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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1

    “이런, 이런.”

     

    딜런트가 고개를 휙, 돌리자 하얀 빛의 광선이 머리 옆을 스쳐지나갔다.

    노획한 지팡이인 모양이다.

     

    “그런 기습은 통하지 않는다고.”

     

    딜런트는 꽤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예르나가 받아들이기에는 그것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지만.

     

    “말해, 루크는 어디있지?”

    “큭큭, 어디에 있느냐보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

     

    까득. 이빨이 마찰하며 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습격해 빼앗은 지팡이를 거칠게 쥐었다.

    맨몸이었던 아까 전과는 달리, 신체강화의 마법까지 걸어 둔 상태여서 지팡이가 부러지지 않도록 힘을 조절하는 작업이 굉장히 힘이 든다.

     

    그녀는 다시 한번 흩뿌리듯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에 미리 장전시켜둔 ‘라르메 아가눔’이, 예르나의 속삭임 같은 주문에따라 지팡이의 끝에서 발사된다.

    이번에도 가볍게 회피할 생각으로 몸을 움직이는 찰나, 딜런트는 바로 또 다른 마법이 자신을 향해있음을 깨닫고 황급히 손을 휘둘러 가슴에 달아 둔 브로치로 방어마법을 걸어서 쳐낸다.

     

    “이크!”

     

    탁, 탁!

     

    광선은 경로를 틀어 각각 바닥과 천장을 꿰뚫었다.

    같은 마법을 한번에 무려 세번이나 쏜 것인가?

     

    ‘라르메 아가눔’은 단발형 투사방식 살상마법인데, 어떻게 연속으로 세발이나 발사할 수 있었던거지?

     

    대체 무슨 속임수를 썼는가 하여 예르나의 손을 바라본 딜런트는 그 답을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한 손에 마치 발톱처럼 세워 쥔 3개의 지팡이.

    오호라, 세개의 지팡이로 한번에 마법을 썼군.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말이야.

     

    “꽤 대단한데? 그걸로 묘기를 해도 되겠어.”

     

    딜런트가 다시금 이죽거리자 예르나는 방금 전의 그것이 실패한게 매우 유감이라는 듯,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때 확실히 죽였어야 했어.”

     

    “하하하! 그랬을지도? 하지만 말이지, 이미 지나간 일에 ‘만약’은 의미가 없어.”

     

    딜런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 지팡이말인데, 우리 시설 기물이거든, 그러니까…….”

     

    휙.

     

    순간 딜런트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가 움직임을 놓쳤다고?’

     

    찰나의 당황.

    그리고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돌려줬으면 하는데.”

     

    “무슨-!”

     

    다급하게 고개를 돌린 순간, 예르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빠르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주먹이었다.

     

    퍼억!

     

    강력한 충격, 그냥 맨주먹이 아니라 마법으로 육체를 강화했는지 엄청난 위력이었다.

    자신 역시 강화된 육체가 아니었다면 방금 그 한방으로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잠깐 당황하는 사이 이미 지팡이들은 빼앗겨버린건지 손에서 지팡이의 감촉이 사라져있었다.

     

    “정말 욕심이 많다니까, 한 개도 아니고 세 개나 훔쳐 가다니 말이야.”

    “크윽……!”

     

    예르나는 낙법과 동시에 곧장 몸을 굴러 일으키며 딜런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방금 마법을 사용했으니까, 분명히 지금은……!

     

    “어이쿠, 이런. 무서워라.”

     

    딱-!

     

    딜런트가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이전처럼 전조 없이 폭발하는 검은 화염.

    그에 예르나는 크게 당황했다.

     

    저 마법, 대체 무슨 원리로 발생하는 거지? 리스크는?

    연속사용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이건 휘말릴 수 밖에 없다, 그리 생각한 예르나는 곧장 코트를 들어 화염을 막았다.

    숲지기용 방마코팅이 되어있는 코트는 딜런트의 검은 화염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는 있었지만, 불이 크게 붙어버리고 만다.

    아무리 소모가 좀 되었다지만 단 한방에 방마코팅이 벗겨져 버리다니, 저게 대체 무슨 화력이란 말인가?

     

    예르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코트를 찢어 옆으로 던져버렸다.

    어쨌든, 코트를 더이상 입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휙-!

