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테르는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 작품은 터져요.”
이게 무얼 의미하는 걸까.
크로우펠츠는 아득히 먼 과거의 기억을 되짚었다.
‘떠올랐다.’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이름 모를 화계마도사가 커다란 화구(火球)를 만들어내는 걸 본 기억이 있었다.
강한 폭발계 마법을 구사하면 불의 정령이 공기의 정령을 밀어내며 화구가 피어오른다. 이론으로도 도출 가능한 사실이지만, 크로우펠츠는 그것을 두 눈으로 보았었다.
폭발이 충분히 크다면, 화구가 만드는 구름은 버섯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정말 폭탄인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크로우펠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모형이구나?”
“……터뜨리기 전에는 모형인지 아닌지 모르죠.”
에테르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다져진 땅처럼 평탄한 어조에선 알 수 없는 설득력이 존재했다.
‘진짜인 건가?’
저 소녀가 손에 든 스크롤을 작동시킨다면 곧바로 틸레트를 포함한 수도 일대가 화마(火魔)에 휩싸여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야, 모형일 거야. 진짜면 이런 곳에 전시하겠어?”
그녀의 추론이 합리적이라 생각한 에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곧 정답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해 봐야 아는 거죠.”
에테르는 격발부가 담긴 스크롤을 팔랑거리며 답했다. 그녀의 손끝에는 희미한 마기가 담겨 있었다.
“자, 잠깐! 너 뭐 하려는 거야!”
“이 스크롤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지 마…!”
“분명히 모형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분명하다고 말했어? 그럴 것 같다고 했지!”
이상하다.
저게 진짜 폭탄이라면 폭발시켰을 때 에테르조차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그런데도 저 소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스크롤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그 점에서 괴리감이 들었다.
그때였다.
“저, 저거 진짜 폭탄 맞을걸요.”
등 뒤에서 덜덜 떠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청색 머리카락을 지닌 아리따운 소녀였다. 그녀는 부채를 든 손을 파들파들 흔들며 크로우펠츠의 곁으로 다가왔다.
‘블랜튼 가문의 공녀잖아.’
크로우펠츠도 아는 사람이다.
그냥 아는 것도 아니고, 제국에서 공신력 높고 머리도 똑똑하다고 소문난 로즈마리 공녀. 적어도 수도에서는 그녀의 지용을 모르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총명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로즈마리 공녀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하이고, 에테르. 또 사고 쳤니?”
실눈을 한 미모의 여인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다가왔다.
메리가 헤를라인. 그녀 또한 크로우펠츠가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평민 신분으로 틸레트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골렘 연성의 권위자까지 올라간 천재. 성도 바깥에선 민초들의 희망이라 불리는 그녀는, 동시에 북부 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돌아온 전쟁영웅이기도 했다.
그런 헤를라인이, 에테르를 보더니 못마땅하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니. 폭탄?”
“네.”
“어음…. 모형은 아닌 것 같네.”
그러더니 헤를라인은 에테르에게 살짝 꿀밤을 먹였다.
“악.”
“내가 요새 너 때문에 못 살아! 며칠 전에는 엘프 친구들 때리고 다니더니, 예술제엔 이런 위험한 걸 출품했니? 출품 담당자가 이런 거 보고 제지 안 했어?”
“출품료에 팁 얹어서 주니까 바로 등록시켜 주던데요.”
헤를라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가슴팍을 팍팍 두들겼다.
‘정직하기로 소문난 저 헤를라인이 저렇게까지 말할 줄이야.’
이걸로 에테르가 낸 작품이 실제 폭탄이라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크로우펠츠의 목덜미가 공수증 걸린 개에게 물린 것처럼 뻣뻣해졌다.
“저거, 폭탄 맞을 거요.”
마침 지나가던 교수들이 한 마디씩 추가로 던지고 갔다. 어떤 자는 한숨까지 쉬며 답했다.
“이게 무슨….”
“이 아이,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헤를라인이 난작거리는 투로 말했다.
“혹시 플레어라고 들어보셨나 모르겠어요. 그걸 만든 게 에테르예요. 이 아이 수준이면 이걸 거짓으로 출품하진 않았을 테죠.”
뜻하지 않은 변호인단의 등장이었다. 마법에 한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틸레트 교수진이 한목소리로 말하니, 크로우펠츠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
그 순간, 깨닫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저게 모형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소녀가 만든 저 작품을 통해 미지에 대한 긴장과 공포가 만들어졌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합격점이었다.강렬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근래 미술계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방향이었으므로.
‘내 식견이 짧았어.’
단순히 일상적인 물품을 예술적으로 바라보느니, 점선면에 대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느니 할 필요가 없었다.
세상에는 부숴야만 진가를 발휘하는 예술도 있다는 걸, 크로우펠츠는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그제야 이 작품이 다르게 보였다.
“대단해, 대단하군요…!”
비슷한 시기, 뒤랑도 같은 감정을 품었다.
“그야말로 미(美)의 극치! 저, 미셸 뒤랑! 후배님의 아름다운 조형물에 무한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크로우펠츠와 뒤랑은 에테르의 작품을 몇 분가량 더 감상하고 난 뒤 자리를 떠났다.
“어후.”
피곤하다.
예술대회면 그것에 맞춰 미적인 부분을 설명해야 했는데, 이것이 폭탄이라는 것에만 집중하여 설명하고 말았다.
– 이것을 버섯으로 보지 않으면, 진짜 버섯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
대충 그런 느낌으로 제목을 지은 건데, 저 사람들은 다르게 감상하고 뜻하지 않게 탄복했다.
운이 좋은 걸까?
에테르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제 작품을 올려다보았다.
“근데 잘 만들긴 했어.”
3m가 넘는, 기다랗고 매끈한 쇠봉.
