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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0

   비앙카가 폭풍을 휩쓸고 훈련한 후.

   크라슈는 자신의 방을 찾았다.

     

   “알리샤, 그만 알리오드를 보러 가.”

   “아.”

     

   크라슈의 전속 시녀인 알리샤는 그 말을 듣자마자 멈칫하였다.

     

   청송관의 집사인 알리오드.

   그는 알리샤의 아버지다.

     

   크라슈가 청송관을 찾고 나서 두 사람은 눈인사했었다.

   그러나 덤덤한 알리오드에 비해 알리샤는 알리오드를 계속 눈으로 쫓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대화하고 싶은 거겠지.

     

   “말씀은 감사하오나 저는 크라슈 님을 보필해야 하는 상황이옵니다. 그것은 청송관이라도 변하지 않사옵니다.”

     

   알리샤가 정중하게 거절하자 크라슈는 가볍게 웃었다.

     

   “그럼 명령이야. 나도 개인적으로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좀 필요하거든.”

   “……명령 말씀이시옵니까?”

   

   크라슈가 명령까지 언급하자 알리샤는 우물쭈물했다.

   하지만 크라슈가 명령을 번복할 생각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이내 결국 받아들였다.

     

   “감사하옵니다. 금방 다녀오겠사옵니다.”

     

   말을 마친 알리샤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조신하게 나갔다.

   그러나 기쁨을 숨길 수는 없었는지 복도 밖을 달리는 그녀의 발소리는 꽤나 빨랐다.

     

   아직 어린 그녀이니 아버지랑 이야기하고픈 게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혼자의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고.’

     

   크라슈가 방문을 잠그자 따라 들어온 크림슨가든의 까마귀를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까닥이고는 문고리에 살포시 앉았다.

   마법을 이용해 문고리를 봉쇄시켜 준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크라슈는 이내 주머니에서 시체 쥐를 꺼내 들었다.

     

   “에벨아스크.”

     

   부름을 하자마자 껑충 뛴 시체 쥐가 바닥에 앉았다.

   그 순간 시체 쥐의 발아래에서 그림자가 꾸물거리더니 위로 확 치솟아 올랐다.

     

   순식간에 치솟아 오른 그림자 쪽에서 나타난 것은 검은색 긴 머리카락에 상체가 무척이나 눈에 띄는 한 여성이었다.

     

   늘 그렇듯 눈가에 있는 다크 써클은 그녀의 방구석 폐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비춰 주었다.

     

   에벨아스크 베나포치.

   세계 침식자이자 세계 유일한 네크로맨서였다.

     

   “웬일로 옷은 정상적으로 입고 있냐.”

     

   평소 커다란 티셔츠 한 장 입고 있던 것과 달리 그녀는 오늘 여성용 검은색 드레스 복장이었다.

     

   상체가 잘 부각 되는 상의와 허리를 조이는 치마.

   거기에 팔목까지 오는 기다란 검은색 장갑은 왜인지 모를 색기를 드러냈다.

     

   “집에서 입는 복장이랑 바깥 복장은 다른 게 상식 아니야?”

     

   그러자 에벨아스크는 오늘따라 살짝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에벨아스크의 말마따나 그건 무척이나 상식적인 일이지만.

   크라슈는 에벨아스크가 바깥에 나갈 때도 그다지 다른 복장이 아님을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는 건가.

     

   크라슈는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광도제는.”

   “지금 꺼낼게.”

     

   그래도 말은 잘 듣는 에벨아스크는 바닥을 구두 굽으로 툭툭 두드렸다.

   그 순간 에벨아스크 때와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그림자가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푸하악!”

     

   곧이어 솟아 나온 것은 핏빛 색 머리카락의 한 남성이었다.

   얼마 전에 본 얼굴이기에 그를 잘 아는 크라슈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광도제.”

   “쿨럭, 큭, 너!”

     

   광도제는 크라슈를 보자마자 소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가 소리치기도 전에 그의 목소리가 턱 하니 막혔다.

     

   왜냐하면 에벨아스크가 그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크림슨가든을 통해 부활하긴 했으나 그의 심장은 에벨아스크의 손에 쥐어져 있다.

     

   그렇기에 그는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이 반항적인 면모를 취할 수 없었다.

     

   크라슈는 광도제의 앞에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고는 이를 까득 깨물고 있는 광도제에게 자세를 낮춰 천천히 웃었다.

     

   “생존 욕구가 투철한 너니까 알 거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짓을 하든 네 목숨은 파리 목숨 상태라는 것 정도는.”

