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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0

       에테르는 덤덤하게 말했다.

       ​

       “우리 작품은 터져요.”

       ​

       이게 무얼 의미하는 걸까.

       ​

       크로우펠츠는 아득히 먼 과거의 기억을 되짚었다.

       ​

       ‘떠올랐다.’

       ​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이름 모를 화계마도사가 커다란 화구(火球)를 만들어내는 걸 본 기억이 있었다.

       ​

       강한 폭발계 마법을 구사하면 불의 정령이 공기의 정령을 밀어내며 화구가 피어오른다. 이론으로도 도출 가능한 사실이지만, 크로우펠츠는 그것을 두 눈으로 보았었다.

       ​

       폭발이 충분히 크다면, 화구가 만드는 구름은 버섯처럼 보인다.

       ​

       그렇다면.

       ​

       ‘정말 폭탄인가?’

       ​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

       크로우펠츠는 고개를 내저었다.

       ​

       “그럴 리가 없지. 모형이구나?”

       “……터뜨리기 전에는 모형인지 아닌지 모르죠.”

       ​

       에테르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다져진 땅처럼 평탄한 어조에선 알 수 없는 설득력이 존재했다.

       ​

       ‘진짜인 건가?’

       ​

       저 소녀가 손에 든 스크롤을 작동시킨다면 곧바로 틸레트를 포함한 수도 일대가 화마(火魔)에 휩싸여버릴 것만 같았다.

       ​

       “아니야, 모형일 거야. 진짜면 이런 곳에 전시하겠어?”

       ​

       그녀의 추론이 합리적이라 생각한 에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곧 정답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

       “진짜인지 아닌지는 해 봐야 아는 거죠.”

       ​

       에테르는 격발부가 담긴 스크롤을 팔랑거리며 답했다. 그녀의 손끝에는 희미한 마기가 담겨 있었다.

       ​

       “자, 잠깐! 너 뭐 하려는 거야!”

       “이 스크롤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지 마…!”

       “분명히 모형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분명하다고 말했어? 그럴 것 같다고 했지!”

       ​

       이상하다.

       ​

       저게 진짜 폭탄이라면 폭발시켰을 때 에테르조차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그런데도 저 소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스크롤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

       그 점에서 괴리감이 들었다.

       ​

       그때였다.

       ​

       “저, 저거 진짜 폭탄 맞을걸요.”

       ​

       등 뒤에서 덜덜 떠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군청색 머리카락을 지닌 아리따운 소녀였다. 그녀는 부채를 든 손을 파들파들 흔들며 크로우펠츠의 곁으로 다가왔다.

       ​

       ‘블랜튼 가문의 공녀잖아.’

       ​

       크로우펠츠도 아는 사람이다.

       ​

       그냥 아는 것도 아니고, 제국에서 공신력 높고 머리도 똑똑하다고 소문난 로즈마리 공녀. 적어도 수도에서는 그녀의 지용을 모르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총명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

       그런 로즈마리 공녀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

       “하이고, 에테르. 또 사고 쳤니?”

       ​

       실눈을 한 미모의 여인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다가왔다.

       ​

       메리가 헤를라인. 그녀 또한 크로우펠츠가 아는 사람이었다.

       ​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

       평민 신분으로 틸레트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골렘 연성의 권위자까지 올라간 천재. 성도 바깥에선 민초들의 희망이라 불리는 그녀는, 동시에 북부 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돌아온 전쟁영웅이기도 했다.

       ​

       그런 헤를라인이, 에테르를 보더니 못마땅하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이게 뭐니. 폭탄?”

       “네.”

       “어음…. 모형은 아닌 것 같네.”

       ​

       그러더니 헤를라인은 에테르에게 살짝 꿀밤을 먹였다.

       ​

       “악.”

       “내가 요새 너 때문에 못 살아! 며칠 전에는 엘프 친구들 때리고 다니더니, 예술제엔 이런 위험한 걸 출품했니? 출품 담당자가 이런 거 보고 제지 안 했어?”

       “출품료에 팁 얹어서 주니까 바로 등록시켜 주던데요.”

       헤를라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가슴팍을 팍팍 두들겼다.

       ​

       ‘정직하기로 소문난 저 헤를라인이 저렇게까지 말할 줄이야.’

       ​

       이걸로 에테르가 낸 작품이 실제 폭탄이라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크로우펠츠의 목덜미가 공수증 걸린 개에게 물린 것처럼 뻣뻣해졌다.

       ​

       “저거, 폭탄 맞을 거요.”