갓이 짧은 버섯처럼 생긴 이 철덩어리의 정체는, 그녀가 앞으로 깔아 둘 포석의 극히 일부분이었다.
**
예술제엔 약간의 이변이 있었다.
본래 뒤랑에게 주기로 한 대상이 에테르네 팀으로 돌아갔고, 이것을 공동 작업한 로테와 프레이가 받아들었다.
두 소녀의 손에는 각각 트로피와 백금화 자루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부상으로 하나 더 있습니다.”
심사관은 으리으리한 케이스에서 작은 보석함을 꺼냈다.
“에테르 양은 부재중인가요?”
“발명대회 준비한다고 지하실에 틀어박혀서 안 나와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나중에 전해주세요.”
크로우펠츠는 싱긋 웃으며 로테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저도 안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건 보통 예술에 관심 있으신 정령님들께서 직접 빚어 주시는 거거든요. 그 친구가 있는 곳에서 다 함께 열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로테와 프레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예술제가 끝난 뒤, 심야.
로즈마리는 아크등이 비추는 밤길을 걸어 다니며 머리를 짚었다.
비칠거리는 발걸음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정상적인 걸음걸이는 아니었다.
‘두통이 너무 심해.’
CPU 과열이다.
로즈마리는 입술을 꽉 깨물며 오늘 일을 되짚었다.
내부까지 온전히 완성된 원자폭탄의 모습.
다른 누구도 아니다. 그것만큼은 아렌스 대륙 전체를 통틀어 언니만 만들 수 있는 기물이었다.
‘외형만 만드는 거라고 했잖아! 가짜 폭탄이라고 했잖아!’
로즈마리의 절규는 끊어질 줄 몰랐다.
언니가 날 죽이려고 한다! 언니가 우릴 다 죽이려고 한다! 인간이고 마수고 상관없이 다 날려버리려고 한다!
“으아아악!”
멘탈이 부서지다 못해 마카롱처럼 으깨질 지경이다.
하는 작전마다 번번이 실패해, 엘프 하나 제대로 못 잡아, 언니는 제대로 돌아온 줄 알았더니 이상한 연구만 계속해….
‘심지어 그 연구가 저거였어!’
그동안 여러 일로 막대한 스트레스를 받은 로즈마리였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로테인가 뭔가 하는 년 때문에 신경 쓴 것도 있었고, 8석이 카우렐리아에서 염병을 떨어놓은 바람에 정령을 떼거리로 사역하는 엘프들이 예정보다 틸레트에 일찍 오기까지 했다.
– 곧 로드스톤이 도착한답니다.
7석에게서 그런 전언을 받지 않았더라면, 진작 다 때려 부수고도 남았다.
끼익, 쿵!
로즈마리는 예술제에서 입상한 작품들이 진열된 창고 문을 따고 들어갔다.
‘언니, 미안해. 근데 뭐 어쩌라고!’
금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난다. 그녀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등대처럼 환한 빛이 이리저리 돌아갔다.
“……찾았다.”
대상.
언니가 만든 ‘버섯’이라는 제목의 원자폭탄.
실제 폭탄의 이름을 ‘리틀 걸(Little Girl)’로 지으려고 했던 에테르였지만, 로즈마리가 거기까지 알 리는 없었다.
‘언니는 지금 우승 뒤풀이를 하고 있겠지?’
그 친구인가 뭔가 하는 가짜 동료들과 술을 퍼마시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게 조금 분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걸 누가 앗아간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눈치 못 챌 터.
로즈마리는 히히 웃으며 원자폭탄을 쓰다듬었다.
“와.”
촉감이 다르다.
예쁘다. 보드랍다. 사랑스럽다.
이거, 잘만 하면 제국 수도를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
‘여기 인구가 몇 명이더라?’
한 500만 언저리? 그쯤 됐을 것이다.
그중 못해도 1할가량을 날려버릴 병기가 코앞에 있었다.
어디 1할뿐일까?
이것이 내뿜는 방사능이라면, 근교 지역까지 포함해서 그의 배 되는 수의 인간에게 치명타를 먹일 수 있다.
5석이 사용하는 ‘역병’으로도 쉽지 않은, 만성 후유증과 함께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하는 무기.
“언니가 나쁜 거야. 이런 거나 만들고…….”
로즈마리는 양팔에 힘을 주어 원자폭탄을 들어 올렸다. 4.8톤에 육박하는 무게였지만, 그녀의 기계적인 완력 앞에서는 한낱 쌀 포대 드는 정도의 무거움밖에 되지 않았다.
근데, 이거.
“……황성까지 옮길 수 있으려나?”
불행하게도 지금 로즈마리에게는 텔레포트 스크롤이 없었다. 이것 말고도 일처리할 게 많았고, 그걸 다 결제한 다음에야 허겁지겁 온 것이기 때문이다.
“에이 씨.”
로즈마리는 품에서 분필을 꺼냈다. 대용 연성진을 그리기 위함이었다.
수백 년 전에나 쓰던 구닥다리 방법이고 효율도 안 좋았지만, 마땅한 수가 없었다.
“좋아, 오랜만에….”
그때였다.
쾅!
무언가가 세차게 닫히는 소리.
“흐약!”
깜짝 놀란 로즈마리는 몸을 새끼 고양이처럼 움츠렸다.
텅, 텅, 텅!
자기 머리 위로 조명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묽은 노란빛을 띠는 스포트라이트가 로즈마리의 푸른 머리칼을 비췄다.
본능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횡격막이 위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어디서 도둑고양이가 들어왔나 싶었더니.”
딸꾹.
“너일 줄 알았어.”
딸꾹, 딸꾹.
“동생.”
“히끅.”
“뒤질래?”
로즈마리는 그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속이 울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