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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0

   EP.180

     

   “여기가 연금술사의 탑……?”

   “처음 와본 거야?”

     

   연금술사의 탑 입구에 도착한 나와 엔리카는 도시의 정중앙에 세워진 웅장한 구조물을 바라보며 잠시 감상에 잠겼다.

     

   13층에서 봤던 무의 정원이나 지구에서 봤던 ‘탑’에 비교하자면 초라한 건물.

     

   허나 그 비정상적인 두 개와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거지 도시에 세워진 건축물을 옆에 가져다 대면 감히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장엄한 구조물인 것은 틀림이 없었다.

     

   툭툭.

     

   “꽤 튼튼하군.”

   “성좌의 마력으로 보호를 받고 있으니까.”

     

   굳건하게 닫힌 탑의 문을 두어 차례 두드리며 중얼거리자 내 행동을 주시하던 엔리카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열거나 부수는 건 불가능할 거야. 괜히 지금까지 모든 화신들이 문이 열린 틈에 잠입을 시도했던 게 아닐 테니까.”

   “불가능이라……”

     

   문은 마력을 도대체 몇 겹이나 겹친 건지 감도 오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장벽이었다. 애초에 열고 닫는 행위도 마력으로 했던 것인지 크기도 웬만한 고층 건물에 버금가는 규모.

     

   “물러서.”

     

   나의 말에 그녀가 살짝 뒷걸음질 친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내가 문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정도는 있는 모양이었다.

     

   스윽.

     

   나는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만 같은 거대한 문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그 문을 보호하고 있던 마력에 나의 마력을 서서히 흘려 넣었다.

     

   드드드드!!!

     

   마력의 충돌이 일어나자 과격하게 흔들리는 문. 그 모습에 엔리카가 당황하며 움찔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더 많은 마력을 문에 주입했다.

     

   “흐읍!”

     

   까드득!

     

   순간 탑의 전체에서 균열이 발생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손을 올렸을 때에 비해 훨씬 더 헐거워진 대문.

     

   그리고 내가 문에 손을 떼지 않은 채, 한걸음을 옮기자 거짓말같이 탑의 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들어가자.”

   “……”

     

   성좌의 마력으로 만들어 낸 결계를 그저 힘으로 찍어 누른 모습을 본 그녀가 얼빠진 얼굴로 나를 슬그머니 따라온다.

     

   “침입자다!”

   “어, 어떻게 보호 마법이 걸린 문을 저렇게 쉽게…!”

     

   내가 문을 들어서는 순간 시끄러운 경보음이 울리며 탑 내부가 시끌벅적해졌다. 지금까지 탑의 입구가 힘으로 뚫렸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지 그들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쉽진 않았는데.”

   “땀 한 방울도 안 흘리면서 그렇게 말하면 누가 믿어……”

     

   마력으로 마력을 찍어 누르는 것. 만약 내가 격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13층을 먼저 방문해 무의 정원을 클리어하지 못했다면 상상도 하기 힘든 전술이긴 했다.

     

   불가능은 없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 있을 뿐.

     

   웅성웅성-

     

   탑에 있던 모든 화신들은 나에게 그 어떤 공격도 가하지 않은 채 도망가기를 선택했다.

     

   확연한 전력 차이에 그들의 선택이 이해는 됐지만 싸워 보기도 전에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겁쟁이를 보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나도 탈람바르를 닮아가는 건가……’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

     

   13층에 있던 그의 얼굴이 떠오르자 괜히 질리는 기분이 들어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의 목적은 그저 엔리코를 찾아 엔리카와 만나게 하는 것. 굳이 덤벼들지 않는 사람들까지 모조리 공격하는 괴상한 취미 따위는 없었기에 나는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으아악!

   도망쳐!

     

   탑을 오르는 내내 나에게 달려드는 화신은 없었다.

     

   마법사도 연금술사도 기사도.

     

   엔리코를 지킨다거나 봉인된 성좌에게 내가 가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자가 아무도 없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뒤를 따르면 엔리카를 바라봤다.

     

   “당연해.”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겁쟁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겁쟁이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달아나는 것에만 급급한 화신들을 바라봤다.

