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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1

       로티 어머니에 대한 일을 원작에서는 어떻게 처리했는가 하면, 그녀를 자유민으로 만들어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노예가 없는 세상에 무슨 자유민이니 뭐니 하는 말이 존재하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법령으로만 노예가 없을 뿐, 방법을 조금 우회하면 노예 비슷한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온 세상의 돈을 상위 몇 퍼센트가 거의 다 독점하고 있는 시대다. 사람의 목숨이 아무리 비싸다고 해서 사지 못할 이유는 없지. 게다가, 사실 이 세상에서 사람 목숨이 그렇게 비싸다고 할만한 수준도 아니고.

        

       제국인이 식민지 원주민을 노예처럼 부리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빚’이었다.

        

       개인이 빌려서 갚을 수 없는 수준의 빚을 지운 뒤 억지로 갚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빚을 갚지 못하면 그 돈을 노동력으로 대신 받는다는 핑계로 계속 일을 시키는 것이다. 만약 자기는 갚을 생각이 없다면서 드러누워 버리면 바로 금융당국에 알린다.

        

       감옥에 갇혀있는 쪽이 차라리 낫지 않나 싶을지도 모르는데, 당연하지만 감옥에서도 노동은 계속된다. 감옥 바깥에서는 빚을 갚기 위한 노동, 감옥 안에서는 죄를 갚기 위한 노동이 계속된다.

        

       게다가 이 시대에는 아직 태형이 존재했다. 물론 태형은 제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원래 태형을 집행하던 원주민들의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시행하는 법안이니까.

        

       “빚을 지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없는 거야?”

        

       내 설명을 들은 앨리스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밤이 쌀쌀하긴 했지만, 그래도 겨울이라고 할 정도로 마냥 춥지는 않았다. 적어도 코트를 단단히 여미고 있으면 충분히 견딜만한 추위라, 공작가를 나온 우리는 밤늦게까지 하는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을 수 있었다.

        

       린드버러 영지는 밤에도 밝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제도보다 더 발전한 신도시였으니까. 도심은 밤이 되어도 어두워지지 않고, 한밤중에도 문을 닫지 않는 카페니 술집이니 하는 곳이 꽤 많다.

        

       뭐,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아침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술을 파는 곳은 꽤 있었으니까. 우리가 굳이 가게 바깥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무알콜 칵테일을 홀짝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게 안은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조용하지 못했으니까.

        

       “식민지에서 원주민들이 진 빚은 개인이 빌린 돈에 한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빌린 돈도 물론 있긴 하다. 원래 있던 밭이나 논을 무력으로 빼앗는 바람에 졸지에 농노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원주민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에 충분한 양의 배급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당연히 돈도 거의 주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결국엔 지주에게 돈을 빌리게 된다.

        

       본인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아니면 식솔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여기까지는 그냥 본인이 굶으면 해결되는 일이 아니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 ‘배고픔’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 그러니까 그 ‘배고픔’이 자기네들이 점심 직전에 느끼는 그 ‘배고픔’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이들이 종종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 뭐,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렇다면, 기반 시설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반 시설을 공짜로 지을 수는 없다. 증기관을 매설하고, 마력석을 아낌없이 퍼부어 전화선을 연결하고, 현대화된 건물을 짓고 도로를 깔고, 공항과 항만 시설을 만들고.

        

       그 모든 것은 제국을 위해, 제국을 향해 지어지는 것이었지만, 그 돈이 청구되는 대상은 ‘현대화를 만끽하며 살아갈’ 식민지 원주민들이다. 원래 있던 집이 밀려버린 뒤, 아주 저평가된 그 집의 가격만 제하고 나머지는 모두 현대화한 값을 청구받는다. 집이 있던 땅 위에 집이 아니라 도로가 지어져도 마찬가지고.

        

       “…….”

        

       내 이야기를 들은 앨리스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세상 모든 문명을 현대화하고 계급사회를 타파하기 위한 의무라고 했었는데.”

        

       “계급사회는 제국조차 타파하지 못했죠.”

        

       “하지만…… 그렇잖아? 원래 이 땅에 있던 계급제는 제국에서의 계급과는 달랐다고 들었는데.”

        

       인도의 카스트제에서 따온 계급체계가 설정상으로 존재하긴 했다.

        

       가장 높은 곳에 신관이 있고, 가장 아래에 접촉만 해도 부정을 탄다는 불가촉천민이 있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린드버러 가가 이 땅을 점령한 뒤 제일 먼저 없애버린 것이 바로 성씨였습니다. 가문의 이름을 모르면 어떤 계급인지 알 수도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계급을 ‘전혀’ 유추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 유추할 수 있는데?”

