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0

   투웅!

   

   내가 열었던 보스룸이 저 알아서 닫히자 붉은 색 벽 앞에 서 있던 인형이 몸을 돌렸다.

   

   그녀는 자신이 뒤집어쓰고 있던 회색의 로브를 두 손으로 걷어 올리더니 찌를 듯 드센 목소리를 냈다.

   

   “나를 방해하러 왔느냐?”

   

   이글거리는 주홍색의 눈동자. 떡이 진 선홍빛의 장발. 검댕이 잔뜩 묻어 본래의 색을 찾아보기 힘든 피부.

   

   엉망인 그녀의 겉모습은 노숙자 같은 인상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존재는 거대한 위압감을 선사했다.

   

   사나운 짐승이 얼굴 앞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처럼 공포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머리에 새겨지다가 이내 흩어졌다.

   

   공포 극복이 발동한 것이다.

   

   “주제를 모르는 놈들 같으니.”

   

   그제야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내가 처음으로 한 생각은 하나였다.

   

   대체 왜 저 녀석이 멀쩡히 살아있는 거야?!

   

   백골이 되어 악신의 저주에 붙들린 채 움직이고 있어야 할 녀석이 대체 왜 자신의 살갗과 온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거냐고!

   

   도대체 무슨 변수가 생겨난 거야?

   

   쪼잔 악신의 억까? 아냐. 걔가 죽은 자를 언데드로 만들 순 있지만 죽은 사람을 산 사람으로 만들진 못해.

   

   나로 인한 변화? 이것도 아냐. 내가 개입하기도 전에 저 사람은 죽어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왜…

   

   아.

   

   베네딕.

   

   베네딕 알른.

   

   본래 소울 아카데미의 세계관에 있어서는 안 됐을 사람.

   

   루시 알른이라는 존재가 성립하기 위해 다른 이의 것이여야 했을 공적을 거머쥔 자.

   

   그 이름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공포와 경외를 느끼는 압도적인 실력의 기사.

   

   ‘알새틴…’

   “정보팔이. 네 스승이 바보 아버님과 일한 적 있어?”

   

   “…네?”

   

   ‘대답해요!’

   “대답해!”

   

   “예. 함께 S급 던전을…”

   

   알새틴의 대답을 들은 나는 이 상황의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깨달았다.

   

   본래 카리아는 S급 던전의 보스를 공략하다가 치명상을 입어야 한다.

   

   불의 악신을 따르는 하수인 중 하나를 쓰러트리는 대신 그 대가로 시한부의 생을 얻게 된단 말이다!

   

   허나 이 세계관에서는 그녀가 치명상을 입을 이유가 없었다.

   

   그 옆에 베네딕이 있었으니까!

   

   본래는 존재하지 않는 왕국의 영웅이 그녀의 옆을 지켰으니까!

   

   그래서 보스를 죽이며 얻은 저주에 지배당해 이 곳에 오게 된 지금도 멀쩡히 살아있는 것이다.

   

   하.

   

   하하하.

   

   젠장. 어이가 없네.

   

   내가 그걸 어떻게 예상하냐?

   

   게임에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이벤트를 어떻게 예상하냐고!

   

   이걸 알고 있었다면 언질 정도는 해줘야 했을 거 아냐 이 빌어먹을 허접 무능 주신!

   

   <여아야. 당혹스러운 건 알겠다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속으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다가 할배의 말에 이성을 되찾았다. 할배가 옳았다.

   

   지금 저 앞에는 증오가 어린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괴물이 있었으니까.

   

   “허어. 단순한 방해꾼이 아니었구나. 증오스러운 아르마디의 사랑을 받는 자라니.”

   

   상황을 점검한다.

   

   대 언데드전을 생각하고서 준비해두었던 수많은 물건들은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카리아를 약화시킨 후 사냥하기 위한 여러 술책들이 무용해졌단 거다.

   

   그나마 악신에 대항하기 위한 물건들이나 불계열 마법에 대한 대비를 위해 준비한 물건은 그대로 쓸 수 있겠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나를 막으라고 아르마디가 시키더냐?”

   

   생각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카리아는, 저주에 당해 불의 악신을 따르는 하수인이 되어버린 그녀는 한 발자국씩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본 나는 방패를 다잡고 심호흡을 했다.

   

   어차피 보스룸의 문은 닫혔다.

   

   뒤로 돌아갈 수 없다면 앞으로 향할 수밖에.

   

   게임 속에서는 맨 손으로도 쓰러트렸던 상대야.

