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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0

        

         

       중화의 3대 고도란 서안(장안), 낙양, 개봉(량)을 말한다.

       원시적 농법이 전부이던 시절 하북-하남-호북-호남에 이르는 광대한 평야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발전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개중 개봉이라 하면 역시 거대한 운하를 빼놓을 수가 없다.

       운하가 도시 중앙까지 들어 관청 앞에서 배를 타면 북으로는 북경에, 동쪽으로 낙양 지나 서안까지, 남서로 항주에 거쳐 바다로 나가는 중화 수운의 중심지였다.

       이는 중원에 거대한 세 개의 강줄기와도 전부 이어지니 황하와 장강 그리고 꼽사리 회하까지 전부와 통하는 창대한 물길이다.

         

       “흠. 이제 좀 깨지. 올라가서 자게.”

         

       “흐어? 싫어……”

         

       청이 비몽사몽 눈도 뜨지 않고 대답했다.

         

       “싫으면 뭐, 불편하게 여기서 잘 텐가? 객실 잡았으니 침상에서 편히 자지 않고.”

         

       “여기서 잘래……”

         

       “흠. 그럼, 너는 계속 마차 안에 있어야겠군. 나는 갈 터이니.”

         

       저도 모르게 너는 여기 살아 엄마는 집에 갈 거야를 시전하고 만 팽대산이었다.

       생각해보면, 꽤나 인류의 보편적인 감성이라고 하겠다.

         

       “잘 가…… 있다 봐……”

         

       그러나 청 역시 진상 중의 진상이었다.

         

       팽대산이 손을 뻗다가, 곧 거둬들이고는 난감한 표정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남녀의 유별함을 모르는 친구라고 해도, 이쪽에서까지 그리 굴어서는 안 될 일이었으므로.

         

       그 대신, 팽대산이 청의 귓가에 고개를 바짝 붙여 특유의 저주파로 속삭였다.

         

       “정신이 들면 이제 좀 깨지.”

         

       “히익! 와, 뭐야. 소오름.”

         

       효과는 굉장했다.

       너무 굉장해서 눈을 번쩍 뜬 청이 곧장 몸을 일으키니, 팽대산이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귀한 미모 가진 사내의 머리와 단단하기가 만년한철과 같으나 정작 든 것이 없는 대갈통의 충돌을 막아냈다.

         

       “와, 소름, 진짜 뭐야. 하지마. 그거.”

         

       청이 제 팔뚝을 마구 비비며 질색했다.

       남은 여잠에 취해 기분좋게 누워있는데, 갑자기 잔뜩 느끼한 사내의 목소리가 귓구멍을 파고들면 당연히 이렇게 된다.

         

       “호오.”

         

       팽대산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얄미운 친구의 약점을 드디어 발견해낸 자의 번뜩임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그 뾰족한 별빛 안광을 푹 눌러 가리는 것이 있어서 큼지막한 삿갓이 끝에 달린 면사를 드리워 옥기린의 은혜로운 면상을 다 가렸다.

         

       팽대산이 아침부터 급히 하인에게 금전을 주어 구해온 물건이라서, 면사의 성능이 썩 훌륭하지는 못했다.

       그냥 싸구려 면사로 비치는 하관에 씩 기분 좋은 호선이 얼핏 비쳤다.

         

       “뭐야, 이제 얼굴 가리기로 했어? 떳떳하니까 안 가린다며?”

         

       “밤새 생각해보니 어쨌거나 피해를 보는 사람은 나뿐이더군. 더러운 사람이 피해야 하는 법이지. 곧게 가겠다고 구태여 오물을 밟고선 불쾌해하는 꼴이 아니었나 싶어서. 하인 시켜다 하나 구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그 말이 딱 맞네. 자 나도 그럼.”

         

       청이 면사를 뒤집어썼다.

       그 꼴을 보던 팽대산이 물었다.

         

       “그게, 원래 그런 색이었나?”

         

       “응. 초려가 잘 빨아주셨네. 와, 향기. 안 그러실 것 같은데 천상 여인이시란 말이지. 세심하기도 하시고.”

         

       “누구와는 반대로 말이지.”

