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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1

        

       얼굴.

       얼굴.

       얼굴!

         

       얼굴이 있었다.

       사방팔방에, 모든 나무에, 수련장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나무에 얼굴이 가득했다.

         

       “효과가 좋을 것이라면서…!”

         

       자애로운 얼굴은 모두가 똑같은 높이에 있었다.

         

       키가 작은 나무.

       키가 큰 나무.

       이리저리 뒤틀린 나무.

       이제는 죽어서 고목이 되어버린 나무.

       각목이 되어버린 나무.

       수련용으로 쓰기 위해 끈을 감아둔 나무.

         

       그 모든 나무에 지장보살의 얼굴이 음각으로 찍혀 자애로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나무를 도화지로 삼고 곰팡이를 물감으로 삼아 그려진 지장보살의 얼굴은 감은 눈과 자애로워 보이는 흐릿한 미소가 일품이었으나, 사범에게 있어서 그 미소란 비웃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해도 너는 나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도발의 의미가 가득 담긴 비웃음 말이다.

         

       “사범님, 무슨 일…. 헉!”

       “꺅!”

       “으헉!”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사범과 같은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사범의 분노 섞인 외침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 밖으로 나온 이들은 수련장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얼굴을 보자마자 공포가 섞인 외침을 내질렀다.

         

       수많은 무인은 기겁하며 사범의 곁에 붙었다.

         

       “사범님! 저, 저게 대체?”

       “저건 뭐예요?!”

         

       사범은 두려움 때문인지 자신에게 달라붙는 무인들을 쳐다보았다.

       어쩌면 쳐다보았다기보다는 살기를 담아 째려보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 새끼들이….”

       “히익!”

         

       살기를 담은 눈초리.

       그리고 으르렁거리듯 흘러나오는 소음.

       그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사범의 끔찍한 분노와 이를 가는 소리.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상황에 겁을 먹었던 수련생들은 ‘분노한데다가 성질머리 더럽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사범’이라는 더 두려운 현실을 깨달았다. 무인들은 서로 짜기라도 한 듯 사범의 곁에서 멀어졌고, 의식적으로 수련장 밖을 쳐다보지 않으려 하면서 우르르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계집애처럼 별것 아닌 일에 두려워하며 꺅꺅대다니. 이 빌어먹을 새끼들,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지를 않아. 정신이! 나 때에는 저런 것보다 하늘 같으신 사범님이 훨씬 두려웠거늘. 감히 귀신이 무서워서 스승에게 달라붙고 몸에 손을 대기까지 해?’

         

       사범은 가늘게 눈을 뜨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한동안 지옥 훈련이다.”

         

       빠드득.

         

       사범은 이를 갈면서 숙소를 노려보았다.

       그리곤 다시 몸을 돌려서 수련장 밖을 바라보았다.

         

       얼굴.

       지장보살의 자애로운 얼굴이 사범을 비웃고 있었다.

         

       게다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곳에 박힌 얼굴은 어둠 속에서 머리만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여 더더욱 기괴하게 보였다.

         

       사범은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제 그 작자들, 이름에 실력이 따라오지 못했나 보군….”

         

       그는 한숨을 푹푹 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책자를 이리저리 뒤적이며 명함을 찾아내었고, 적당히 실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숲을 조사해달라고 했다.

         

       “흠. 별다른 것은 없습니다만….”

       “무슨 문제가 있어서 부르신 겁니까?”

       “풍수도 안정되어 있고, 딱히 주물이랄 것도 없고….”

       “가끔 자연적으로 진법이 형성되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만…. 여기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냥 헛것을 본 게 아닙니까?”

         

       하지만 그렇게 부른 전문가들도 하나같이 문제가 없다고만 말했다.

         

       “검출기를 사용해봤는데 가스나 환각 물질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혹시 몰라서 일산화탄소도 측정해봤는데 기준치 이하입니다.”

       “버섯이요? 하하하. 이 산에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버섯은 없어요. 독버섯이 없지는 않은데…. 대부분 먹으면 설사하거나, 신경계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위장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뭐 그 정도입니다.”

       “곰팡이요? 아 물론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곰팡이도 있지요. 하지만 이건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곰팡이입니다. 딱히 병을 일으키지도 않고, 사람에게 어떤 작용을 하지도 않아요. 게다가 식물에도 크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말입니다. 식물과 공생하는 형태의 곰팡이인 공생균(共生菌, Symbiotic fungi)이거든요.”

         

       지형도.

       석상도.

       공기도.

       버섯도.

       곰팡이도.

         

       아무것도 문제가 되는 것이 없다고만 말했다.

         

       “아니 어떻게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저기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사범은 오히려 자신을 이상한 취급하는 전문가들의 모습에 답답한 듯 자기 가슴을 퍽퍽 치면서 나무에 찍혀있는 지장보살의 얼굴을 가리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것을 보고도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니 뭐…. 문제가 있기는 하네요.”

       “그런데 일단 저희의 전공으로는 문제를 찾을 수가 없는 게 문제란 말입니다.”

       “진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환각 작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흔적도 없고, 마법의 흔적도 없고.”

       “아무리 봐도 저건 인공적인 것이 아니에요. 자연적으로 생긴 거란 말입니다.”

