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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0

    위령비 밑으로 뚫린 거대한 구멍으로 협회 소속 조사팀이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외부에서는 아무리 빛을 비춰도 어느 정도 깊이에 도달하면 모든 빛이 무언가에 잡아먹히는 거대한 구멍. 

    빛이 뻗어나가지 못해,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차오른 구멍은 본능적인 공포심을 자극했다.

    평소라면 소란스러웠을 팀원들도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후우.”

    그 구멍을 향해가는 협회 소속 조사팀 팀장은 긴장감에 한숨을 내뱉었다.

    평소의 협회라면 이렇게 기민하게 행동하지 않을 텐데, 구멍 입구에서 발견된 것이 문제였다.

    거대한 황금 덩어리.

    황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기둥 일부가 발견된 것이 문제였다.

    척 보기에도 거대한 신전이나 건물의 부속품으로 보였고, 만약 건물이 전부 황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겠지.

    그것이 협회의 탐욕을 자극해 버렸다.

    물론 협회에서는 조사팀보다는 먼저 드론을 보냈지만, 구멍으로 들어간 드론은 전부 신호가 끊겨버렸다.

    그러자 조사팀에게 지금 즉시 돌입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월급은 좀 부족하지만 일이 적어서 선택한 협회 소속 조사반인데, 이런 위험해 보이는 일에 고개를 들이밀게 되어버리다니.

    조사팀 팀장은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만두려고 했지만, 협회에서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해왔다.

    ‘조사 도중 챙기는 황금에 대해서 묵인하겠다.’

    그 제안을 들은 팀장과 팀원들은 모두 그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구멍 입구에는 기분 나쁘게 생긴 근육질 석상들이 서 있었다.

    석상을 이루는 돌은 기분 나쁘게 하얗고, 몸은 근육질인데 얼굴이 너무 안 어울리게 하찮아서 기분 나빴다.

    그 기분 나쁜 석상들은 구멍으로 들어가는 우리들을 막지 않았다.

    팀장은 유심히 석상을 살펴보고는 부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경계 태세만 유지하고 공격하지 마라.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오브젝트는 아닌 것 같다.”

    부숴서라도 돌입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으니, 싸우지 않는다면 다행이었다.

    오브젝트들은 천차만별이라 언제나 조심해야 했지만, 적대적이지 않은 오브젝트를 선제공격할 필요는 없었다.

    “돌입한다.”

    구멍 근처에 말뚝을 단단히 고정하고, 천천히 밧줄을 타고 진흙 같은 어둠 속으로 발을 내밀었다.

    어둠은 마치 실체를 가진 것처럼 꿀렁이며 팀원들과 팀장을 집어삼켰다.

    하얀색 석상들은 들어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모든 사람이 어둠 속으로 잠겨 사라지자, 입이 찢어지도록 크게 웃었다.

    그들의 입 속에는 하찮은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 이빨이 촘촘하게 돋아나 있었다.

    ***

    아기 새처럼 푸딩을 받아먹는 미니 사신이들과 내 품에 안겨 TV를 보는 사신이가 있는 평화로운 격리실.

    그런 격리실의 평온이 깨질 것 같은 분위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시작은 TV에서 나오는 뉴스 속보였다.

    ‘귀여운 강아지’ 관련으로 테러 사건이 일어났었던 공원에 오브젝트가 등장했다는 이야기였다.

    사형수 언니와 그 여동생은 뉴스 속보를 보더니, 서둘러서 돌아가 버렸다.

    여동생은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지만, 언니 쪽의 강력한 주장에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고 푸딩을 기다렸던 미니 사신이들은 그렇게 버려졌다.

    수제 푸딩을 먹지 못한 미니 사신이들은 세상을 잃어버린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사신이도 갑작스럽게 떠나간 자매처럼 뉴스 속보에 매우 관심을 보였다.

    얼굴은 마치 관심 없는 것처럼 무표정했지만, 더듬이가 빠른 속도로 살랑거려서 관심이 매우 많아 보였다.

    아귀 머리의 근육질 석상이 그렇게 신기한가?

    귀가 달려서 징그럽기만 한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신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힝.

    사신이가 또 가출했어.

    우울한 마음에 침대 위에 가만히 주저앉아 있었더니, 황금 사신이들이 우글우글 몰려들어서 등과 뺨을 마구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무릎 위에도 잔뜩 올라와서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양 주먹을 꼭 쥐고 힘내라는 것처럼 싱긋 웃었다.

    “고마워.”

    나는 기특한 황금 사신이들을 품에 한가득 안고, 하나하나 쓰다듬어 주었다.

    헤실헤실 웃는 황금 사신이의 턱을 천천히 간질이며, 가벼운 소원을 빌었다.

    이번에는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네.

    ***

    창공을 가르고 날아가는 거대한 구름 고래 위, 나는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누워있었다.