   

   하려면 얼마든 할 수 있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수단도 있으니까.

   

   일단은 해보자.

   

   “무정하고 멍청한 신이구나. 지금 그대의 수준으로 나를 쓰러트릴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그건 예전 이야기지 퇴물 아줌마♡”

   “…무어라?”

   “폐경기에 들어선 퇴물 아줌마가 잘난 체 해봐야 한심해 보일 뿐이거든?♡”

   “…”

   “주름은 자글자글♡ 눈에는 독기♡ 머리는 듬성듬성♡ 푸하핫♡ 진짜 추하다 아줌마♡ 이 정도면 오크도 헛구역질을 하면서 도망치겠는데?♡”

   

   분노와 증오가 뒤섞인 주홍색 눈을 마주하며 애써 태연한 체를 한다.

   

   진짜 장난이 아니네.

   

   어깨 위에 짐덩이가 올려져 있는 느낌이야.

   

   이게 살기라는 건가.

   

   “시건방지구나. 신의 사랑을 받는다하여 네 년이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느냐?”

   “재잘재잘 시끄럽네♡ 역시 나이가 들면 입술이 가벼워지는 구나 아줌마?♡”

   “이 년이.”

   “아줌마라고 부르는 건 역시 좀 그런가? 나이대가 있으니까 말이야. 미안해?”

   “이제와 말을 거두어봐야 아무런…”

   “할망구♡ 그만큼 나이를 먹었으면 주책 좀 차리지 그래?♡ 십대보다 철이 없다니 개한심해♡ 그러니까 악신같은 사이비를 믿는 거야 할망구♡”

   

   카리아는 입술을 부들거리다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몸에 고양감이 차오르는 걸 보면 도발은 분명 제대로 먹혀 들어갔네.

   

   이걸로 첫 단추는 끼워진 셈인가.

   

   ‘준비해요.’

   “준비해. 허접들.”

   

   “네.”

   “…예.”

   

   ‘그리고 알새틴…’

   “정보팔이. 지금 저 할망구는 네 스승이 아냐. 악신에게 잡아먹힌 멍청이지. 망설이지 마.”

   

   이렇게 말을 한다 해서 마음을 다잡을 수는 없겠지.

   

   언데드인 상태로 등장했다면 네 스승을 편하게 만들어 줘야할 거 아냐! 라고 외칠 수 있었겠지만 지금 카리아는 살아 있으니까.

   

   여태까지 찾아헤매던 사람의 얼굴이 눈 앞에 있는데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어.

   

   그게 가능하면 정신병자지.

   

   괜찮아. 문제 없어. 그거까지 고려하고 움직이면 돼.

   

   단검을 든 카리아가 바닥에서 발을 떼자 그 신형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무슨?! 순간이동을 한 것만 같은 압도적인 속도에 당황한 나였지만 칼은 아니었다.

   

   그는 무엇을 본 건지 아무것도 없어야 할 장소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카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해를.”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의 검이 서로를 향해 내질러진다.

   

   지금의 나로써는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의 전투였지만 그 유불리는 두 사람의 표정만 보더라도 분명해 보였다.

   

   칼의 표정은 필사적이고 카리아의 표정에는 여유가 남아 있다.

   

   하. 아무리 칼이라도 카리아를 1:1로 이길 수는 없으리라 여겼다.

   

   그렇지만 저 정도로 찍혀 눌릴 거라 생각지는 못했다.

   

   칼이 지닌 힘을 생각해보면 원래는 적당히 불리한 정도로 끝나야 할텐데!

   

   젠장. 안 그래도 빡센 보스인데 게임보다 더 강해진 거야?!

   

   <여아야! 움직여야 한다!>

   ‘저도 알아요!’

   

   베네딕! 고맙다는 말 취소! 나중에 돌아가면 파파고 나발이고 아빠 싫어를 외쳐 줄 테다!

   

   “할망구♡ 나이도 많으면서 어린 남자한테 집착하는 거야?♡ 푸하하하!♡ 그런다고 너한테 관심을 가져줄 리가 없잖아?♡ 추해라♡”

   “그리 빨리 죽고 싶더냐?!”

   

   저런 강자에게도 메스가키 스킬의 도발은 공평하게 먹혀들었다.

   

   카리아가 이성을 잃어버린 채 나를 노려 본 그 순간.

   

   칼은 그 자그마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 곳으로 검이 날아들고 카리아가 뒤늦게 반응한다.

