정작 클락의 의도를 짐작한 아녜스는 딱히 실망한 기색이 아니었다.

       

        “뭐, 똑똑한 아이니만큼 본인 스스로 판단한 거겠지. 이미 잊히기 시작한 이름보단 마탑 내에서 더 명성을 떨치고 있는 쪽이 쓰기 편할 테니까 말이야.”

        “아이테르의 신비가 상대적이라지만 그건 좀 이상하군요. 아무리 마법사들이 탑 밖의 세상에 관심이 없어도 그렇지, 클락의 잠재력이 제가 확인한 신비의 2배 이상이라면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일 겁니다.”

        “오, 그리 자신하는가? 그럼 루퍼트여, 자네는 지금 내가 말하는 세외의 영웅들 중 몇이나 기억하고 있지?”

         

        루퍼트는 마탑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공국이라는 작은 나라를 다스리던 가문의 적자였다.

        사교계를 통해 전해지는 다양한 소문뿐 아니라 옆나라 제국에서 전해오는 구전과 역사에도 박식했다.

        그러나 아녜스의 입에서 나온 이들의 이름은 그에게 있어 하나같이 처음 듣는 것들이었다.

       

        “검주(劍主)아래의 오검? 암주(暗主)와 십인명? 그게 대체 뭡니까?”

        “한때 재앙을 토벌하려 했다가 실패한 자들이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굳이 떠올리려 할 필요 없네.” 

       

        이건 ‘그런 저주’니까-. 라고 말하며, 아녜스는 봉지 밑에 남아있던 터지지 않은 옥수수 알갱이를 으적! 하고 씹었다.

        경기장에서는 마법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창과 검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엔의 세검은 마치 파도를 휘두르는 것처럼 거칠게 클락을 밀어붙이며 천지를 뒤흔들었다.

        반면 클락은 사거리가 더 긴 창을 들고 거리를 벌리는 데에만 급급했다.

        오직 한 방을 노리는 듯한 그의 움직임은 확실히 뛰어난 창술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러나 은빛으로 빛나는 검이 마침내 그의 목을 꿰뚫었을 때, 그 모습을 본 루퍼트가 손가락을 튀기며 말했다.

       

        “아! 그래도 말씀하신 이들과 비슷한 집단이 하나 있군요. ‘위대한 세 모험가’ 말입니다.” 

        “기억하는가?”

        “예에, 모를 리가 없죠. 성주(城主)의 칙령을 받은 전 대륙의 모험가들 중 유일하게 재앙의 토벌에 성공한 이들 아닙니까.”

       

        이름있는 모험가들은 대부분 예명으로 알려졌기에 오히려 기억하기 쉬운 편이었다.

        그러나 활동범위가 공국과 겹치지 않은데다 오래전 활동을 멈춘 파티인 만큼 루퍼트의 머릿속에서도 그만큼 흐릿해져 있었다.

       

        “‘섬광’, ‘총성’,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분명…….”

       

        콰아아아앙——!!

       

        그가 마지막 한 명의 이름을 떠올리려 했을 때, 경기장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풍압이 불어닥치자 관중석에 쳐진 방어마법이 일렁이며 일부는 금이 갔다.

       

        지진파에 버금가는 충격이 걷히고, 얼음판처럼 갈라진 경기장 바닥에 꽂힌 창 한 자루를 발견하자.

        루퍼트는 그것으로부터 마지막 모험가가 누구였는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

       

        ‘졌다.’

       

        정신을 차린 시엔은 자신이 5년 전과 마찬가지로 경기장 바닥에 처박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억나는 것은 승리를 확신하며 찌른 검신을 밟은 클락이 하늘로 뛰어올랐다는 것과.

        찰나의 순간 눈앞까지 도달했던 그의 ‘창끝’ 뿐이었다.

       

        “크게 안 다쳤지?”

        “…….”

        “잘 막았네. 어지간한 방어마법으론 소용없거든.”

       

        과연 막았다고 할 수 있을까?

        검에 깃든 신비는 갈가리 찢어발겨 졌고, 온몸의 마력회로를 불태웠음에도 궤도를 튼 게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쫓아온 창날에 귓볼을 스친데다 후폭풍에 휩쓸려 그대로 탈진해버렸으니.

        이건 자신이 심하게 다치지 않도록 그가 배려해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까 말한 그거.”

        “응?”

        “뭐 하는 데 썼다는 거야? 네 창.”

       

        패배를 인정하기에 앞서 시엔은 확신했다.

        창공에 떠오른 채 지상을 향해 내리꽂히는 공격은 절대 인간을 저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아니다.

        지금은 고작 마탑 1층의 천장 높이었지만, 만약 장소가 산맥이나 협곡이었다면?

       

        터벅터벅 다가와 바닥에 꽂힌 창을 회수한 클락은 그녀의 물음에 짧은 한 마디로 답했다.

       

        “용 사냥.”

       

       마룡.

       태양의 적, 대마녀, 명계의 왕과 함께 4대 재앙 중 하나로 불리우던 이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독자분들 모두,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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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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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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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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