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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1

     

    “화합의 상징이라니, 어떤 의미신가요?”

     

    페르시야 1왕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반문했다.

     

    “거창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만, 그렇게 대단한 액션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제국과 왕국 사이의 무역 루트를 만들 물꼬만 트면 되니까요.”

     

    “합법적으로 선생님의 약품을 들여올 수 있으면… 저희 막내가 쓸 약도 안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겠어요. 비슷한 처지의 왕국민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요.”

     

    왕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옆 테이블의 손님들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잠깐 실례해요.”

     

    의자를 빌려와 내 앞에 바싹 붙어 앉는 페르시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거래 이야기가 나오니 당돌해진 왕녀였다. 태도로는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겠다 싶었다.

     

    “간단하게, 왕국 왕가가 필요할 정도의 성능이라고 저희 약품을 광고하면 되겠지요.”

     

    “연무회가 좋은 자리가 되겠네요. 그러면 조세를 위한 평화로운 회담 자리도 만들 수 있겠어요. 지난번 사절단이 갔을 땐 꽤 험악한 분위기라고 들었거든요.”

     

    “그렇습니다. 황녀님과 제가 회담을 주도하게 그림을 그리는 거죠.”

     

    “구체적으로는요? 선생님께서 약품을 광고하더라도 왕국과 연관은 크게 없잖아요?”

     

    그 부분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연무회에서 나 혼자 잘났다고 날뛰어봤자 왕국에서 약품이 밀수품으로 취급되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미친 소리라고 들리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저도 고려할 사항이 많은 가정인지라.”

     

    나는 왕녀에게 서두를 꺼냈다.

     

    “왕녀님의 남동생님, 3왕자님의 하반신 마비 증상 말입니다만.”

     

    “네.”

     

    “자세한 검사는 해봐야 합니다만, 척수… 다리와 머리를 이어주는 허리쪽을 다쳐서 일어난 증상이라 생각합니다. 신경이 완전히 끊기진 않아서 통증 발작이 종종 있으시겠고요.”

     

    “아하… 다리가 아니라 허리를 다쳤다.”

     

    “연무회에서 저희 신약으로 왕자님을 고쳐 보이면 어떻겠습니까?”

     

    페르시야는 내 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는지 조금 후에 자리에서 벌떡 튀어날 뻔했다.

     

    “그게 가능한가요?! 말도 안 돼요. 벌써 10년 넘게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는 앤데… 치유주문은 통증이 너무 심해서 치유사들도 학을 뗀 지 오래라구요.”

     

    “말씀드렸지만 검사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수많은 대중 앞에서 수술을 시연하게 되겠습니다만.”

     

    “수술이요? …설마.”

     

    그녀도 정보원은 여기저기 많은 모양이다.

    내 수술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나는 확실하게 설명했다.

     

    “옥체에 칼을 대야 합니다. 제국 치료의 최신기술입니다.”

     

    “칼을….”

     

    “말씀드린 환부, 등허리 일부를 절개해서 신경을 직접 노출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내 말에 페르시야는 왕자를 돌아보았다.

     

    아직 어린 소년은 누나의 불안한 표정을 눈치챘는지 함께 겁을 집어먹었다.

     

    그때 네리아가 교착상태를 깼다.

     

    자리에서 일어난 네리아는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케이크 접시 하나를 들어 왕자에게 다가갔다.

     

    천사 같은 미소와 함께 접시를 건네주고 기품 있게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인사하는 네리아.

     

    그 모습을 보고 페르시야가 크게 숨을 내뱉었다.

     

    “…정말 선생님께서 고든의 다리를 고쳐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해요.”

     

    그녀는 머리가 복잡해 보였다.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이 많겠지.

     

    “이후로 고든이 쓸 약을 명목으로 무역로를 열 수도 있고, 분명 감사한 제안이지만…”

     

    페르시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실패할 수도 있나요?”

     

    나는 정확하게 대답했다.

     

    “예. 성공 확률은 반반입니다.”

     

    “반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

     

     

     

    네리아를 바래다준 후, 의사팀을 긴급하게 모아 짧은 회의를 소집했다.

     

    다른 게 아니라 페르시야와 이야기했던 왕자 수술 건에 관해서였다.

     

    “우리 연무회 시연, 준비에 차질은 없어?”