         

       “그야 나는 사나이니까. 그리고 실은 나도 천상여인 할 수 있거든? 안 하는 거지.”

         

       “그게 바로 이미 글러먹었다는 뜻이다.”

         

       그러며 마차에서 내리니, 청이 기지개를 쭉 켰다.

         

       “아유, 밤새 달렸더니 피곤해 죽겠네. 역시 사람은 밤에 잠을 자야지,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니까.”

         

       그에 팽대산이 어이가 없어 툭 쏘았다.

         

       “마차에서 눈 감고 뭐 하고 있었나? 아주 한 번을 안 깨고서는 낯짝도 두껍군.”

         

       “에이, 원래 차에서 자는 건 무효거든? 자도 잔 것 같지가 않네. 하으, 흐아아아.”

         

       청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입 큰 여인은 중원 추녀의 대표적인 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여인의 하품은 소리만 내도 금기라서 몸을 돌리고 입을 막는다.

       물론, 청은 모르고, 안다고 해도 어차피 추녀가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 할 테다.

       팽대산이 그 사내다운 호방함에 혀를 쯧 찼다.

         

       “가서 마저 자고 점심쯤 보지. 사 층 끝에서 두 번째 적송이라 써진 객실이다.”

         

       여전히 마차에 앉은 팽대산이 청이 활짝 열어젖힌 문짝을 붙들며 말했다.

         

       “뭐야, 산. 어디 가?”

         

       “객잔마다 손님이 들어찼으니 웃돈 주고서도 겨우 잡았다. 마차에서 눈 좀 붙이고 점심때쯤 찾아갈 테니,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도록.”

         

       무림대회가 코앞이었으니 투숙객들 역시 죄다 장기로 예약을 잡았다.

       얼굴 안 가렸다면 무림맹 천무대 숙소에 가서 묵었겠지만, 지금은 정체 감추고 도망을 나왔으니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마방에 대어놓은 마차에서 잠을 자고 오겠다는 것이다.

         

       “에이, 불편하게 왜 마차에서, 이런. 내가 생각이 짧았네. 산 성격에 눈 붙였을 리가 없지. 무슨 일 생길까 꼬박 뜬눈으로 지새웠을 거 아냐.”

         

       “……졸기는 했다.”

         

       “피곤한 사람이 침상에서 자야지. 어차피 나는 많이 잤겠다, 산이 침상에서 자. 남녀가 유별하니 뭐니 그 소리 말고, 나는 그냥 바닥에서 잘 테니까.”

         

       “그러지.”

         

       팽대산이 그렇게 말하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청의 면사가 미묘하게 스윽 기울었다.

         

       “음?”

         

       “왜 그러지? 아. 그런데.”

         

       그리고 팽대산의 반투명 입술이 길쭉하게 늘어졌다.

         

       “침상이 둘인데 바닥에서 자겠다니. 거지 생활을 오래 하더니 바닥이 편한가 보군?”

         

       “아, 침상이 따로야? 뭐야, 근데 왜 마차에서 잔다고 해?”

         

       “그야, 내가 방이 하나뿐이지만 침상은 따로이니 같이 자자고 말해야겠나?”

         

       “아. 그렇네. 이상한 놈이 되는구나.”

         

       청이 이해함과 동시에 생각했다.

         

       그러니까 방을 하나밖에 못 구했는데, 제 입으로 같은 차마 방 쓰자고 말은 못 하겠으니 내가 말 꺼내길 기다린 거 아냐.

         

       뭐야, 이 귀찮은 자식은.

         

       하지만 마차 주인도 산이고 방 잡은 사람도 산이고 거기 쓰인 금전도 산이 것이다.

       그러니 뭐 어쩌겠나.

         

       꼽사리 끼는 주제에 뭐 이래라 저래라.

       아니지.

       난 그냥 장원에서 초려랑 준이랑 놀다가 천천히 오려 했는데, 친구 없는 산이 불쌍해서 같이 와 준 것뿐인데.

         

       그러니 청에게는 이번 개봉 여행에 무엇이든 당당히 요구할 권리가 있었다.