   

   제대로 먹혔어. 그 광경을 보며 확신을 내린 나였지만 아니었다.

   

   또 다시 카리아의 신형이 사라진 것이다.

   

   칼이 내리친 검이 허공을 가름과 동시에 철벽이 위협을 고한다.

   

   이성보다 본능의 움직임이 빨랐다.

   

   무작정 철벽을 믿고 방패를 든 순간 방패를 타고서 충격이 전해졌다.

   

   빌…어먹을! 더럽게 강하네!

   

   그 충격을 간신히 버텨냈음에도 불구하고 팔이 떨렸다.

   

   황급히 알새틴이 카리아를 향해 활을 쏘았기에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난 분명 위험에 처했으리라.

   

   젠장. 이래서는 전투를 지속할 수 없어. 일방적으로 깎여나갈 뿐이야.

   

   내가 계획한 대 카리아 전의 대전제는 칼의 저력과 내 도발을 합치는 것으로 전선을 유지할 수 있을거란 가정이다.

   

   카리아가 언데드 상태여서 내가 준비한 수단에 당해줬다면 칼 혼자서도 저를 상대할 수 있었을 테고.

   

   설령 준비한 수단이 먹히지 않았어도 카리아가 게임 그대로의 수준이었다면 칼의 실력과 내 도발 거기에 알새틴의 지원을 합쳐서 카리아를 상대할 수 있었을 거다.

   

   허나 지금은 아니다. 죽음을 겪지 않은 카리아의 실력은 내가 예상한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또 다시 철벽이 위험을 고했다.

   

   그 쪽으로 방패를 든 순간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칼이 카리아의 검을 받아냈다.

   

   “흐응.”

   

   공격이 실패했다 판단한 카리아는 또 다시 신형을 감춰 버렸다.

   

   “아가씨. 이대로 가면 패배할 겁니다.”

   <이 자의 말이 옳다. 지금은 상대가 놀아주고 있어서 간신히 대치가 유지될 뿐. 상대가 전력을 다한다면 이 대치는 박살나버릴 것이다.>

   

   변수.

   

   내가 예상치 못한 변수.

   

   그것이 모든 계획을 망쳐버렸다.

   

   억까를 당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내가 여태까지 무언가를 하려 할 때마다 예상대로 풀린 경우가 없다시피 했으니까.

   

   쪼잔 주신이건, 게오르크 가문이건 뭐건 간에 내게 위협을 가하리라 생각했지.

   

   그렇지만 내가 빙의하기도 이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억까를 당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

   

   이번에는 위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물건이 구비되어 있으니 상관없지만 다음 번에는 이런 것도 하나하나 확인을 해야겠네.

   

   돌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음을 깨달은 나는 인벤토리에 있는 한 물건들 터치했다.

   

   던전탈출권.

   

   과거 아드리를 구원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나의 등을 떠밀기 위해 허접 주신이 지급했던 아이템.

   

   파티원 전원을 입구로 데려다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물건.

   

   내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던전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었던 원동력.

   

   [던전탈출권을 사용합니다.]

   

   일단 던전 바깥으로 빠져 나가서 새롭게 전략을 짜자.

   

   지금으로써는 저 녀석을 쓰러트리는 건 무리야.

   

   하아. 근데 지금 우리 전력으로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서 카리아를 쓰러트리는 게 가능한가? 빡셀 것 같은데.

   

   던전 탈출권을 사용하고서 이펙트가 떠오르길 기다리던 나였지만 기이하게도 던전탈출권은 아무런 현상도 일으키지 않았다.

   

   […캐스팅 완료까지 필요한 시간 / 03 : 00]

   

   뭐야? 이거 게임이랑 다르게 캐스팅 시간이 필요한 거야?!

   

   그 때까지 버텨야 해?!

   

   “좋아. 그럼 이것도 버틸 수 있는 지 보자고. 젊으니까 할 수 있겠지? 꼬맹아?”

   

   제단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카리아가 단검을 위로 치켜든다.

   

   그러자 그녀의 등 뒤에서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젠장. 악신의 마법도 강화된 거야?! 이건 너무하잖아! 밸붕이라고!

   

   알새틴이 마법이 새겨진 화살로 저를 방해한다 한들 완벽히 상쇄시키지 못할 걸 확신한 나는 방패에 신성을 둘렀다.

   

   하! 그래 허접 무능 주신 네가 일을 제대로 한 적이 어디 있냐!

   

   버텨 줄게!

   

   그건 내가 제일 잘 하는 일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기!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