     

   나는 탑을 오르며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하는 자들을 봐 왔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기에 목표를 가진 자들의 눈에서 강한 신념 따위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명예가 되었든, 스스로의 성장이 되었든, 자신이 이끄는 종족의 존속이나 세상의 번영이 되었든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이 자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려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 정도가 그들의 눈에 보이는 전부였고 나는 그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도전을 선택한 당신은 이해하기 힘들겠지.”

   “뭘?”

   “이 사람들은 그저 살고 싶어서 자신을 이끌어 주던 성좌를 배신했어. 그런 사람들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뭐겠어? 명예? 원대한 목표? 꿈?”

     

   그저 앞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자들. 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스스로의 안녕이었다.

     

   “저들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어. 게다가 상대하는 게 불가능한 정도의 괴물이 탑에 난입했는데 달려드는 건 무모한…… 지금 뭐 해?”

   “이거 보여?”

     

   엔리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그저 빈손을 들어 그녀의 앞에 내보였다.

     

   “이게 뭘로 보여?”

   “……뭐가 있어?”

   “좀 더 자세히 봐. 너도 이쯤이면 눈치챘다시피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 무인이야.”

     

   그녀의 눈이 나의 손바닥을 관찰하기 위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럼 이건?”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이제는 거의 신체의 일부처럼 여겨지는 흑색 검을 꺼내 그녀의 눈앞에 선보였다.

     

   무명검은 누가 봐도 너덜너덜할 정도로 이가 많이 달아 있었다. 튜토리얼에서 얻은 이후로 수백 번의 전투를 함께하며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나의 검.

     

   “……낡은 검이네.”

   “이게 뭘 의미하는 거 같아?”

     

   강해지기 위해 수천수만 번의 검을 휘둘렀다. 무공을 익히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죽지 않기 위해 발악하며 항상 혼신의 힘을 다해 적과 싸웠다.

     

   “참 엿같은 말이지만 사람은 시련이 있을 때 강해져. 운동을 하면 근육이 찢어지고 다시 붙는 과정에서 더 강한 힘을 얻는 것처럼 인생도 다르지 않다는 의미야.”

     

   내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싸움을 피했다면 과연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물론 재수가 좋았다면 어찌저찌 살아서 12층의 땅을 밟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로 재수가 없었으면 싸우겠다고 객기를 부리다가 튜토리얼에서 더미에게 얻어맞고 죽을 운명이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 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 이 탑의 문을 열거나 부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었지?”

   “……”

   “그리고 이전에는 헤라클레스들이 내 음한지기를 버텨 낼 수단을 가져올 거니까 다음에는 이길 수 없을 거라고 했고.”

     

   나의 말에 그녀의 시선이 검에서 나의 눈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근데 결과는 어땠지?”

     

   나는 탑의 문을 어렵지 않게 열었다. 빙계 마법에 대한 대응책을 가져 왔다는 헤라클레스들을 극한의 음한지기로 찍어 눌러버렸다.

     

   그녀를 포함해 이 세상에 있는 화신들이 나를 얕잡아 봤던 이유.

     

   “그건 너희들이 봐 왔던 세상이 그 정도로 작았기 때문이야.”

     

   그들의 삶은 그들이 따르던 성좌의 마력에 국한되어 있었다.

     

   더 강해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에도 성좌의 마력이 절대적이라 생각하기에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

     

   성좌의 마력으로 움직이는 헤라클레스가 신에 대항할 무기라며 추켜세우고 그것만으로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만하고 있었다.

     

   “시련을 받아들이고 안목을 넓혀. 안전한 것도 좋아. 세상 그 누가 목숨이 오락가락하는데 도전이라는 걸 하고 싶겠어.”

     

   온실 속의 화초는 온실 밖의 세상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온실 밖에서 나고 자라 가까스로 온실에 들어오게 된 들꽃 또한 세상의 두려움을 알기에 밖을 나서기를 꺼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온실이 영원히 유지가 된다는 보장 따위는 그 누구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언제나 태풍이 분다. 누구에게나 시련이라는 것이 찾아오고 완전무결할 것이라 생각했던 온실도 어느 순간에는 박살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울타리가 부서지는 순간 저들은 어떻게 될까? 성좌의 봉인이 풀리면? 아니면 성좌가 죽어 버려서 이 세상을 유지하고 있던 마력이 바닥나면?”

