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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처음 지도를 받아든 나이틀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홀로 어두운 숲속으로 들어갔다.

       

       한밤중의 야산. 통제조교도 없고 동행하는 조원도 없지만 큰 문제는 없다.

       

       키르린 교장은 비록 사고 위험 때문에 현장실습을 통제해 왔지만 대신 이론수업에는 굉장히 공을 들여왔다.

       

       그래서 학생들은 기본적인 독도법에 매우 능숙하며 특히나 나이틀리는 별도로 더 공부를 해왔기에 별자리와 나무의 형태만 보고도 대충 방위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책상머리에서 주구장창 해오던 거랑 실제 땅을 밟는 것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거야 몇 번하면 바로 적응할 사소한 문제.

       

       그러니 아카데미 인근의 야산에서 길을 찾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건 디안 교수의 개인교습이 아닌가.

       대놓고 개인교습을 하면 이런저런 안 좋은 말이 돌 수 있으니 따로 장소를 마련해서 가르치려는 것.

       

       아마 조금만 들어가면 디안 교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를 한 시간. 나이틀리는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능선을 따라가던 경로가 서서히 옆으로 틀어지면서 지형이 점점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소 몸의 균형유지를 요하는 정도의 경사였는데 어느새 나무 등을 붙잡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옆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각도.

       

       점차 숨이 차고 땀이 턱과 목을 타고 흐르자 나이틀리는 자리에 멈춰서서 지도를 다시 한번 살폈다. 혹시나 길을 잘못 찾은 것은 아닌가 하고.

       

       하지만 지도를 이리저리 돌리며 나침반을 확인해도 이 방향이 맞다. 아카데미까지 이 지랄 같은 지형을 계속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일단은 계속 가보자. 요앞에 약간의 평지가 있는데 거기에 디안 교수가 있을 듯하니.

       

       그렇게 또 한 시간. 나이틀리는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는 경사면을 기어오르다 결국 욕을 지르고 말았다.

       

       “젠장, 젠장젠장! 이 빌어먹을 교수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왜 아직까지 안 나타나!!”

       

       그러나 그에 답하는 것은 여기저기 반사되어 돌아오는 나이틀리의 메아리뿐.

       

       “당장 나와요! 보고 있는 거 다 알아요!”

       

       역시 대답은 없다.

       

       나이틀리는 줄줄 흐르는 땀을 손등을 닦아내며 지도를 꺼내 들었다.

       

       아직 아카데미 경계에 도달하기까지는 삼 분의 일 정도 남았고 그 사이에 완만한 구간이나 우회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경로 한번 기가 막히게 짰군. 마치 나를 제대로 골탕 먹이려는 것처럼.

       

       이쯤에서 나이틀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갈까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다.

       

       이대로 포기하기는 싫다. 자신을 전담지도하면 분명 경력에 도움이 될 거라며 큰소리를 쳐놓고 막상 빈손으로 돌아가면 디안 교수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오만방자해서 스스로도 지키지 못할 큰소리나 치는 허영심 많은 귀족영애라 생각하겠지.

       

       게다가 복귀하면 침투교수나 다른 조교와 함께 복귀를 해야 하는데, 이미 아카데미에 도착해 있는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무시할 수는 없다.

       

       부끄럽고 창피해서가 아니라 그런 하등한 것들에게 뒷말을 듣는 게 죽어도 싫어서다.

       

       그리고 한편으로 나이틀리는 자신의 능력과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다.

       

       분명 그녀는 모든 과목에서 월등한 아카데미 수석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 수업과 필기시험에 한해서다.

       험지에서의 자신의 수준을 아직 나이틀리는 알지 못한다.

       

       고작 아카데미 근처의 산조차 넘을 수 없다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특임요원은 될 수 없어.

       

       오빠들이 종종 들려주던, 나이틀리의 마음을 홀렸던 이야기 속 제국 특임대처럼 살 수 없게 된다.

       

       현장에서 수준 미달로 제외되어 사무직 따위로 전환된다면 곧바로 아버지에게 잡혀 갈지도 모르지.

       

       그러면 굳이 정략혼을 피해 아버지와 격렬한 불화를 일으키며 아카데미로 도망쳐 온 과거가 모두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려.

       

       간다. 곧 죽어도 가는 거야. 만약 디안 교수가 생각이 있는 자라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놨겠지.

