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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0

        

       사범은 승려의 단호한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승려를 바라보았고,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냐고 당장이라도 성질대로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내뱉는 대신 안으로 꾹 삼켰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크게 쉬었을 뿐이다.

         

       ‘그래…. 정부 차원에서 외국 주술사를 막고 있지….’

         

       그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절대’라고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공기 하나도 철저하게 관리하는 벙커에 쥐와 해충이 들끓고, 밀폐된 배 안에 쥐들이 돌아다니며 사람의 살을 뜯어 먹고, 철옹성 같은 요새가 함락되는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견고해 보인다고 한들 그 안에 틈이 있고,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사범은 주술이니 음양술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은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사람이 하는 일에는 절대라는 것이 없다는 것.

       사람은 어디에선가 반드시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생물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막 하며 살기에는 사회라는 동네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부가 진행하는 일이다. 사건도 없는데 문제가 있다고 하면 반정부 인사, 비국민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고….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한들 뚜껑만 덮으면 되는 것을 굳이 열어서 냄새를 사방에 퍼뜨리게 했다고 욕을 먹겠지.’

         

       일본에는 이런 말이 있다.

         

       냄새나는 것에는 뚜껑을 덮는다(臭い物に蓋をする).

         

       악취가 풍기는 것은 굳이 들추거나 호들갑을 떨면서 치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뚜껑을 덮고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나쁜 일이나 추문이 밖으로 새 나가지 않도록.

       혹여 좋지 않은 일이 퍼져 체면을 훼손하지 않도록.

         

       게다가 메이와쿠(迷惑)라는 것도 있었다.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였다.

       얼핏 들으면 좋아 보이는 것이지만….

         

       이 ‘민폐’라는 것의 한도가 무엇인지, 기준이 무엇인지가 중요했다.

         

       나쁜 일로 물의를 빚는다?

       당연히 민폐였다.

         

       좋지 않은 일에 엮여서 물의를 빚는다?

       이 역시 당연히 민폐였다.

         

       피해자의 입장으로 물의를 빚는다?

       놀랍게도 이것 역시 민폐였다.

         

       비리를 제보해서 사회적으로 이슈를 만드는 것도 민폐였고, 하극상을 각오하고 위를 들이받아서 사방팔방에 잘못된 관행이나 범죄를 알려 물의를 빚는 것도 민폐였으며, 비참한 취급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앞장서서 시위를 벌이는 것도 민폐였다.

         

       민폐라는 것의 기준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서 생긴 폐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당신 때문에 내가 불편했다’라며 민폐라고 주장 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민폐’를 끼치게 된다면 당연하게도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가볍게는 집단 내의 구성원들에게 당할 수도 있고, 크게는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집단 따돌림인 무라하치부(村八分)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니. 차라리 거기까지면 다행이다.

       그냥 다른 지역으로 훌훌 떠나버리면 그만이니까.

         

       ‘정부의 일에는 절대 딴죽을 걸면 안 된다.’

         

       정부는 곧 나라.

       정부는 곧 모든 것.

       일본의 신민들은 위대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 하며, 나라가 베푼 은혜를 언제든 갚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일본에서 말하는 ‘애국자’의 올바른 모습이며, 모범적인 형태였다.

         

       그런데 나라가 베푼 은혜를 갚지는 못할지언정 칼자루를 거꾸로 들고 겨눈다?

         

       나라를 위해 일어나야 할 사람이 나라를 위해 칼을 겨누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반역이다, 반역!

         

       현대에 이르러서는 정부에게 한소리를 하는 것을 반역이라고 치부하지는 않지만….

         

       ‘아무리 못해도 반체제, 반정부 인사, 혹은 비국민 낙인이 찍히게 되겠지….’

         

       그렇게 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끝장이다.

         

       정부는 원한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며, 사사건건 일을 방해하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하리라. 그리고 정부에서 선전하는 것을 그대로 믿는 수많은 사람은 ‘마음 놓고 돌을 던져도 되는 샌드백’을 향해서 마음껏 욕설을 내뱉고 오물을 집어 던지겠지.

         

       그렇기에 사범이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렇군요. 정부가 행하는 일인데 어찌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실언을 한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허허허.”

       “얼마 전에 TV에 외국 주술사가 나오는 영화를 봤었는데, 그게 너무 인상이 깊었던 나머지 그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순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네요.”

         

       오직 이것뿐이었다.

         

       “보아하니 장난이 하도 괴이하고 요악해서 현실성이 사라지는 것이 이해됩니다. 허허허. 저도 이 광경을 보자마자 무슨 영화장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하고 말았지 뭡니까. 괴이하면서도 온갖 것이 가능한 것이 주술이니만큼 그런 착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다행히 승려는 사범의 말을 그대로 넘어가 주었다.