       산이 들으면, 낙양 때나 화산 가던 때는 눈치 보며 빌빌거렸냐고 반박을 할 테지만.

         

         

         

       팽대산은 미시가 다 되도록 푹 잤다.

       간밤에 마차를 지키느라 한숨도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으니 당연했다.

       그리고는 조금 놀라고 말았는데, 반대편 침상에서 청이 또 처자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다가 일어나 마차 타고 잤다가 일어나 또 객잔에 올라와서 다시 잔다고?

       놔두면 열두시진 하루 내내 잘 수 있나?

         

       이런 게을러 빠진 청의 무공 경지를 겨우 올해서야 따라잡았으니, 스스로 자괴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후엔 깨워다 점심 먹이고 곧장 간식을 앞에 쌓아두고 나니, 그걸 또 와작와작 마구 털어넣고는 묻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뭐 해? 여기는 뭐가 유명하지? 구경거리 없어?”

         

       “한 번에 하나씩만 물어보겠나? 일단 맹에 가서 맹주님께 인사를, 흠. 얼굴 감추면 안 드려도 되는군. 마음에 들어. 진작 얼굴 가리고 다닐 걸 그랬나.”

         

       “거봐. 가리면 편하지.”

         

       “체면은 좀 상한다만.”

         

       이처럼 얼굴 가리는 삿갓은 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대개는 뱃사공/마부들이 하고 다녔으니 해 뜨면 해 가리고 비 오면 비 막으며 둘러친 면사가 물보라/먼지를 막아주는 기능성 의상이라고 하겠다.

         

       다만, 뱃사공과 마부의 인식이 매우 좋지 않으니 지체 높은 도련님이 하기에는 천한 물건이었다.

         

       “무슨 소리야? 어차피 누가 알아볼 것도 아닌데 체면이 왜 상해.”

         

       “음? 그런가? 일리가 있군.”

         

       “그래서, 이제 뭐 해? 계속 누워만 있었더니 심심해 죽겠네.”

         

       “개봉엔 유명한 불탑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지. 또 중원에서 가장 큰 시장이 있고. 그리고, 물론 관심 없겠지만, 그래도 각각 우왕과 악비, 장량, 포청천을 모셔둔 사당들이 있지.”

         

       제갈이현이 있었다면 그에 얽힌 이야기를 몽땅 쏟아냈겠지만, 팽대산은 딱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하는 편이었다.

         

       탑 두개. 높고 낮은 거.

       사당, 어차피 관심 없지 않느냐.

       그리고 중원 최대 시장.

         

       “음? 포청천?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그러자 팽대산의 눈동자가 떨렸다.

         

       “넷이나 말했는데 아는 이름이 하나뿐이라고? 그것도 어찌 포청천을?”

         

       “사실 몰라. 포청천? 춤추는 사람인가? 어쨌든, 사당이라니 뭐 볼 것도 없지, 뭐. 그리고 불탑이면 절 아냐? 얼마나 높고 크겠어?”

         

       청이 생각하는 불탑은 국보 일 호, 십원 동전에 새겨진 정도였다.

       불탑이 뭐 높아봐야 사람 키 두어 배나-

       ……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와아. 개높네.”

         

       늦은 점심 거하게 먹고, 개보사라는 사찰에 하늘 높이 우뚝 솟은 벽돌탑을 마주한 청이 감탄을 참지 못했다.

       그야 열여덟 장 높이 십삼 층을 벽돌으로 쌓은 탑을 보고 나면 당연히 놀랄 수밖에.

       철탑은 이름이 철탑이다.

       철로 만든 것이 아니라, 벽돌이 칙칙하니 철의 색이라 철탑이라 부른다고.

         

       “높은 거 봤으니 낮은 건 안 봐도 되지? 시장 갈까? 시장하면 길거리 간식이지.”

         

       “그렇게 먹고 또 들어가나?”

         

       “사실 자리 별로 없어. 그러니 걸어가자. 최대한 소화시킨 후에 엄선해서 골라 먹어야지. 점심 먹기 전에 말해줬어야지. 잘도 속였겠다.”

         

       “도대체. 말문을 막는 재주가 있군.”