       

       나이틀리는 지도를 품에 쑤셔 넣고 땅을 짚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몇 번이나 헛발질을 해 추락할 뻔하던 나이틀리는 곧 균형을 되찾고 아슬아슬하게 경사면을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 # # # #

       

       

       “젠장, 젠장젠장! 이 빌어먹을 교수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왜 아직까지 안 나타나!!”

       

       경사면 위쪽에서 나이틀리의 비명 같은 분노의 외침이 들려 오자 생존교수 웨이버가 나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반장 학생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네요.”

       “열받겠지. 개인교습을 기대하고 왔는데 계속 산이나 타고 있으니.”

       

       나와 웨이버는 지금 나이틀리가 중턱에 주저앉은 경사면의 아래쪽 나무 위에 앉아 있다.

       나이틀리가 별도의 지도를 받고 혼자 침투를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뒤를 밟고 있는 중.

       그로부터 거의 두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이틀리는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반장 학생이 잠시 쉬어갈 모양인데 우리도 이참에 야식이나 먹을까요?”

       

       웨이버가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큼지막한 육포 두 개를 꺼내 하나를 내게 건넸다.

       

       “요거 양고기 육포인데요.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맛이 아주 기가 막혀요.”

       “으음, 그러네. 진짜 맛있다.”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웨이버가 물었다.

       

       “그런데 수석교수님. 제가 은신과 추적으로는 절대 누구한테 뒤지지 않는다 생각했는데요. 오늘 보니 수석교수님도 만만치 않으십니다. 어디서 따로 훈련을 받으신 겁니까?”

       “정식으로 훈련받은 건 아니고 그냥 여기저기서 몸으로 배운 거다.”

       “그렇습니까? 들리는 소문으로는 참전용사시라고 하던데요. 어디 군단에 계셨습니까?”

       “그것도 여기저기. 그러는 너는 전쟁 때 뭐했냐?”

       

       과거 이야기를 꺼내면 구구절절 늘어 놓아야 할까 싶어 화제를 돌리자 웨이버가 대답했다.

       

       “저는 민병대에서 활동했습니다.”

       

       생존교수 웨이버는 제국 동부 퀴라나 지방의 사냥꾼이었단다. 4년전쟁이 발발하고 마왕군이 침략하면서 지방 사람들과 함께 민병대를 결성해 결사항쟁했다고.

       

       “저희 퀴라나는 대대로 가업을 이어가는 사냥꾼들이 많지요. 걸음마를 떼자마자 활 쏘고 덫 치는 법을 배우는 데다 대부분이 산악지형이라 마왕군이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전쟁 초기에 마왕군은 대륙 대부분을 휩쓸었지만 몇 군데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퀴라나.

       활과 덫에 능통한 사냥꾼들이 득실대는 곳에서의 산악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재미 좀 봤어?”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이래봬도 훈장도 받은 몸입니다.”

       “그으래? 무슨 훈장을 받았는데?”

       “삼등무공훈장입니다. 뿔쟁이의 대가리에 백 번째 화살을 박아 넣고 받은 거지요.”

       “이야, 진짜 대단하다. 현역도 아니고 민간 사냥꾼이 마족 백 명을 쏴죽이다니.”

       “하하. 감사합니다.”

       

       그때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올려다 보니 나이틀리가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오, 일어나는데요. 과연 반장 학생은 앞으로 갈 것인가요, 뒤로 돌아설 것인가요?”

       

       웨이버와 나는 숨을 죽이고 나이틀리를 주시했다.

       약간 주저하던 나이틀리는 이내 손으로 땅을 짚으며 경사면을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웨이버가 낮게 감탄했다.

       

       “귀족영애라고 해서 험한 꼴 더 못 버틸 줄 알았는데 대단하군요. 역시 반장 학생입니다.”

       “그럼 웨이버 너는 먼저 앞질러 가서 나이틀리를 기다리고 있어. 나는 뒤따라서 갈게.”

       “알겠습니다, 수석교수님. 아카데미에서 다시 뵙지요.”

       

       남은 육포를 입안에 밀어 넣은 웨이버가 올빼미처럼 소리도 없이 나무에서 나무를 건너 뛰며 빠르게 경사면을 올라갔다.

       나는 나이틀리가 충분히 경사면을 등반하기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갔다.

       

       

       # # # # #

       

       

       “하아….”