         

       사범의 말을 믿어서일 수도 있고, 믿지는 않았으나 꼬투리를 잡기에는 별것 아니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혹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에 그렇게 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범님.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사범이 가진 주술에 대한 무지를, 자신의 주술적 지식을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TV에서는 주술이 대단하다고만 나오지요. 점성술로 미래를 예지하고, 대주술 의식으로 흉년을 풍년으로 바꾸고, 물길을 바꾸고, 사막을 나무가 자라는 땅으로 바꾸고…. 허허허. 주술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대단한 일로 보일 법도 하지요.”

         

       승려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무인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것 역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막대한 양의 제물, 대주술사나 수많은 주술사, 그리고 의식에 반드시 따라오는 어마어마하기 짝이 없는 대가까지. 그 모든 것을 대가로 지불해야만 그러한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승려는 지장보살이 찍힌 나무를 슬쩍 바라보았다.

         

       “게다가 말입니다. 주술 역시 사람이 다루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당연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위주로 발달한다는 이야기이지요. 굶지 않기 위해서 농작물이 잘 자라게 하고, 병에 걸리는 것이 무서우니 병을 쫓고 몸을 치료하고, 사악한 도적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거나 도망갈 수 있게 하고…. 그런 형식으로 발전이 된다는 말입니다.”

         

       승려는 입꼬리를 스윽 올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당연하게도 일본 천하의 주술과 음양술은 그런 식으로 발달하였지요. 그런데…. 하하하! 고작 곰팡이라니, 저게 무슨 쓸모가 있단 말입니까?”

       “흐음.”

       “무슨 쓸모가 있어서 곰팡이를 조종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주술이 생길 수가 있겠습니까? 뭐 버섯 농장이라도 만들 거라면 조금은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허허허, 아니지. 딱 봐도 사람에게 이로운 곰팡이는 아닌 것 같고…. 저것이 진짜 주술이라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쓰레기 같은 주술임이 분명하군요!”

         

       퍼억.

         

       승려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무토막을 차서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지장보살 얼굴을 맞췄다.

         

       “곰팡이로 병이 생기게 한다? 그럴 거면 그냥 저주하면 됩니다. 곰팡이로 겁을 준다? 고작 저딴 것 가지고 겁을 먹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설령 겁을 먹는다고 한들 그 겁이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그렇군요.”

       “그러니 저것이 주술일 리가 없습니다. 제가 알지도 못할뿐더러 쓸모도 없고, 오직 겁을 주는 것만 가능하니…. 이런. 말하면 말할수록 주술이 아니라는 소승의 생각이 점점 확고해지는 기분이군요.”

         

       승려는 거기까지 말했다가 말을 끊었다.

         

       “흐음. 역시 악령이나 악귀의 짓이 아닐까 생각이 되는군요. 다만 물리적인 흔적이 남아있지 않으니 악령일 가능성이 좀 더 높겠습니다.”

       “악령이요?”

       “사람이 겁을 집어먹게 해서 정신을 쏙 빼놓고 빙의를 하는 것은 악령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지요. 게다가 겁을 주기 위해서는 온갖 끔찍하고 요사스러운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요물들이니. 흐음. 아무래도 보안 장치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군요. 혹은 악령이 매우 은밀하게 움직였거나.”

         

       승려는 결론을 지었다.

         

       이것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니다.

       이런 짓을 벌인 것은 악령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승려의 의견에 다른 전문가들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승려가 내린 결론에 힘을 실어주는 의견을 한두 마디씩 툭툭 던졌다.

         

       그러자 사범 역시 정말 사람이 아니라 악령의 짓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악령이라. 그렇다면 말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악령의 짓이라고 한다면 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당연히 위험하겠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지요. 소승이 법력을 담은 달마도를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으면 어지간한 악령들은 혼비백산해서 그대로 도망을 치게 될 것입니다.”

         

       승려는 선심을 쓰듯 사범에게 족자 몇 개를 건네주었다.

         

       “허허허허. 제가 한껏 정성을 담아 그린 물건입니다. 악령을 물리치는 것에는 이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귀한 것을…. 감사합니다.”

       “이리도 고마워하시니, 그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이것을 그리느라 소진했던 정신력이 회복되는 느낌이 드는군요.”

         

       사범은 생색을 내는 듯한 승려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욕을 했다.

         

       ‘빌어먹을 땡중. 시주하라고 아주 광고하고 있군.’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들을 보냈다.

         

       아예 배웅해주면서 말이다.

         

       그리곤 수련장으로 돌아오자마자 짜증이 뚝뚝 묻어나오는 얼굴로 받은 달마도를 곳곳에 걸어놓았다.

         

       “흠. 잘 그리기는 했어.”

         

       사범은 대가가 정성을 쏟아부어 만든 듯한 달마도의 모습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을 분노하게 만든 장난질이 오늘 밤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했다.

         

         

         

        * * *

         

         

       다음날.

         

       “이런 빌-어-먹-을—–!!!”

         

       무인은 분노가 가득 들어찬 목소리로 다시 한번 노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 사기꾼들 같으니…!”

         

       수련장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나무에 얼굴이 찍혀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를 조롱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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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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