         

       “뭐든 갈고 닦으면 재주 아니겠어?”

         

       도대체가 한 마디 지는 법이 없으니 그에 응수해봐야 끝없이 이어지는 아무 말의 연속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팽대산이 이쯤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팽대산이 입을 다문다고 해서 청이 따라서 입을 다물지는 않는다.

       출도 이전에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말하기보다는 들어주는 편에 가까운 편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타지에 나가 살면서, 특히 중화의 친구 문화가 어떠하던가.

         

       친구에도 급이 있어 아는 사람에서부터 엄격하게 만들어진 단계를 밟아 오른다.

       심지어 단계가 올라가면 그 사실을 통보하여 알려주기까지 했다.

       ‘오늘부터 당신을 친우로 여기기로 했소.’

       중화에서 흔히 하는 이 말은, 그 전에는 친우로 여기지 않았다는 소리가 아니겠나.

         

       사람이 밥에 한이 맺히면 폭식을 하는 법이고, 그저 살아남느라 외로움에 푹 절어 살다 보면 침묵이 두려워 소리가 비는 때를 참지 못하는 법이었다.

         

       “오. 저건 뭐지? 풀에 밥을 쌌는데?”

         

       “밀반이다. 꿀 탄 밥이지.”

         

       “밥에 왜 꿀을 타. 맛없을 것 같은데.”

         

       “꿀은 비싸서 보통 끓인 과일을 넣지.”

         

       “으으.”

         

       “단 것 좋아하지 않나?”

         

       “밥하고 단 건 별개거든? 둘이 합쳐서는 안 돼. 단 건 단 대로, 밥은 짜고 맵고 달고, 음? 달아도 되나? 단 음식이 뭐가 있지? 갈비찜? 아, 갈비찜 먹고 싶다.”

         

       “뚫린 입이라고 아무 소리나 해대는군.”

         

       “하. 원래 우정이란 대화 속에 꽃피는 게 아닌가? 좋아. 내가 입 딱 다문다. 갑자기 조용해서 깜짝 놀라지나 마라.”

         

       그리고는 정말로 청이 입을 다물었다.

       팽대산이 딱히 먼저 말을 거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둘이 그냥 시장을 거닐었다.

         

       문득, 팽대산이 무척 낯선 기분임을 자각했다.

         

       그저 얼굴 가린 갓 하나 뒤집어 썼을 뿐인데 극성맞게 따라다니는 여인들 없이 참 편안하지 않은가.

       정체 감추고 숨어다니는 것이 어쩐지 그 등쌀에 밀려 도망치는 셈이 아닌가 저어한 것이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 산. 저건 또 뭐지? 좀 징그러운데?”

         

       “닭대가리다.”

         

       “뭐야, 또 닭대가리야? 대체 여긴 무슨 놈의 닭을 대가리까지 처먹어? 아주 남녀소노 가리지도 않고.”

         

       “……? 그럼 버리나?”

         

       닭대가리는 오리목과 함께 중화의 대표적인 간식거리다.

        하지만 닭대가리는 아무래도 무리였기에, 결국 청이 고심하다 고른 것이 잘 구운 오리목이었다.

       청이 오리목 얌얌 뜯어먹느라 또다시 목소리가 비었다.

       오리목 먹는 모습만 봐도 중화인인지 오랑캐인지 알 수 있다 했다,

       오리목을 먹을 때에는 살 뜯고 뼈 끊어 입에 굴리며 아주 조금의 살점조차 없이 깨끗하게 발라먹은 후에 골수까지 쭉쭉 빨아먹고 퉤 밷어 땅에 버리면 끝이었다.

       청도 중원 오 년차로 중원 사람이 다 되었다고 할 만했다.

         

       그렇게 청이 야금야금 오리목 뜯으면서 수운 타고 몰려든 중원의 온갖 것들을 기웃거리며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청의 왼손이 좌측으로 쭉 뻗어나가 한 사내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우드득 뼈가 갈려나가는 촉감이 손바닥으로부터 타고 오르니, 와, 그래, 이거지.

       꽤 오랫동안 피를 안 봤구나.

         

       “아악!”

         

       사내의 비명만 처절하게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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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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