     

    “완벽합니다.”

     

    휴고가 든든하게 대답했다.

     

    우리 파벌이 준비한 건 의학과 치유술을 접목한 가벼운 수술 시연이었다.

     

    제국에서 출전하는 치유사는 총 열두 명으로, 우리 쪽이 여섯, 네 명이 알베리치의 파벌이다.

     

    둘은 앰브로시아와 황제의 2주치의로 오프닝에서 대형 축복을 시연하기로 했다.

     

    “이쪽이 간이 수술실입니다. 시연 전에 조립하면 됩니다.”

     

    여섯 평 정도의 육면체를 구성할 수 있는 커다란 유리벽과 수술 장비들이 무대에 오를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수술 대상은 당연히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리 의사회가 활동한다고 해도 아직 의학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대륙에는 훨씬 많으니까.

     

    다짜고짜 사람을 째면 경외보다 공포를 심어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 물어보자. 시연에서 사람을 수술하면 반발이 클까?”

     

    “갑자기 무슨 소리십니까.”

     

    휴고가 나를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쏘아보았다. 얘가 이러는 건 흔치 않은데.

     

    “흑마술로 오해받아서 당장 체포되지 않으면 다행이지 않겠습니까.”

     

    “그게 왕족이면?”

     

    “…체포되진 않겠군요.”

     

    “와, 와, 왕족이요오?!”

     

    이야기를 듣던 클로에가 겁에 질려 후들후들 팔을 떨었다.

     

    원래 이번 시연에 나는 나가지 않게 되어있었다. 순전히 우리 팀원들의 활약만 보여줄 예정이었다.

     

    집도의는 클로에였다.

     

    “저희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어쩌고요? 이렇게 수술을 기대하고 있는데요오!”

     

    클로에가 침팬지의 양팔을 들어 보였다.

     

    그녀가 오늘 시연을 위해 몇 달 애지중지 키워온 녀석이다. 아셀라 때와 같은 부위인 담낭에 증상이 있다. 클로에도 수술 경험이 있으니 시연으로는 딱이었다.

     

    정작 침팬지는 아무 생각 없는 표정이었다.

     

    “가정만 해보자고. 수술 부위는 척추, 요신경 L1에서 L5 사이가 아닐까 해. 절개 부위는 약 8센티. 물약 처치로 끊어진 신경 전기 신호를 재연결하는 작업이야.”

     

    “열고 닫을 뿐이라면 큰 수술은 아니군요. 문제는 환경입니다만.”

     

    휴고가 도면을 펼쳤다.

     

    “간이 수술실의 밀폐율은 미리 본국에서 검증하긴 했습니다만, 환기 장치가 멈추면 외부 병균이 유입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을 수술할 전제가 아니었고, 시연용이라 유리로 만들어졌다 보니 불안하죠.”

     

    “본 날짜까지 보강 가능해?”

     

    “음… 불가능하진 않겠습니다만.”

     

    “왜, 왜 진짜 왕족을 수술하는 이야기가 되고 있나요?! 말단 치유사였던 제가 황족에 이어 이제는 집도의로 남의 나라 왕족에 카, 카, 칼을… 흐야악.”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클로에가 바닥에 쓰러져 녹아내렸다.

     

    “성공하면 얻을 게 많아. 무엇보다도.”

     

    “임팩트는 확실하겠군요. 내용을 보면 다리 불구를 걷게 만드는 수술 아닙니까?”

     

    “바로 그거야.”

     

    “선인의 강림처럼 보이겠군요.”

     

    휴고는 흥미가 돋았는지 어느새 음모를 꾸미는 악당처럼 큭큭 웃기 시작했다.

     

    “너무 부담 갖지 마, 클로에. 진짜 이 수술을 하게 되면 네게 시키진 않을 테니.”

     

    “저, 정말인가요오… 어라, 그러면 집도의는 누가 맡나요?”

     

    “누가 하겠어.”

     

    나는 품에서 사탕을 꺼내 물었다.

     

     

     

    회의를 마치고 텐트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오니 웬걸.

     

    페르시야가 눈앞에 있었다.

     

    급히 뛰어왔는지 숨을 헉헉대고 있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물을 챙겨주었다.

     

    “가, 감사해요. 선생님, 친절하시네요.”