     

    그 모습을 본 딜런트는 약을 올리듯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하하하! 화끈한데! 뭐야, 한번 맞을 때마다 스트립 쇼라도 할 셈인가? 이거, 상당히 기대되는데-?”

     

    “닥쳐.”

     

    예르나의 날카로운 음성, 그러나 딜런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 봐.”

     

    ———

     

    “대체 저게 뭐야! 대체 뭐냐고!”

     

    한 남성이 지옥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지옥, 그래.

     

    그것보다 이 상황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비명, 신음, 그리고 피비린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시야에 보이는 것은 현세에 강림한 지옥과도 같이 돌변한 복도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 복도가 이런 광경으로 변모하게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으리라.

     

    본래 새하얗게 반짝이던 복도의 바닥은 붉은 색으로 변했다.

    복도를 세련되게 장식하고 있던 조각 흉상은 이제는 비슷한 형상의 친구들이 많이 생겨 별달리 특별할 것조차 없어보인다.

    기둥과 벽은 마치 길거리의 불량아들이 벽에 낙서를 해 둔 것처럼 붉은 물감을 난잡하게 흩뿌려 놓은 듯하다.

     

    그리고, 그 끔찍하도록 붉은 공간에, 그 무엇보다 어울리지 않는 한 존재가 있었다.

     

     

    백금발의 고양이 귀에 어울리지 않는 뿔과 색이 맞지 않는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자아이.

    새하얀 프릴블라우스와 검은 프릴스커트, 하얀 팬티스타킹과 검은 구두.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은 깔끔한 복식을 과시하며, 마치 인형 같은 표정으로 무감각하게 사람들, 또는 사람이었던 것을 넘으며 걷고 있다.

    단지 구두가 복도에 닿는 소리만을 내면서.

     

     

    또각, 또각.

     

     

    그렇게 복도의 끝에 도착하는 순간, 몇 개의 하얀 광선이 그녀를 향해 쏘아졌다.

     

     

    “죽어, 죽으라고!”

    “이 괴물 같은 년! 죽어!”

    “제발 뒈져!”

     

    매복하고 있던 자들이 코너에서 뛰쳐나와 마법을 쓴 것이다.

    정말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으니, 이것만은 반드시 반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들은 확신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는지 여전히 무감각하게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마법을 바라본다.

     

    -거절한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목소리와, 그 영향으로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하얀 광선.

    순간적인 반사신경과 본능의 영역에 달한 마법 계산능력을 이용한 강제적인 마법의 해석과 해체였다.

    이미 발사된 마법을 강제로 해체당한 반동으로, 그들의 지팡이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회로가 완전히 불타버린 것이리라.

     

    갑작스레 무장을 해제당한 그들은 멍청하게 자신의 지팡이를 바라보다가, 현실을 부정하듯 비명처럼 주문을 외쳤다.

    ‘라르메 아가눔!’, ‘라르메 아가눔!’하고 말이다.

    그러나 지팡이는 그들의 언령에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보았다.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몸의 어느 한 군데조차 피 한 방울,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순수한 죽음 그 자체를.

     

    “히이익!”

    “괴, 괴물……!”

    “살려줘, 살려줘!”

     

    애원해보지만, 결과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벌어졌던 현상의 재현이다.

    퍽, 퍼벅.

     

    작은 돌멩이가 그들의 급소를 꿰뚫는다.

    힘을 잃은 몸뚱이가 바닥에 처박혀 경련한다.

    바닥에 피로 웅덩이를 만든다, 라는 과정.

     

    마법은 사용하는 즉시 해체당한다.

    해체하지 못한 것은 살짝 몸을 움직여 회피해버린다.

    어쩌다 튀는 피 한방울조차 그녀의 옷에 닿지 못하고 툭 떨어진다.

    털끝 하나조차 상하게 할 수 없었다.

    접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저런 괴물을 대체 어떻게 상대하란 말인가?

     

     

    무슨 짓을 해도 발걸음을 늦추게 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렇게 단 한 명도 그녀의 뒤에서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자가 없다.

     

     

    그녀의 몸 뒤로는 단 세가지 분류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시체, 곧 시체가 될 자, 그리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는 자.