       ​

       마침 지나가던 교수들이 한 마디씩 추가로 던지고 갔다. 어떤 자는 한숨까지 쉬며 답했다.

       ​

       “이게 무슨….”

       “이 아이,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

       헤를라인이 난작거리는 투로 말했다.

       ​

       “혹시 플레어라고 들어보셨나 모르겠어요. 그걸 만든 게 에테르예요. 이 아이 수준이면 이걸 거짓으로 출품하진 않았을 테죠.”

       ​

       뜻하지 않은 변호인단의 등장이었다. 마법에 한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틸레트 교수진이 한목소리로 말하니, 크로우펠츠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

       ‘아.’

       ​

       그 순간, 깨닫고 말았다.

       ​

       생각해 보니, 저게 모형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

       중요한 건, 소녀가 만든 저 작품을 통해 미지에 대한 긴장과 공포가 만들어졌다는 것.

       ​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합격점이었다.강렬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근래 미술계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방향이었으므로.

       ​

       ‘내 식견이 짧았어.’

       ​

       단순히 일상적인 물품을 예술적으로 바라보느니, 점선면에 대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느니 할 필요가 없었다.

       ​

       세상에는 부숴야만 진가를 발휘하는 예술도 있다는 걸, 크로우펠츠는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

       그제야 이 작품이 다르게 보였다.

       ​

       “대단해, 대단하군요…!”

       ​

       비슷한 시기, 뒤랑도 같은 감정을 품었다.

       ​

       “그야말로 미(美)의 극치! 저, 미셸 뒤랑! 후배님의 아름다운 조형물에 무한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

       크로우펠츠와 뒤랑은 에테르의 작품을 몇 분가량 더 감상하고 난 뒤 자리를 떠났다.

       ​

       “어후.”

       ​

       피곤하다.

       ​

       예술대회면 그것에 맞춰 미적인 부분을 설명해야 했는데, 이것이 폭탄이라는 것에만 집중하여 설명하고 말았다.

       ​

       – 이것을 버섯으로 보지 않으면, 진짜 버섯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

       ​

       대충 그런 느낌으로 제목을 지은 건데, 저 사람들은 다르게 감상하고 뜻하지 않게 탄복했다.

       ​

       운이 좋은 걸까?

       ​

       에테르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제 작품을 올려다보았다.

       ​

       “근데 잘 만들긴 했어.”

       ​

       3m가 넘는, 기다랗고 매끈한 쇠봉.

       ​

       갓이 짧은 버섯처럼 생긴 이 철덩어리의 정체는, 그녀가 앞으로 깔아 둘 포석의 극히 일부분이었다.

       ​

       ​

       **

       ​

       ​

       예술제엔 약간의 이변이 있었다.

       ​

       본래 뒤랑에게 주기로 한 대상이 에테르네 팀으로 돌아갔고, 이것을 공동 작업한 로테와 프레이가 받아들었다.

       ​

       두 소녀의 손에는 각각 트로피와 백금화 자루가 들려있었다.

       ​

       “그리고 부상으로 하나 더 있습니다.”

       ​

       심사관은 으리으리한 케이스에서 작은 보석함을 꺼냈다.

       ​

       “에테르 양은 부재중인가요?”

       “발명대회 준비한다고 지하실에 틀어박혀서 안 나와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나중에 전해주세요.”

       ​

       크로우펠츠는 싱긋 웃으며 로테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

       “저도 안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건 보통 예술에 관심 있으신 정령님들께서 직접 빚어 주시는 거거든요. 그 친구가 있는 곳에서 다 함께 열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

       로테와 프레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

       ​

       예술제가 끝난 뒤, 심야.

       ​

       로즈마리는 아크등이 비추는 밤길을 걸어 다니며 머리를 짚었다.

       ​

       비칠거리는 발걸음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정상적인 걸음걸이는 아니었다.

       ​

       ‘두통이 너무 심해.’

       ​

       CPU 과열이다.

       ​

       로즈마리는 입술을 꽉 깨물며 오늘 일을 되짚었다.

       ​

       내부까지 온전히 완성된 원자폭탄의 모습.

       ​

       다른 누구도 아니다. 그것만큼은 아렌스 대륙 전체를 통틀어 언니만 만들 수 있는 기물이었다.

       ​

       ‘외형만 만드는 거라고 했잖아! 가짜 폭탄이라고 했잖아!’

       ​

       로즈마리의 절규는 끊어질 줄 몰랐다.

       ​

       언니가 날 죽이려고 한다! 언니가 우릴 다 죽이려고 한다! 인간이고 마수고 상관없이 다 날려버리려고 한다!

       ​

       “으아아악!”

