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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0

     언쟁이 격화된다.

     “국왕전하! 국왕이면 국왕답게, 모범을 보이소서!”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나의 딸이라는 것 말고는 그 무엇 하나 가지지 않은 네가 어딜 감히 내게 그따위 말을 하는 것이냐!”

     “딸이 아버지의 비행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니 나서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모의 흠결을 차마 눈 뜨고는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패륜아가 따로 없구나! 내 너를 살려두는 것이 그저…!”

     이미 부녀지간이라고 할 수 없는, 감정까지 격해질 것 같은 언쟁이 계속된다.

     “제로스 바르셀! 당장 이 반역자를 죽여라!”

     어찌나 감정이 격해졌는지, 세인트 지오는 자신의 딸을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아니, 죽이지는 마라.”

     그러다가 진짜로 죽이기라도 하면 뭔가 크게 잘못될 것 같다는 듯, 세인트 지오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자기 말을 즉각 번복했다.

     “죽이지는 말고, 감히 밖에 얼굴 드러내고 다닐 수 없게 아주 반쯤 죽여놓아라!”

     아버지로서의 최소한의 부정일까.

     아니며 주변에서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걸까.

     최소한 어떠한 이유에서든, 적어도 혈육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딸을 아낀다는 이유로 사형을 철회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다.

     “누구 마음대로 죽이느니 마느니 하는 것입니까?”

     “왕명이다!”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는 게 모두 왕명이라면, 세상에 옥새는 왜 존재하겠습니까?”

     “뭐…?”

     그리고 그건 추한 모습을 보이는 아버지를 향한, 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죽일 거면 ‘정식’으로 왕명을 내리소서. 교지에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을 사형한다’라고 적고, 그 아래에 노스트럼 왕국의 옥새를 찍고, 마법으로 영구 보존하여 이 세상 모든 이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남기소서.”

     “하…! 건방진 것. 그 옥새가 누구의 것인지-”

     “옥새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십니까?”

     “……!”

     세인트 지오는 옷을 주섬거리다가 얼굴이 창백해졌다.

     “옥새라는 것이 단순히 도장의 형태이기 이전에, 군왕이 항상 품고 있어야 하는 목걸이라는 건 안 배우셨습니까?”

     “네, 네가 나를 가르치려고 들어?!”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빈정거리는 나리아를 향해, 세인트 지오가 기어이 손을 들었다.

     “딸이라고 봐줬더니, 이ㅡㅡㅡ!”

     높이 들어 올린 손.

     그 손은 유리로 된 술병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고, 둔탁한 유리병의 끝은 정확히 나리아를 향하고 있었다.

     “낳아줬더니, 감히 아버지에게ㅡ!!”

     나리아는 그 손을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핏발 선 눈으로 당당히 고개를 오히려 더 치켜들었다.

     퍼ㅡ억.

     둔탁한 소리.

     사람의 뺨을 손으로 때린 것도 아닌, 주먹으로 때린 것 같은 둔탁한 소리.

     “…….”

     그러나 그걸 맞은 사람은 나리아가 아니었다.

     나리아는 맞을 각오로 서 있었으나, 그녀는 자신의 앞에서 벌어진 일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쨍그랑.

     술병이 깨졌다.

     세인트 지오가 놓쳤거나, 혹은 누군가에 의해 술병이 땅에 떨어졌거나.

     평소 감정 변화가 거의 없는 나리아가 그렇게 놀랄 정도로, 지금 상황은 경악 그 자체.

     “딸이라고 봐줘?”

     “크, 크윽…!!”

     하늘 높이 치켜든 세인트 지오의 손목을 누군가가 붙잡고 있었다.

     왕의 육신을 함부로 만진다?

     사형이다.

     그건 진짜로 반역이며, 옥체를 함부로 건드렸다는 것만으로도 극형에 처할 수 있다.

     “내가 묻고 싶군.”

     그런데, 누군가가 세인트 지오의 손목을 붙잡았다.

     “왕이라고 봐줬더니, 이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딸을 죽이려고 하느냐?”

     “너, 너…!”

     “왜, 쓰레기.”

     왕을 향해,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격한 발언.

     “반역자 지브롤터라고 했으니, 나도 이제는 반역자라고 할 터냐.”

     나리아의 앞을 지키듯 서며, 세인트 지오의 손목을 으스러뜨릴 듯 붙잡고 있는 적발의 사내.