       

       저 앞에 아카데미의 불빛이 보이자 나이틀리는 지친 한숨을 내쉬며 무릎을 꿇었다.

       

       지금 그녀는 막 바위절벽을 내려온 터. 장갑은 이미 해졌고 온몸의 근육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첫 실습임에도 나이틀리가 여기까지 어떻게든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평소 혼자서 했던 체력단련 덕분.

       

       지형지물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기초체력이 받쳐 주었기에 결국 침투경로의 마지막 지점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수고했다, 나이틀리.”

       

       힘겹게 고개를 들어 보니 언제 왔는지 디안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나이틀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교수님…. 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건데요….”

       “왜 이러냐니. 일주일에 한번 하는 개인교습 첫 번째 시간인데.”

       “이딴 게….”

       

       나이틀리가 메마른 입술을 억지로 움직여 이를 드러냈다.

       

       “이딴 게… 개인교습이라고요…?”

       “다른 학생들하고 떨어져서 혼자 왔잖아. 그리고 나는 네 뒤를 따라가면서 계속 감독했고.”

       “제 뒤를 따라와요…? 아무 기척도 못 느꼈는데…?”

       “아직은 모를 거야. 계속 배우다 보면 느낄 수 있게 돼. 그런데….”

       

       디안 교수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어깨 뒤를 가리켰다.

       

       “최종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라 아카데미 내부야. 침투훈련이잖아.”

       “젠장할….”

       

       나이틀리는 이를 북북 갈면서 무릎을 짚고 일어나 바들대는 다리를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디안이 쓰러지는 나이틀리를 제때에 받아냈다.

       

       “괜찮아?”

       

       대답이 없기에 보니 품 안의 나이틀리가 눈을 감고 있는 게 완전히 실신한 듯하다.

       아무래도 더 진행하기는 어렵겠군. 여기까지 해야겠어.

       

       디안이 손짓하자 아카데미 망루에 올라가 있던 웨이버가 알았다는 수신호를 보내고 망루에서 철수했다.

       

       원래 계획은 웨이버의 ‘아슬아슬하게 빗나가는’ 화살 세례를 받으며 담벼락을 넘는 것까지지만 이 정도도 충분하다.

       

       나이틀리를 굳이 혼자 이런 위험한 곳으로 몰아 넣은 것은 그녀의 의지와 인내력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만약 나이틀리가 험지돌파 같은 간단한 것에서부터 포기를 해버린다면 이후로 계속 가르치는 건 의미가 없어지니까.

       그냥 일주일에 한번 불러다가 대충 시간이나 떼우고 돌려 보내는 거지, 뭐.

       

       그래서 시험한 거다.

       

       지금까지는 이론성적만 가지고 자신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거들먹거리지만 막상 현장에 내던져지면 생각이 달라지기 마련.

       

       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소대장들이 첫전투를 치르고 넋이 나가 버리는 것을 나는 많이 봐왔다. 이론과 현장은 완전히 다른 법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나이틀리는 우려와 달리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사실 나도 나이틀리를 가르쳐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으니 정말 다행.

       나이틀리는 여러 모로 우수한 학생이고 내 손을 거친다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거든.

       

       그리고 졸업생 중에 특출난 요원을 배출한다면 2황녀도 현재의 체제, 그러니까 키르린이 교장이고 내가 교수인 이 체제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좋아, 나이틀리. 계속 가보자고.

       

       

       # # # # #

       

       

       “안녕하세요, 사제님.”

       

       야간침투수업 때문에 의무소에 늦게까지 남아 환자일지를 작성하던 마야 사제가 고개를 들었다.

       

       전투수석교수 디안이 행색이 엉망인 금발의 여학생을 업고 의무소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침투수업 받은 학생인데요.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서 신성치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저기에 눕히세요.”

       

       디안이 여학생을 빈 침상에 눕히는 동안 마야 사제는 새로운 환자일지에 빠르게 기록을 했다.

       

       자신이 쓴 환자일지가 철저히 객관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함을 확인한 마야 사제는 의자에서 일어나 환자에게로 향했다.

       

       [야심한 밤에 디안 교수가 난처한 미소와 함께 복장이 난잡해진 채 땀으로 온몸이 젖어 의식을 잃은 미모의 여학생을 업고 왔음].

       

       [수업에 참여한 다른 학생들은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두 사람 사이에 기존 계획된 수업내용에서 벗어난 모종의 격렬한 신체활동이 동반된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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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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