     

   에벨아스크 때문이지 말 한마디 할 수 없게 된 광도제는 이만 바득바득 갈았다.

     

   “돌발 행동은 애초에 다 막혀 있으니 그냥 포기해라. 마음먹으면 저 녀석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정도니까.”

     

   그의 얼굴은 치욕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 파악은 빠른 녀석이다.

     

   “뭘 물으려는 거냐.”

     

   생존 욕구에 투철한 만큼 현실을 잘 본다.

   그러니 광도제는 크라슈에게 더 따지는 대신 현실을 순응부터 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놈이라 되살린 보람이 있다.

   애초에 다른 익시온 단원들과 달리 익시온에 정이 그리 큰 놈은 아니니 말이다.

     

   “익시온의 현재 단원이 누가 소속되어 있는지.”

     

   녀석들의 목적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크라슈에게 필요한 정보는 현재 어떤 세계 침식자가 소속되어 있는지다.

     

   그리고.

     

   “네가 독혈전을 훔친 이유와 그것을 훔치고, 거래한 대상이 누구인지까지. 전부 말해.”

     

   어쩌면 제국의 황가와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를 이면.

   그 이면을 들어야만 했다.

     

     

   * * *

     

     

   시체화가 된 만큼 광도제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의 입이 열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크라슈는 꼬박꼬박 이야기를 다 들었다.

     

   그리고 덕분에 대충 현재 익시온에 포함된 세계 침식자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위험한 놈들이 더 빨리 합류되어 있어.’

     

   파악한 세계 침식자의 수는 총 14명.

   그중 크라슈가 정말로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녀석들은 흑마녀를 포함한 4명이다.

     

   ‘여기에서 종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불어나 있겠지.’

     

   팔짱을 낀 크라슈가 자기 팔을 검지로 천천히 두드렸다.

   이건 자신과 시그린 같은 녀석들이 벌인 나비 효과일까.

     

   아니면 자신도 알 수 없는 이면이 움직여 발생한 일일까.

     

   그건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점은 있었다.

     

   “지옥 선녀?”

     

   왜냐하면 전혀 모르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크라슈라고 해서 모든 세계 침식자를 알고 있는 건 아니다.

     

   그가 파악하고 있는 건 익시온의 단원과 세계 침식자와의 전쟁에서 맞부딪친 녀석들까지니까.

   숨어서 지내던 녀석들까지 전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옥 선녀라는 이명을 쓰는 세계 침식자는 듣도 보도 못했다.

     

   “그놈이야.”

     

   그러자 광도제의 입에서 다음 말이 이어졌다.

     

   “내게 독혈전을 훔치라고 부탁한 게 그 녀석이었어.”

     

   흑마녀가 아닌 지옥 선녀라는 다른 이가 광도제에게 독혈전을 훔칠 것을 부탁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크라슈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그럼 넌 독혈전을 훔치고 난 뒤, 그걸로 무슨 짓을 한지는 모른다 이 소리야?”

   “알 필요가 있나? 나야 거래했으니까 이행해준 것뿐이다.”

     

   광도제는 콧방귀를 내쉬며 전혀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크라슈가 에벨아스크 쪽을 보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광도제가 하는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전부 진실이었다.

     

   “그 대가로 받은 게 뭐였는데.”

   “혈라사도.”

     

   하지만 다음 말은 크라슈가 의아함을 지니게 했다.

   10대 천검 중 하나이자 광도제가 애용하던 무기인 혈라사도.

     

   그것을 입수한 것이 비교적 최근이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너 원래 혈라사도를 지니고 있던 게 아니었어?”

   “원래 쓰던 도는 내 세계에서부터 지녔던 거다. 하지만 전투 중에 낡아 날이 무뎌지기 시작했고, 그때 거래를 제안받은 거지.”

     

   그렇다면 지옥 선녀라는 이는 원래 세계에도 있었단 소리인가.

   크라슈는 잠시 머리가 아파짐을 느꼈다.

     

   처음부터 회귀할 작정이었다면 모를까.

   부족한 정보가 슬슬 조금씩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크림슨가든, 지옥 선녀라는 녀석 알고 있어?”

   “대충은 안다.”

     

   크라슈의 질문에 문고리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대답을 해왔다.

     

   “내 기준으로는 이명이 드러난 지 얼마 안 된 세계 침식자였지. 나도 익시온 단원일 때 한 번 정도 본 적은 있었다.”

   “어땠는데.”

   “기묘한 느낌이었지. 흑마녀보다도 꺼림칙한 느낌이 나는 이였다. 다루는 화염 계열 마법도 상당했고, 무엇보다 틈을 주지 않았지.”