     

    대체 저 미친 살인병기는 어디서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 엘프 여자는 도대체 무엇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지?

     

    마침내, 도망치던 그의 발이 멎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아.”

     

    복도가 끝났기 때문이다.

     

    막무가내로 도망치다보니 어느새 막다른 길에 놓이고 말았던 것이다.

     

    말도 안돼, 그 긴 복도를 벌써 다 가로질렀단 말이야?

    계단, 계단은 대체 다 어디로 간 거야? 여기까지 도망치는데도 전혀 보이질 않았는데……!

     

    그는 황급히 휴대용 단말기를 꺼내 직원채널로 무차별 연락을 시작했다.

     

    “젠장, 제발 아무나 응답해!”

     

    침묵이 길어질수록 식은 땀이 흐른다.

    지팡이가 자꾸만 손에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초조하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녀의 거리를 재던 그는, 꿈틀거리며 신음하던 동료 하나가 그녀의 눈짓에 의해 쏘아진 돌조각으로 무자비하게 확인사살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정말 살인에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다는 말인가?

    저것은 아이가 아니고 아이의 탈을 쓴 무언가인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 본질은 분명 악마다!

    그래, 분명히 그렇겠지!

     

    “아무나, 아무나 받으라고……!”

     

    설마 벌써 다 죽은 거야?

    나 혼자 남았다고 하지는 말아줘, 아직 죽고 싶지는 않단 말이야.

     

    마치 영겁과도 같은 시간, 정말 다행스럽게도 누군가가 채널을 받았다.

     

    “뭐야, 갑자기 긴급 통신이라니? 무슨 일인데?”

     

    “전멸이야! 다 죽었다고!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사람을 죽인다니까! 마법도 전혀 통하지 않아! 지원이 필요해, 당장!”

     

    “뭐? 전멸? 침입자야? 대체 몇 명인데 그쪽이 전멸이야?”

     

    “한 명, 딱 한명! 그 엘프년이랑 같이 온 그 꼬마……! 그냥 꼬마가 아니었어, 미친 살인병기였다고!”

     

    “뭐?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시발, 지금 내가 장난이나 하는 걸로 보여? 진짜 여긴 지옥이 따로 없다고! 제발 지원을…….”

     

    “뭐라고-칙-통신이–치직– 뭐라고하는–칙– 똑바로–치익…….”

     

    “잠깐,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익, 시발, 이건 갑자기 또 왜 이래……!”

     

    뭐야, 설마 하필이면 이럴 때 신호가 안 잡히는 거야?

    제발, 너 비싼 거잖아. 좀 제대로 된 값어치를 하라고!

     

    당혹감과 분노,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담아 단말기를 마구 때리던 순간, 자신의 바로 곁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뻣뻣해진 목을 가까스로 돌린다.

    제발 자신이 느낀 것이 착각이길 바라며.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히에에엑-!”

     

    너무 놀라 떨어트리고 만 단말기.

    그녀는 조용히 허리를 숙여 단말기를 집어들었다.

    -받아라.

     

    ———

     

     

    “아-, 아. 들리나?”

     

    “아, 갑자기 연결이 끊어져서 놀랐잖아. 다시 말해봐, 대체 무슨 일인데? 전멸은 또 뭐고?”

     

    “그 이야기는 이제 됐어, 두목의 목숨이 위험해!”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마스터의 목숨이 위험하다니?”

     

    “지금 침입자가 두목을 노리고 모조리 죽이고 있어. 두목은 지금 어디에 있지? 엘프 여자랑 함께 있나?”

     

    “아, 그 분이라면 분명 정문에서 그 여자랑……. 그런데 정말 정확히 무슨 일이야? 나도 정문으로 가야 하나? 이봐, 지금 듣고 있는거야?”

     

    “…….”

     

    파칙.

     

    그는 일방적으로 연락을 마친 후, 단말기를 망설임 없이 부숴버리고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멍한 눈빛이 이미 이지를 상실한 상태임을 짐작케한다.

    잠시 후, 명령이 내려졌다.

     


    -잠들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응애 애기 너무 쌔;

    예르나가 맨날 입는 코트는 사실 숲지기의 방탄복이었던 것입니다.

    어쩐지 맨날 양복만 입는데 그 양복이 사실은 방탄양복이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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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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