     

    “무슨 말씀을요. 왕녀님이나 되시는 분을 이런 험한 장소까지 모신 제 죄가 더 크지요.”

     

    내 대답에 왕녀가 기품있게 가벼운 웃음을 흘리고는, 의지가 담긴 눈으로 말했다.

     

    “선생님, 바로 답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아니라 고든의 생각도 들어봐야 했으니까요.”

     

    “이해합니다. 얼마든지 차분하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어요.”

     

    꾸벅, 왕녀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만인에게 희망을 보여주시고 그를 위해 지금도 힘쓰시는 선생님이시라면, 분명 고든의 다리도 고쳐주시리라 믿어요.”

     

    나는 백의의 옷자락을 잡아 펼치며 예도와 함께 답했다.

     

    “맡겨주십시오. 책임감을 가지고 수술에 임하겠습니다.”

     

     

     

    ***

     

     

     

    이야기가 착실하게 진행된 건 좋은데.

     

    아직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원래 나는 연무회에 출전할 계획이 없었단 말이야.’

     

    우리 파벌의 출전자 명단은 이미 제출한 상태고, 아셀라에게도 그렇게 보고해놨다.

     

    무엇보다 당일 아셀라는 귀빈석에서 연무회를 관람할 테니 나는 그녀의 곁을 지켜야만 한다.

     

    내가 집도를 맡기 위해서는 아셀라의 허가가 필요했다.

     

    “안 돼.”

     

    내용을 정확히 설명하기도 전에 아셀라가 단칼에 말을 끊었다.

     

    “연무회에 안 나간다고 했잖아. 왜 이제 와 말을 바꿔?”

     

    “황녀님,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저희 공장의 약품이 밀수입되는 현상을 막을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단속을 강화해. 밀수입하는 자들의 목을 베면 그만 아니니.”

     

    “사람을 구할 약품 때문에 사람을 죽이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걔들이 제국민이니? 안 될 게 뭐가 있어.”

     

    아셀라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굳이 편한 방법이 있는데 적을 만들 필요는 없잖아.

     

    “애초에 3왕자를 수술한다는 발상은 어떻게 나왔는데?”

     

    아셀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상황을 유추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나를 향해 다가와서는 쾅! 내 머리 뒤의 벽을 손바닥으로 찍었다.

     

    “너, 1왕녀 만나고 왔어?”

     

    “예. 거래를 했습니다.”

     

    “하, 보고도 없이 어딜 갔다 오는데!”

     

    “휴게 시간에 간호사와 교대하고 나갔다 왔어요.”

     

    “어디 가는지 알렸어야지!”

     

    “밖에서 우연히 만났는데요.”

     

    “거짓말 하지 마. 보나 마나 좋은 건수라고 생각해서 다녀왔겠지.”

     

    “아니라니까요.”

     

    나를 향해 팔을 뻗어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아셀라.

     

    나는 그런 그녀의 무방비한 겨드랑이를 양손으로 잡아 몸을 들어올렸다.

     

    별안간 몸이 떠오르자 당황하며 발을 붕붕 흔들다가 내 무릎을 퍽 차버리는 아셀라.

     

    “아이고.”

     

    “뭐 해!”

     

    “너무 가까워서 일단 옮기려고 그랬죠.”

     

    “진짜… 하여튼 연무회에 나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

     

    “왜 그렇게 막으시는데요. 제가 월광궁의 위상을 드높이면 좋은 일 아닙니까.”

     

    “거기 나가서 활약하면 용사 파티 후보로도 뽑히잖아!”

     

    아셀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뭐, 그건 잘 안다.

     

    나도 용사 파티에 차출되는 일은 무조건 사양이니까.

     

    시연에서는 고트베르크 공장의 약품을 주로 광고하고 수술의 공로는 클로에에게 돌릴 생각이었는데.

     

    ‘…이것 참.’

     

    아셀라의 성격이랄까.

     

    어지간히 사람을 못 믿는다.

     

    “알겠습니다. 연무회는 팀원들끼리 진행시키도록 할게요.”

     

    “당연히 그래야지. 당일에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아셀라에게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상태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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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성 목록

    · 위장 포션 = 카멜레온의 꼬리 + 사령초 + 대상의 신체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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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방법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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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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