     

   다음 말을 들은 순간 크라슈는 눈을 살짝 찡그렸다.

     

   “화염 마법?”

   “그래, 지옥 선녀가 주로 다루는 마법이 화염 마법이었다. 선명한 푸른색을 띠더군.”

     

   푸른색의 불꽃.

     

   ‘내가 아는 녀석이랑은 다른 건가.’

     

   크라슈가 떠오른 인물은 다름 아닌 붉은 마녀 아벨라였다.

   그녀는 붉은 마녀라는 말이 붙을 만큼 염제 아슬란과는 다른 화염 마법의 대가였으니까.

     

   지금까지 종적을 감추고 있는 것도 그렇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크라슈는 곧 고개를 저어야 했다.

     

   ‘시기적으로 맞물릴 수가 없어.’

     

   지옥 선녀가 광도제와 거래한 시기는 무려 크라슈가 4살 때 일이다.

     

   크라슈가 회귀를 한 것은 13살.

   그리고 아벨라 또한 크라슈보다 한 살 어린 나이인 12살로 회귀를 했을 것이다.

     

   즉, 지옥 선녀는 아벨라가 3살 기준일 때 활동했으므로 시기가 성립되지 않았다.

     

   “광도제, 익시온은 황가와 연루되어 있나?”

     

   크라슈가 다음 질문을 하자 광도제는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그럴걸, 아까 말했던 지옥 선녀가 황가 쪽의 내통자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으니까.”

     

   역시, 독혈전은 황가가 연루된 사건임은 확실했다.

   더불어 지옥 선녀라는 인물 또한 황가와 같이 연루된 인물이라는 거고.

     

   ‘일들이 생각보다 얽히고설켜 있는데.’

     

   크라슈는 황가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제국이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 황가 또한 같이 권위를 잃게 된 일이 이 비밀 탓이었으니까.

     

   ‘하덴하르츠 또한 2황자가 제국의 비밀을 발설하며 듣게 된 대가로 독왕이 찾아오게 된 거였으니까.’

     

   이제는 그럴 일은 없어졌다고 봐도 되겠으나.

   어찌 되었든 사건들은 황가의 비밀이 시작점이기도 했다.

     

   ‘익시온과 황가가 연루된 건 이상할 건 없었지만.’

     

   거기에 다리를 놓은 게 지옥 선녀라는 듣도보도 못한 세계 침식자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어째 정보를 들었는데도 머리가 더 복잡한 기분을 느낀 채 크라슈는 한차례 숨을 내쉬었다.

     

   “됐다. 고민해서 결과가 나올 상황은 아니겠지.”

     

   크라슈는 머리가 과부하가 오기 전에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직접 만나보면 될 테니까.”

     

   모르는 게 있다면 직접 부딪쳐서 정보를 알아내면 된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이런 수고를 들인 게 광도제였다.

     

   크라슈의 눈과 광도제가 마주쳤다.

   광도제가 또 무슨 짓거리를 할 거냐는 표정을 짓자 크라슈의 입가에 짧게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광도제, 그럼 이제 네 다음 역할을 할 시간이다.”

   “뭐? 또 있어?”

     

   정보를 다 털어놨으면 된 거 아니냐고 광도제가 야유했다.

   하지만 크라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곧 있을 익시온의 회의에 네가 직접 참가해줘야겠다.”

     

   다음 말을 들은 순간 광도제의 얼굴이 싸악 굳었다.

     

   “잠깐, 잠깐! 거기서 내가 들킬 확률도 만만치 않을 텐데?”

     

   자신이 들키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광도제가 묻자 크라슈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네가 잘한다면 들킬 일도 없겠지. 걱정하지 마. 평소 네가 하는 대로만 한다면 괜찮을 거니까.”

   “쓰발, 죽은 놈이 돌아왔는데 어떻게 안 들켜!”

   “그야 그 부분은 네가 생각할 부분이지…….”

     

   크라슈의 입가에 악의적인 웃음이 띄워졌다.

     

   “내가 생각할 부분은 아니지 않냐?”

     

   광도제는 욕설을 내뱉기 직전인 표정으로 크라슈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라고 해서 어떻게든 되살아난 목숨을 또다시 잃고 싶지는 않을 거다.

     

   비록, 꼭두각시 신세라고는 하나 그는 자기 목숨을 최우선으로 하는 놈이었으니까.

     

   “그때 어떻게든 죽여 놓는 거였는데.”

     

   이를 바드득 가는 광도제를 보며 크라슈는 그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잘 부탁한다. 광도제.”

     

   우린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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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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