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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0

       “그렇기에…… 예, 그렇기에, 저는 아가씨를 그대로 둘 수가 없었습니다.”

        

       양혜인은 그렇게 말했다.

        

       “아가씨께서 웃는 것을 보고서, 그저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저를, 저 자신을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사라가 이해해줄 만한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

        

       …….

        

       사라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없었다.

        

       하긴, 나라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뿐이다.

        

       양혜인이 무시했던 것은 내가 아니라 사라였고, 이 일은 사라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끝날지, 끝나지 않을지가 정해지는 것이다.

        

       사라는 관심을 끊고, 감정을 정리했을지 모르지만, 아마 양혜인의 죄책감은 계속 남아있겠지.

        

       물론 사라가 양혜인을 굳이 걱정해줄 이유가 없긴 하다. 어떤 잘못을 용서하는 건, 그 상황을 보고 있는 제삼자가 아니라 그 부조리하고 잘못된 일을 당한 본인이 되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휴가도 가지 않으려고 했던 거예요?”

        

       “……아닙니다.”

        

       하긴, 양혜인이 자기 잘못을 깨달은 것은 내가 사라의 몸으로 깨어난 뒤였으니까. 그 이유로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면, 그 이전에 고향에 찾아오지 않았던 것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저는, 여기가 싫었습니다.”

        

       음.

        

       싫은 이유야 많겠지만, 사실 처음부터 도시에서 살았던 나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양혜인의 생각을 정확하게 추측할 수는 없었다. 도시 사람이 시골에서 사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도시 특유의 편리함을 잊지 못해서이고, 반대로 시골을 떠나는 이유는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내 부모님은 오히려 복잡한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다시 살고 싶다고 하셨으니, 더욱 그 이유를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양혜인이 고개를 끄덕인 것 같다.

        

       “……여기 있으면, 부모님 생각이 났으니까요.”

        

       그리고, 이유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단순했다.

        

       “부모님께서,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양혜인은 그렇게 말하고, 잠시 말을 쉬었다.

        

       “산불이었습니다.”

        

       “아…….”

        

       나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어머니는 자고 있던 저를 데리고 나오느라, 그리고 아버지는 할머니를 데리고 나오느라…… 그리고 가난한 집안의 살림을 조금이라도 살려보려고 하시다가.”

        

       “…….”

        

       “그래서 여기가 싫었습니다. 집은 새로 지어졌어도, 장소는 그대로니까요.”

        

       ……음.

        

       확실히, 트라우마가 남을법한 기억이긴 했다.

        

       “…….”

        

       그리고 나는 속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역시 오는 게 아니었는데!

        

       아, 물론 양혜인과 양혜인의 할머니가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도 좋은 사람이었고.

        

       문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대다가 다른 사람의 트라우마를 신나게 건드려버렸다는 것이다.

        

       “…….”

        

       “…….”

        

       어색한 침묵이었다.

        

       ……아, 차라리 물어보지 말걸.

        

       *

        

       덕분에, 나는 밤 내내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이불을 발로 퍽퍽 차대고, 한참을 뒤척이고 나서야 겨우 잠들었는데, 그 잠 속에서 사라가 나에게,

        

       “뭐, 너무 마음에 두지 마. 이런 부끄러운 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힐 테니까.”

        

       하고 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것을 보고 다시 눈을 떴으니까.

        

       …….

        

       음, 왠지 지금이라면 사라를 끄집어낼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꿈도 꾸지 마.

        

       ……아무래도 사라도 더 불편해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 모양이다.

        

       “사라야, 괜찮아……?”

        

       결국, 다음 날 아침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보고, 하늘이가 그렇게 물어볼 정도로 나는 피곤한 상태였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잠자리가 바뀌어서 불편했던 모양이야.”

        

       할머니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셔서 진짜 엄청나게 불편했다. 이렇게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신 분의 집에 온 이유가 순전히 내 객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죄송스러웠다.

        

       “…….”

        

       양혜인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뭐…… 그래도, 아예 잠을 자지 못한 것은 아니라 다시 잠들어서 몇 시간이고 깨어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할머니는 아침상도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주셨다.

        

       온갖 종류의 나물들과 고기반찬들. 솔직히 몇 개 정도는 우리 때문에 하신 것 같다.

        

       “맛있다!”

        

       “정말…….”

        

       소희와 수아는 할머니의 손맛을 보고 그렇게 반응했다.

        

       확실히, 맛있기는 맛있었다.