     “크, 크림슨?! 네, 네가 왜!!”

     “지브롤터 변경백이다.”

     지브롤터 백작.

     그는 마치 술을 진탕 마셔 난동을 부리고 있는 취객을 제압하듯, 귀찮음과 짜증이 역력한 얼굴로 세인트 지오를 막아섰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냔 말이다!!”

     “왕국법에.”

     “뭐?”

     “왕국법에, 지브롤터 변경백이 백작령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크림슨 지브롤터는 세인트 지오의 손을 뿌리치듯 밀었다.

     “큭…?!”

     악력인지, 기백인지.

     “반역이라고 생각한다면, 반역자로 선언하라.”

     세인트 지오는 저릿한 손을 붙잡으며 뒤로 급히 물러났고, 크림슨 변경백은 허리에 찬 검을 뽑아들어 수직으로 바닥에 꽂았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라의 왕 따위, 섬길 생각이 없으니.”

     * * *

     “아아…!”

     “정신 차리십시오, 카르멘 어머님.”

     카르멘 왕비가 창가에 달라붙어 기절하려고 하는 걸 뒤에서 부축했다.

     “저 녀석….”

     그리고 그 뒤에 선 윈체스터 대공은 복잡한 얼굴로 광장에 나타난 크림슨 지브롤터, 나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렇게 나설 녀석이 아닌데.”

     “7년이면 사람 한 명 바뀌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할아버지.”

     “…….”

     “제가 불렀습니다. 원래는 그냥 아버지께 수도 관광을 시켜드릴까하여 부른 겁니다만, 설마 직접 나서실 줄은.”

     “부, 불렀다고? 어떻게? 왜?”

     “그건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어떻게 왔느냐, 왜 왔느냐.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

     “지금 이 광장에 크림슨 지브롤터가 있고, 그가 세인트 지오를 막아섰습니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을 지키기 위해.”

     “…….”

     “저건 제가 시켰다거나 그런 게 아닙니다. 애초에 제가 아버지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할 수는 없죠. 그러나,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그에 대한 대응책은 예전부터 자주 논의를 나눴습니다.”

     예상은 했다.

     “그날. 나리아 공주가 목에 붕대를 감고 찾아온 날.”

     아주 오래전부터, 정확히는 나리아가 세인트 지오에게 목이 반쯤 베였다가 지브롤터로 도망친 날로부터.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대하는 방법으로 무엇이 좋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아버지는 말했다.

     본인이 다른 건 몰라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라는 인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아버지는 항상 같은 결론이었습니다. 사람을 무는 미친개는 패 죽여야 한다고.”

     “어….”

     “대화가 통하지 않는 짐승은 그게 비룡이든 드래곤이든, 죽여서 화근을 잘라내거나 해야 한다고.”

     “자, 잠깐만.”

     아버지의 등장에 넋이 나가 있던 카르멘 왕비가 이전보다 더 창백해진 얼굴로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서, 설마 죽이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죽이지는 않습니다.”

     7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도 많이 변했다.

     “지금까지는 직접 얼굴을 보면 진짜 죽여버리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하셨지만, 이제는 그래도 얼굴 보고 쌍욕을 참을 수 있을 정도는 자제할 수 있게 되셨죠.”

     “어, 으음….”

     “하지만 저 타이밍에 나서실 줄은 몰랐습니다.”

     진심으로.

     

     “저는 혹시나 저 때문에 누아르가 핍박을 받거나 하면 나서실 줄 알았는데, 저렇게 ‘충신’의 모습을 보이실 줄이야.”

     “충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충신은 될 수 없죠. 그가 이미 저지른 짓이 있는데.”

     아무리 충신이라고 해도, 아내를 건드린 자에게 충성할 수는 없다.

     “대신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라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이건 사실상 아버지의 선전포고지요.”

     나는 너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

     비록 노스트럼의 저주와 마법으로 인해 모두가 피해를 보는 걸 원하지는 않지만, 노스트럼을 지키는 나의 검은 세인트 지오를 위한 것이 아니다.

     “17살 공주의 앞에 서서 기사로 나섰습니다. 아마도…딸이 여럿 늘어나면서, 딸 가진 아버지로서 치켜볼 수 없어서 나선 게 아닐까싶군요.”

     “딸….”

     카르멘 왕비가 창틀에 올린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크림슨 경은…나리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시 들은 적 있니?”