        

       “보통 높은 자리에 있는 식민지 원주민이 있다면 그자는 낮은 계급에 속하던 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불가촉천민을 적극적으로 고용해서 그 위쪽에 있던 자들을 탄압하게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힌 것 같은 기분일 그 사람들은 기꺼이 그 일을 맡았다.

        

       얼핏 보면 계급을 타파한 셈이지만, 실제로는 사회를 자기 입맛대로 움직이고 싶은 제국의 저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그 행위 자체를 ‘고귀한 것’으로 포장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만약 제국이 정말로 원주민을 생각했다면 모든 현대화된 시설이 제국을 향하게 지어지지도 않았을 테죠. 모든 시설이 제국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애초에 이 땅에서 나는 모든 작물과 원료들을 제국으로 보내기 위한 시설이기 때문입니다.”

        

       “…….”

        

       앨리스는 손을 들어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는…… 왜 몰랐을까.”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이 정도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조차 거의 없을 테니까.”

        

       나의 말에 앨리스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져있다가, 이내 눈을 빛냈다.

        

       기쁨으로 빛나는 눈은 당연히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서슬 퍼렇다는 눈이지.

        

       “이 땅의 모든 사람을 구할 수는 없겠지.”

        

       “그렇습니다.”

        

       적어도 우리 힘으로는 그렇다.

        

       설령 수십 년 후 제국이 정신을 차리고 남대륙 점령지에서 철수해도 마찬가지다. 한 번 혼란스러워졌던 사회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그 꼬여버린 계급체계 때문에 그 이후에 불가촉천민이 ‘정말로’ 불가촉천민이 될 수 있는 명분까지 만들어버렸으니까.

        

       “하찮은 자기만족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돕고 싶어.”

        

       “그렇다면 도우면 됩니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경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돕는 주체가 황녀님이시니까요.”

        

       “…….”

        

       내 말에 앨리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

        

       제국 황실에는 대체 돈이 얼마나 있는가?

        

       그건 황족의 피가 섞인 공작가들부터 해서, 계승권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머나먼 방계 친척들도 궁금해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사실 나도 궁금했다.

        

       황궁 내부를 마음껏 휘젓고 다니며 온갖 숨겨진 것을 보고 다녔던 나조차도 황궁 내에 대체 얼마나 많은 금이 있는지 가늠하기가 힘들었으니까.

        

       물론 나라 하나를 돈만으로 살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음, 아니다. 예전에 미국이 알래스카를 돈으로 사고 그랬던 걸 생각하면 어디 공국 같은 곳을 사달라고 하면 황실 내의 돈만으로 살 수 있을 정도는 될 것이다.

        

       황궁 내에는 비밀 금고라고 할만한 곳이 여섯 곳이었다. 게임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그 비밀금고에는 금이나 예술품이 차곡차곡 분류되어 엄중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니 황녀들에게 용돈을 따로 주지 않는 것이다.

        

       굳이 예산 같은 것을 잡지 않더라도 그냥 은행에서 직접 빌려버리고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갚아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해도 돈 들어올 곳은 많았고, 그게 끊어져도 3대는 풍족하게 먹고 살고 남을 돈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돈 많은 황실이었기에 업무시간이 끝난 지 한참 뒤인 지금 시간에 호출받은 은행장이 헐레벌떡 뛰어오게 된 것이다.

        

       “예, 그러니까…….”

        

       은행장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사실 그걸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영 애매한 일입니다.”

        

       어떻게든 앨리스에게 많은 돈을 빌려주려고 머리를 굴리는 것이 눈에 훤하게 보였지만, 동시에 저 말은 진심이기도 할 것이다.

        

       “이곳 원주민들의 성씨를 몽땅 파기해버린 덕분에 누가 누구인지 쉽게 구분이 가지 않으니까요. ……이렇게 말씀드리기 조금 뭣하긴 합니다만, 린드버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땅의 원주민들에게 있는 빚은 이론적으로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온갖 것에 트집을 잡아서 빚의 노예로 만들어버리는데 어련히 그럴까.

        

       하지만 앨리스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은행장께서는 원주민 메이드 한 명을 구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돈까지 쓰실 용의가 있으신가요?”

        

       앨리스의 말을 들은 은행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모르긴 몰라도 엄청나게 비싸게 부르겠지.

        

       뭐, 우리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원래 돈 빌리는 것도 능력이라고 하지 않는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새해 첫날부터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도 최대한 빠르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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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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