    구름 고래는 뉴스 속보에 나온 공원을 향해 천천히 날아가는 중이었다.

    걷지 않고 고래를 타고 다니니 한층 편안했다.

    사실 호기심은 생겼지만 당장 가기에는 조금 귀찮았는데, 나랑 관련이 있을 법도 해서 귀찮음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우선 석상들 얼굴이 하얀 아귀랑 너무 닮아서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하얀 아귀를 얻을 때 봤던 의미심장한 환영을 생각하면, 내 몸이랑 뭔가 관련이 있기는 하겠지.

    게다가 내가 죽은 자리이니만큼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름 고래는 폭신폭신하고, 태양 빛은 따스해서 정말 좋은 기분이었다.

    아이들도 같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정원에 있는 미니 사신들을 잔뜩 불러내었다.

    양손을 벌리고 고래 위에 나타난 황금 사신들은 태양을 바라보며 만세를 했다.

    황금 사신들은 이상하게 햇빛을 정말 좋아했다.

    미니 사신들 특징이라기엔, 다른 사신들은 달빛을 선호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그리고 햇빛을 받은 황금 사신의 몸에서 점점 빛이 강해지더니, 어느새 평범한 사람은 눈을 뜨고 직시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 때쯤, 전방으로 황금색 빔을 쏘아 보냈다.

    황금 사신의 가슴팍, 장작으로부터 뿜어져 나간 빔은 순식간에 대기를 뚫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응?

    나는 깜짝 놀라서 황금 사신을 손에 들고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헤실헤실 웃는 황금 사신에게 별다른 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

    황금 사신은 내 능력을 물려받는 거 아니었나? 

    왜 나도 못 하는 걸 하고 있지.

    ‘그거 어떻게 한 거야?’

    ‘?’

    황금 사신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할 수 있으니 했다.’ 정도의 감상인 것 같네.

    내가 턱에 손을 얹고 고민하고 있으니, 황금 사신도 나를 따라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따라 했다.

    설마 나도 할 수 있는 건가? 

    생각해 보니 황금 사신이 쏘아 보낸 빔이 사이비 교주가 쏘아 보내던 하얀 불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푹신한 구름 고래의 등을 밟고 만세를 했다.

    그것을 보고 황금 사신들이 신나는 표정으로 만세를 했다.

    황금 사신들이 즐거운 놀이를 하는 것처럼 만세를 하자, 다른 미니 사신들도 따라 했다.

    하늘을 유영하는 거대한 고래 위에 옹기종기 모여서 단체로 만세를 했지만, 빔은 나가지 않았다.

    힝.

    나도 빔 쏴보고 싶었는데….

    ***

    진흙처럼 질감이 느껴지는 어둠을 뚫고 들어가자, 평범해 보이는 땅굴이 보였다.

    조사팀이 내디딘 바닥에는 협회에서 날려 보낸 드론이 널브러져 있었다.

    “무전이 동작하지 않는군.”

    오브젝트 협회 조사팀 팀장은 팀원들에게 무전으로 지시를 내리려고 했지만 동작하지 않자, 육성으로 지시를 내렸다.

    “강철탑 같은 성가신 환경일 수도 있으니, 각자 장비를 확인하도록.”

    모두가 점검을 마치자, 조사팀은 무전만 작동하지 않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내가 앞장설 테니, 정해진 배치로 천천히 내려간다.”

    단단한 지면을 깎아서 만든 계단, 생각보다 쾌적한 공기. 

    그리고 생각보다 긴 통로.

    조사팀 팀장은 생각보다 조사가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통로를 통과하자 나타난 것은 뚝 잘린 것처럼 땅이 끊긴 절벽.

    그리고 그 밑으로 펼쳐지는 이색적인 도시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 일도 없어서 그런지, 긴장이 풀린 팀원들은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소란스럽고 허술한 분위기가 돌아오자, 팀장은 이제서야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이래야 협회 소속 조사팀이지.

    “팀장님, 저거 황금 맞죠?”

    팀원이 가리킨 곳을 보자, 벽돌 모양 황금으로 지은 주택이 보였다.

    자세한 건 가까이 가서 확인해 봐야 확실하겠지만, 여기서 볼 때는 황금처럼 보였다.

    ‘다행이군. 저기서 황금을 회수하는 걸로 조사를 마칠 수 있겠어.’

    “모두 조용. 서둘러서 샘플을 회수한 뒤 돌아간다.”

    황금을 보고 흥분한 팀원들이 점점 소란스러워지자, 팀장은 팀원들을 조용히 시킨 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절벽을 따라서 나 있는 계단을 따라서 내려가자, 도시의 이상한 점이 더욱 눈에 띄었다.

    “와, 이거 1년 전에 없어진 가게인데, 여기에 있네요.”