     

   온실에서 나고 자란 화초들은 그 자리에서 풍파를 이기지 못해 뿌리가 뜯겨 나가고 말 것이다. 가까스로 온실에 자리를 잡았던 꽃들은 그나마 버틸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안정만을 추구한 무언가가 아니라 시련에 맞서는 법을 이해한 야생화들이라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시련이라면 피해도 돼. 하지만 그 여파를 감당해야 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자신이다.”

     

   나는 정답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잠긴 문이 있다면 어딘가에는 그 문을 잠글 때 사용했던 열쇠도 존재하는 법.

     

   나는 할 말을 잃은 그녀를 뒤로한 채, 마력이 밀집되어 있는 위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쿠구구……

     

   마지막 상층부의 문을 열고 집회실에 입장하자 그곳에는 백 명이 넘는 마법사와 기사가 잔뜩 긴장한 채, 나와 엔리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있군.’

     

   엔리코는 어디에도 숨지 않고 가장 정면에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목표를 가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신념이 가득한 눈빛.

     

   “제가 일주일만 기다려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일주일을 앞당긴 게 너희잖아. 어디서 약을 팔아.”

     

   엔리코의 말에 나는 지지 않고 반박했다.

     

   느낌상 엔리카와 나를 노린 그 공격이 그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은 눈치 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소한 것을 하나하나 이해하며 넘어갈 정도로 나는 자비롭지 않았다.

     

   “계약을 위반했으니 보상을 받아야겠는데. 내가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돕든지. 아니면 성좌를 꺼내서 내 앞에 대령하든지.”

   “……그건 불가능합니다.”

   “아니면 내가 다음 층으로 갈 수 있게 포탈을 열어.”

   “그것 또한 지금은 안 된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포탈을 열기에 마력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

     

   나는 엔리코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화신들을 돌아봤다.

   헤라클레스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마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모습들. 그리고 나는 엔리코가 말한 마력의 부족함에 대해 지적했다.

     

   “저것들을 돌릴 마력은 있고? 나를 얼마나 멍청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 세상은 성좌의 마력으로 굴러간다.

     

   밤에 켜지는 조명과 연금술로 만들어 낸 다양한 기계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나를 공격하던 그 마법 병기들이 움직이는 방식 또한 성좌에게서 추출한 마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포탈을 가져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든가. 아니면 뭐. 내가 직접 봉인 풀어 줘?”

     

   나는 그렇게 말을 하며 슬며시 나의 뒤에 자리를 잡고 있던 엔리카를 돌아봤다. 엔리코의 누나였지만 이들에게는 마녀라 불리며 성좌의 측근으로 취급되는 배신자들의 적.

     

   그리고 내가 그렇게 운을 띄운 순간 엔리코의 외침이 집회실을 울렸다.

     

   “잠깐!”

     

   절규에 가까운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주변에 있던 화신들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엔리코를 돌아본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한 사람은 엔리카 뿐.

     

   “성좌시여.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떻게든 오늘 내로 포탈을 열어드릴 테니.”

     

   그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제 누님을 모셔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 누구도 누님께 손대지 마십시오. 제가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

     

   넓은 집회실에 남은 것은 나와 엔리코 뿐이었다.

     

   화신들이 가져다 놓은 작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앉은 우리 둘. 그리고 이 적막 가운데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내가 아닌 엔리코였다.

     

   “알고 계신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음…… 일단 저기 있는 엔리카가 너의 진짜 누나가 아니라는 거?”

   “그리고요.”

   “근데 엔리카는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거, 그리고 대충 찍은 거긴 했는데 너희 누나가 그 봉인을 푸는 핵심적인 열쇠라는 추측 정도?”

   “후우……”

     

   그가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잠시 뜸을 들인다. 하지만 앞에 있는 게 나였기에 시간을 오래 끌지는 않았다.

     

   “다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해 드리죠. 저분은 제 누님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맞기도 하죠.”

   “말이 안 되는데?”

   “말이 됩니다. 저희 누님은 12층을 오르던 그날 이곳을 지배하고 있던 다른 성좌의 손에 죽었거든요.”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던진 엔리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꺼낸 그의 눈은 더없이 차분했다.

     

   “지금 화신들이 데려간 누님은 이세계의 대부가 만들어 낸 가짜. 성좌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인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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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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