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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0

       은폐 퀘스트를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방 안으로 들어가, 그 퀘스트를 가진 NPC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그럼 대화가 진행되고, 대화가 끝나면 어느새 퀘스트 창에 퀘스트가 들어와 있다.

        

       따로 퀘스트를 받았다는 알림이 뜨지 않아서 종종 받은 줄도 모르고 그냥 스토리를 진행해버리면 그 퀘스트는 그냥 실패한 것이 되어버린다.

        

       뭐, 현실에서는 그런 상태창 같은 것조차 없어서 전부 내가 알아서 기억해야 했지만.

        

       공작가의 내부는 외부에 비해 경계가 덜했다. 아무리 넓은 곳이라도 개인의 집이었다. 내부에 아무나 막 들이는 것에는 거부감이 들겠지.

        

       그게 참 다행이었다. 복도에 두툼한 고급 융단이 깔린 것도 다행이었고.

        

       발소리가 거의 안 들리잖아.

        

       문제는 집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하녀나 하인과 마주치는 일이었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밤이 깊었으니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을 테고.

        

       그러니, 나는 은폐 퀘스트를 주는 로티의 어머니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그만이었는데—

        

       “실비아.”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은 내가 성장했다는 걸까? 바닷가에서 앨리스가 불렀을 때는 한 번 비명을 질렀으니 고작 며칠 만에 크게 성장했다고 할 수 있겠다.

        

       “……황녀님?”

        

       “그러니까 앨리스라고— 하아, 됐다.”

        

       내 뒤에 따라붙은 앨리스를 보고 기겁할 뻔했다.

        

       원작에서 앨리스는 분명 커다란 양손 검을 들고 있는 물리 딜러였는데. 어느새 도적으로 전직하기라도 한 걸까.

        

       “어제 그런 대화를 나누고서,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내가 네 움직임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 이상한 거 아닌가?”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안으로 들어온 뒤에야 말을 거셨습니까?”

        

       “…….”

        

       앨리스는 내 시선을 피하며 말을 아꼈다.

        

       그래, 분명히 궁금증 때문이겠지. 앨리스와 알고 지낸 것이 벌써 몇 년째다. 그것도 단순히 알고 지낸 것이 아니라 같은 곳에서…… 조금 서먹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친자매처럼 지냈다.

        

       “몰래 따라오는 실력이 느신 것 같습니다.”

        

       “아, 그래?”

        

       목소리는 소곤소곤 속삭이고 있었지만, 그 말을 할 때의 앨리스는 토라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네가 나한테 말도 하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니까 이런 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잖아?”

        

       아니, 잠깐만.

        

       그러면 앨리스는 내가 경비원한테 들키는 것을 다섯 번이나 봤다는 소리인가?

        

       …….

        

       쪽팔리네. 앨리스에게 기억이 남지는 않겠지만 나에게는 기억이 남으니까.

        

       나는 그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온 거야?”

        

       복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서로를 바라보면서 대화하는 것은 여러모로 신선한 경험이긴 했지만, 그 감각을 즐기고 있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잠들어버린 뒤에 일부러 깨워서 말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만날 사람이 있습니다.”

        

       “만날 사람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몰래 들어와? 공작한테 말하면 기꺼이 초대해줄 텐데.”

        

       그렇겠지.

        

       하지만 동시에 감시가 붙을 거다. 앨리스라면 몰라도 나는 다른 귀족들에게는 주의할 인물이니까.

        

       막말로 저택에 폭탄을 설치해 터뜨릴 거라고 누가 알겠는가?

        

       “그게 누군데?”

        

       으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생각을 멈췄다.

        

       여기서 괜히 머리를 굴려봐야 앨리스를 떼어놓을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니 그보다, 떼어놓으려면 아예 하루를 통째로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정황상 앨리스는 호텔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것 같으니까.

        

       “로티의 어머님입니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앨리스는 잠깐 멍하니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굳이 이 시간에?”

        

       “굳이 이 시간에.”

        

       앨리스의 말에 대답하니, 앨리스는 요즘 들어 나에게 자주 지어 보이는 그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좋아, 그럼. 네가 그렇다니까 한번 가보지 뭐.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나 떼어놓을 생각 하지 마.”

        

       “이미 여기까지 미행하신 마당에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나의 말에 앨리스는 잠깐 발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미국에서 일어난 인권운동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버스 백인 자리에 앉은 한 여성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이 세계에서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건이 있으려면 아마 앞으로 수십 년은 지나야 할 테니까. 게임의 본편을 훨씬 넘어서 ‘미래’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머나먼 이야기겠지.