    설마?

    팀원의 말에 담긴 정보에서 의미심장한 것을 느끼고, 팀장은 질문을 했다.

    “지금 이 거리를 본 적이 있나?”

    “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1년 전의 용산구 거리를 재현한 것 같네요. 아마 ‘서울 연구소’ 인근으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니 한글로 된 도로 표지판이 보였다.

    <용산구에 어서 오십시오.>

    현대의 건물을 오려서 붙여 넣은 것 같은 생활감이 잔뜩 남은 수많은 건물.

    그리고 그 건물들 사이사이로 현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이 뒤섞여 있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하얀 돌로 만든 주택들이었다.

    판타지의 건물과 현대의 건물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도시였다.

    용산구의 건물이든, 판타지의 건물이든 생활감이 깊게 묻어 있어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여기서 생활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었다.

    “기분 나쁜 오브젝트로군. 최대한 빨리 회수하고 돌아가는 게 좋겠어.”

    조사팀은 사방을 경계하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팀장님! 뭔가가 있습니다.”

    “정지!”

    팀원의 깜짝 놀란 것 같은 말에 팀장은 전진을 멈추고 둥글게 모여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사팀의 걸음 소리가 멈추자, 도시는 다시 조용한 침묵 속에 빠져들어 갔다.

    인간은커녕 동물이나 곤충도 없었다.

    그리고, 서울 어디에나 있을 법한 꼬마 빌딩 뒤로 하얀색 무언가가 얼핏 보였다.

    하찮은 얼굴을 가진 석상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조사팀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후우.”

    그 얼굴을 확인하자, 조사팀은 모두 한숨을 내뱉었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괜히 쫄았어.”

    소란스러운 와중에 팀장은 이상하게 저 석상이 꺼림칙했다.

    위협적으로 울퉁불퉁한 근육도 그렇지만, 뭔가 기분 나쁘게 생긴 얼굴이 더욱 그랬다.

    뚜벅뚜벅.

    결국 조사팀은 오랜 시간 걸어간 끝에 황금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팀장님. 저거 계속 내버려 둬도 되는 겁니까?”

    팀원이 가리킨 곳에는 희미한 미소를 띤 하얀 석상이 건물 뒤에 숨어서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오브젝트는 웬만하면 섣불리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팀장은 마음속으로는 이런 곳에 들어온 것 자체가 건드린 것과 동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협회의 제안을 수락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샘플을 채취하고 돌아간다.”

    팀장의 명령에 샘플 채취용 배낭을 가지고 온 팀원이 사진을 찍고, 전용 도구로 황금 일부분을 잘라내서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팀장님, 그러면 저희도 황금을 챙겨도 될까요?”

    “돌아갈 때 로프를 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챙겨라.”

    다들 일확천금을 바라고, 이런 불확실한 미션을 수락한 것이니 당연한 보수였다.

    팀장도 황금 벽돌을 잔뜩 챙긴 뒤, 주변을 돌아보았다.

    ‘없군.’

    조사팀을 쳐다보던 석상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 달라붙는 것 같은 집요한 시선이 사라지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슬슬 돌아가도록 하지.”

    팀장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황금 주택 위에서 하얀색 무언가가 불쑥 내려와서 팀원의 머리를 뜯어버렸다.

    “으아아악.”

    그것은 짧았던 목을 길게 늘인, 하얀 석상이었다.

    입을 꼭 다물고 있던 하얀 석상은 이빨을 드러내며 피투성이로 환하게 웃으며 조사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깜짝 놀란 조사팀이 가지고 있는 소총으로 석상에게 난사했지만, 총알은 아무런 흠집도 내지 못하고 튕겨 나가버렸다.

    딱. 딱. 딱.

    하얀 석상은 웃는 것처럼 커다란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두 도망쳐!”

    팀장의 명령에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달리기 시작했다.

    팀장은 달리던 도중, 기척을 죽이고 벽 뒤에 숨어서 숨을 골랐다.

    ‘그냥 도망칠 수는 없을 거야. 기다렸다가 빠져나간다.’

    움직이는 소리도 안 나는 데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붕으로 올라간 오브젝트를 뛰어서 뿌리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평소에는 온순하니까,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공격성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공격성의 트리거로 보였던 황금은 이미 버려버린 지 오래였다.

    원래 고요했을 도시 속에서 바쁜 발걸음 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이 9번 울린 뒤, 팀장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팀원이 모두 죽었다. 

    이제 천천히 움직이면 돼.

    눈을 감고 최대한 숨을 작게 고르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팀장이 눈을 뜨자,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괴물이 눈앞에 있었다.

    핏물이 침처럼 뚝뚝 떨어지는 괴물은 즐거운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조사팀을 진작에 그만뒀어야 했는데….’

    조사팀장은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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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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