        

       이쪽으로 오고 나서는 거의 매일같이 스테이크니, 빵이니 하는 것들만 먹었으니까. 한식을 전혀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저택에서 나오는 식사는 대부분 그런 것들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집밥을 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간이 심심하게 된 그 아침상은 꽤 맛있었다.

        

       ……아니, 잠깐만.

        

       그리고, 그 식사를 하던 와중에, 나는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하나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해고했었는데?

        

       외부 회사에 의뢰한 것은 저택의 경비뿐이었다. 당연히 음식을 만들 사용인들도 전혀 없다.

        

       “…….”

        

       나는 나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젓가락을 놀리고 있는 양혜인을 슬쩍 보았다. 양혜인과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설마, 그 이후로 저택의 요리를 양혜인 혼자서 다 감당하고 있는 건가?

        

       만약 만들고자 한다면 절대로 다 만들지 못할 양의 요리는 아니다. 특히 우리는 점심은 학교에서 먹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드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요리는 양혜인이 맡았던 일도 아니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도 양혜인 혼자서 다 처리해야 하고, 설거지도 양혜인 혼자서 다 해야 한다.

        

       주방 청소도 양혜인이 혼자서—

        

       “사라야?”

        

       내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자, 하늘이가 나를 불렀다.

        

       “으,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혹시 고민이라도 있어?”

        

       하늘이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게 속삭이듯 물었다.

        

       고민…… 고민이라면, 바로 조금 전에 생겼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고민이.

        

       ……그래, 양혜인은 절대로 휴가는 가지 않겠다고 했지. 온갖 이유를 대면서 나와 말싸움했지만…… 아마도 진짜 이유는 이것이었을 것이다.

        

       내가 다른 사용인들을 전부 다 잘라버려서.

        

       양혜인마저 빠지면, 정말로 저택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아니, 물론, 양혜인이 없어서 식사를 따로 해야 한다고 해서 우리가 굶지는 않을 것이다. 일회용 식품으로 대충 때워도 되고, 라면을 끓여도 되고, 솔직히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을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하지만 아마도, 양혜인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런 음식들로 식사를 때우는 것이 싫어서.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식사가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서.

        

       어쩌면, 그저 죄책감 때문에. 이렇게라도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

        

       나는 다시 한번 양혜인에게 슬쩍 시선을 옮겼다.

        

       양혜인은 여전히 밥을 깨작이고 있었다.

        

       여전히 눈은 마주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모습이 일부러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소희야, 잠깐만.”

        

       “응?”

        

       낮에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나는 소희를 따로 불렀다. 다른 아이들이 따라 나오려는 것을 만류하고 소희만 데리고 나오자, 소희는 오히려 조금 불안해진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까진 계속 넷이서 붙어 다녔으니까.

        

       “왜, 무슨 일이야?”

        

       “그게…….”

        

       나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혹시, 우리 아침이랑 저녁 준비는, 양혜인 씨가 해?”

        

       “어…….”

        

       내 질문에, 소희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렇긴 해. 나도 조금씩은 돕고 있지만, 대부분은.”

        

       나는 이마를 짚었다.

        

       “아, 그, 미안…….”

        

       소희가 고개를 푹 숙이는 걸 보고,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냐, 그냥 사용인이 부족했을 뿐이니까.”

        

       안 그래도 큰 저택인데, 사용인을 고작 두 명 쓰겠다고 생각한 게 비정상이지.

        

       아니, 그보다는 그냥 생각이 없었다고 보는 쪽이 옳겠다.

        

       “선배가 너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해서…….”

        

       “…….”

        

       나는 이마를 짚은 손을 그대로 내려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사를 가야 하나…….”

        

       하지만 이사를 가도 문제다.

        

       사용인을 쓸 정도의 저택은 생각보다 매물도 없고, 그렇게 쉽게 쉽게 거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 명의로 된 집이 있기야 하겠지만, 설령 그렇게 이사를 한다고 해도 사용인을 굳이 쓸만한 집인지 아닐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소희와 수아, 하늘이는 그냥 놀러 왔다고 쳐도, 양혜인은 ‘놀러 왔다’고 하고 잘 사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양혜인마저 해고해버리면…….

        

       음, 뭐랄까.

        

       뭔가 싫은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아무런 근거는 없지만,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둬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 어제 본 양혜인은 조금은 안정되어 보였지만, 적어도 들은 사실로 판단하기에는 지금 당장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안절부절못하는 소희를 앞에 두고, 나도 한참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참, 지금 이 상황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양혜인의 상태를 안 것은 다행이지만, 동시에 여기에 온 것은 후회하고 있으니…….

        

       차라리 마냥 나쁘기만 한 놈을 상대하는 게 훨씬 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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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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