        

       하지만 동시에 비슷한 면도 있었다.

        

       식민지 원주민들은 버스를 타지 못한다. 정확히는, 식민지 원주민용 차량이 따로 있었다.

        

       식민지 원주민들은 보통 트럭 뒤에 실려서 운반된다. 선선한 날씨에 정취 있는 시골길에서 트럭 뒤쪽에 타고 가는 것은 꽤 매력적으로 들릴 법하지만,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에서 그러고 있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들은 우리와 다르다.’

        

       제국인들은 그걸 티 내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하녀 방도 마찬가지다. 백인 하녀, 하인용 방과 식민지 원주민용 방은 보통 따로 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저택 안에서 식민지 원주민 출신 메이드는 로티의 어머니 한 사람뿐이었으므로 본의 아니게 방을 혼자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른 식민지 원주민보다 취급이 낫다는 말은 아니다.

        

       당연히 다인실을 쓰는 메이드들에게 질투와 시기를 당한다. 막상 같은 방을 쓰라고 하면 나설 사람도 없으면서 ‘린드버러의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특별 취급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얇은 문 너머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앨리스는 문 앞에 서는 순간부터 표정이 굳어졌다.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꽤 제국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앨리스였지만, 연회에서의 그 사건 때문에 생각이 다소 바뀐 모양이었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양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훌쩍이고 있는 로티의 어머니가 보였다.

        

       방 안에는 로티의 어머니 한 사람뿐이었다.

        

       로티의 어머니는 문 열리는 소리에 몸을 흠칫 떨고 고개를 들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 화, 황녀 전하!?”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리기에, 나는 얼른 집게손가락을 펼쳐 내 입 앞에 가져다 대어 보였다. 황녀의 어명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지, 로티 어머니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잠깐,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내 말에 로티의 어머니는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로 나와 앨리스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방문을 닫았다.

        

       음.

        

       막상 문을 닫은 뒤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조금 막막했다.

        

       원작에서는 ‘몰래’ 들어왔다는 묘사 자체가 없었고, 대화의 주체도 레오였으니까.

        

       레오는 로티의 어머니가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옆에 앉아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도 할 수 있으려나?

        

       “일단, 앉아주시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로티의 어머니는 여전히 겁에 질린 얼굴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음, 이래서는 옆자리에 앉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방 한가운데 있는 낡은 테이블과 의자에 다가가 의자만 끌어당겼다. 그리고 로티의 어머니와 다소 거리를 둔 채 자리에 앉았다.

        

       좋아.

        

       그럼 이야기를…… 이어 나가 보자.

        

       혹시 너무 겁먹어서 대화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다시 시간을 돌리면 되는 일이니까.

        

       *

        

       “역시…….”

        

       꽤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다.

        

       내가 평소처럼 딱딱하게 굴자 로티의 어머니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했다. 하긴, 그것도 당연한 일이다. 황녀 앞에서 어떻게 공작가의 흉을 보겠는가.

        

       그것도 그냥 황녀 하나가 아니라, 차기 황제 자리에 오를 것이 유력한 다른 황녀 하나가 더 있었으니까.

        

       괜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가 로티 어머니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희게 되는 것을 본 나는, 시간을 돌려서 앨리스에게 부탁했다.

        

       원작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지금의 앨리스는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거부감 없는 부드러운 말투를 쓰니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막 로티가 태어난 날의 이야기를 들은 참이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하다가, 옆자리에 앨리스가 앉아 몇 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자 결국 모든 것을 놓아버린 표정으로 로티의 어머니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괴로웠을 거다. 다른 사람한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을 테니까.

        

       직장 동료라고 할만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원주민에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제국인과 붙어먹은 인간 취급받을 뿐이다.

        

       우리 앞에서 결국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도 그 이유가 가장 크리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어떻게든 털어놓고 싶어서.

        

       “…….”

        

       앨리스의 턱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니,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분노한 모양이었다.

        

       “주, 주인님께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랬다간 저는—”

        

       “알았어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나서야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로티의 어머니를 달래는 앨리스였지만, 나는 분명히 그 눈에서 불꽃이 이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이렇게 앨리스와 함께 오게 된 것이 다행인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기후원해주시는 분들도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열심히 쓰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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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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