       ​

       멘탈이 부서지다 못해 마카롱처럼 으깨질 지경이다.

       ​

       하는 작전마다 번번이 실패해, 엘프 하나 제대로 못 잡아, 언니는 제대로 돌아온 줄 알았더니 이상한 연구만 계속해….

       ​

       ‘심지어 그 연구가 저거였어!’

       ​

       그동안 여러 일로 막대한 스트레스를 받은 로즈마리였다.

       ​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

       로테인가 뭔가 하는 년 때문에 신경 쓴 것도 있었고, 8석이 카우렐리아에서 염병을 떨어놓은 바람에 정령을 떼거리로 사역하는 엘프들이 예정보다 틸레트에 일찍 오기까지 했다.

       ​

       – 곧 로드스톤이 도착한답니다.

       ​

       7석에게서 그런 전언을 받지 않았더라면, 진작 다 때려 부수고도 남았다.

       ​

       끼익, 쿵!

       ​

       로즈마리는 예술제에서 입상한 작품들이 진열된 창고 문을 따고 들어갔다.

       ​

       ‘언니, 미안해. 근데 뭐 어쩌라고!’

       ​

       금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난다. 그녀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등대처럼 환한 빛이 이리저리 돌아갔다.

       ​

       “……찾았다.”

       ​

       대상.

       ​

       언니가 만든 ‘버섯’이라는 제목의 원자폭탄.

       ​

       실제 폭탄의 이름을 ‘리틀 걸(Little Girl)’로 지으려고 했던 에테르였지만, 로즈마리가 거기까지 알 리는 없었다.

       ​

       ‘언니는 지금 우승 뒤풀이를 하고 있겠지?’

       ​

       그 친구인가 뭔가 하는 가짜 동료들과 술을 퍼마시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게 조금 분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이걸 누가 앗아간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눈치 못 챌 터.

       ​

       로즈마리는 히히 웃으며 원자폭탄을 쓰다듬었다.

       ​

       “와.”

       ​

       촉감이 다르다.

       ​

       예쁘다. 보드랍다. 사랑스럽다.

       ​

       이거, 잘만 하면 제국 수도를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

       ​

       ‘여기 인구가 몇 명이더라?’

       ​

       한 500만 언저리? 그쯤 됐을 것이다.

       ​

       그중 못해도 1할가량을 날려버릴 병기가 코앞에 있었다.

       ​

       어디 1할뿐일까?

       ​

       이것이 내뿜는 방사능이라면, 근교 지역까지 포함해서 그의 배 되는 수의 인간에게 치명타를 먹일 수 있다.

       ​

       5석이 사용하는 ‘역병’으로도 쉽지 않은, 만성 후유증과 함께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하는 무기.

       ​

       “언니가 나쁜 거야. 이런 거나 만들고…….”

       ​

       로즈마리는 양팔에 힘을 주어 원자폭탄을 들어 올렸다. 4.8톤에 육박하는 무게였지만, 그녀의 기계적인 완력 앞에서는 한낱 쌀 포대 드는 정도의 무거움밖에 되지 않았다.

       ​

       근데, 이거.

       ​

       “……황성까지 옮길 수 있으려나?”

       ​

       불행하게도 지금 로즈마리에게는 텔레포트 스크롤이 없었다. 이것 말고도 일처리할 게 많았고, 그걸 다 결제한 다음에야 허겁지겁 온 것이기 때문이다.

       ​

       “에이 씨.”

       ​

       로즈마리는 품에서 분필을 꺼냈다. 대용 연성진을 그리기 위함이었다.

       ​

       수백 년 전에나 쓰던 구닥다리 방법이고 효율도 안 좋았지만, 마땅한 수가 없었다.

       ​

       “좋아, 오랜만에….”

       ​

       그때였다.

       ​

       쾅!

       ​

       무언가가 세차게 닫히는 소리.

       ​

       “흐약!”

       ​

       깜짝 놀란 로즈마리는 몸을 새끼 고양이처럼 움츠렸다.

       ​

       텅, 텅, 텅!

       ​

       자기 머리 위로 조명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묽은 노란빛을 띠는 스포트라이트가 로즈마리의 푸른 머리칼을 비췄다.

       ​

       본능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

       동시에, 횡격막이 위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

       “어디서 도둑고양이가 들어왔나 싶었더니.”

       ​

       딸꾹.

       ​

       “너일 줄 알았어.”

       ​

       딸꾹, 딸꾹.

       ​

       “동생.”

       “히끅.”

       “뒤질래?”

       ​

       로즈마리는 그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

       속이 울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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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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