         

       전문가는 면목이 없다는 듯 사범에게 계속 말했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서는 불가항력이었다.

         

       오직 그 두 뜻이 담긴 말만 계속해서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면서 말이다.

         

       “후. 알겠습니다. 일단 사람 짓은 아닌 것 같다?”

       “일단 확언은 드릴 수 없습니다만, 그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현저히 크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다만 확률이라는 것에 절대는 없으므로 사람일 가능성 역시 배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니. 그래서 사람이 한 짓이라는 거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일단 저희의 의견으로는 사람이 아닌 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이렇게 아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귀신 짓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저희의 지식을 넘는 어떤 기상천외한 수법을 사용하는 사람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도둑과 경찰이 그러하듯, 침입하는 쪽의 기술이 방어하는 쪽의 기술보다 더 발전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상황 역시 그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범은 이리저리 말을 빙빙 돌리는 전문가들의 행태에 진저리를 쳤다.

         

       “…알겠습니다.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우리가 파악하기엔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일단 사람의 짓이 아닌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사람이 했을 수도 있다.

         

       이게 대체 무슨 개떡 같은 결론이란 말인가.

         

       ‘만능 몽타주도 아니고.’

         

       우스갯소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범인을 잡기 위해 몽타주를 만들 때, ‘성별은 남성 혹은 여성. 나이는 10대~60대이며 그 이상일 수도 있음. 키는 100cm에서 210cm이며, 변장해서 키를 속였을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함.’이라고 하면 대부분 일치한다고 말이다.

         

       지금 전문가들이 보이는 모습이 딱 그것과 닮았다.

         

       사람일 수도, 귀신일 수도 있다.

       문제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상자 속에 들어있는 고양이의 목숨을 두고 내기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정반대의 것이 어떻게 한 문장에 공존할 수가 있단 말인가!

         

       “죄다 사기꾼들이야, 사기꾼. 무능한 새끼들.”

         

       사범은 머리가 아파져 오는지 손으로 얼굴을 덮고 인상을 팍 썼다.

         

       “이러다가 질책을 듣겠어….”

         

       그는 지금 이 일이 당주나 원로의 귀에 들어갔을 때 생길 일을 상상했다.

         

       『 밥버러지 같은 놈—-!!! 애들 잘 가르치고 잘 보호하라고 보내놨더니 고작 그딴 일 하나 못해서 이 사달을 내—?! 너 같은 무능력하고 밥만 축내는 버러지가 어떻게 사범의 자리까지 올랐는지 모르겠다! 』

       『 저, 저, 저! 하나도 수습을 못 해서 도와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꼬락서니 좀 보게! 저게 같은 유파의 놈인지 어디 다른 유파에서 심어놓은 스파이인지 알 수가 없구먼! FBI인지 CIA인지 거기서 무능력하고 열정만 넘치는 첩자를 꽂아서 망하게 한다고 하더니, 딱 저놈의 모습 그대로 아닌가! 』

       『 당주님. 제가 사람을 보는 눈이 그렇게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단 하나는 알고 있습니다. 저런 작자가 높은 지위에 올라가게 되면 아랫사람이 고생하고, 고여있는 물처럼 제대로 활력이 돌지 않아 조직 자체가 썩어버린다는 것을요. 당주님. 저 작자를 내치셔야 합니다. 혹여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실 거라면 지옥이 미지근할 정도의 정신 교육으로 처음부터 뜯어고쳐야 합니다. 』

       『 이봐. 너! 기회를 주겠다. 할복하던가, 아니면 할복할 각오로 이 일을 수습하던가! 』

         

       부르르.

         

       사범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몸을 떨었다.

       당주와 원로들이 지껄이는 폭언이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들려오는 환청마저 느껴졌고, 매섭게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앞에 할복용 칼을 던져주는 당주의 모습마저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안 돼,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해….”

         

         

         

        * * *

         

         

       사범은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전문가들을 찾아 헤매는 한편, 괴이한 일 때문에 동요하고 있는 무인들을 잘 관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식량 창고를 풀어서 무인들에게 특식을 먹였고, 산 전체를 무대로 해야 하는 수련을 간소화시켜 전부 실내 훈련으로 바꿨으며,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헛소문이라도 퍼뜨릴까 무서워 가혹하게 그들을 굴려 밤에 곯아떨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수련생에게 시켰던 순찰을 자신이 직접 하는 걸로 바꾸기까지 했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다.

         

       외환(外患)이야 어쩔 수 없이 찾아왔다고 쳐도, 여기서 무인들의 사기가 낮아지고 헛소문까지 돌기 시작하면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빛을 보기라도 한 것일까?

         

       그날 밤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범이 순찰하는 동안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걱정거리였던 무인들은 피곤 때문에 정신없이 잠을 잘 뿐이었다. 게다가 기감을 최대한 퍼뜨렸음에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혹시 몰라서 바꿔 달았던 보안 장치에도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사범은 안심하면서 밤을 지새웠고, 아침이 되자마자 초조한 태도로 전문가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해가 하늘 높이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이른 아침, 두 사람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신사에서 왔습니다.”

         

       신관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한 명.

       무녀로 보이는 젊은 여자 한 명.

         

       “문제가 있다고요?”

         

       토끼와 여우를 떠올리게 만드는 한 쌍의 남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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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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