     “안타까워했습니다. 나리아 공주가 지브롤터에 있을 때, 좀 더 잘 대해주지 못해서 아쉬워하기도 했었죠.”

     “…….”

     “빈말이 아니라, 진짜 아버지가 하신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겁니다. 제가 이걸 거짓말을 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크림슨 지브롤터는 변했다.

     “나중에 사진 보시면 알겠지만, 이제는 제 여동생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본인의 훈련 시간을 줄이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뭣?”

     “윈체스터 대공. 20살 그때의 방탕하고 자기 여자밖에 모르던 그 핏덩이는 없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우습기도 하지만, 크림슨 변경백은 ‘아버지’가 되기로 했습니다.”

     “하….”

     나야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며 사람이 변화한 걸 직접 느껴왔지만, 사실상 수년 만에 아버지를 처음 본 이들은 아버지의 변화를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샤를로트를 두고, 왕도에 왔다고…?”

     

     카르멘 왕비가 도저히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는 이유.

     “혹시 근처에 샤를로트가 있기라도 한 거 아니야?”

     “어머니는 지금 백작령에 있습니다. 마스터급, 멘테 리프트 경의 호위 하에 동생들과 함께 캐롤라인 저택의 가장 안전한 곳에 있죠.”

     “어디 마도자동선을 이끌고 온 것도 아니고?”

     “카르멘 왕비께서 직접 엄선한 마법사들과 자재로 만들어진 세이프룸이잖습니까? 멘테 경도 있고.”

     샤를로트 백작 부인은 왕도에 없다.

     크림슨 지브롤터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크림슨 지브롤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7년 전이었다면 분명 지브롤터에 크나큰 위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7년. 왕국과 제국이 변했는데, 더 이상 지브롤터가 백작령에 묶여있을 이유가 없지요.”

     후방은 안전하다.

     적어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 * *

     “어째서,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것이냐! 셜롯은, 셜롯은?!”

     “셜롯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이 여기에 있는데, 내가 무슨 걱정을 하겠나.”

     크림슨 지브롤터는 오러가 깃든 검을 들고 앞으로 겨눴다.

     “백작!!”

     “무, 무슨 짓을!!”

     “제국은 평화의 손길을 내밀었으나, 국왕이라는 자는 남의 아내에게 염문의 손길을 은밀하게 내밀었지.”

     “……!!”

     크림슨 지브롤터는 손목에 채워진 금색의 팔찌를 눈으로 흘긴 뒤, 세인트 지오의 목을 향해 정확히 오러의 끝을 겨눴다.

     

     “그때는 아내의 얼굴을 봐서 넘어갔지만, 지금은 한 개인이기 이전에 노스트럼의 귀족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군.”

     “이, 너, 이 자식…!”

     “딸에게 술병을 휘두르려는 너 같은 인간도 나와 같은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게 믿기지 않는군. 자식을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냐?”

     “미, 미친…! 가, 감히 왕도에서, 국왕에게…!”

     “미쳤냐고? 그래, 어디 한 번 누가 미쳤는지 한 번 제대로 해볼까?”

     크림슨 지브롤터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디 한 번 반역자라고 해봐라. 그레이 지브롤터를 시작으로, 지브롤터 가문의 모든 이들을 반역자라고 한번 선언해 봐라.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철컥.

     “진짜 반역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 * *

     “저질렀군요. 반역. 2년 하고도 3개월 이르지만.”

     “…….”

     “예. 제가 부탁드렸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으면, 선언하시라고.”

     뒷감당?

     그건 무능왕의 몫이다.

     “그 누구도 왕의 잘못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 면전에서 대놓고 반역을 운운하는 수호자. 이야말로 충신이 아니겠습니까.”

     충성병자들이 충성병자들인 이유는 그들이 아버지처럼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진짜로 제국으로 갈 의향도 있으니까요.”

     

     지브롤터는 진짜 반역이 무엇인지 보여줄 생각을 7년 전부터 하고 있었으니까.

     “반역이 곧 충성이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반역을 저지를 겁니다. 심지어, 매국이라도.”

     제국은 우리 편이고.

     “노스트럼은 지브롤터를 잃겠지만.”

     나는 황제만 죽이면 된다.

     “제국이랑 전쟁할 것도 아닌데, 변경백 가문 하나쯤 사라진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6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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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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